미국 고속도로에서 우연히 만날 수 있는 즐거움
(자동차로 미국을 여행할 때 몰라도 전혀 상관없지만 알고 있으면 혹시 도움이 될 수도 있을 이야기입니다.)
혹시 여름철에 미국을 여행하고 예정한 동선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면 시간을 쪼개서 스테이트 훼어(state fair)를 구경해 보는 것도 고려해 볼만 합니다. 영화 속에서 한번쯤은 봤을 듯한 장면이 펼쳐지고 취향만 맞는다면 즐거운 시간을 갖게 될 수도 있으니까요.
스테이트 훼어는 거의 모든 주에서 연례적으로 진행되는 가장 큰 행사라고 할 수 있는데 열리는 시기는 주마다 다르고 일정 역시 해마다 조금씩 달라집니다만 7월, 8월, 9월, 10월 중에 개최하는 주가 많고 보통 1~3주 정도 지속됩니다. (행사 기간이 긴 훼어일수록 놀만한 게 더 많은 거 같더군요.)
분위기는 대충 왁자지껄한 축제 분위기로 박람회, 공연, 콘서트, 놀이기구, 게임, 음식 등 볼거리, 놀거리, 먹을거리가 많습니다. 다만 바가지 요금은 각오는 해야 합니다. 행사장 안의 물가가 사악하기 그지없거든요.
훼어로 유명한 주들이 몇 곳 있긴 하지만 어느 주든 분위기는 다 비슷비슷합니다. 어른 아이 할 거없이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먹고 즐기는 분위기인거죠. 행사들은 오전부터 시작되지만 아무래도 피크타임은 전깃불이 켜지는 저녁 시간대인 거 같습니다. 야시장 분위기와 비슷할 수도 있겠네요.
(저도 10대 후반에는 훼어가 열리면 친구들과 어울려 주말마다 놀러가곤 했었습니다. 뭘 하지 않아도 그저 몰려 다니는 것만으로도 재미있고 신나던 시절였으니까요. 제게는 훼어에 얽힌 사연이 하나 있는데... 항아리 속에 공을 집어넣는 게임에서 사람보다도 더 큰 백곰인형을 받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 백곰인형을 같이 갔던 다른 사람에게 주었는데 인형을 받은 사람은 여자친구가 되었고 많은 역경이 있었지만 그로부터 11년 후에는 결혼식을 올렸습니다.)
훼어에 등장하는 놀이기구들을 떠올려보다가 문득 여기에 디스코 팡팡을 갖다 놓으면 인기몰이를 할 거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회전목마나 관람차같은 단조로운 놀이기구들 사이에 디스코 팡팡이 있으면 당연히 인기가 있지 않을까요? 미니 청룡열차도 있기는 하지만 이런 놀이기구는 정말 미니 사이즈여서 재미는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공을 던져 잘 맞추면 상품을 주는 사행성 게임이 더 재미있을 정도입니다. (위에서 말한 백곰 인형도 $1을 내고 한 게임에서 받은 거였지요.)
축제하면 음식이 빠질 수 없는데... 아시다시피 미국의 길거리 음식은 종류가 매우 빈약한 편입니다. 핫도그, 햄버거, 멕시칸 타코가 대부분이고 그나마 점심시간대에 대도시 도심에나 가야 볼 수 있는 수준이지요. 하지만 훼어에는 밀가루 반죽을 튀긴 funnel cake과 같은 전통적인 훼어 푸드서부터 닭꼬치와 같은 비교적 새롭게 합류한 음식들까지 꽤 다양한 종류가 나옵니다.
때로는 해외토픽에나 나올 법한 기괴한 음식이 등장하기도 하지요. 미국의 신기한 음식이라고 한국에 소개된 음식들을 보면 이런 훼어에서만 팔았던 황당한 음식인 경우가 대부분이더군요. 파는 사람이나 사먹는 사람이나 다들 반쯤 미친 상태가 아닐까 싶습니다만 이 정도로 미친 짓을 해야 화제를 불러 일으킬테니까 이해는 됩니다.
사람이 모이는 곳에는 돈이 돈다는데 사악하기 짝이 없는 가격으로 음식을 파는 사람들은 얼마나 벌까 궁금해서 찾아 봤더니 마침 2018년 미네소타 스테이트 훼어 매출 탑 5위를 전하는 TV뉴스가 있더군요. sweet martha's cookies라는 과자를 판 상인이 12일간 진행된 이 훼어에서 무려 $4,361,315 (51억원)어치를 팔았다고 합니다. 남들은 평생 벌어도 쉽게 만지지 못할 돈을 12일만에 번 거지요.
(50억원이 넘는 매출액이 믿기지 않아 다른 뉴스들도 확인해 보았었는데 맞더군요. 5위권에 든 아이템들은 짧은 기간임에도 최소한 밀리언 달러 이상씩은 판 것으로 보고되었습니다. 근데 상위 순위의 음식들은 과자나 감자튀김이나 구운 옥수수처럼 평범한 음식들이였습니다.)
사실 음식으로만 따지자면 푸드 훼스티벌(food festival)에 먹을만한 것이 더 많기는 합니다. 이런 행사는 주 보다는 시나 카운티 단위의 행사가 더 많은 편인데 저는 이런 훼스티벌을 더 좋아합니다. 지역의 특징적인 음식이나 유명한 식당의 음식을 한자리에서 맛볼 수 있거든요. 이런 곳도 가격이 사악한 건 마찮가지 입니다만 진짜 식당들은 홍보 차원에서 참여하는 경향이 있어 그 정도가 크게 심하지는 않은 거 같더군요.
(푸드 훼스티벌는 지역 특성에 맞추기 때문에 열리는 시기가 봄, 여름, 가을, 겨울 제각각입니다.)
스테이트 훼어가 규모가 크고 놀거리가 많긴 하지만 재미를 느끼지 못하는 사람도 있을 수는 있습니다. 제 경우만 봐도 해가 갈수록 시큰둥해지거든요. 만일 태국의 야시장에서 즐거운 시간을 보낸 사람이라면 훼어를 충분히 즐길 수 있겠지만 사람 많고 시끄러운 걸 좋아하지 않는다면 피곤하기만 할 것도 같습니다.
일부러 훼어를 찾아가는 여행계획을 세울 필요는 없지만 동선을 따라 훼어나 훼스티벌이 열리는 곳이 있는지 검색해 보면 계획하지 않은 즐거움이 얻어 걸릴 수도 있을 듯 합니다. 브이로그를 하는 사람이라면 조금은 더 풍성해진 여행 컨텐츠를 확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테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