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디 매너있는 여행자가 됩시다.
이 글을 쓸까 말까 꽤 오래 고민했습니다. 여행을 다녀와서 즐겁고 좋았던 추억을 정리하기에도 바쁜데 굳이 싫은 소리를 해야할까 망설여졌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때론 싫은 소리도 개선을 위한 약이 될 수 있다는 생각에 몇 자 적어봅니다.
지난 2월 출장과 휴가를 겸해 라오스와 베트남을 25일간 다녀왔습니다. 인천 공항에서 라오스 비엔티안으로 향하는 비행기 안에서 좌석 배치 때문에 부득이하게 일행과 떨어진 자리에 앉게 되었는데, 옆 자리를 보니 20대 초반의 젊은 아가씨 둘이 앉아 있었습니다. 처음엔 옆에 덩치 큰 남자가 앉는 것보다 자리가 여유있어 보다 편안하게 갈 수 있겠다 싶어 좋아 했는데, 비행기가 이륙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아가씨들이 황당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더군요. 서로 대화하는 것을 들어보니 두 사람이 친자매 사이인 듯 했는데, 안전벨트 표시등이 꺼지자마자 약속이라도 한 듯 동시에 일어서 짐칸에서 화장 케이스를 꺼내 기내에서 화장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선은 아랑곳하지 않고 머리에 잔뜩 헤어롤(대통령 탄핵심판 선고일날 이정미 재판관 때문에 이것의 정식 명칭이 "헤어롤"인 줄 알게 되었습니다. 그전까지는 일본식 명칭 "구루뿌"가 그 물건의 이름인 줄 알았거든요.) 말더니 그것으로 모자라 마치 신부화장이라도 하듯 full make-up을 하더군요. 도대체 어떻게 공항 검색대를 통과해 기내에 반입했는지 속눈썹을 다듬는 가위까지 동원해 두 시간 내내 화장을 했습니다. 마지막엔 옆에 앉은 사람을 질식시키에 충분할 만큼 독한 향수를 온몸에 뿌리는 것으로 대미를 장식하더군요. 정말 기도 안 찼습니다. 두 사람은 이런 모습이 아름답다고 느꼈을까요?
물론 美에 대한 욕구는 여성의 본능이고 여행지에서 기왕이면 예쁜 모습으로 사진을 찍고 싶은 마음이야 십분 이해 합니다. 하지만 비행기 기내도 일종의 공공장소입니다. 두 사람의 행동은 그냥 대충 이해하고 넘어갈 수준이 아니었습니다. 얼마 전 인터넷에서 외국인들이 눈쌀을 찌푸리는 한국인의 꼴불견 1위가 지하철 속에서 화장을 하는 여성들의 모습이라는 여론 조사 결과를 본 적이 있습니다. 이 경우는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부분이라도 있습니다. 바쁜 출근 시간에 이것저것 챙길 것이 많은 여성들이 시간에 쫓기다보니 출근길에 지하철 속에서 어쩔 수 없이 화장을 해야만 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하지만 하나도 바쁠 것 없는 국제선 비행기 안에서 이런 기괴한 모습을 보인다는 것은 어떤 핑계를 대도 이해하기 힘들었습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기내의 승객이 대부분 한국인이어서 국제적 망신은 어느 정도 피했다는 점 정도일 겁니다.
'해외에 나가면 모든 사람이 민간 외교관이 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해외에서 하는 한국 여행자들의 일거수 일투족은 모두 외국인에게는 한국의 국가 이미지를 형성하는 계기가 됩니다. 근래 해외에서 한국인의 위상은 놀랄 만큼 향상되었습니다. 외국인들에게 한국에서 왔다고 하면 우리를 대하는 태도는 몰라보게 달라졌음을 실감합니다. 그만큼 한국의 국제적 위상이 높아졌다는 의미겠지요. 하지만 제가 비행기 속에서 목격한 모습은 걱정스럽기 그지 없었습니다. 여행자 여러분, 부디 매너 있는 여행자가 됩시다. 해외에 나가면 원하든 원치 않든 우리 각자가 모두 국가대표가 되는 겁니다. 국가와 민족을 위해 꼭 목숨을 바쳐야만 애국자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해외에서 국제 매너를 준수하는 작은 실천만으로도 충분히 애국자가 될 수 있습니다.
부디, 비행기 안에서 이같은 놀라운(?) 장면은 다시 보게 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
태사랑 회원 여러분 즐거운 여행하시고 건강한 몸으로 귀국하시길 빕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