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시절 나는 얼마나 과감했던가??
대학 4학년 때인가... 친구와 태국 자유여행을 하려다, 급 '겁난다'는 친구의 어거지에 패키지를 하게 됐더랍니다. 그게 90년대 일인데, 가이드 분 자체는 그럭저럭 나쁘지 않았는데, 온갖 옵션이며 한국인 운영의 기념품 가게며, 온갖 쇼핑에, 자유라고는 요만큼도 없는... 참 패키지는 다닐 것이 못되는구나라는 교훈을 주었고, 태국이라는 나라에 대해서는 별 인상 자체가 남질 않았더랬습니다.
그렇게 잊고 있다가, 2002년인가 가게 된 일주일 간의 자유여행, 방콕-코사무이, 가이드북도 없이(무슨 똥배짱인지), 당시 트래블게릴라?라는 사이트와 초창기 태사랑 뒤져가며 대충 감잡고... 지금 생각하면 매일 숙소를 옮기며 이동하는데 대부분의 시간을 쏟은 비효율적인 여행에다, 오죽 정보도 없으면 무려 차웽비치에서 라마이비치까지 가까운줄 알고 걸어가다가 폭염 속에서 2시간 등산을 하는 기염을 토하기까지 ㅎㅎ 그러나, 그때 카오산에서 마신 얼음맥주 맛에 반해서 오라오라병 감염 완료되고...
너무나 아쉬웠던 일정에 2003년에는 한달 일정으로 본격 배낭여행을 계획합니다만... 역시 별다른 계획이란 없었습니다. 준비할 시간이 많지도 않았고, 게으르기도 하고... '일단 카오산으로 가서, 1/3은 북쪽 치앙마이 산간지방 보고, 1/3은 캄보디아 앙코르와트 구경하고, 1/3은 열대 바닷가로 가서 뒹굴뒹굴해야지'라는 계획이 전부... 예산은 하루 3만원, 모자라면 굶고... 숙소, 교통편, 심지어 어느 바닷가로 갈지도 안 정한 무계획... 태사랑에서 여행기 몇개 출력해서 들고 뱅기를 탔네요.
카오산 홍익인간 도미토리에 첫짐을 푸니 여행객들의 노트가 있습니다. 어느 착한 분이 앙코르와트 가는 법을 상세히 적어두셨네요. 숙소에서 앙코르와트 간다는 분들을 만나서 4인 1조를 짜서 출발... 회사 때려치고 온 동안의 직장인 오빠, 군 제대하고 온 해병대 청년, 선캡 아저씨... 알면 못갔을 뽀이뻿-시엠립 사이의 도로사정(도로가 수시로 끊겨서 두어시간 갈 거리를 9시간 걸려 도착), 아는게 없이 가서 더 놀라고 압도된 앙코르유적지의 신비함...
다시 카오산으로 돌아와, 다음 일정은 치앙마이다... 버스타고 무작정 내려 무작정 타패게이트 앞으로 향하다 호객꾼 따라 한국인 1도 없는 게하 정하고, 게하의 영업으로 나 빼고 다 서양"애"들인 2박 3일 트레킹, 깐똑쇼 구경, 걍 하릴 없이 시장 마실 다니기... 체력좋은 트레킹 친구들과 라이브 공연하는 바에서 술 한잔...
다시 카오산에 돌아와, 캄보디아 같이 갔던 분들 중 '코따오'가 그렇게 좋더라는 말이 기억나 또 무작정 조인트티켓으로 코따오행... 부두에서 싸이리해변까지 수트케이스 끌고가다 적당한 숙소에 짐풀고, 또 아무 생각없이 거니는데 뭐 이런 한적하고 작은 동네가 다 있는가... 지나가던 한국인이 반색하며 '한국인이죠? 밥 먹는데 오세요~' 픽업 당해 어울리게 된 한 무리들... 알고보니 스쿠바다이빙 강사 및 수강생들... 몇일 어울려 먹고 마시고 친해지다보니, 팔자에 없는 줄 알았던 스쿠바다이빙에 입문까지 하게 되고...
뭔 여행기도 아니고, 주절주절 말이 길어졌네요.
요새 정보가 넘쳐나고 정보얻기도 편해지는 만큼 참 세밀하게 일정짜고, 사소한 것 하나하나까지 확인하시는 분들이 많아진 것 같습니다. 사람 성격일수도 있고, 그 시절의 분위기일수도 있고, 돈이 없지 시간이 없겠냐는 배낭여행이라서일수도 있고... 암튼 그 시절을 돌이켜보니 참 과감(?)했다는 생각이 드네요. 좌충우돌, 되는 대로 안되는 대로, 헤매면 헤매는 대로, 좋은 인연도 만나고, 나쁜 인연은 흘려보내고...
마무리가 안되는데 ㅎㅎ 여전히 여행을 다닙니다만, 그 시절과는 사뭇 다른 터라 그립기도 하고 어쩌면 아찔하기도 합니다. 인생은 계속되고 여행도 계속 되겠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