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가는 로빈투어 – 파리] 2. 여행 준비
내 첫 외국여행지는 방콕이었다. 그 때는 학생이었고, 지금도 어느 정도 그렇긴 하지만 외국여행을 한다는 것이 굉장히 큰 모험이었다. 사실 나는 낯선 환경에 대한 겁이 많다. 그래서 당시까지 누가 가자고 해서 따라가는 것 이외에는 내가 먼저 어딜 가고싶다거나, 여행을 취미로 삼아야겠다는 생각을 못하고 살았었다. 그 첫 외국여행도, 친구가 같이 가보자고 해서 둘이면 괜찮지 않을까 하는 마음에 용기를 냈던 거였다.
그래서 첫 여행 준비는 굉장한 수고가 들어갔었다. 일단 가능한 모든 검색어로 모든 정보를 모은다. 블로그, 카페 가리지 않고 모두 모은다. 비행기를 타기 몇 달 전부터 시작했다. 그러다가 태사랑을 알게 되었다. 중구난방으로 여기저기 흩어져서 퍼즐맞추기 놀이같던 여행준비 정보 수집이, 태사랑을 통해 굉장히 쉽고 체계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열심히 검색하고, 이것저것 읽어보고, 여기저기 게시판 뒤적이고, 시뮬레이션을 해보다가 궁금한 것은 사소한 것 까지 모두 질문게시판을 이용했다. 친절하신 분들이 상세히 대답해주셨다.
준비를 많이 한 만큼, 여행에서 큰 문제는 없었다. 예상대로 음식에 대한 적응도 어렵지 않았고, 욕심부려서 일정을 빡빡하게 짜느라 끼니를 조금 놓친 것 말고는 꽤 알차게 잘 돌아다녔다. 하지만 첫 여행이라 신났던것과 지금껏 느끼지 못했던 문화와 공기 속에 있다는 느낌 말고는 그냥 그랬다. 물론 당시엔 엄청 즐겁고 기뻤었지만, 나중에 생각해보니 블로그 검색을 엄청 하고 아주 많은 여행사진을 보고 갔더니, 예습을 너무 열심히 한 학생이 수업시간에 흥미를 못느끼듯이 그냥 복습하는 기분이었다.
‘아, 그 블로그 사진은 여기서 이 각도로 찍었구나’
‘어, ㅇㅇ블로그에서 봤던 식당이 여기구나’
‘그 사람들은 이 메뉴 시켰던데, 나도 이걸 시킬까 말까?’
뭐, 이런 식이었다.
그 후로 몇 년. 많지는 않지만 외국여행의 횟수가 늘어감에 따라, 현지에서의 길찾기 미션난이도가 조금씩 낮아지는 듯 했다. 적긴 하지만 경험치도 쌓였고, 그 동안 스마트폰이 많이 발달하기도 했고, 모르면 물어볼 수 있는 뻔뻔함도 생겼기 때문이다. 그 외에도, 모든 일정을 대통령 업무일정 짜듯이 빡빡하게 준비하고 어느 식당에서 밥을 먹을지, 무엇을 먹을지 까지 다 정해서 분단위로 움직였던 첫 여행과는 달리 여유가 생겼다. 메뉴는 대강 무엇, 식당은 대충 몇 곳. 상황에 따라 모험적인 선택을 하기도 하고, 날씨나 피로도 등을 반영한 선택도 가능해졌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시간이 지나면서 나는 사회인이 되었다. 그것은 처음처럼 광범위한 검색을 통한 여행준비 및 정보 수집이 불가능해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다. 나는 야근하는 직장인이다. 때에 따라 다르긴 하지만, 야근이 잦을때는 집은 그냥 잠자는 곳에 불과하다. 그리고 다른 여행지에 대한 정보를 태사랑처럼 준비하고 있는 그런 커뮤니티는 없었다. 그런 상황에서 내 여행준비 방식은 바뀔 수 밖에 없었다.
직장인에게 부족한 시간은 돈으로 교환할 수 있다. 여행책을 사는 것이 그것이다. ‘여행작가’라는 것을 직업으로 삼아 내 대신 이미 방대한 조사를 하고, 보기 쉽게 정리해서 파는 책이 이미 서점에 많다. 유명한 여행지일수록 선택의 폭은 다양해진다. 첫 유럽여행이었던 아일랜드 여행을 준비하면서 처음으로 여행책을 사보았다. 방콕같은 호텔(가성비 우수한 호텔)이 없는 유럽의 도시에서 어떻게 잠자리를 해결해야 할 지도 막막했고, 무엇을 보아야 하는지 일정도 정하지 않은 상태에서 숙소를 예약해두어야 했었기 때문에 그런 정보가 꼭 필요했었다. 그런데 안타깝게도 아일랜드는 아직 한국인에게 인기있는 여행지는 아닌 모양인지, 제대로 된 여행책이 없었다. 그래서 론리 플래닛 중 가장 최근에 나온 것으로 두 권을 구매했다. 아일랜드, 더블린 두 가지 주제였다. 특히 더블린 여행책은 포켓북 사이즈에 두께도 얇고, 여행기간별 추천 코스도 다양하게 나와 있어서, 굳이 머리를 굴려 며칠동안 고민하면서 일정을 짤 필요도 없었다. 론리 플래닛이 친절하게 알려준 좋은 숙소 중 가격에 맞는 곳을 인터넷으로 예약했고, 결과는 매우 만족스러웠다.
그래서 이번에도 나는 여행책을 샀다. 지난번처럼 론리 플래닛 시리즈 중에서 파리(두꺼운 것), 파리(포켓북) 두 권을 샀다. 그런데... 꼬부랑 글씨가 너무너무 읽기 싫어서 프렌즈 파리도 샀다. 회사에서 머리 싸매고 일하면서 보는 글씨를 여가시간에 또 보자니 일하는 기분이었달까... 결론부터 말하자면, 이번에도 여행책은 사기를 잘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