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은 독서의 계절!
요즘 한국의 날씨는 환상적이다.
태국처럼 덥지도 않고 그렇다고 어깨가 시릴 정도로 춥지도 않고.
어디론가 훌쩍 떠나고 싶은데 그럴 짬은 나지가 않는다.
대신 책 속으로 여행을 떠나기로 한다.
며칠 동안 한 인물에 대한 책 4권을 연달아 읽었다.
오래 전부터 들여다보고 싶었던 인물인데 그동안 짬이 나지 않았다.
4권의 책만으로 그 인물에 대한 모든 걸 파악할 수는 없겠지만,
시작이 반이라는 말이 있듯이 앞으로 틈틈이 그와 관련된 자료들을 찾아볼 생각이다.
일단 그 4권에 대한 짤막한 독후감을 남긴다.
1) 성공과 좌절(학고재, 2009년)
그가 남긴 메모, 글, 인터뷰 중에서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만한 것들을
첨삭을 하지 않고 거의 날 것 그대로 수록하고 있다.
밉든 곱든, 좋아하든 싫어하든,
그에 대해 알고 싶은 사람들에게는 좋은 입문서이다.
2) 운명이다(돌베개, 2010년)
자서전을 표방하고 있으며 서술은 1인칭 시점으로 되어 있으나,
그의 호위무사를 자처했던 분이 쓴 책이다.
<성공과 좌절>을 기본 텍스트로 삼고 있으며,
"그 분을 잘 몰랐거나 아직도 오해하고 계신 분들에게는
이 책이 막혀 있던 소통과 공감의 문을 여는 손잡이가 되었으면 좋겠습니다."라는
기획자의 의도가 성공적으로 구현된 책이다.
3) 노무현평전(책으로 보는 세상, 2012년)
이 책의 저자 김상웅 씨는 언론인 출신의 작가이다.
<서울신문> 주필과 제7대 독립기념관 관장을 지냈으며
친일반민족행위 진상규명위원회 위원이기도 하다.
그동안 김구, 신채호, 한용운, 전봉준, 장준하,
안중근, 조봉암, 김근태, 함석헌, 안창호 등
우리 현대사에 있어서 중요한 인물들의 평전을 저술했다.
이 책은 동서양의 고전과 정치사에 조예가 깊은 저자가
그의 삶과 사상을 이해하기 쉽도록 쓴 책이다.
4) 내 친구 노무현(한길사, 2014년)
이 책은, 생전에 그와 술친구(?)로 지냈던 어느 시인이자 소설가이자
사업가였던 이가 쓴, 소설도 아니고 수필도 아닌, 얄궂은 형태의 글이다.
예술가로서의 자의식이 강한 사람들이 이렇게 실험 의식이 강한 글을 쓰곤 하는데,
대부분은 실패로 끝나고 이 책도 마찬가지이다.
내용의 측면에서도 이 책의 집필 의도가 무엇인지 모호하다.
그를 기리기 위함인지, 자신과 그의 관계를 증거하고 싶음인지,
아니면 자신의 지나온 삶을 그를 들먹여서 변명하고 싶은 것인지...
5) 마무리
나는 그와 개인적인 인연 두 가지가 있다.
아마 그는 몰랐겠지만, 내게는 어제 일처럼 생생한 기억이다.
1992년, 후배와 함께 신촌에 작은 카페를 연 적이 있는데
상호를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정했다.
나중에 그의 홈페이지가 <사람 사는 세상>이라는 걸 알고 깜짝 놀랐다.
두번째 인연은 1996년 어느 봄날의 일이다.
당시 나는 서울 종로구 구기동 북한산 아래에 있는 회사에 다니고 있었다.
회사 동료와 점심을 먹고 근처 카페에서 차를 한잔 마시고 있는데
그가 카페 문을 열고 들어오더니 우리가 있는 자리로 성큼성큼 다가왔다.
그리고는 악수를 청하며 인사를 하는 것이었다.
의자에서 반쯤 일어선 엉거주춤한 자세로 그가 내민 손을 맞잡았다.
그때 느낀 인상은 두꺼비 같다는 것이었다. 복을 물어다준다는 떡두꺼비.
이명박 씨가 선거법 위반으로 인해 사퇴한 종로구 국회위원 보궐선거에
그가 출마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알았다.
그동안 나는 그의 삶과 사상에 대해 많은 부분은 긍정하지만
어떤 부분에 대해서는 부정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시행했던 몇 가지 정책과, 특히 그의 최후에 대해서는
참으로 아쉽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위의 책들을 읽으면서 어느 정도 해소가 되었다.
연애를 해본 사람은 알 것이다.
1달 사귄 연인과 헤어지면 그걸 잊는데 3달이 걸리고
1년 사귄 연인과 헤어지면 그걸 잊는데 3년이 걸린다는 것을...
내가 그를 잊기에는 아직도 시간이 더 필요한가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