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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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어떻게 죽을 것인가!

필리핀 24 559


오래 전에 안락사 문제로 지인과 논쟁을 한 적이 있다.

나는 안락사를 찬성하는 쪽이었고 그는 안락사를 반대하는 쪽이었다.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에 함부로 생명을 앗아가면 안 된다.”

이게 그가 안락사를 반대하는 이유였다.

나는 오히려 인간은 존엄하기 때문에안락사를 찬성하는 입장이었다.

그는 동성애를 인정하고 낙태를 찬성하는,

이른바 진보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안락사 문제는 의외로 완고했다.

(진보적인 생각을 가진 사람 중에 안락사를 반대하는 사람이 꽤 많은데

이는 교조적 학습에 의한 결과라고 나는 생각한다.)

 

내가 늙어간다는 걸 처음 느낀 건 40대 초반 무렵이었다.

그전까지는 밤새 술을 마시고 이튿날 바로 출근해도 끄떡없을 정도였으나,

40대로 접어들자 과음 다음날에는 오후가 되어야 몸을 움직일 수 있었다.

40대 후반부터는 저녁이 되어야 겨우 숙취에서 벗어날 수 있었으며

50대로 접어들자 꼬박 하루를 탕진한 후에야 정신을 차릴 수가 있었다.

그렇게 나이가 들어가면서 하루가 다르게 체력이 떨어지는 걸 느끼자

나는 내가 늙어가고 있다는 걸 실감했다.

 

내 어머니는 말년에 한동안 치매로 고생을 하시다가 88세에 생을 마감하셨다.

어머니는 천주교 신자셨는데 생전에 정신이 맑으실 때

스스로의 뜻으로 모대학병원에 시신을 기증하셨다.

어머니가 시신을 기증하셨다는 말을 내게 처음 하셨을 때

나는 참 대단하시다!”는 생각 외에는 별 감동(?)이 없었다.

그런데 어머니가 돌아가시고 장례를 치르는데,

상주인 내가 해야 할 일이 거의 없었다.

대학병원의 시신기증 담당자는 이렇게 말했다.

시신기증자는 수의도 필요 없고 관도 필요 없습니다.

하셔도 장례가 끝나고 병원으로 옮기면 바로 버립니다.

시신만 잘 보관하셨다가 장례가 끝나고 인도해주시면 됩니다.”

당연히 장지나 납골당을 알아볼 필요도 없었다.

나는 그저 조촐한 빈소를 마련해놓고 문상객을 맞이하면 되었다.

 

! 어머니는 사후까지 내다보시고 남은 사람의 편리를 위해,

(물론 그것이 어머니가 시신을 기증한 이유의 전부는 아니겠지만!)

자신의 삶을 깔끔하게 정리하셨다는 걸 나는 뒤늦게야 깨달았다.

 

호주의 과학자 데이비드 구달은 104세가 되자 불치병에 걸리지도 않았지만

더 이상의 삶은 무의미하다는 판단을 내리고 스스로 안락사를 선택했다.

그는 베토벤이 작곡한 환희의 송가를 부르면서 즐겁게 죽음을 맞이했다.

 

이제 나도 늙어가도 있다는 걸 느끼기 시작한 때부터

어떻게 죽을 것인가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이 많아졌다.

지금까지의 삶은 그리 잘 살았다고 할 수 없으니,

죽는 거라도 잘 죽어야겠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자신이 늙어가고 있다는 걸 느끼고 있는 분들에게,

또는 자신 가까이에 늙어가는 사람이 있는 분들에게

영화 한편 추천하고 싶어서 사설이 길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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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4 Comments
cafelao 2019.12.17 13:24  
안락사 또는 존엄사를 깊이 생각해본것은
미 비포 유 영화를 보고였습니다.
그리고 저희 부모님들이 모두 떠나시고 나서
참 많은것들을 깨달았어요.
사적인 얘기를 이곳에 풀어 놓기는 좀 그렇고
일단 저는 제 자신도 존엄사 찬성입니다.
물론 이 문제는 개개인이 다 생각이 다를테고
원하는 사람만 해야겠지요.
필리핀 2019.12.17 13:41  
미 비포 유! 저도 이 영화봤는데
여주인공이 너무 깜찍했어요~^-^

조만간 남도술상에서 맛난 거 먹으면서
죽음에 대해 진지하게 야그해보아요~^^;;
cafelao 2019.12.17 13:44  
하하~~~
그럽시다
죽음이라기 보다
자신들의 시간을
어떻게 마무리 지을것인가...에 대하여^^
cafelao 2019.12.17 13:52  
동성애에 대해선
지금까지 우리나라의 대부분 부모님들의 대처와
상당히 다른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이란 영화를 보고 많은
생각이 들었어요.
필리핀 2019.12.17 13:59  
오! 라오님도 영화 마니 보시네요? ㅎ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에서 아들역을 맡았던
티모시 샬라메가 올해 부산영화제에 왔었죠~^-^
cafelao 2019.12.17 14:12  
영화, 여행, 음악은 모든사람들이 좋아할듯해요.
필리핀님 말씀을 듣고 보니
언젠가 작가이신분이
제 사무실 책중에 1Q84를 보시더니
부동산 아줌마도 이런책 읽느냐고 하시던게 생각이 나요
필리핀 2019.12.17 15:21  
1Q84는 베스트셀러라서 많이 알려진 책인데...
그 작가분이 감히 라오님을ㅠㅠ
근데 콜 미 바이 유어 네임은 마니아만 아는 영화거든요^^;;
cafelao 2019.12.17 15:34  
ㅋㅋ
제가 하루에 영화 서너편씩 볼때가 많아요
나중에는 눈이 아파요ㅠㅠ
필리핀 2019.12.17 16:11  
제가 감명 깊게 본 동성애 소재 영화로는
해피투게더(원제 부에노스아이레스 어페어)와
거미여인의 키스가 기억에 남아요~^-^
cafelao 2019.12.17 15:37  
아,,,1Q84  이편 삼편은 못읽었어요
저는 인터넷으로 책 사는게 적응이
안되요
한번  서점 나가야 하는데
토일마다 육아 보조원  노릇하느라
통 제시간이 나질 않아요
필리핀 2019.12.17 16:12  
요즘은 서점 가서는 책 구경만 하고
사는 건 인터넷에서 하죠~^-^
진파리 2019.12.17 14:00  
여자 ㅡ신부님?진짜 신이있고 죽으면 천당가고 그러나요?
신부님 ㅡ글쎄요.그건 아무도 모르지요.
여자 ㅡ그런데 왜 신부님은 착한일 많이하고
            열심히 기도하라고 하세요?
신부님 ㅡ진짜 죽었는데 하나님도 계시고
              천당,지옥 다 있으면 어떻해요?
              미리미리 대비 해야지요.

우리나라도
스위스등 북유럽국가나 미국의 일부 주처럼
의사조력 자살이 하루빨리 법제화 되었으면 합니다.
사는것보다 죽는게 더 어려운 분들 많습니다.
필리핀 2019.12.17 15:21  
데이비드 구달도 결국 스위스 가서 안락사를 했죠
스위스여행+안락사 보험 나오면 잘 팔리지 싶어요~ㅎㅎ
비육지탄 2019.12.17 15:17  
어제 봤는데 아내의 눈물샘이 먼저 터지고
저는 간신히 위기를 넘겻습니다 ㅎㅎ
도널드 서덜랜드 연기가 압권이었습니다
필리핀 2019.12.17 15:23  
아내분이 감성이 촉촉한가봐요^^;;

제게는 슬픈 영화라기보다는
죽음을, 인생의 마무리를,
새롭게 생각해보는 영화였어요
비육지탄 2019.12.17 16:03  
저한테 우리 30년 후의 모습이라고 잘 봐두라고..하던데요
ㅡ.,ㅡ
필리핀 2019.12.17 16:08  
저도 이 영화 보면서 나중에 캠핑카 사서 전국일주...
아니 세계일주하면 좋겠다...는 생각은 했어요~^-^
필리핀 2019.12.19 12:39  
장기는 상태에 따라서 거부당할 수도 있어요ㅠㅠ
근데 시신은 어떤 상태든지 오케이랍니다~^^;;
내가 죽고난 뒤의 문제니까 편하게 생각하세요~ㅎㅎ
후에 2019.12.21 14:33  
필리핀님 저희는 외할머니가 시신기증을 한 경우이고 저희 부모님 두분이 시신기능 서약을 하신상태입니다.
그런데 저희는 외할머니 시신을 기증 후에 그러니까 장례도 좀 소홀한 느낌이고 그건 그렇다고 해도 차후에 다시 할아버지랑 계신 남골묘에 모시는 것도 장례 후에 바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기약없이 좀 기다려야 하는 점도 있어서 많이 불편하고 힘들었습니다.
후에 2019.12.21 14:37  
그래서 사실 부모님 부고시에 어떻게 해야할 지 모르겠습니다.
필리핀 2019.12.21 16:31  
외할머니와 부모님께서 숭고한 결정을 하셨네요!

저도 어머니의 장례가 소홀해지고
장지로 바로 모시지 못한다는 점 때문에
시신기증을 취소하려는 생각까지 했어요.
근데 어머니가 생전에 그 모든 걸 설명 듣고
결정하셨기 때문에 고인의 뜻을 받들기로 했어요.
어쩌면 장례나 장지의 문제는
남겨진 자들의 죄책감을 줄이기 위한 건지도 모르지요.

시신을 기증하면 짧게는 1년
길어도 2년만에는 돌려받는다던데
저희 어머니는 3년이나 걸렸어요ㅠㅠ
Bua 2019.12.26 13:46  
전 05년에 뇌사시 장기, 각막, 시신, 화장 희망으로 신청했어요. 
가볍게 외출할 땐 가끔 카드 1장만 달랑 들고 나가는데 등록카드도 꼭 챙겨 나가야겠다는 생각을 일깨워 주셔서 감사합니다.
쓸만한 건 없지만 장기 기증을 못하고 갈까봐 걱정이에요 (못된 인간에게 주는 건 쫌 시른뎅.. ㅠ
필리핀 2019.12.26 14:59  
저도 일찌감치 다 기증했어요!
근데 너무 오래 살면
기증할 장기의 상태가 괜찮을지 걱정이에요ㅠㅠ
그렇다고 일찍 죽을 수도 없고ㅠㅠㅠ
만약 나쁜 인간이 부아님 장기를 기증받으면
개관천선할 거에요~^^
Bua 2019.12.26 22:40  
카핫~ 필리핀님 맘 =  제 맘이용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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