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믿고 가는 로빈투어 – 파리] 6. 파리 우리집과 첫 현지식사
공항에서 숙소 사장님을 만난 이후 부터는 아주아주 편한 여행길이었다. 숙소까지는 자동차로 대략 한 시간 정도 걸렸다. 차가 크게 막히지는 않았던 것도 같고... 하지만 대한민국 남부 동네의 고속도로같은 스피디함은 전혀 느끼지 못할 정도의 고속도로였다. 시속 60킬로 제한 시내도로와 비슷한 느낌의 도로였다. 우리나라 왕복 8차로 고속도로에 비하면 좀 소박해보이는 도로이기도 했고.
숙소까지 가는 길에 차 안에서 이 젊은 사장님께 이것저것 파리에 대한 정보를 물어봤었는데, 그 중에서도 내가 가장 궁금했던 것은 ‘현지인만 아는’ 동네 맛집 정보였다. 여행기를 참고하더라도 그건 어디까지나 이방인의 정보 데이터베이스일 뿐이니까 말이다. 하지만 돌아온 대답은 홈페이지에 있는 맛집 안내를 참고하라는 ARS식 대답이었다. 하지만 그 대답이 결코 서운하지 않았던 이유는, 이 분이 내게 대답해 줄 수 있는 최대한의 것이 그것이었음을 느꼈기 때문이다. 사실, 나도 부산 맛집 잘 모른다. 지금 사는 동네 맛집도 잘 모른다. 이런건 일주일에 4번 이상 외식을 다니면서도 모험심이 있어서 새로운 가게 가기를 망설이지 않는 사람만이 알 수 있거나, 주위 사람들의 신변잡기적 생활사를 모두 꿰고 있을 만큼 소셜 액티비티에 시간을 많이 쏟아야 알 수 있는 정보이기 때문이다. 굉장히 말해주고 싶지만 내가 알고있는 몇몇 식당이 이 관광객들에게 얼마나 만족감을 줄 수 있을까 하는 순간적인 고민과 그 결과로 하는 대답이 ‘홈페이지에 안내해 두었어요’ 임을 눈빛과 목소리로 알 수 있었다.
여행 당시의 파리는 썸머타임을 적용하고 있었다. 그래서 우리나라보다 7시간 느린 파리의 시간이 6시간 느린 것으로 나왔다. 비행기에서부터 도착 예정시간이 한 시간 늘어나 있어서 고갱님들과 랑데부 해야 하는 가이드는 연착인줄 알고 굉장히 불안했었는데, 그냥 그게 정상적인 거였다. 썸머타임, 넘나 헷갈리고 어려운 것. 여튼 도착시간이 늦어져서 손해본 기분이 들었는데, 좀 있으니 그냥 잊어버려졌다.
공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길은 파리나 방콕이나 비슷비슷 했다. 사실 방콕보다는 아일랜드랑 좀 더 가까운 느낌이기도 했다. 건물의 상태가 좀 다르니.. 하지만 건물의 배치 빈도나 높이 등은 다 거기서 거기인 듯 했다. 처음 방콕에 도착해 택시를 타고 시내로 들어가던 밤에 느꼈던 이국땅에 대한 새로움과 흥분은 이제 잘 못느끼는 것 같다.
시내에 들어서자 확실히 분위기가 달라졌다. 와- 파리다!! 하는 풍경이 이어졌다. 주황색 가로등 빛으로 물든 노틀담 주변 풍경은 굉장히 멋있었다. 소르본느 대학 근처에 위치한 우리 숙소로 가는 길에 노틀담이 있어서 오며가며 자주 보았다. 본격 대학가 먹자골몰으로 들어서면서 부터는 사람도 눈에 띄게 많아졌다. 저기가 먹자골목이구나. 저렴한 가격으로 코스요리를 맛볼 수 있다던데 오늘 갈 수 있으려나? 뭐 이런 생각을 하며 지나갔다.
숙소에 도착해서 사장님의 간단한 설명을 듣고 열쇠를 받았다. 조용한 말투로 친절하게 대해준 사장님은 돌아가셨고, 우리만 남았다.
이게 파리 우리집이다. 오른쪽으로는 저런 창문이 두 개가 있고, 귀퉁이만 보이는 2인용 침대, 정면에 보이는 쇼파침대, 옷장의 왼쪽에는 드럼세탁기와 다림판, 다리미도 있다. 더 왼쪽은 부엌이고, 식탁도 놓여있다. 방이 사진으로 보던 것 보다 좀 작아보이긴 했지만(그런건 원래 넓어보이게들 찍으니까) 사진과 거의 비슷했고, 분위기가 편안하고 안락해서 좋았다. 침대 옆 입구쪽에는 라디에이터가 있었는데, 성능이 아주 좋아서 세게 틀면 더울 지경이었다. 첫 날에는 고갱님들이 추워하셔서 점점 세게 틀었는데, 나중에 자다가 끄셨던 것 같다. 한국인이 운영하는 숙소라 신발은 입구에서 벗고 실내화로 갈아신고 들어간다. 이게 매우 마음에 들었다.
짐을 두었으니 자기 전에 저녁을 먹어야 하겠지? 소르본느 먹자골목으로 출동한다. 여행지에서의 대부분이 그렇겠지만, 처음 가는 여행지에서의 첫날 밤은 가장 큰 모험이다. 낯선 길, 낯선 문화 속에서 나의 생활을 시작하는 첫 단추니까 말이다. 나중에는 익숙하고 거리도 가늠이 되었지만, 이 날 저녁을 먹으러 가는 길은 굉장히 멀고 무섭게 느껴졌었다. 사람이 좀 적었다는 차이점이 있지만 방콕에서 처음으로 카오산로드에 갔을 때랑 비슷한 기분이었다. 그런데 고갱님들도 비슷한 기분을 느끼셨는지, 집에서 한 블록씩 멀어질 때 마다 조금씩 더 불안해 하셨다. 피곤했는데 자꾸 집과 멀어지니까 그렇기도 했고 말이다. 10시 조금 안된 시간에 먹자골목에 도착했는데, 저렴한 가격으로 코스요리를 먹을 수 있는 식당을 고르는 것도 대단히 어려운 문제였다. 무턱대고 들어갔다가 영 맛이 없는 접시를 받을 수도 있는데, 첫 현지식사를 그렇게 망치고 싶지는 않았다. 하지만 아무리 기웃거려도 ‘여기는 맛있을 것 같아’라는 느낌을 퐉! 하고 주는 식당을 찾지 못했고, 우유부단하게 이리저리 기웃거리기만 하다가 고갱님이 케밥집으로 들어가자고 하셨다. 사실 케밥을 첫 식사로 먹을 생각은 하지도 않았는데, 망설이다가 내가 문을 열고 들어간 식당에서 밥 먹으러 왔다고 했더니 주방이 마감을 했다는 안타까운 소식을 듣고 나온터라 다른 선택이 없었다.
어두컴컴한 식당 조명과는 달리, 케밥집은 하얀 형광등 조명에 조리하시는 분들도 신명하게 호객을 하고 계셨다. 한국 케밥집에서도 느꼈던 터키 케밥 아저씨의 흥 같은 것이 있었던 것 같다. 식사중인 손님도 있어서 안심하고 자리를 잡았다. 메뉴는 사진으로 나와 있어서 주문이 어렵진 않았고, 짧은 영어는 무리없이 소통의 도구가 되어주었다.
주문한 케밥 2개랑 샐러드 하나가 나왔다. 하나는 피타빵이었고, 하나는 뭐였더라.. 여튼 아래에 있는 사진의 케밥이 내가 주문한 것이다. 그런데 케밥의 양이 어마어마하다. 아무리 내가 대식가이고, 매우 배가 고픈 상태이지만 이걸 한 번에 다 먹기는 넘나 힘들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예쁘게 먹기는 상당히 어려운 음식이었지만, 우린 서로에게 예쁘게 보여야 하는 긴장감 같은건 1도 없는 관계니까 그런건 상관없다.
“잘먹겠습니다!”
“와-앙-”
거슬리는 향이나 맛이 전혀 없고, 매우 맛있게 잘 먹은 따뜻한 저녁식사였다. 고갱님들도 모두 만족하셨다. 치즈의 나라답게 샐러드위에 치즈 올려준 것을 보면 맛도 짐작할 수 있을 것 같다. 와구와구 먹었지만 다 먹지 못한 거의 한 개가 남은 케밥은 싸달라고 했더니 친절히 포장해주었다. 이것은 내일 아침에 먹는걸로~
숙소로 돌아가는 길에는 작은 슈퍼에 들러서 아침으로 먹을 요거트와 방울토마토, 물 같은 것들을 샀다.
날짜 | 사용내역 | 사용금액 (EURO) | 비고 |
04월 28일 | |||
슈퍼 (익일 조식 등) | 12.55 | ||
저녁밥 (케밥, 콜라) | 21 | ||
케밥 2개. 11 | |||
콜라 2개. 4 | |||
샐러드 6 | |||
합계 | 33.5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