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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afelao 33 598


2012년 여름

제가 커피집을 오픈하고 얼마 안 됐을 때였어요.

커피집 길 건너 영등포구청이 있었고

구청에서 공익 하던 학생들 몇 명이 커피를 마시러 오곤 했었지요

그중 몇 학생들은 참 이쁜 학생들이었어요.

2-3명이 함께 와서 컴퓨터 화면을 들여 다 보면서

무언가 토론을 하기도 하고...

제 커피집이 워낙 코딱지만해서

그 학생들이 하는 대화를 자주 듣곤 했었지요.

그 학생들은 그 나이 때 할 법도 한

여자 연예인 얘기나 술 먹는 얘기나...

그런 얘기 한 번 안하더군요.

늘 책이야기 아니면 뭔가 토론을 하거나

사회적 기업이 어쩌구 등등...

 

그중 한 학생은

정말 예의바르고 반듯한 학생이었어요.

가끔 혼자서도 커피를 마시러 오기도 하고...

 

그러다 공익을 마치고

그 학생은 복학을 하였어요.

 

복학하고 나서도

집에 가는 길에 일부러

제 가게에 들러서 커피를 사가기도 하고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 가곤 했었지요.

 

한 번은 이 학생이랑 얘기를 하다 보니

아직도 여학생을 사귀어 본 적이 없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제가 여학생도 사귀어 보고 그러라고

어떻게 공부만 하고 사냐고 그러기도 했었지요.

 

그러던 어느 날

그 학생은 정말 한 여학생이랑 함께 왔었어요.

여자 친구 생겼다고...

둘이서 컴퓨터 화면을 보면서 소곤소곤 토론을 하던 모습이

참 이뻐 보였지요.

 

그러다 몇 달 되지 않아서

그 학생은 그 여자 친구랑 헤어졌다고

몹시 마음 아파했었어요.

저는

괜찮을 거라고....시간이 가면...

그러면서 진짜 사랑 하는 여자를 만날 거라고....위로했었지요.

그리고

그 학생은 미국으로 유학을 가게 됐어요.

아직도 전 여자 친구를 정리하지 못한 채....

 

저는

그 학생에게 말해줬어요.

분명

유학가서

멋진 여학생을 만날 거라고...

 

그 학생은

정말 그럴까요...하면서 미국으로 떠났어요.

 

그리고 한참 후

그 학생이 커피집을 왔더군요.

방학이라 한국 들어왔다고...

그리고 여자 친구도 생겼다고....해맑은 미소를 지으면서....

너무나 힘들어 하던걸 알기에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어요.

 

그 이후로도 그 학생은

한국에 들어 올 때마다 인사하러 오곤 했었어요.

근데

참 신기한 것은

사실 그 학생의 나이는 이제 20대 후반이고

저는 그 학생의 엄마보다 더 나이가 많은데

무슨 얘기를 할까 싶은데도

그 학생과

이런 저런 얘기를 하다 보면 한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곤 하더군요.

 

지난해 한국 왔을 때

졸업할 때 까지 한국 못 들어 올 거라고 인사하고 갔었는데...

그리고 제가 커피집을 그만 두고...

 

 

가끔

그 범생이 학생은 졸업을 했을라나 궁금은 했었거든요.

 

그런데

오늘 그 학생이 사무실문을 조용히 열고 들어 온 겁니다.

방학이라

지난 금요일 한국 들어 왔다고...

갑자기 커피집 간판이 없어져서 너무 당황했었다고...

그런데

간판을 보니

간판에 제 이름이 있어서

들어왔다고 하면서....

저도

궁금해 하던 학생이라 너무 반갑더군요.

커피한잔을 드립해서 주니

가끔 혹시 커피집을 그만두고

어디로 가셨으면 어쩌나 걱정했는데

이렇게 라도 같은 자리에 계셔서 너무 다행이라고...

 

한 세 시간 동안을 이런 저런 얘기도 하고

학교 생활

지금 준비하는 프로젝트 등등...

아...이 학생은 디자인 공부하는 학생이라

본인이 디자인한 것들을 하나하나 보여주면서...

 

그 학생을 보내 놓고

문득 이런 생각이 드네요.

이 학생은

디자인에 대해 문외한인

이 아줌마랑 하는 이야기들이 지루 할 텐데

이렇게 늘 찾아 주는 걸까

참 고마운 일이지요.

 

5년 커피집을 하면서

이런 소중한 인연들이

저의 시간들을 무의미 하지 않게 만들었다는

생각이 들어서 주절 주절해 봅니다.



33 Comments
bimbo 2017.08.24 19:59  
오랜만에 태사랑에 좋은글이 올려져서 잘읽었습니다
영화로는 영웅이나, 정의가 이기는 ..그런 결과에 사람들이 (어떤이유든)
몰리고 그 영화는 많은관객 동원에 성공한 영화로 나타납니다
그러나 우리가 (사람) 실제하는 현재의 세상에선 감동, 사랑, 따듯한 이야기엔
관심들이 없지요
누구를 험담하고, 비꼬고, 판단하는 글들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몰려 시끄럽습니다
삶이 힘들고 아퍼서 그럴꺼라 생각합니다
사람 냄새나는 잔잔한 글 잘읽었습니다
cafelao 2017.08.25 09:13  
좋게 봐 주셔서 감사합니다...^^
울산울주 2017.08.24 21:23  
저녁이 있는 생활을 하시는 듯

당산대교의 노을을
음미할 수 있는 여유가 그립네요
cafelao 2017.08.25 09:15  
커피집도 저녁 6시반이면 마감해서
그때도 저녁이 있는 삶이었어요 .
고구마 2017.08.24 22:17  
그 청년도 괘 진중하고 좋은사람인거 같다는 느낌이 글만으로도 전해지고....
카페라오님도 좋은 분이셔서 그 결이 잘맞는 학생과 긴 인연이 이어진다는 생각이 드네요.
cafelao 2017.08.25 09:20  
앗!!!
고구마님이시다.....
이 학생이 참 잘 자란 학생이지요.
이 학생을 보면 볼 수록 어떻게 이렇게 잘 자랐을까 싶기만 해요
K. Sunny 2017.08.25 00:08  
실로 소설같은 너무 아름다운 실화네요.
잔잔한 미소를 짓게하는 글을 읽을 수 있게 해 주셔서 감사해요.
cafelao 2017.08.25 09:21  
푸켓지킴이 써니님.
저의 소소한 이야기들을 기분 좋게 봐 주시니 감사합니다.
더치블랙 2017.08.25 00:17  
요즘은 sns 때문에 친구들이 만나도 할말이 없다는데 단순히 까페 사장님과 손님의 관계가 대화로 장기간 인연이 이어지는 것도 대단하단 생각이드네요^^소통이 잘 되는거겠죠~
cafelao 2017.08.25 09:23  
이 학생을 만난지 만 5년이 되긴 했네요.
이 학생이 워낙 도란 도란
자신의 일상이나 생각들을 잘 풀어 놓아요.
이열리 2017.08.25 02:06  
나두 그런 손님 있는데 면회와달라는 편지가...
언능 날이 서늘해지길 바래요 ㅜㅜ
냉면 한그릇 먹여서 돌여 보내지 그러셨러려.

라오님이랑 칼님 글보러 테사랑오곤  하는데...
cafelao 2017.08.25 09:27  
이열리님도 영업을 하시니 많은 사람들을 만나시겠지요.
제가 미처 그 생각은 못했어요.
늘 오면 커피 맛나게 내려 주고 싶은 마음만 앞서서...
이열리님 동거인과 재미난 일상 이야기
저도 잘 보고 있답니다.
요즘은 어떤 새로운 일이 있었을까 괜시리 궁금해 지기도 하구요
필리핀 2017.08.25 05:49  
아... 마침내 커피집 간판을 내렸군요 ㅠㅠ
cafelao 2017.08.25 09:28  
넹....
제가 미련했어요.
저는 정말 서비스업에 안 맞는 사람인걸
이제서야 깨달았으니 말여요.
그나 저나 12월엔 저 혼자 가게 되겠어요.
평소 저를 따라 나서겠단 사람들이 12월엔 다들 가족과 함께라고 하네요
후니니 2017.08.25 16:26  
에고 힘드셨군요
앞으로 더 좋은일이 있으시길 바랍니다
cafelao 2017.08.25 19:46  
아...오랜만이세요.
늘 건강하시고 잘 지내시죠?
필리핀 2017.08.26 07:58  
항공권은 구입하셨어요?
늦장 부리다가는 참새님처럼 됩니다^^;;
cafelao 2017.08.26 18:02  
누구 좀 기다려 봤다가 발권하려구요.
12월거는 가격도 괜찮게 많이 있더라구요.
샤이닝55 2017.08.25 06:13  
잔잔한 글 잘 읽었어요.
얼마전 명동 시네마cgv에서 '내사랑'을 봤어요.
아일랜드 풍경이 어쩌고 저쩌고 하는 광고글에 혹해서,
나도 모르게 웃음이 나오기도하고 눈물이 나기도 했던,
에단호크를 좋아하게 됐죠.
이 글을 읽고나니 아름다웠던 그 영화가 생각나요.
카페라오님~~
cafelao 2017.08.25 09:31  
아...에단호크
저도 좋아하는 배우입니다.
내사랑이란 영화는 아직 못봤는데
좋은 영화인가 봅니다.
저도 봐야겠어요.
아름다운 영화라 하시니
다시금 생각나는 영화가 있어요.
저는 제가 본 영화 중에 안개속의 풍경이
가장 슬프고 아름다웠던 영화였답니다.
K. Sunny 2017.08.25 15:18  
카페라오님의 글같은 감성의 영화라니. 저도 봐야겠네요.^^
물에깃든달 2017.08.25 07:45  
와...
낭만적이에요!!
좋은친구를 두셨네요^^
cafelao 2017.08.25 09:33  
그런거죠...
제겐 참 소중한 인연인거 같아요.
제가 한 해 한해 늙어 가면서
그 학생이 한해 한해 성장해 가는 과정을
지켜 보는것 또한 참 행복할거 같습니다
Berkamp 2017.08.25 09:24  
각박한 세상에서....마음이 따뜻해지네요
cafelao 2017.08.25 09:34  
작은 글에 그렇게 느끼셨다니
제가 감사합니다.
오늘은 햇살 반짝이네요.
즐거운 하루 되셔요
숲샘 2017.08.25 10:45  
이선희의 "인연"이라는 노래가 떠오릅니다.
인연이란 참 좋은거지요.
따뜻한 인연  그런 맛에 사람이 사는 세상을 만들곤하지요
cafelao 2017.08.25 11:03  
그러게요
좋은 인연이란 돈으로도 환산할수 없는
값지고 소중하단 생각을 해봅니다
참새하루 2017.08.25 14:54  
그 디지아너 학생보다는
저는 카페라오님이 어떤분일지 궁금합니다
사려깊은 관조와 사람에 대한 이해
그리고 넉넉한 품성
이 모든것이 사람들을 끌어들이는 매력이 아닐까 합니다
저도 인식 못한채 몇시간을 주절거리고 싶은
그런분이 아닐까요
꼭 만나뵙고 싶은 태사랑 회원님
리스트 상위에 랭크 되셨습니다 ^^
cafelao 2017.08.25 19:47  
제가 참새님을 엄청 궁금해 하고 있는걸요.
언젠가 뵐 날이 있겠지요
펀낙뻰바우 2017.08.25 16:14  
새로 사귄 여자친구는 분명히 30년전 카페라오님 닮았을 듯~~~
cafelao 2017.08.25 19:47  
헐~~~저 처럼 안생긴 사람을 닮으면 안되죵~~~
queenst 2017.08.26 11:59  
글을 읽으면서 문득 영화 카모메 식당이 떠오르네요..
참 따뜻한 글 잘 읽었습니다^^
cafelao 2017.08.26 17:55  
감사합니다...^^
행복한 주말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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