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4.
오늘은 에피소드 몇개 생각나는대로.....
1998년에 방콕 카오산 홍익인간에서 한국인 젊은 부부 한쌍을 만났다.
여자는 임신 중 이었는데 배가 상당히 불렀다.
젊은 남편은 한국에서 뭔가 사고를 치고 만삭의 아내와 함께 방콕으로 도피해온 사람이었다.
만난지 하루 이틀 밖에 안됐지만 나에게 사실을 털어놓고 솔직하게 접근하는 두 사람이 마음에 들었다.
카오산에서 오랬동안 지내기 보다는 아파트를 구해서 지내는게 좋을 것 같아서 카오산 로드에서 멀지 않은 곳에 방을 얻도록 해주고 이것저것 방콕 생활을 잘 적응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그리고 임산부가 아이를 출산할 수 있는 병원을 함께 가서 알아 봐주고 왔으나 좀 염려가 되었다.
출산일이 너무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몇일이 지난 밤 11시쯤 자려고 침대에 누워 있는 내게 전화가 왔다.
곧 출산을 할 것 같으니 빨리 좀 아파트로 와달라고, 부리나케 택시를 타고 달려갔다. 아파트 입구에 도착해서 기다리고 있던 두 사람을 태운 택시는 병원으로 달리기 시작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한국에서 살고있던 여자의 쌍둥이 언니가 전화를 걸어왔다.
전화를 받고 통화를 한 사람은 남자였다.
한국의 언니가 갑자기 동생이 출산하러 가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는 것이다.
늦은 밤이었으나 범룽랏 병원에 도착한 우리는 병원 직원들의 신속한 대처로 독실을 배정받고 두 사람은 무사히 병실에 들어갔다.
이렇게 인연이 된 박ㅇㅇ는 방콕에서 얻은 아들과 함께 잘 지내다가 일년 쯤 지나서 가이드를 시작했다.
지금도 가끔씩 이 동생과 제수씨 생각이 난다.
우연일 수도 있겠지만 비행기로 여섯 시간을 가야하는 한국과 태국에 떨어져 살고 있는 두 자매 사이에 있었던 신비로운 체험에 대해서도 .....
가이드한테 얻어맞은 여자 인솔자
2000년쯤으로 기억된다.
가이드 김ㅇㅇ 은 나이는 삼십대 후반에 건장한 체격을 가졌고 한국에서도 몇번 폭행 사건을 일으키고 국립호텔도 갔다 온 적이 있는 상당히 와일드한 구석이 있는 친구다.
메이저 여행사의 전문 인솔자(TC)정ㅇㅇ는 사십대 초반의 과부이면서 독신녀이다.
정ㅇㅇ는 손님을 모시고 방콕에 오면 꼭 가이드와 함께 술을 마셨다.
문제는 술만 마시고 끝나지 않는데 있었다.
정ㅇㅇ는 가이드들 사이에 소문이 날 정도로 남자를 밝혔다.
인솔자와 가이드는 갑과 을의 관계이다.
웬만한 인솔자의 부탁이나 요구는 가이드가 들어 준다.
인솔자의 협조가 있으면 팀을 행사해 나가는데 수월해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인솔자가 사사건건 참견을 하거나 협조하지 않으면 팀을 풀어가기가 상당히 어려워진다.
정ㅇㅇ는 이런 관계를 너무나 잘 아는 여자였다.
어느정도 미모에도 자신이 있는 얼굴이었고 단 한번도 자기의 비위를 맞춰주지 않는 가이드를 만난 적이 없었기 때문에 그날도 자신만만했다.
김ㅇㅇ는 좀 특이한 사람이었다.
술도 그렇게 많이 먹지 않았고 사람도 가려서 만나고 어느 누구에게도 고분고분하게 구는 사람이 아니었다.
그 친구와 나는 가이드를 시작한 시기가 비슷해서 필드에서 만나면 농담도 하면서 친구처럼 지내는 사이였다.
김ㅇㅇ가 여느때와 똑 같이 팀 미팅을 하기 위해서 공항에 도착했다.
손님과 함께 나온 인솔자와 가벼운 인사를 주고받고 버스에 손님들을 태우고 인원체크를 한 다음 호텔로 왔다.
손님들에게 방 배정을 끝내고 인솔자와 함께 로비에서 약간의 대화를 한다음 집으로 가려는 가이드를 인솔자가 자꾸만 잡고 시간을 끌었다.
김ㅇㅇ의 눈에 정ㅇㅇ는 싸구려 여인숙에서나 일하는 창녀처럼 보였다.
자기 눈에 손톱만큼도 안드는 여자와 밤시간을 보낸다는 것은 김ㅇㅇ에게는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집에 마누라가 기다린다고 둘러대고 호텔을 나온 가이드는 영 일 할 기분이 아니었으나 미팅까지 다 끝낸 팀을 이제와서 TC 가 마음에 안든다고 안 할 수도 없었다.
좀 전에 공항에서 잘아는 가이드가 해준 말도 생각할수록 거슬렸다.
" ㅇㅇ씨 인솔자 잘못 만났네 저 여자 가이드 킬러인데..."
다음 날 아침 호텔 미팅 때부터 인솔자의 싸늘한 눈빛을 의식하던 가이드는 그냥 겉으로는 평범하게 행사를 진행해나갔다.
저녁이 되어 일정을 모두 끝낸 가이드는 손님들과 인솔자에게 다음 날 아침 미팅 시간을 알려주고 가이드 숙소에 가기 위해 호텔을 나서려는데 인솔자가 가이드를 불러세웠다.
파타야 롱비치 호텔 로비에 앉은 두 사람은 어색한 대화를 하기 시작했다.
인솔자 정ㅇㅇ는 큰 실수를 하고 있었다.
김ㅇㅇ가 어떤 사람인지 전혀 모르고 함부로 대해도 되는 보통의 가이드라고 생각한 것이다.
조목조목 트집을 잡고 컴플레인을 쏟아내는 정ㅇㅇ의 말을 조용히 듣고 있던 김ㅇㅇ는 비치 쪽 의자로 가서 담배 좀 피우겠다며 자리에서 일어나 물가로 걸었다. 사람도 없고 한적했다.
담배 한대를 피워물고 연기를 들이마시는데 뒤따라온 정ㅇㅇ가 뒤쪽에 다가와서 계속 잔소리를 해댔다. 그때 김ㅇㅇ의 인내심이 폭발하고 말았다.
갑자기 뒤돌아서 정ㅇㅇ의 머리채를 두 손으로 잡은 가이드는 오른 발을 걸며 앞으로 사정없이 잡아챘다.
바닷물에 내동댕이쳐진 정ㅇㅇ가 물 속에서 허우적 거리며 일어서자 이번에는 김ㅇㅇ의 손바닥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와 인솔자의 뺨을 갈겼다.
김ㅇㅇ는 180정도의 키에 90키로 정도의 운동으로 다져진 탄탄한 몸을 갖고 있었다.
김ㅇㅇ는 단호하고 무자비했다.
또 다시 물 속에 꼬꾸라진 인솔자의 머리채를 잡고 짖누르며 물을 먹이기 시작했다.
그 순간 정ㅇㅇ이가 느꼈을 공포를 생각하면 참 아찔한 생각이 든다.
몇번을 손으로 머리채를 잡은 그대로 물에 머리를 넣었다 뺏다를 반복하던 김ㅇㅇ는 인솔자를 일으켜 세웠다.
표정하나 변하지 않고 냉정하게 쏘아보는 눈빛에 정ㅇㅇ는 그대로 무릅을 꿇었다.
"살려주세요 오빠 살려주세요 내가 잘못했어요 살려주세요"
살려달라고 애원하는 정ㅇㅇ에게 가이드가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
" 한국에 가서 경찰에 신고해라 그리고 너는 두번 다시 태국오지마
, 한번 더 눈에 띄면 그때는 용서없다"
그 말이 끝나자 성큼성큼 걸어서 호텔을 나갔던 김ㅇㅇ는 다음 날 아침 손님들을 모시고 산호섬에 가기위해 호텔로 왔다.
로비에 모여 있는 손님들은 전날 밤 무슨일이 있었는지 전혀 눈치를 못채고 있었다.
인솔자 정ㅇㅇ도 로비에 나와 있었다.
부어있는 얼굴을 감추기위해 넓은 선그라스를 끼고 스카프로 얼굴을 싸매고 있었다.
행사는 무사히 끝났고 김ㅇㅇ는 각오를 하고 기다렸으나 한국 여행사에서는 아무런 컴플레인도 없었다.
그 후로도 김ㅇㅇ는 계속 가이드를 했으나 호되게 당하고 간 정ㅇㅇ는 그 이후 두 번 다시 태국 땅에 발을 딛지 않은 것 같다.
한 번도 봤다는 사람이 없었다.
여담이지만 정ㅇㅇ는 그렇게 나쁜 여자는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만일 폭행을 당하고 가이드가 호텔을 떠난 후 정ㅇㅇ가 호텔 직원들에게 사실을 알리고 태국 경찰에게도 신고를 했다면 김ㅇㅇ는 다음 날 아침까지 기다릴 것도 없이 그 밤에 경찰들이 가서 체포를 했을 것이다.
태국도 법이 있고 폭행사건에 관대하지도 않다.
만일 그랬다면 가이드가 인솔자를 때려서 구속이 되는 최초이자 마지막 사건이 되었을 것이다.
가이드를 우습게 보고 행동해왔던 자신의 잘못을 깊이 깨달은 정ㅇㅇ는 한국에 가서도 입을 닫고 가이드를 용서했다.
김ㅇㅇ를 만나서 자초지종을 자세히 들었던 나도 가슴을 쓸어내렸던 아찔한 사건이었다.
내가 김ㅇㅇ에게 앞으로 절대로 이 일을 입밖에 내지 말라고 당부하던 때가 엊그제처럼 가깝게 느껴진다.
방콕에 사채놀이를 하던 사람이 있었다.
이 사람이 돈을 빌려주기도 하고 자기에게 돈을 맡기는 사람들에게는 이자를 정확히 보내주기도 하며 신뢰를 쌓고 그렇게 몇년이 지났다.
그리고 어느 날 갑자기 방콕에서 사라져 버렸다. 방콕이 떠들썩했다.
들고 튄 돈이 30억이라고 했다.
이 사람에게 돈을 맡기고 월급처럼 이자를 받아오던 사람들에게는 날벼락이 떨어진 것이었다.
사용하던 이름도 가짜였고 자기차라고 자랑하던 차도 집도 다 렌트였다.
여권도 가짜로 밝혀졌다.
진짜 자기 여권은 잘 관리하고 있었고 사람들에게 돈을 받고 영수증을 줄 때는 가짜여권 복사본을 첨부해서 주었다.
수년 전부터 계획적으로 방콕 교민사회에 접근해서 차근차근 범행을 계획한 것이 분명했다.
안타까운 사연들이 전해졌다.
이혼을 하고 아이와 함께 살아보려고 방콕에 와서 쇼핑센터에서 일하면서 알뜰하게 살아가던 여자가 이혼 위자료로 받은 돈 일억원을 불려주겠다는 범인의 말을 믿고 돈을 맡긴 것이다.
몇 달치 이자를 받으며 새로운 꿈을 키워가던 피해자가 받았을 충격과 허탈감을 누가 짐작이나 할 수 있을까!
파타야에서 오랜동안 한국 투어식당을 경영하던 한 피해자는 오억원을 범인에게 줬다가 돈을 날렸다.
자기의 인생 전체가 실린 돈이었다.
수 많은 피해자들이 생겼다.
적게는 몇 백만원 많게는 수억원씩 돈을 날렸다.
여러 피해자들이 범인을 찾기위해 태국과 한국 경찰에 신고하고 백방으로 노력했으나 범인을 찾을 수 없었다.
다만 범인이 가끔씩 캄보디아 카지노에 다녔다는 사실만 확인이 되었다.
카지노에 다녔다면 들고 튄 돈도 모두 도박자금으로 탕진했을 가능성이 높았다.
실제로 이년 쯤 후 내가 잘아는 지인이 한국의 정선카지노에서 범인을 보았다고 했다.
곧 바로 경찰에 신고를 할려고 했는데 이미 거지꼴이 되어 있었고 폐인이 되어 얼마 못살것 같이 보여서 밖에 데리고 나와 국밥 한그릇 사먹이고 헤어졌다는 말을 들었다.
높은 이자를 준다는 것이 그렇게 유혹적일까?
나는 사채업자에게 돈을 줄만큼 가져본 적도 없고 설령 그런 돈이 있으면 은행에 넣어두거나 부동산을 사지
, 절대로 사채업자에게 돈을 주지 않을 것 같다.
사람을 잘 믿는 사람들이 분명히 있다.
아마 이 세상 끝나는 그날까지도 사기꾼들이 사기를 치고 또 거기에 당하는 피해자들이 계속해서 있을 것이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 만이라도 절대로 사람 말을 믿고 사기를 당하지 않기를 바란다.
믿음이란 내일 해가 뜰것이다 처럼 확인 할 필요조차 없는 것이 믿음이다.
사람의 일이나 사람의 마음은 내일도 변함없이 떠오를 해가 아니다.
또 상황이 약속을 못지키게 만들기도 한다.
사람에 대한 기대가 없으면 실망할 것도 없다.
사람에게 돈을 줄때는 돌려받을 걸 생각하면 안된다.
받으면 좋고 떼먹혀도 좋다 정도의 심정이 아니라면 절대로 돈거래를 해서는 안된다.
이것은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기본중에 기본인데 이런 기본도 없는 사람들이 많다.
참 안타까운 일이다.
돈 없으면 단 하루도 살아가지 못하는 것이 현세상이다.
한 십년 전 쯤으로 생각된다.
치앙마이에서 골프투어와 프로골퍼 지망생들을 훈련시키던 티칭프로 한 분이 있었다.
하루는 만나서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는중에 나에게 비트코인을 좀 사두라고 말했다.
그게 뭐냐고 묻던 내게 설명을 하려고 했으나 내가 그만두시라고 말했다.
그러자 자기가 가진 비트코인을 몇개 그냥 줄터이니 받으라고 제안했다.
내가 웃으면서 손사래를 치면서 거절했던 적이 있다.
지금 생각해보면 그때 준다고 할 때 받아둘걸 하는 생각도 들지만 모든것은 주인이 따로 있고 안될 놈은 손에 쥐어주고 먹으라고 해도 못먹는다는 말이 사실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