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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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2.

겨울나그네 8 1341

태국을 좋아했던 친구가 있었다.

초등학교를 함께 다니고 똑 같이 번호8번을 뽑아서 중학교까지 같이 다녔다.

상급학교 진학을 위해 둥근 모양의 번호통을 돌려 번호를 뽑아내는게 어린마음에도 영 마음에 안들었지만 떨어진 구슬에 씌어져있는 학교에 갔다.


친구는 공부를 잘했다. 

외과의사가 되어 안산에 살던 친구가 태국에 처음 놀러온 것은 1997년 내가 태국에 온지 고작 석달이 지났을 때였다.


친구는 다 가졌는데 여자 복이 없었다.


태국에 놀러온 부인은 미국 시민권자였다.


나를 만나자마자 “태국에 보석이 많다면서요.” 하더니 계속 보석집으로 안내하라고 보채기 시작했다.

물론 보석집에 가서 쇼핑을 한다면 나도 좋았겠지만 그럴 수 없었다.

친구의 부담을 줄여주고 싶었다.

친구부인은 끝내 한국가는 길에 면세점에서 수천달러어치의 쇼핑을 했다고 한다.


카지노가 왜 없는지 이해할 수 없다는 반응을 보이기도했다.

로스엔젤레스에 살았던 친구 와이프는 라스베가스 도박장에 자주가던 VIP 고객이기도 했다.

때로는 늘 함께 다니던 사람들과 도박장에서 보내주는 헬리콥터를 타고 가기도 했다고 태연하게 말했다.

그렇게 살던 여자가 한국에 잠시 나왔다가 이대부속병원에서 수련의 과정을 밟고있던 친구를 만났고 결혼을 했다.

자기의 화려한? 삶을 잠시 접어두고 안산에서 살았지만 몇 년이 못되어 사소한 문제로 친구와 다투더니 이혼을 하고 미국으로 돌아갔다.


오년 후 도박장 매니저와 결혼을 했다고 친구에게 알려왔다.

친구의 아들을 키우며 살고 있다는 것이었다. 한국을 떠나 미국에 와서 임신 사실을 알게 되었고 오년동안 친구에게 비밀로 하다가 무슨 맘이 변했는지 아이와 함께 찍은 사진을 보내왔다.

자기가 지은 아이의 이름과 사진을 ....그 사실을 까맣게 모르고 있던 친구에게 보내왔던 의도는 뭘까!

아이는 아들이었다. 친구가 보여주는 사진을 보니 초등학교때 친구모습 그대로였다.

이 여자는 친구의 두번째 부인이었다.


첫번째 결혼은 우리 초등학교 동창이었다.

초등학교 때부터 가까운 사이던 두사람은 대학에 입학한 후 동거에 들어갔고 몇년을 살았는데 딸을 하나 낳고 헤어졌다.

친구가 군대에 가자 딸을 키우며 살아가던 삶이 외로웠던지 남자가 생겼다. 딸은 애엄마가 키우기로 하고 부모가 마련해준 전셋집과 모든것을 주고 그렇게 첫번째 결혼이 끝났다.


세번째 부인은 초등학교 교사였고 아들을 하나 낳았다.

안산에서 의사로서의 생활도 자리가 잡히고 이제 비로소 안정된 생활을 하는 것처럼 보이더니 세번째 이혼을 하고 말았다.

아들은 아이의 엄마가 키우기로 합의했다.

부인의 지독한 의부증이 원인이라고 친구가 내게 말했다.

녹음된 부인의 음성을 내게도 들려줬다.

정말 힘들었겠구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세번의 이혼을 하게 된 자기의 처지를 주위 사람들에게 이해받고 싶었던 것이다.


그리고 네번째 부인을 만났다.

두 사람 사이에서는 아이가 없었다.

이 부인과 가장 오랬동안 십년넘게 살았으나 결국 오십 중반에 친구는 병에 걸려 먼저 세상을 떠났다.

나를 찾아 가장 먼저 태국에 왔고 이후로도 이삼년에 한번씩 태국으로 놀러왔었다.


친구와 함께보낸 시간들 중 가장 가슴아픈 사건은 친구의 딸이 카나다에서 스스로 세상을 떠났을 때 였다.

서울에 있는 좋은 여자대학에 합격을 했다고 기뻐하던 친구딸은 특별한 이유가 없이 세상을 버렸다.


사람에게는 특별한 육감이 있다.

아이가 세상을 버린 날 ,평소 전화를 거의 안하고 지내던 아이 엄마한테서 친구에게 전화가 왔다.

아이한테 불길한 일이 생긴것 같은 예감이 들어 전화를 여러번 했는데 받지 않고 있다는 것이었다.

친구가 토론토에 살고있는 조카에게 연락을 하고 빨리 아이 집으로 가보라고 부탁했다.

초조하게 기다리던 몇시간이 너무도 길게 느껴졌다고 한다.


아파트 경비원과 경찰까지 와서 친구딸이 살고 있던 아파트의 문을 강제로 열고 들어갔더니 아이는 이미 숨져있었다.


친구는 소식을 듣자마자 카나다행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조촐한 장례를 치루고 딸의 학교 친구들과 많은 시간 대화를 나눴다.

남자관계는 전혀 아니었고 다만 ,미션크라이스트,라는 영화를 여러번 봤다면서 자기는 먼저 하늘로가서 예수님을 만나야겠다 , 라고 말했다는 것이었다.

한국에 돌아와서 나중에 알게 된 사실은 친구의 의문을 조금 풀어주는데 도움이 되었다.

그 영화를 보고 미국에서만 오십건이 넘는 자살과 자살 시도가 있었다는 사실이었다.

자살자의 유족들이 영화 제작자였던 멜깁슨과 영화사를 상대로 소송을 벌이기도 했다고 한다. 친구는 그런 소송에 참여할 생각이 없었다.


친구는 늘 명랑하고 밝은 사람이었다.

초등학교때부터 반장과 학생회장은 늘 친구가 했다.축구부의 주장도 항상 친구가 했었다.


태국에와서 나에게서 골프를 배웠으나 골프보다는 사람들과 어울리고 노는것을 좋아했다.


사람을 좋아하고 무조건 사람말을 믿는 성격이다보니 몇번이나 금전적 손해가 날 일에 말려들기를 반복했었다.


세상을 떠나기 몇년 전 아프가니스탄 미군기지에서 의사를 구한다는 소식을 접하고 지원을 했다.

월급이 상당히 많았다.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그곳에 거대한 미군기지가 있었다.

일년동안의 계약기간이 끝나기를 학수고대하던 친구는 계약이 끝나자 한국에는 가지도 않고 두바이를 거쳐 태국 치앙마이로 왔다.

친구가 오기전 한달전에 미리 연락을 받고 스쿠터를 타고 친구가 살 집을 구하러 다녔다.

친구가 도착했고 친구부인은 한국에서 곧장 치앙마이로 와서 부부가 일년만에 만났다.


미군기지에서 떠나기 전 치앙마이로 미리 많은 짐을 보냈는데  그 짐 속에 있는 의료용품과 마약성 약이 문제가 되었다.

세관의 연락을 받고 치앙마이 공항 관세청 사무실에 가서 친구가 직업이 의사임을 설명하고 앞으로 무료봉사에 사용할것이라 말하고 삼만밧 정도를 지불하고 짐을 통과 시켰다.


태국에 다시 온 친구는 너무나 행복해 했다.

치앙마이 대학교 랭귀지스쿨에 일년 과정을 등록하고 차를 랜트하고 맛집을 찾아다니고 고산족 마을에 가서 무료진료를 하고 아마도 친구의 인생에서 가장 편안한 생활을 했지않나 싶다.

무료진료는 누구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했으나 이제는 친구가 세상을 떠나고 없는데 말해도 된다고 생각한다.


안산에서 상록의원을 접고 꽤 규모가 있었던 안산공단병원을 무리하게 인수하여 운영하다가 파산을 했던 친구는 그 이후 여기저기 돌아다니며 페이닥터를 했었다.

친구의 친구가 안산시화병원을 성공시키자 그 성공을 보고 자극을 받았던 것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보고 나도 저렇게 성공하리라 생각하는 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다른 사람의 성공을 기뻐해주고 같이 즐기면 된다.

자기도 그렇게 성공하리라고 믿고 밀어부치는 것은 정말 안타까운 결과를 가져 올 수 있다.


남달리 건강했던 나는 한번도 친구의 진료를 받아 본 적이 없지만 친구가 떠나고 없는 지금 나도 나이 때문에 여기저기 몸이 예전같지 않을 때마다 친구 생각이 많이 난다.

같이 살아서 푸켓도 가고 치앙마이도 다시 가면 얼마나 좋을까 !


길거리 음식을 좋아했고 가난한 사람을 보면 꼭 도움을 주려고 했던 사람이었다.

친구는 아무리 비천해 보이는 사람이라도 존중히 대했다.

한번도 비속어를 쓰지 않았다.

사람을 늘 밝게 대하고 구김이 없어서 사람들에게 인기가 많았다.


떠난 사람은 말이 없고 연락도 없는데 살아있는 사람의 마음 속에는 늘 같이 보낸 시간과 장면들이 함께하고 있다.

친구의 소식을 듣고 달려가 안산고려병원 영안실에 도착하자마자 통곡을 하고 눈물을 쏟았었다.

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도 그렇게 울지 않았었다.

아직은 함께 할 시간이 많이 남았다고 생각했었기 때문일까!

좋은 사람이었고 좋은 친구였던 사람을 빼앗긴 아쉬움이 아직도 가슴에 진하게 남아있다.









8 Comments
필리핀 2022.07.07 16:15  

겨울나그네 2022.07.07 21:41  
[@필리핀] 감사합니다
곧은녀 2022.07.08 13:35  
좋은 친구를 이승에서 잃었네요... 인간에 삶은 참 이해 할수없는 부조리 속에 연속인거 같아요

님에 글 빠짐없이 읽고있어요  읽고 난후 잔잔한 울림이 전해집니다..나의 가슴에.
겨울나그네 2022.07.09 10:10  
[@곧은녀] 감사합니다
ahz5 2022.07.11 19:36  
가슴 아픈 이야기네요.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먼 훗날 다시 만나 오래오래 여정을 함께 하시길...
겨울나그네 2022.07.11 19:46  
[@ahz5] 감사합니다
할리 2022.07.12 01:27  
가장 친하고 많은 추억을 공유한 소중한 벗을 떠나 보내신 겨울나그네님의 상실감이 생생히 묻어 나오는 가슴 아픈 이야기에 저의 가슴도 아려옵니다.
항상 선하고 좋은 분들을 먼저 데려 가시는 주님의 큰뜻은 무엇일까 궁금합니다.
겨울나그네 2022.07.12 11:45  
[@할리]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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