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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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5.

겨울나그네 7 1365

나는 태국의 관광가이드였다 15.


이십년전 방콕 카오산 로드에서 잘생긴 배낭족 한 명을 만났다. 

배승일(가명) 의 나이는 나보다 대여섯살 아래였다.

대학에서 영문학을 전공했고 사교성도 좋은 동생이었다.

그당시에 카오산을 다니던 배낭족들은 숫자도 많았지만 한사람 한사람의 개성과 특성이 유달리 돋보이는 사람들이 많았다.


승일이는 방콕에 들어온지 한 달도 안되어 타이항공 승무원을 한명 만났고 만난지 3일만에 영원한 사랑을 맹세하고 결혼을 약속했다.

서로가 첫눈에 반했고 둘 다 외모가 출중했다.

서로가 서로에게 깊이 빠져들었다.

승일이의 일과는 카오산 거리를 배회하거나 방콕시내를 돌아다니다가 밤이되면 자기 숙소인 게스트하우스에 들어가서 잠을 자는 것이다.


승무원 애인은 비행을 마치고 들어오면 자기 집으로 가지않고 먼저 승일이를 만나서 시간을 보냈다.

불같은 사랑이었다.

한국에서도 몇번의 연애를 해봤던 승일이는 드디어 자기의 진정한 짝을 만났다고 좋아했다.

모든것이 장미빛이었고 모든 사물이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다.

그렇게 잘되어서 결혼을 했으면 얼마나 좋았을까!


두 사람은 어느날 갑자기 헤어지고 말았다.

헤어진 이유가 많이 궁금했으나 별 말을 안해주니 알 길이 없었다.


얼마 후 승일이는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고 LA근처 작은 소도시에 살고있던 교포 여자를 만나서 너무나 성급하게 결혼을 해버렸다.

그 결혼은 불행한 결혼이었다.

직전에 했던 뜨거웠던 사랑의 열기가 완전히 사라지기도 전에, 단지 허탈감에 그리고 미국이라는 새로운 나라에서 살아가야하는 필요에 의해 조급한 결혼을 했다.


아들을 하나 얻었고 겉으로 보기에는 무탈한 삶을 사는 것처럼 살아갔다.

부부는 함께 레스토랑을 운영하고 일요일이면 한인교회에 다녔다.

일상의 반복이 이어졌고 자유로운 영혼의 소유자였던 승일이는 서서히 권태를 느끼기 시작했다.

그러나 결혼과 아들의 속박에서 벗어나는게 쉽지 않았다.

가장 견디기 힘든것은 아내의 태도였다.


승일이의 와이프는 태국에 와본 적도 없었고 올 마음도 없었다.

승일이의 입에서 태국이라는 단어만 나와도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대화를 돌려버렸다.

태국에 와본 적도 없는 여자가 태국을 경멸하고 있었고 그것이 승일이를 힘들게 했다.


미국에 산다는 것이 그렇게 대단한 일 일까?

핏속에 한국인 유전자가 돌아다니는 여자가 자기의 남편이 한동안 살면서 소중한 추억을 만들었던 나라를 비웃고 경멸하고 있었다.

그 여자에게 태국이란 하찮은 인간들이 거지처럼 살아가는 저질 국가였다.

오로지 미국만이 이 세상 최고의 나라였다.


이렇게 남편이 갖고 있는 추억을 폄하하고 말도 못꺼내게 하고 미국에 집중하라고 강요하는 아내를 사랑할 수는 없었다.

아이까지 낳아준 아내와 함께 모든것을 참고 살아보려 했으나 점점 두 사람은 멀어져 갔다.


그렇게 십년이 넘는 세월을 승일이는 미국시민권자 아내가 운영하는 레스토랑의 월급없는 일꾼으로 살았다.

두 사람을 연결시켜주는 아들이 있었지만 부인은 아들에게조차 태국이야기를 못하게 했다.

두 부부는 점점 더 대화를 나누는 시간이 적어졌다.

대화의 단절은 모든 인간관계에서 파국을 의미한다.


그러다가 두 사람은 각자의 방을 쓰고 사는 처지가 되었다.

아직은 젊은 부부가 각방을 쓰고 산다는 건 부부생활이 거의 없는 단순 동거인이 되어간다는 말이다.


그러다가 어느 날

얼마전에 같은 지역에 이사를 와서 세탁소를 시작한 부부가 있었는데 남편이라는 사람이 식당에 자주 나타나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어느 날부터 두 사람이 차를 타고 함께 돌아 다니기 시작했다.

세탁소를 하는 부인도 별 신경을 안쓰는 것 같았다.


당장 총을 구해서 두 년놈을 쏴죽이고 싶다고 승일이가 나에게 연락을 해왔다.


그럴 필요없다고 ...이미 마음이 떠난 사람을 미워하지 말라고 내가 조언을 했다.

세탁소 남자로 인해 부부사이는 극도로 멀어졌고 부부싸움이 일어났다.

승일이가 십년을 넘게 참고 참았던 분노를 표출시키고 위협을 가하는 말도 쏟아냈다.

 큰 실수를 한 것이다.


애 엄마는 그냥 넘어가지 않고 법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움직였다.

모든 것은 승일이에게 불리했다.

승일이의 처가집 식구들 모두 미국에 정착한지 오래였고 누구 한사람 승일이 편에 서주는 사람이 없었다.


미국 법원의 결정이 나왔다.

승일이는 부인 곁으로 가지 말라는 접근금지명령 이었다.

세탁소에 있던 여자는 그 남자의 정식부인이 아니었다.


어쩌다보니 교회에서 만났고 사랑없는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새로운 삶을 찾아 왔으나 남자는 식당하는 여주인과 붙어버리고 자기는 닭 쫒던 개 지붕 쳐다보는 신세가 되었다는 것이 그 여자의 말이었다.


승일이 부인과 세탁소 남자 두 사람은 아예 같이 살기 시작했다.

승일이의 아들도 그놈의 손을 잡고 세 사람이 교회에 다니기도 했다.


멀찍이서 지켜보던 승일이는 모든 것을 포기하고 미국을 떠나기로 했다.

그 무렵 치앙마이에 있던 나에게 전화가 왔다.

가진 돈이 별로 없으니 앞으로 어떻게 살아가야할지 참 막막하고 답답하다는 말이었다.

한국으로 가든지 태국으로 가든지 잘 생각해서 결정해야 했다.

이미 정 떨어진 미국에는 더 이상 살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십년이 넘는 결혼 생활을 청산하고 거의 빈털털이로 쫒겨나다시피 미국을 떠났다.


승일이는 치앙마이에 왔다.

태국 북부의 이곳 저곳을 배낭족이 되어 몇일 여행을 다니다가 내가 일하던 그린월드 사무실에 나오기 시작했다.

김사장에게 소개를 시키고 핼퍼를 태우기 시작했다.

일단은 한번 해보겠다는 말에 가이드 수업을 시켰지만 오래할 것 같지 않은 생각이 들었다.

한 두번 작은 규모의 팀을 행사해보더니 가이드가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했다.

나도 강요하고 싶지 않았다.

그렇게 승일이는 태국을 떠나 한국으로 들어갔고 건설현장에 다니면서 건축일을 배우고 목수가 되었다.


태국 땅에 와서 곧바로 만난 옛날 애인에 대한 미련과 아쉬움이 그림자처럼 승일이를 따라 다녔다.

이루어진 사랑보다 이루지 못한 사랑에 대한 회한이 더 깊고 무겁다.

한국의 건설현장에서 일을 하는것이 얼마나 힘든 일인지는 나도 잘 알고있다.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다.

승일이는 그렇게 힘든 일을 묵묵히 잘하고 있다.

미국에서의 잃어버린 십년을 한탄하기 보다는 앞으로의 삶에 더 집중하고 살아가는 승일이의 자세가 믿음직해 보인다.


타이항공의 승무원이던 여자와 결혼을 하면 성공적인 삶을 살았을까?

승일이가 이 글을 읽는다면 이렇게 말해주고 싶다.

뒤를 돌아보지 말고 뚜벅뚜벅 걸어가라 상처없는 거목은 없는 법이다.


십 년 전 쯤이다.


치앙마이에 약 20명의 공무원 한팀이 왔다.

나는 행사 전에 사무실에 나가서 이 팀은 공무겸 관광으로 오는 팀이라는 것을 알았다.

공무원들의 공무는 다름아닌 태국의 쓰레기 처리장을 방문하고 관계자들과 의견을 나누고 서로 정보 교환등을 하는 것이라고 했다.   


팀이 치앙마이에 도착하기 전에 나는 먼저 쓰레기 처리장에 가서 관계자들을 만나고 미팅을 주선했다.


한국의 공무원들이 견학을 온다는 말에 태국의 공무원들은 협조적이었다.

드디어 약속된 날 약속된 시간에 공무원 손님들과 함께 쓰레기 처리장을 방문했다.

버스가 정문에 도착하자 쓰레기 처리장 공무원들이 밖에 나와서 우리를 환영해줄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그랬는데


버스가 멈추고 손님들이 다 내리더니 두 사람이 준비해온 플랭카드를 정문 앞에서 길게 펼치기 시작했다.

그리고 사람들이 플랭카드 앞에 두 줄로 서서 기념 사진을 찍기 시작했다.

사진찍기를 마치자 내가 손님들을 태국 직원들에게 안내하려고 하는데,

손님들은 이미 버스에 타기 시작했다.


나는 당황하기 시작했다.

지금 땡볕에 태국인들이 죽 늘어서서 한국의 손님들과 악수를 나누고 인사를 하려고 기다리고 있는 중이었다.


한 놈도 태국인에게 눈길을 주는 사람조차도 없었다.

뭐가뭔지 영문도 모른 체 땡볕에 서 있는 태국인들을 뒤로하고 모두 버스에 올라가 버렸다.


나는 너무나 어이가 없고 화도 났지만 태국인들에게 손을 합장하는 와이 자세로 컷톳캅을 연발했다.

비로소 상황을 접수한 태국인들은 그래도 나에게 괜찮다는 말을 해주고 모두 안으로 들어갔다.

버스에 올라간 나는 아무말도 하지 않았다.

사람 같잖은 놈들에게 무슨 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것이 공무원들의 해외연수라는 말인가?

너무나 어이가 없어지니 말 문이 막혀버렸다.


지금 생각해도 얼굴이 화끈거릴 정도의 분위기 였다.

그런 놈들의 해외여행을 위해서 국민들의 소중한 혈세가 쓰인다는게 

말이 안된다고 생각한다.

여행을 가고 싶으면 개인 돈으로 가야지 공무를 빙자해서 국민들의 세금을 더 이상 쓰지 않았으면 좋겠다.

대한민국을 망신시키고 아무 감각도 없는 인간들이었다.


지금부터는 좋은 손님들 이야기를 몇개 해보고 싶다.

전직 학교 교장 선생님 부부가 오셨다.

공항에 도착해서 가이드를 미팅한 순간부터 다시 공항에 돌아와 헤어질 때까지 한치도 흐트러진 모습을 보여주지 않으셨던 두 분과 함께 많은 대화를 나눴던 기억이 특별하다.


흔히들 그 나이에 오는 손님들이 자식자랑을 많이 하는데 ,  두 분은 자기들의 가족이야기는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함께 여행을 하는 다른 손님들도 배려하는 모습이 역력했다.

페케지 팀 이었지만 모두가 한 가족같이 좋은 분위기가 만들어졌다.

나도 최선을 다해서 손님들을 모셨고 시장에 가서 과일도 종류대로 많이 사드렸다.

삼박사일의 투어 일정이 너무나 빨리 지나가고 마지막 날이 되어 몇군데 쇼핑샾에 갔으나 쇼핑을 많이 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좋았다. 좋은 팀 분위기는 공항 도착 때까지 잘 이어졌다.

팀은 잘 끝났고 돈은 별로 못벌었지만 이런 손님들만 만난다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다.

교장선생님은 봉투하나를 주고 가셨다.

어느사이엔가 손님들 모두에게서 약간의 돈을 걷어 봉투에 넣어두셨던 것이다.

돈과 함께 메모지도 있었다.

좋은 여행이 참 즐거웠다고 감사하다는 말과 함께 .....


치앙마이에 인센티브팀 손님들이 한 팀 오셨다.

내가 가이드로 나갔다.

팀의 회장을 맡고 계신 분은 울산에서 비닐하우스 농사를 크게 짓는 분이었다.

웬지 처음 만날 때부터 가깝게 끌리는 분이었다.

투어 중에 나와 많은 대화를 나누었다.

투어를 속사정을 잘 아시는 분이었고 그런만큼 가이드에게도 협조적이셨다.

최선을 다해서 서비스를 했고 모두가 만족할만한 투어가 되었다.

마지막 쇼핑샾에 갔다.


쇼핑샾 한쪽에 커다란  전시용 상황버섯 하나가 있었다.

쇼핑샾에 오기 전에 상황버섯에 대해서는 한 마디도 안 한 상태였다.

팀의 회장님이 나를 불렀다.

" 김부장 저 상황버섯를 사서 우리 팀원들에게 전부 쪼개서 나눠주고 싶은데 가격 좀 잘 맞춰봐"


내가 가게를 맡고 있는 후배에게 손님 한분이 전시용 상황버섯에 관심이 있는데 가격 좀 잘 맞춰보라고 말하자 후배가 회장님한테 와서 "이 물건은 천만원인데 사신다면 700만원에 가져가십시요 " 그렇게 툭 던지듯 한마디 말하고 다른 손님들과 대화하기 위해 저 쪽으로 가버렸다.


회장님이 나를 보더니 " 아니 저 친구 물건을 팔고 싶은거야 안 팔고 싶은거야. 김부장 다시 저 사람 좀 불러와봐"


결국 다시 불려 온 후배가 단칼에 마지막 가격을 제시했다.

" 더 깍지 마시고 600만원 주십시요"

그러자 회장이 " 그러지말고 500으로 끊어 , 여기 김부장 얼굴봐서 한개 팔아줄려는 거야"

결국 500만원에 가격이 결정되고 샾 바닥에 물건을 놓고 도끼로 뽀개서 팀원들에게 골고루 나눠드렸다.


이렇게 인연을 맺은 전ㅇㅇ회장님은 지금도 소식을 주고 받고 지내며 늘 연락을 하고 있다.

또 다른 팀과 함께 칸차나부리를 가기위해 방콕에 오셨을 때는 내가 방콕에 내려가서 4박5일의 가이드를 해드리기도 했다.

울산에 두 번이나 찾아가서 회장님을 만나기도 했다.

좋은 인연은 삶을 윤택하게 만드는 힘이 된다.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는 것

좋은 부모를 만나고 좋은 형제를 만나고 좋은 배우자를 만나고 좋은 친구를 만나고 좋은 선후배를 만나고도 불행한 사람은 없다.

그렇게 좋은 만남만 가질 수 없는게 현실이다.

그래서 좋은 만남은 잘 관리하고 나쁜 만남은 피해가야 한다.

어떤것이 좋은 만남이고 어떤것이 나쁜 만남일까?


잘못된 만남은 사람을 불행하게 한다. 너무나 당연한 일이다.

단 한명이라도 나쁜 사람을 만난다면 인생 전체를 수렁에 빠지게 하는데 부족함이 없다.

그럼 어떻게 살아야 좋은 만남을 하고 나쁜 만남을 피해갈 수 있을까?


꼭 일류대학을 가고 좋은 직업을 갖는다고 좋은 만남만 있는건 아니다.

좋은 만남은 뜻밖의 상황에서도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좋은 생각이 좋은 만남을 끌어들인다는 법칙을 이 글을 읽는 모든 분들이 꼭 기억하시기를 바란다.


좋은 생각을 하다보면 마음도 좋아진다.

마음이 생각을 이끄는게 아니라 생각이 마음을 만들어 나간다.

좋은 결심을 하고 나쁜 생각을 버리고 좋은 말을 하면 좋은 일이 생긴다.

행운은 하늘에서 뚝 떨어지는 것이 아니다.

그것은 로또복권을 맞는 것이다.

복권에 당첨되었다고 행운이 찾아왔다고 말하기는 이르다.

태국에도 수 많은 사람들이 복권을 사서 당첨되기를 고대한다.


진정한 행운이나 복은 그런것이 아니다.

행운도 복도 사람을 통해서 오는데 자기 생각이 거칠거나 마음이 혼란스러우면 찾아온 복이 머물 자리를 찾지 못하고 금방 떠나버린다.

이기적이고 계산적이고 생각이 얄팍한 사람에게 진정한 복과 행운은 찾아오지 않는다.

그저 짐승처럼 밥을 먹고 배설이나 하다가 가는 인간이 수 천억의 재산을 남겨도 다 쓸데없는 짓이다.


인간으로 태어나 남을 이롭게 하는 삶을 조금도 살아보지 못했다면 그런 삶을 또 다시 살라고 하늘은 두번 세번 인간 생명을 주지 않는다.

그저 무에서 왔다가 무로 돌아갈 뿐이다.

사람은 죽고 영혼은 극락왕생이니 천당이니 하는 말들은 모두 다 사실이 아니다.

그렇다고 내가 유물론을 말한다고 오해하지 않기를 바란다.

나는 전능자께서 모든 생명을 창조하셨음을 알고 있다.

영혼은 육체와 함께 소멸되는 것이지 육체가 죽어도 영생한다는 것을 믿지 않을 뿐이다. 죽은 자가 다시 사는 길은 오직 부활 뿐이다.

인간은 능력의 한계를 갖고 있지만 전능자의 능력은 한계가 없다.

깊이 들어가면 종교의 영역이기 때문에 여기에서 멈추고 싶다.


사물을 분별하는 것은 꼴을 봐도 알 수 있고 소리를 들어도 알 수 있다.

아이가 우는 소리를 듣고도 엄마는 아이의 상태를 알 수 있다.

소리가 중요하다.

인간의 소리는 그 사람이 입으로 하는 말이다.

천둥소리가 들리면 소나기가 쏟아질 것을 알 수 있고 자동차 급브레이크 밟는 소리가 들리면 교통사고가 날 수 있음을 안다.


사람이 평소하는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의 마음이나 정신상태를 알 수 있다.

차분하고 논리정연한 말을 하는 사람은 남에게 신뢰를 주지만,

말끝이 분명하지 않은 사람은 어딘가 미덥지 못하다.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일 줄 모르고 주로 자기 말만 하는 사람은 속이 비어있는 것이다.

내면이 꽉 들어찬 사람은 남의 말을 잘 들어준다.

그리고 입을 열어 말을 쏟아내어도 듣는 사람에게 뭔가 도움이 되는 말을 한다.

무익하고 쓸데없는 말을 하지 않는다.


말은 곧 인격이다.

말을 들어보면 그 사람이 어느 수준에 와있는지 알 수 있다.

요즘에 정치인들의 말을 들어보면 우려스럽다.

시정잡배들의 막말이 공당의 대변인들 입에서도 들린다.

참으로 개탄 할 일이다.


옛날엔 이렇지 않았다.

명 대변인 이라는 칭찬을 받은 정치인들도 많았고 상대진영을 공격 할 때도 금도를 지키고 정제된 언어의 말을 했다.

일부 유튜버들의 막말 수준도 가관이다.

상대진영을 공격한답시고 내 뱉는 말들을 보면 악마나 귀신들이나 좋아 할 소리이지 인간의 말이 아니다.

그건것이 용인되는게 자유일까! 정말 한심하다.


근본도 없이 어느날부터 언론인 행세를 하는 몇명의 인간들도 꼴불견이다.

잘하면 누가 뭐라할까, 사사건건 시비걸고 딴지걸고 늘어지는것이 과연 옳은 일일까 싶다.


태국에서 오래 살아 왔지만, 여기는 그래도 싸우더라도 막말을 쓰지는 않는다.  한국의 정치인들이 길거리 시정잡배들이나 쓰는 말을 하니 정말 국격이 떨어지는걸 정치인들이 알았으면 싶다.


다음회에서는 고산족들과 태국 북부에 많이 와서 살고있는 타이야이족 이야기를 하고 싶다.
















7 Comments
malitaksin 2022.07.17 09:49  
좋은 경험담을 잘표현 하시네요^^
건강하시고 창마이 에서 한번 뵙기를 바랍니다
감사합니다
겨울나그네 2022.07.17 10:22  
[@malitaksin] 065 945 5367 태국 전화번호 입니다.
연락 한번 주세요.
한순간의빛 2022.07.17 11:42  
틈틈이 잘 읽고 있습니다.
살면서 좋은 사람과 좋은 인연을 이어간다는 것은 정말 어려운 일이라는 생각을 합니다.
우선 스스로가 좋은 사람이 되어야 할 텐데 그것도 쉽지 않고요. ^^;;
겨울나그네 2022.07.17 20:06  
감사합니다
불불스키 2022.07.18 10:45  
마음에 와닫고 공감을 느끼는글 계속 잘보고 있읍니다.감사합니다.
슬리핑독 2022.07.18 13:03  
공무원집단이 모두 그렇지는 않겠지만 세금낭비하고 그돈으로 국가를 망신시키는 공무원들이 많다고 들었습니다.  저런 꼼수가 통하지않게 하는 방법이 있을텐데 아쉽네요. 때로는 속상하고 때로는 뭉클하고 추억에 잠기게도 하는 겨울나그네님의 글이 벌써부터 기다려집니다. 감사합니다^^
할리 2022.07.20 02:19  
많은 생각과 반성을 하며 제자신을 돌아 보게 하는 성찰의 글 감사드립니다.
제자신은 잘 살아 왔는가를 돌이켜 보며 남한테 손해가 되는 행동들은 안했는데 매번 남한테 손해를 당하는 현실이
제가 잘못된 것인지 각박하고 자기만 아는 이기주의가 팽배해져 가는 현대 사회의 구조적 모순인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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