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메기탕을 먹으러 변산엘 갔다
꼼치는 우리나라 바다 전역에서 잡히는 물고기이다. 동해에서는 곰치, 물곰, 남해에서는 미거지, 물미거지, 서해에서는 잠뱅이, 물잠뱅이로 부른다.
최근에는 물메기라는 이름으로 불리며 물메기탕이 제법 유명해졌다. 강원도 삼척에서 ‘묵은지 넣고 끓인 물메기탕’이 시초라고 하는데, 남해와 서해에서는 무와 대파, 마늘만 들어간 맑은 탕을 주로 먹는다. 지방이 적고 아미노산이 풍부하여 시원하면서 감칠맛이 나는 최고의 생선을 굳이 맵게 해서 먹을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물메기탕을 제일 잘한다는 지인의 글을 읽고 혹해서 부안상설시장에 있는 물메기탕집을 찾았다. 시장 안쪽 후미진 곳에 있는 허름한 집이어서 단골이 아니면 찾아오기 어렵게 생겼다.
투박한 양푼이에 담겨 나오는 맑은 물메기탕의 첫 술을 뜨는 순간, 왜 이제야 이집을 알게 되었는지, 감동과 후회의 눈물이 핑 돈다. 끓이면 끓일수록 곰국처럼 뽀얀 국물이 우러나오는데 기가 막히다. 함께 나온 자연산 굴도 입에 짝짝 달라붙는다.
물메기는 동중국해에서 여름을 나고 겨울에 알을 낳기 위해 연안으로 이동한다. 12월~3월이 산란기인데 이때가 제일 맛있다.
올 겨울이 가기 전에 꼭 다시 먹고 싶다.
[안도현의 사람] “부안시장에서 물메기탕 잘 끓이는 장순철 여사”
물메기탕, 하면 떠오르는 식당이 있다. 전북 부안 상설시장 안에 있는 변산횟집이다. 간판은 횟집인데 활어가 헤엄치는 수족관 같은 건 없다. 생선회를 찾는 손님에게는 가까운 생선가게에서 회를 떠다 준다. 시장 안에 있는 생선은 뭐든지 손님이 찾는 대로 요리해주는 이 집은 어물전 한쪽에 숨어 있는 허름한 식당이다.
벽에 붙은 메뉴판에는 물메기탕, 갈치탕, 생태탕, 우럭탕, 서대탕이라는 글자만 보인다. 그때그때 가격이 다르다는 것이고, 아는 사람만 오는 집이라는 뜻이다. 주인아주머니는 말이 별로 없는 분이다. 손님이 문을 열고 들어가면 가벼운 목례로 맞이하는 게 인사의 전부다. 살가운 미소 따위를 기대해서는 안된다. 끼니때에는 워낙 바빠서 말 한마디 걸어볼 엄두도 나지 않는다.
변산횟집은 특이하게도 장성한 아들 둘이 오래전부터 어머니 옆에서 같이 장사를 하고 있다. 첫째 아들 윤광윤씨(43)와 셋째 광희씨(38)가 그들이다. 셋째 아들을 통해 집안 뒷조사 좀 했다. 둘째 광준씨(40)는 서울에서 학원을 운영하고 있고, 막내아들 광진씨(36)는 군청 공무원이다.
주인아주머니의 이름은 장순철. 1950년생이니 올해 65세다. 전쟁의 와중에 태어나 대여섯 살 무렵 부안의 안동 장씨 집성촌으로 입양되었다. 성도 이름도 거기서 얻었다. 말이 입양이지 식모살이나 다름없었다.
결혼을 하고 나서 아들 넷을 낳았지만 가난은 쉽게 물리칠 수 없었다. 남편마저 술로 병을 얻어 일찍 세상을 떴다. “가난이 원수로다. 형편이 된다면 남들처럼 더 공부를 할 수 있을 텐데.” 남편이 읽던 책의 뒤표지에는 삶을 한탄하는 이런 메모도 적혀 있다. 그걸 바라볼 때마다 가슴이 미어진다.
장순철 여사는 안 해 본 일이 없다. 벽돌공장과 두부공장에서 고된 일을 하며 혼자 어린 자식들을 키웠다. 다방이 성시를 이룰 때는 주방에서 오래 일을 했다. 여자로서는 무뚝뚝한 편이었지만 손님들에게는 꽤 인기도 있었다. 약삭빠르게 사람을 대하지 않은 탓이다. 거기서 돈을 모아 ‘소라찻집’이라는 간판을 달고 찻집을 개업했다. 인삼을 사러 진안이나 금산을 오가기도 했고, 직접 배달도 마다하지 않았다.
전통찻집이 호황을 누리던 때가 지나자 수입이 시원찮아졌다. 누군가 시장에서 장사를 해보는 게 어떠냐고 해서 부안시장 모퉁이에 의자 몇 개 놓고 자그마한 식당을 열었다. 30년 전이었다. 나는 1980년대 후반 무렵부터 이 식당을 가끔 기웃거렸다. 아이스박스에 금방 죽은 생선이 가득했고, 그걸 회나 탕으로 만든다고 했다.
처음 간 것은 주꾸미가 한창일 때였다. 2월 중순부터 3월 말까지는 알이 꽉 찬 주꾸미가 제철이다. 냉이를 넣은 육수에 데쳐 먹거나 고추장 양념으로 볶아 먹는다. 입천장에 살아 있는 주꾸미 다리가 쩍쩍 달라붙는 맛을 즐기는 사람들도 있다.
12월부터 2월 중순까지는 물메기탕에 홀려 변산횟집을 찾는다. 내가 아는 한 우리나라에서 물메기탕을 가장 잘 끓이는 집이다. 냄비가 아니라 대야만 한 뚜껑 없는 양푼에다 끓여낸다. 여기에다 참기름 몇 방울을 넣으면 더욱 감칠맛이 난다. 겨울에만 먹는 이 음식에 매혹되어 ‘물메기탕’이라는 제목의 시 한 편도 얻었다.
변산 모항 쪽에 눈 오신다 기별 오면 나 휘청휘청 갈까 하네
귓등에 눈이나 받으며 물메기탕 끓이는 집 찾아 갈까 하네
무처럼 희고 둥근 바다로 난 길 몇 칼 냄비에다 썰어 넣고
주인이 대파 다듬는 동안 물메기탕 설설 끓어 나는 괜히 서럽겠네
눈 오신다 하기만 하면 근해(近海)의 어두운 속살 같은 국그릇에 코를 박고
한쪽 어깨를 내리고 한 숟가락 후루룩 떠먹고
떠돌던 눈송이 툇마루 끝에 내려앉는 것 한번 보고
여자가 옆에 있어도 좋고 없어도 좋다는 생각을 하겠네
변산 모항 쪽에 눈 오신다 하기만 하면
물메기탕 옆에 숭어회가 빠질 수 없다. 겨울에는 살이 볼그레한 숭어회를 한 접시 같이 주문해야 제격이다. 소주도 물론 빼놓으면 안되겠지. 햇살이 따뜻해지고 냉이꽃이 피기 시작하는 봄에는 주꾸미와 도다리탕이 좋고, 여름철엔 갑오징어회, 가을에는 전어회와 꽃게무침이 그만이다.
장순철 여사의 식당이 문을 닫는 일은 거의 없다. 장 여사는 매일 아침 5시에 일어나 수영장으로 향한다. 운동을 마치면 7시에 아침밥을 먹고 한 시간쯤 숙면에 든다. 큰 병치레 한 번 없이 가게를 운영하고 있는 것은 규칙적인 운동과 철저한 시간 관리인 것 같다고 아들들이 귀띔한다.
9시에 가게에 정시 출근해서는 그날 손님들에게 내놓을 밑반찬을 준비한다. 변산횟집의 밑반찬은 그때그때 다른데, 잘 익은 배추김치, 갓김치, 갈치속젓, 나물무침 두어 가지, 꽃게무침 등이 다 푸짐하고 맛깔스럽다.
장 여사는 11시까지 시장을 돌며 그날 나온 생선이 뭐가 있나 둘러본다. 시장 상인들은 장 여사를 ‘순철이’ ‘철이’ ‘변산 언니’로 부른다. 변산횟집의 영업 비결 중 하나는 값싸고 물 좋은 생선을 잘 골라 손님들에게 권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번 온 손님은 반드시 두 번, 세 번 발걸음을 들여놓게 된다. 혹시라도 이 집을 처음 들르게 되거든 그날은 뭐가 좋은지 물어봐야 한다.
아들들의 말에 의하면 점심때는 그야말로 매일 전쟁을 치르는 기분이라 한다. 1층과 2층에 손님들이 꽉 들어찬다. “한바탕 장사를 하죠. 저녁 장사까지 마치면 밤 10시쯤 돼요.”
장순철 여사는 아들 둘에게 꼬박꼬박 월급을 준다. 형과 동생이 받는 월급에 약간의 차이는 있지만 연봉으로 따지면 각각 3000만원을 웃돈다. 한 달에 쉬는 날은 단 하루다. 그렇다고 어머니와 아들 사이에 불편한 노사관계는 없다.
마흔 살 전후의 아들 둘이 어머니 옆에서 일을 거들면서 오손도손 이야기를 나누는 모습은 흔치 않은 진풍경 중 하나다. 마늘도 같이 까고 파도 같이 다듬는다. 시장에서 들려오는 소문이나 미담도 똑같이 공유한다. 그러다 보니 개인적인 비밀을 만들 시간도 없다. 마치 오랜 친구 사이 같고 때로는 아들들이 딸처럼 보이기도 한다.
“항상 든든하고 고맙지만 아직은 젊은 아들들을 가게에 묶어두는 것 같아 안쓰러울 때가 많지요.”
장 여사에게는 금쪽같은 손주가 넷이 있다. 셋째와 넷째가 어서 결혼을 해서 살림을 꾸리는 게 소망 중 하나다. 다행히 아직은 건강해서 손에 물을 더 묻혀도 문제가 없다. 올겨울에도 변산횟집 물메기탕을 두어 번은 더 먹어야 겨울이 물러갈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