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 최고의 영화!!
내가 좋아하는 영화의 조건은 이렇다.
1) 로드무비일 것
2) 음악이 괜찮을 것
3) 1960년~70년대의 풍경을 담고 있을 것
이런 조건을 한 가지 이상 지닌 <와일드> <더 웨이> <위대한 개츠비>
<보헤미안 랩소디> 등이 내가 좋아하는 영화이다.
그런데 최근 위의 세 가지를 모두 갖춘 영화가 개봉되었다.
개봉 첫날부터 벼르고 벼르다가 마침내 극장에 갔다.
재미와 의미를 두루 지닌 영화는 130분이 언제 지나갔는지도 모르게 빨려들게 만들었다.
<그린북>은 1960년대 미국의 인종문제를 소재로 한 영화이다.
<헬프> <언터처블 1%의 우정> 등 비슷한 소재의 영화들에는
대체로 ‘잘난 백인’과 ‘못난 흑인’이 등장해서
‘잘난 백인의 선의에 의해 못난 흑인이 구원받는다’는 식의 이야기가 전개된다.
그런데 <그린북>에는 ‘잘난 흑인’과 ‘못난 백인’이 등장한다.
“1962년 미국, 입담과 주먹만 믿고 살아가던 토니 발레롱가(비고 모텐슨)는
교양과 우아함 그 자체인 천재 피아니스트 돈 셜리(마허샬라 알리) 박사의 운전기사 면접을 보게 된다.
백악관에도 초청되는 등 미국 전역에서 콘서트 요청을 받으며 명성을 떨치고 있는 돈 셜리는
위험하기로 소문난 미국 남부 투어 공연을 떠나기로 결심하고,
투어 기간 동안 자신의 보디가드 겸 운전기사로 토니를 고용한다.
거친 인생을 살아온 토니 발레롱가와 교양과 기품을 지키며 살아온 돈 셜리 박사.
생각, 행동, 말투, 취향까지 달라도 너무 다른 두 사람은
그들을 위한 여행안내서 ‘그린북’에 의존해 특별한 남부 투어를 시작하는데…”
-<네이버>의 영화 소개에서 인용
흑인과 백인, 우아함과 막무가내, 천재 피아니스트와 떠버리 건달,
전혀 어울리지 않던 두 사람이 미국 남부에 만연해 있던 인종차별을 함께 겪어나가는 과정을
휴머니즘 가득한 시선으로 차분하게 담아내고 이 영화를 통해
관객들은 때로는 분노하고 헛웃음을 짓기도 하며 눈물을 흘리기도 한다.
‘그린북’은 당시 미국에서 흑인전용 식당과 숙소를 소개해놓은 책자이다.
영화 속에서도 흑인은 백인과 같은 호텔에 투숙하지 못하거나
같은 식당에서 음식을 먹지 못하는 것은 물론이고
화장실도 사용하지 못하는 장면이 여러 번 등장한다.
게다가 자막에는 ‘흑인’으로 번역되어 있지만,
실제 대사는 ‘블랙’이 아니라 흑인을 비하하는 ‘니그로(깜둥이)’라는 표현이 줄곧 등장한다.
오늘날의 시각으로 보면 너무나 어처구니없는 일들이지만
불과 수십 년 전 미국에서 엄연히 존재했던 현실이다.
지금도 세계 곳곳에서 유색인종에 대한 차별과 함께
‘난민’이나 ‘여성’에 대한 차별이 행해지고 있는 걸 생각하면 놀랄 일도 아니다.
이 영화에는 인상적인 장면이 여럿 등장한다.
폭력적으로 행해지는 인종차별에 역시 폭력으로 대항하는 토니에게
셜리는 “폭력에 같은 폭력으로 대항하면 지는 것이다.”라고 말한다.
그 장면에서 나는 간디의 비폭력주의를 떠올렸다.
못난 놈들이 하는 방식으로 맞서면 결국 같은 못난 놈이 된다는 것을,
순간적으로 이기는 것보다 영원히 이기는 게 더 중요하다는 것을...
그밖에도 자동차 바퀴가 펑크 나서 잠시 쉬고 있는데
도로변 목화밭에서 목화를 따던 노예 수준의 흑인들이
멋진 승용차 속에 앉아 있는 셜리를 발견하고 얼어붙는 장면...
“백인에게는 여전히 흑인이라고 차별받고
흑인으로부터는 자신들과 다르다고 따돌림 받는” 이중의 고통에 시달리는
셜리가 절규하며 빗속을 걸어가는 장면...
처음에는 철자법도 숱하게 틀리던 토니가 셜리의 도움으로 아내에게 편지쓰기를 거듭한 끝에
마침내 온전히 스스로의 힘으로 훌륭하게 편지를 써서 모두를 놀라게 하는 장면 등등
인간이라는 존재에 대해 많은 생각을 하게 만드는 대목이 여러 번 등장한다.
이미 올해 골든글러브 영화제에서 작품상과 남우조연상을 수상했으며
아카데미 영화제에서 작품상, 남우주연상, 남우조연상 등의 후보에 오른 <그린북>은
올해 최고의, 아니 어쩌면 인생 최고의 영화가 될지도 모르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