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처절한 사투기인가? in 쿠알라룸푸르 (1)
(이 글은 혐오사진이 포함 되어있으니 주의를 요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도무지 명확한 이유가 떠오르지 않는데, 우리가 애초에 왜 쿠알라룸푸르에 이렇게 오래 체류하도록 비행기 스케줄을 꾸렸는지를 모르겠다. 필리핀 여행을 마치고 쿠알라룸푸르로 돌아와서는 곧바로 태국으로 날아가거나, 2~3일 정도만 머물다 떠나면 되는거였는데... 뭔가 이 도시에 알 수 있는 미련이 내 맘에 있었나... ?
하긴 이곳은 음식이 정말로 원더풀 하긴 하지... 절대 섞이지 않는 말레이-화교-인도인 간의 분명한 경계처럼, 음식도 그 정통성을 명확하게 유지하는지라 뭘 먹어도 다 ‘제대로’이다. 특히나 인도음식은 정말 예술!
하여튼 쿠알라룸푸르는 매력이 많은 곳이긴 한데, 우린 이곳을 여행 나올 때마다 한 두 번씩 들르기 때문에 우리 관심사 안에서 볼만한 것들은 다보고, 먹을 것도 어지간히 간을 보고 다닌 상태다.
아무튼 말레이시아 체류기간을 길게 잡은 덕에 동부에 있는 티오만 섬을 잠깐 갔다 올까, 아니면 북쪽의 카메론하이랜드를 들렀다가 이포를 거쳐 거기서 바로 공항으로 갈까. 것도 아니면 설렁 설렁 지내기 편한 말라카에서 죽칠까... 이래저래 나름 각을 많이 잡아봤는데...
물빛 고운 필리핀을 갔다 온지라 더 이상 바다도 안 내켜... 게다가 태국에 비해서 말레이시아의 해변 숙소는 가성비가 그다지 좋아 보이지 않는다.
융단 같은 차밭이 깔린 산골동네 카메론으로 배낭 지고 이동하려니까 뭔가 기력도 다했고...
말라카는 관광의 메카인지라 숙소비가 조금 높고... 게다가 그곳 역시 여러 번 보기도 했다.
하여튼 이런 저런 궁색한 이유를 서로에게 내밀면서, 우리의 지친 몸은 먹을거리 풍부한 쿠알라룸푸르에서만 장장 일주일이나 있게 되었다.
초반에는 센트럴마켓 근처의 호텔 지오GEO에 있다가, 치앙마이에서의 에어비앤비 경험이 나름 나쁘지 않았던게 기억이 나면서... 이곳 KL에서도 그걸 돌려봤다.
이곳에서의 에어비앤비는 어떨까? 경험치도 쌓아보고 획일적인 느낌의 호텔에서 벗어나, 뭔가 현지인 구역에서 사는 느낌도 들고 말이지... 그리고 크나큰 의미도 없이 하루를 보내는거니까 그에 발맞춰 숙박비도 좀 아껴볼 심산, 이런 모든 것들이 섞여서 그렇게 결정이 되었다. 그래서 부낏빈땅의 아래 쪽에 푸두 구역에서도 남단에 위치한 ‘코크레인’지역에 1박에 단돈 65링깃(청소비와 수수료를 전부 포함해서 숙박일로 나눈 요금)을 받는 집을 발견~
오~ 바로 근처에 최근에 개통된 MRT 코크레인 역도 있고, 이 역 바로 앞에는 이케아랑 마이타운 쇼핑몰도 있고 좋구만. 그리고 사진으로 본 방에는 창문도 있었다. 그리고 이용해본 사람들의 후기도 괜찮고...
KL의 저가 숙소에 어김없이 등장하는 창문 없는 감옥 방에 질릴 대로 질린지라, 사진 속 방의 창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볕은, 이 숙소 사진을 바라보고 있는 우리의 얼굴에도 볕이 들게 해줬고 나름 안도의 미소 짓게 해줬다. 날짜를 지정해 예약하고 MRT를 타고 처음 가보는 코크레인이란 동네로 출바알~~
집 주인은 이곳이 초행인 우리를 위해 MRT 역까지 차를 가지고 마중을 나와 줬다. 그리고 숙소로 가는 도중 유창한 영어로 주변지역 설명을 해주는데... 이런 말을 하는거다.
- 저기 이케아랑 마이타운 쇼핑몰 보이죠. 음식은 저기서 먹는 게 좋아요. 푸드코트가 있는데 비싸지도 않고... 사실 길거리 음식은 진짜 지저분해요.
= 오~ 땡큐! (말레이시아 사람들도 노점음식은 지저분하다고 생각하나보다.)
- 그리고 지금 우리가 들어가는 이 방향, 이쪽 사이드를 분명히 기억해둬요. 우리 건물로 들어 올 때는 이 쪽 방면으로 들어오는 게 좋아요. 아... 뭐 반대편 쪽에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에요.
그냥 그 쪽 편에는 미얀마 워커, 그러니까 다른 외국인 노동자들이 술 마시는 곳이 좀 있고... 그들이 나쁜사람들은 아닌데 그냥 말이 좀 많아. 그리고 여긴 외지인이 오는 곳이 아니니까 낯선사람을 빤하니 바라보거나 말을 걸 수 있거든요.
= 아. 네네.
처음 와보는 동네의 지형을 파악하느라 차 창 밖을 두리번거리는 사이, 우리를 실은 그의 자동차는 우리가 묵을 숙소가 있는 건물 지하 주차장으로 덜컹거리고 들어갔다.
이곳은 그야말로 썩어문드러져 간다는 말이 딱 맞아 떨어지는 낡은 현지인 아파트였다.
아마 웬만큼 정상적인 곳에서 숙박을 해본 여행자라면, 이 건물외관만 보고서도 남은 숙박을 포기하고 도망칠지도 모르겠다.
지금 현재 MRT 코크레인 역 주위는 개장한지 얼마 안 되는 거대쇼핑몰도 있고, 고급지향으로 보이는 레지던스 건물부지도 터파기 공사를 시작하고해서 나름 역세권의 호재를 누리려고하고 있는데, 마치 몇 십년 전에 세워진 것 같은 이 슬럼가 같은 콘크리트 건물은 이 구역의 전경을 끌어내리기에 아주 제격이었다.
집주인은 이 낡은 6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건물의 몇 칸을 깔끔하게 개조해서 여행자들에게 내놓은 거 였다. 돈이 제법 되긴 하는 건가... ?
- 괜찮아... 치앙마이에서도 건물은 낡아빠져도 우리가 묵은 방은 아주 좋았잖아... 그리고 쿠알라룸푸르에서 1박에 단돈 65링깃인데 뭘 더바라겠어... 이것은 경험을 쌓는 것이다. ^^;; -
라는 마음의 다짐은 엘리베이터에 붙은 사진 경고문을 보자 균열이 오기 시작했다.
제 1경고문 – 엘리베이터에 6명 이상 타는 거 금지. 추락해서 부상 당 할 수 있음. 실제로 사고가 발생해서 사람이 실려 나가는 흑백사진으로 겁주면서 경고
제 2경고문 – 무슨 죄를 지었는지는 모르겠지만, 100% 범죄자 면상을 한 어느 남자의 공개수배 사진.
지옥행 리프트를 탄 심정으로 조용히 엘리베이터에 오르니 3층에서 문이 열렸고, 오줌 냄새와 개냄새가 나는 호러블하고 어두운 복도를 지나쳐 우리가 묵을 방 현관 앞으로 가서 섰다.
나름 도색을 새로한 티가 나는 하얀 철제문이 있었다.
옆으로 드르륵 밀리는 이 철제문은 이 복도의 분위기와 합을 이루며 진심으로 감옥문 같아보였다.
집주인이 철문에 달린 자물쇠를 따고 철창문을 옆으로 열었다. 그리고 하나 더 있는 현관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가보니...
으흠? 여기 독채가 아니었네? 도어 안쪽에는 개별 화장실이 딸린 4개방의 방문이 오종종하게 있었다.
그러니까 구조가 한 아파트안에 4개의 방이 있고 현관문을 공유하는 구조... 이거 괜찮은건가?
거실이라고는 절대 할 수 없고 그냥 방문으로 둘러싸인 아주 작은 공간, 이 집 주인 말씀에 의하면 ‘공동공간’이라고 하는 1평 남짓한 공간에는 냉장고와 전자렌지, 냉온수기 등이 있다.
숙소는 철문으로 외부와 밀폐되어 있고 주인은 이곳에 없다.
여기에 묵는 구성원이 누구인지는 서로가 아무도 몰라... 물론 에어비앤비 통해서 왔을테니까 개별적인 신분확인은 집주인이 어느 정도 되었겠지만 말이다.
우울하고 어두운 상상에 매우 쉽게 닿는 내 뇌구조는, 만약 이 철문으로 봉해진 밀페공간 속에서 누군가가 우리방의 이 허술한 방문 짝을 열려고 시도한다면 어떻게 해야하나... 쇼파와 침대로 문을 막고(영화에서 본 것처럼 말이다.) 막아내고... 막아내고... 그 다음이 잘 생각이 안 난다. 화장실 바깥으로 나있는 쪽창문을 한껏 열어봤지만 그쪽으로 사람이 통과할 수는 없을 것 같다. 하긴 통과해봤자 추락사밖에 더하겠나... 쓸모없는 상상은 거기까지... -_-;;
근데 우리가 사진에서 봤던 방은 볕이 들어오는 길쭉한 창이 분명히 있었는데, 왜 이방은 창이 없지? 화장실 쪽으로 그나마 쪽창이 있어서 화장실 문을 열어놓으면 빛과 공기가 들어오긴 하는데... 거 참 이거 어찌한다지...
하지만 열의에 찬 얼굴로 우리에게 이집에 대해 이것저것 열정적으로 설명해주는 집주인에게 뭐 그것까지 어필하긴 좀 그래서, 우리는 짐짓 과장되게 흡족하다는 의사를 표하고 곧 빠이빠이했다. 그리고 실제로도 딱 방 분위기만 보자면 가격에 비해서 괜찮긴했다.
멀리서 본 우리 숙소가 있는 아파트
복도
방은 나쁘지 않았다.
![1c5344d5d19f29df28d273ba38bd19eb_1506758171_6506.jpg](https://thailove.net/taesarang/editor/1709/1c5344d5d19f29df28d273ba38bd19eb_1506758171_6506.jpg)
집주인은 우리에게 열쇠를 주고 떠나면서 이렇게 이야기했다.
- 아... 근데 길 바로 밖에 가라오케가 있어요. 노래소리가 화장실을 통해 좀 들릴겁니다. 그런데 화장실 쪽창을 봐봐. 내가 이중으로 새로 달았다고요. 유리창 닫고 나무창 닫고 그리고 화장실 문 닫고 그럼 괜찮아요.
근데 결과적으로는 괜찮지가 않았다.
정말이지 우리도 이곳저곳 어지간한 데는 다 후비고 다녀서 창밖으로 들려오는 길거리 소음, 그러니까 새벽부터 잠을 설치게 하는 닭의 비명소리, 새벽 3시에도 울리는 코란 경전소리, 폭주족들의 오토바이 굉음 정도에는 전혀 불편감을 토로하지않는 캐릭터인데, 여긴 그 물리적인 양부터가 달랐다.
대낮부터 술을 했는지 아니면 필링이 강렬하게 와서 그런지 도통 이유는 알 수 없지만, 정확하지 않은 발음으로 끝도 없이 불러 제끼는 사람 잡는 가라오케 소리는 대략 오후 2시부터 시작해서 끝나는 시간이 새벽 4시 또는 운이 좋으면 새벽 1시... 그랬다. 오~ 놀라워라.
말레이시아 사람들 이렇게 흥이 많은 국민이었나...??
나중에는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이게 진짜 사람이 와서 마이크 잡고 부르는 게 아니라, 녹음해놓은걸 업장에서 매번 볼륨을 높여 트는 게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어떻게 이렇게 긴 시간을 생목으로 부를 수 있는 사람들이 있을까 말이다. 성대 결절이 와도 벌써 왔을 듯...
어쨌든 공동으로 쓸 수 있는 냉장고, 커피랑 뜨거운 물도 있고 방 시설만 보자면 그다지 나쁘지 않았다. 나는 금세 상황에 적응해, 이불을 둘둘 말아서는 그 속으로 쏙 들어갔다. 스마트 폰이나 하면서 말이지...
근데 요즘 스마트폰 때문에 시력이 나빠져서 그런가? 뭐지? 내 눈앞에 보이는 이불깃 사이의 이 작은 새빨간 점은? 그리고 그게 왜 움직이는 거처럼 보이는... 거야..? 스마트폰 많이 하면 시력이 저하되고 단기 사시가 온다던데... 그래서 그런가?
앗. 이게 뭐야 이건 빈대출현~~~ 이다.
말레이시아 빈대에 호되게 당한 경험이 있는 나는 그 움직이는 빨간 점이 빈대임을 인식하자마자, 말이 안 나오고 맘만 다급해져서 어어억~ 하면서 몸을 후다닥 일으켰다.
목이 매여서 어억~ 되는 내 소리를 듣고, 책상에 앉아있던 요왕은 ‘이놈의 마누라 벌써 심장마비라도 오나’ 하는 생각을 하지나 않았을까.
- 왜? 왜 그러는건데?
= 이거 봐봐. 빈대 맞지?
- 어, 빈대다. 아... 망했다.
우리는 저렴한 가격에 이끌려 몇 박을 벌써 선불했는데, 첫날 저녁이 되기도 전에 빈대와의 조우...
나는 침대에서 냉큼 튀어나와 요왕을 밀어내고는 책상 의자에 올라앉았다.
내 보기에는 그 의자가 그래도 안전지대는 개뿔... 나무의자에 앉아 있다보니 금방 허벅지가 가려워 손을 대보는 순간 나란히 3방이 물려 있는게 느껴지는거다.
하긴 빈대는 침대에만 사는 게 아니다. 오래된 목재가구의 결이나 더러운 패브릭 소파... 이런 곳에 다 있다.
- 의자에서 물린 거 같은데...
나는 허벅지를 벅벅 긁으며 약을 발랐고 근심걱정으로 눈꼬리가 처질대로 처져있었다.
요왕은 그 의자를 번쩍 들어 욕실로 갖고 들어가 최대한 뜨거운 물로 박박 닦아냈는데, 아니나 다를까 물을 들이붓자 피를 빨아 몸이 뚱뚱해진 놈이 투둑 떨어진다. 보자마자 손톱으로 누르니 피가 팡~ 터지네. 흐흐흐. 잡았다 요놈 !!
망연자실한 우리는 이제 어떻게 해야하나 고심을 했다.
주인에게 연락해서 우리가 잡은 빈대를 보여주고 환불을 요청?
아니면 그냥 남은 숙박 따위는 건강을 위해서 과감히 포기하고 도망...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