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구두쇠들의 나라--(7)
그래서 돈을 벌기위한 그들의 外遊는 장기화될 수 밖에 없는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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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러 가기 전에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 왔을 때
"무다비"는 고개를 숙인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일을 마치고 이제 막 숙소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야간에 일을 하는 그는 내가 일하러 가는 시간에 일터에서 돌아 온다.
내가 방으로 들어서자 마자 ,그는 마치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를 반기듯이
나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이것 저것 묻는다.
물론 그의 이슬람식 영어를 알아 듣기는 힘들었지만,,
그는 나이가 나보다 한살 많은 팔레스타인 청년이었다.
키가 2미터에 가까운 거인이었지만 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어린아이였다.
참 ,, 그리고 그의 코고는 소리는 건물밖 길가에서도 들릴 정도로 컸다,
세계기록 감이었다 .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
고향은 하이파, 그러나 그곳에는 일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자리가 많은 텔아비브로 일을 구하러 온 것이 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거주지를 옮길 경우
경찰에 그 이유와 이전하는 거주지를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정 기간동안 경찰서에 자신의 행적을 보고한다고 했다.
한국의 사상범에 대한 보호관찰제도 비슷한 것이었다.
완벽하게 히브리어를 구사할 수 있는 그가 하는 일은
야간에 공장에서 무슨 라디오 같은 걸 조립하는 일이 였다..
그리고 그가 받는 보수는 시간당 15세켈로 나와 같았다,,
그러나 그는 밥을 자기돈으로 사먹어야 하고,,
또 힘들게 야간에 일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노동조건은 불법노동자인 나보다 더 나쁜 것이 었다,,
영어를 완벽하게 해도 ,, 생존을 위해 남의 나라를 전전하는
영국인 떠돌이들이나,,
히브리어를 완벽하게 해도 불법노동자 만큼의 대우도 받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사람,,,
내가 이스라엘에 와서 두 번째로 느낀 모순이며 의문이었다..
그는 나와 대화를 하다가 자주 문을 열고 복도 쪽을 살피는 버릇이 있었다.
첨에는 누구를 기다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깥에서 누가 엿들고 있는 지를 살피는 것이 었다.
이스라엘에는 "모사드"라고 하는 국외외첩보기관과
"신베트"라고 하는 국내 정보 기관이 있는데
이들은 이 "신베트"라고 하는 국내 정보 기관의 정보요원 밑에서
일정한 직업과 수당을 보장받는 끄나풀들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일하던 식당의 바로 옆 건물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육군본부와
비슷한 건물이 있었고,, 그 옆에는 모사드의 安家중 제법 큰 규모의
(모사드는 비밀 조직이라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진짜 HQ가 어디인지를
잘 모르는 듯 했다) 지사(BRANCH)가 있었다 ,,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내가 일하는 식당에 자주 들렀고
또, 우리식당의 단골 중에, 특히 내가 만든 볶은 면(FRIED NOODLE)을
아주 좋아했던 이스라엘 중령아저씨와 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미국인(미국정부의 안전무슨부에서 일한다고 했던)을 통해서 가끔 어렴풋이
"모사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이스라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감시와 고문,
그리고 외국인 특히 아랍계와 인도네시아인에 대한 감시의 수준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다비"가 얼마나 그들의 감시를 두려워
하는지 대강은 알 수가 있었다..
아무튼 "무다비"는 보름정도를 일을 하다가 벌이도 시원치 않고,
항상 경찰의 감시와 단속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텔아비브를 떠나 그의 고향 하이파로 돌아갔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내게 집주소와 약도를 그려 주면서 ,,
꼭 자기집에 놀러 와 달라고 말했다,,,
그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나와 보름남짓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아마 내게 많은 정을 느꼈었나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가 그처럼 힘들어 했던 것은
일이 고달퍼서 ,, 보수가 적어서,, 경찰의 감시가 무서워서가 아닌..
고독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저 이스라엘의 이등국민으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세상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가 우리 게스트 하우스에 있었던 보름동안
그의 유일한 대화상대는 나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친해 지고 싶어 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었다.
그 어마어마한 체구의 남자가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게스트 하우스의 문을 나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난 유대인도 팔레스타인 사람도 좋아 하지 않는다
하지만 , 인간은 그가 가진 능력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인종이라는 국적이라는 한계로 인해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말살 된다면..
그것은 전 인류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하여간에 유대인들은 지독하다...
------- 쫌 길지요.. 하지만...언젠가는 완결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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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을 하러 가기 전에 샤워를 끝내고 방으로 돌아 왔을 때
"무다비"는 고개를 숙인 채 침대에 앉아 있었다.
일을 마치고 이제 막 숙소로 돌아온 모양이었다.
야간에 일을 하는 그는 내가 일하러 가는 시간에 일터에서 돌아 온다.
내가 방으로 들어서자 마자 ,그는 마치 일터에서 돌아온 엄마를 반기듯이
나의 뒤를 졸졸 따라 다니며 이것 저것 묻는다.
물론 그의 이슬람식 영어를 알아 듣기는 힘들었지만,,
그는 나이가 나보다 한살 많은 팔레스타인 청년이었다.
키가 2미터에 가까운 거인이었지만 하는 행동은 그야말로 어린아이였다.
참 ,, 그리고 그의 코고는 소리는 건물밖 길가에서도 들릴 정도로 컸다,
세계기록 감이었다 .
그는 이스라엘의 팔레스타인 사람이었다.
고향은 하이파, 그러나 그곳에는 일자리가 없었다고 한다,
그래서 그는 일자리가 많은 텔아비브로 일을 구하러 온 것이 었다.
그러나 이스라엘에서는 팔레스타인 사람이 거주지를 옮길 경우
경찰에 그 이유와 이전하는 거주지를 신고해야 한다고 했다.
그리고 일정 기간동안 경찰서에 자신의 행적을 보고한다고 했다.
한국의 사상범에 대한 보호관찰제도 비슷한 것이었다.
완벽하게 히브리어를 구사할 수 있는 그가 하는 일은
야간에 공장에서 무슨 라디오 같은 걸 조립하는 일이 였다..
그리고 그가 받는 보수는 시간당 15세켈로 나와 같았다,,
그러나 그는 밥을 자기돈으로 사먹어야 하고,,
또 힘들게 야간에 일을 해야 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노동조건은 불법노동자인 나보다 더 나쁜 것이 었다,,
영어를 완벽하게 해도 ,, 생존을 위해 남의 나라를 전전하는
영국인 떠돌이들이나,,
히브리어를 완벽하게 해도 불법노동자 만큼의 대우도 받지 못하는
팔레스타인 사람,,,
내가 이스라엘에 와서 두 번째로 느낀 모순이며 의문이었다..
그는 나와 대화를 하다가 자주 문을 열고 복도 쪽을 살피는 버릇이 있었다.
첨에는 누구를 기다리나 하고 생각했는데 나중에 알고 보니,,
그게,,, 바깥에서 누가 엿들고 있는 지를 살피는 것이 었다.
이스라엘에는 "모사드"라고 하는 국외외첩보기관과
"신베트"라고 하는 국내 정보 기관이 있는데
이들은 이 "신베트"라고 하는 국내 정보 기관의 정보요원 밑에서
일정한 직업과 수당을 보장받는 끄나풀들을 무서워하는 것 같았다,
내가 일하던 식당의 바로 옆 건물에는 우리나라로 치면 육군본부와
비슷한 건물이 있었고,, 그 옆에는 모사드의 安家중 제법 큰 규모의
(모사드는 비밀 조직이라 조직원들 사이에서도 진짜 HQ가 어디인지를
잘 모르는 듯 했다) 지사(BRANCH)가 있었다 ,,
그래서 그곳에서 일하는 직원들이 내가 일하는 식당에 자주 들렀고
또, 우리식당의 단골 중에, 특히 내가 만든 볶은 면(FRIED NOODLE)을
아주 좋아했던 이스라엘 중령아저씨와 그 사람과 함께 일하는
미국인(미국정부의 안전무슨부에서 일한다고 했던)을 통해서 가끔 어렴풋이
"모사드"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어서
이스라엘 내부에서 벌어지고 있는 팔레스타인 사람에 대한 감시와 고문,
그리고 외국인 특히 아랍계와 인도네시아인에 대한 감시의 수준이
엄청나다는 것을 알고 있었기에 "무다비"가 얼마나 그들의 감시를 두려워
하는지 대강은 알 수가 있었다..
아무튼 "무다비"는 보름정도를 일을 하다가 벌이도 시원치 않고,
항상 경찰의 감시와 단속에 대한 불안감 때문이었는지,,
텔아비브를 떠나 그의 고향 하이파로 돌아갔다,,
그리고 돌아가면서 내게 집주소와 약도를 그려 주면서 ,,
꼭 자기집에 놀러 와 달라고 말했다,,,
그저 단순한 인사말이 아니었다,,
그는 단지 나와 보름남짓의
시간을 보냈음에도 아마 내게 많은 정을 느꼈었나보다.,.
지금 돌이켜 생각해보면 그가 그처럼 힘들어 했던 것은
일이 고달퍼서 ,, 보수가 적어서,, 경찰의 감시가 무서워서가 아닌..
고독감 때문이었던 것 같다,,
그저 이스라엘의 이등국민으로 살아가는 팔레스타인 사람에게
세상은 너무도 가혹했다..
그가 우리 게스트 하우스에 있었던 보름동안
그의 유일한 대화상대는 나 뿐이었다,,
많은 사람들과 친해 지고 싶어 했지만,, 그 누구도 그의 말에
귀를 기울여 주지 않았었다.
그 어마어마한 체구의 남자가 눈에 고인 눈물을 닦으며,,
게스트 하우스의 문을 나서던 모습이 눈에 선하다.
난 유대인도 팔레스타인 사람도 좋아 하지 않는다
하지만 , 인간은 그가 가진 능력으로 평가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단순히 인종이라는 국적이라는 한계로 인해 한 인간이 가지고 있는
능력이 말살 된다면..
그것은 전 인류적인 측면에서 볼 때에도 낭비라고 생각한다,,
하여간에 유대인들은 지독하다...
------- 쫌 길지요.. 하지만...언젠가는 완결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