젖과 꿀이 흐르는 구두쇠들의 나라--(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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젖과 꿀이 흐르는 구두쇠들의 나라--(3)

김성형 3 749
"한국말..한국말 이었다,, "


그 한국말의 주인공은 40대 중반의 서울말씨를 쓰는 한국 분이었다..

그 아저씨 말씀으로는 그곳에 온지 한 일주일 정도 되었고

키부츠에서 일을 하다가 오셨다고 한다,,,


그리고 그 근처의 다른 호스텔에 한국 사람이 네 다섯명 정도
 
있는 데 모두 키부츠에서 일하다가 돈벌로 나왔거나 여행중에

재미로 돈을 버는 일을 하는 사람도 있다고 했다,,


나처럼 돈을 벌기 위해서 바로 이스라엘로 오는 사람은 처음 봤다고 했다,


그리고 텔아비브의 상황에 대해서 이것저것 얘기를 해주셨다


텔아비브에서 돈을 벌어 가는 사람을 자신은 본적이 없다는 것이었다,,


하루 막노동 일당이 150(42달라)세켈 정도인데 방값으로 35세켈을 내고

식대로 30세켈 정도를 쓰고 그리고 맥주한잔 하고 담배한갑 사고

그러면 60세켈 정도가 남는 다고 했다..


그런데 문제는 매일 같이 일을 할 수도 없지만 ,, 그렇다고 매일 같이

일이 있지도 않다는 것이었다. 그러니 한달이면 일은 일대로 하고

결국은 모든 돈을 이스라엘에서 쓰고 갈 수 밖에 없다는 것이란다.,,


맞는 말이었다.

한국에서도 일은 죽으라고 하지만 돈은 한푼도 모으지

못하는 사람들이 참 많다,...


이런 저런 이야기를 하다가,,, 시간은 벌써 9시를 가리키고 있었다
 

그새 3시간이 지났지만 일을 구하지 못한 사람이 절반 이상이었다

게다가 일감의 대부분이 막일인데... 일꾼을 찾는 이스라엘 사람들은

동양인이 백인보다 약하다거나 일을 잘 못한다는 편견을 가지고

있었다,,


그도 그럴 것이 이스라엘에서 막일을 하는 대부분 아니 모든

동양인이 태국인 아니면 중국인이었다..


태국인은 정말로 몸이 왜소하고 일도 잘 못한다,,

그리고 중국인은 요령 피우기를 좋아하고..


하지만 강원도 양구에서 군생활 내내 노가다를 하면서  26개월을

보낸 나에게는 해당 사항이 없는 말이었지만,,


그런 나의 전력을 그들이 알아 줄리는 만무했다.,

어차피 날 샜으니 하면서 다들 방으로 돌아 가는 분위기 였다..


배도 고프고 어차피 첫날인데 하면서 자리를 털고 일어서는 순간

카운터에서 어제 나를 이곳으로 데리고 온 제이슨이 잠깐 와보라는

것이었다,,


그리고는 식당에서 일감이 들어 왔는데 할 생각이

있냐고 물어 보는 것이었다.


난 무슨 일이든 상관없다고 했다 ,,

사실 대학교 다닐 때 술집의 주방이나 중국집 주방에서 아르바이트를 해서,,

음식 만드는 일에는 어느정도 프로페셔널 했던 나로써는
(나중에 한국에 돌아와서 중식조리사 자격증을 땃다)


오히려 적성에 맞는 아주 적당한 일이었다..


그래서 한국 아저씨가 길을 앞장서서 우리는 그 식당으로 향했다,,,


주택가에 자리 잡은 그 식당은 한눈에 보아도 고급스러웠다..

전면이 통유리로 장식되고 가게 앞에 놓인 테이블은 마치

프랑스의 노천카페 분위기를 느끼게 했다,,,


검은 색 앞치마를 두르고 하얀색 셔츠를 입은 웨이타와 웨이트리스가

서빙을 하는,,

그야말로 영화에서 본듯한 낭만적인 분위기의 식당이었다.,.


게다가 춥지도 덥지도 않은 2월의 지중해 날씨와 화사한 텔아비브의

햇살은 나를 마치 유럽의 어느 거리에 서 있는 듯한 착각을

불러 일으키게했다,,,



그러나

그런 환상도 잠시,,, 난 식당뒤의 쓰레기장을 청소하라는 매니져의 명에

따라 쓰레기를 치우고 먼지가 가득한 창고를 청소하고,,

그리고 양파를 까고,, 다시 쓰레기를 치우고 ,, 그야말로 이름 그대로

일용직이었다 ,,

마치 그날 하루만 쓰고 말겠다는.. 일회용 이었다..


그리고 왜 전날 그렇게 옆 침대의 폴란드 친구가 유대인은 지독하다는

말을 여러번 되풀이 해서 강조를 했는 지 조금은 알 수가 있었다...


그렇게 5시간 55분을 일하고 30분의 점심시간을 뺀 시간당 15세켈

즉 ,, 5시간 25분의 일당 81 세켈을 받았다.


매니져는 웃으며 돈을 건내 주었고 나도 웃으며 돈을 받았다,,

하지만 그의 웃음과 나의 웃음은 전혀 다른 의미 였을 것이다..



아무튼 땀 흘려 번 돈이었으니..내게는 소중했다,

게스트하우스로 돌아왔다 그리고 한국아저씨와 함께..

걸어서 30분정도 걸리는 "카멜 마켓"이라는 곳에 갔다,,


주로 팔레스타인 상인들이 물건을 파는 이곳은 다른 수퍼나

시장에 비해 물건 값이 저렴 했다..


그러나 “이스라엘 아저씨”가 말했던 것처럼.. 저녁이 되어서

시장이 파할 때 쯤에는 팔던 물건을 꽁자로 주는 일은 결코

없었다.


유대인들의 감시와 탄압을 받으며 살아가는 그들로써는

자기들도 먹을 것이 부족한 판에 그런 자선을 베풀 여유는

없어 보였다..



우선 그곳에서 나는 쌀과 야채 그리고 그 이후로 나의 영양공급원

이었던 소시지를 샀다..


지금 생각하면 한국 보다 쌌던 것 같은데 뭐가 그리도 비싸게 느껴졌는 지... 


텔아비브의 게스트 하우스에는 대부분 주방과 동전 세탁기,건조기 등이

있었다 그래서 난 시장에서 이것 저것 사다가 밥을 해먹었다..


식당에서 한끼를 내 양대로 먹으면 적어도 30~40세켈 정도가 드는 데

그야말로 하루 일해서 밥사먹으면 땡이었다,,


기왕에 돈을 벌로 온 것이니 .. 돈을 벌어서 가고 싶었다..

물론 돈은 있었다.. 한국에서 IMF 전에 들고 나온 만달라에

중국에서 보따리 장사하고.. 인도에서 가이드 하고,,,홍콩에서 이것저것

길거리에서 장사해서 번돈 쓰고도 남은 것이 8,000달라 정도 있었다..



이스라엘-방콕 일년 왕복 티켓을 400달라 정도에 샀으니
 
기냥 한 천달라 쓰면서 여기 저기 여행을 다니며 여유있게

쓰다가 가면 될 일 이었다..



하지만 첫날 나에게 일을 시켯던 유대인들의 얼굴이 떠올랐다..

이건 "이등병 길들이기"도 그것 보다는 덜 했던 것 같다..


온잦 험악한 인상을 써가며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던지고..

마치 중세 시대 노예도 아니고 ..


막일을 하는 데 일당이 아니고 시간당 계산을 하는 것도 ,, 놀라웠고,,


세상에 거기서 점심시간 30분 빼고,,

그리고 차라리 기냥 다섯 시간으로 계산을 하든가

5시간 25분이라 ,,

이건 무슨 노래방도 아니고 "분" 까지 계산을 하는 그들이

합리적이라기 보다는 무슨 정신 병자들로 보였다


그래서 정말 그 다음날로 떠나고 싶었다..

하지만 오기가 생겼다,,, 지기는 싫었다,..


“이스라엘 아저씨”의 말만 듣고 그리고 그걸 그대로 믿고 온 내가 너무

어리석었다..


하지만 이대로 방콕으로 돌아 간다면 ,,  난 패배자가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버틸 수 있는 만큼 버티고 싶었다,,,


그렇게 하루가 지나고 다음날 아침에도 난 카운터 앞에 앉아 있었다


이번에는 새벽 5시에 일어났다,,



to be 계속되어짐...
3 Comments
목말라 2003.08.02 15:02  
  한꺼번에 많이씩 올려주심 안될가요? <br>
언능 쓰고 긑내세요
주니 2003.08.02 19:30  
  아우~~ 맞아요..빨랑 쓰고 끝내세요^^    넘 재미있네요. <br>
이어지는 얘기 궁금해 미치겠어요. 빨리~~ 길게~~올려주세요..
티오 2003.08.03 00:08  
  정말 재미있네요~ 담편이 너무 궁금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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