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엔나커피 잘 하는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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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엔나커피 잘 하는 다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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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 내리는 날

옛날식 다방에 앉아 고전음악 들으면서 비엔나커피를 마시고 싶다면,,

학림다방에 들러보시기를 권합니다.  

 

학림다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물으면

사람마다 대답이 제각각일 수 있습니다.

 

다방 위치를 놓고 대답이 분분한데는 그럴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정식주소는 창 밖 거리표지판에 표기되어 있는대로 대학로 119 번지 입니다. 

그런데 지번은 명륜동 4 가로 되어 있습니다. 

막상 가보면 어느 의과대학 연건동 캠퍼스가 바로 옆에 있어서 여기가 연건동 아닌가도 싶습니다. 

고개를 돌리면 지하철 4 호선 혜화역 3 번 출구가 코앞에 보이므로 여기는 혜화동이라고 생각할 수도 있습니다. 

다방 창 밖 맞은 편 연극 소극장들과 마로니에 공원을 바라보고 있으면 영락없이 동숭동 같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 다방이 대학로인지 명륜동인지 혜화동인지 연건동인지 동숭동인지 헷갈리는 게 어쩌면 당연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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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방과 건물은 서울미래유산으로 등재되어 있습니다. 

출입구 낡은 나무계단이 회칠한 벽에 걸려있는 포스터들과 빈티지한 조화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 보기 좋습니다.

 

서울미래유산임을 알리는 동판에는 어느 문학평론가가 썼다는 소개글이 새겨져 있습니다. 

"남루한 모더니즘, 위악적 낭만주의"

저런 식의 말을 "여러가지 의미를 간결하게 함축한 시적 표현"이라고 좋아했던 사람들도 있고,

"논리적 연결고리없는 몽상가들의 똥밟은 헛소리" 라고 비난했던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쨌든 소개글이 그 시대 냄새가 물씬 풍기는 고색창연한 표현방식을 그대로 차용하고 있다는 점이 나름 센스있어 보이기는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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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학(forestry)이 아니라 학림이라고 읽습니다. 

다방 카운터 뒤에는 LP 판 1 천 5 백 여 장이 빼곡히 소장되어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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낡은 나무탁자도 소파도 돌벽 마저도 교체하거나 수리한 흔적없이 옛날 모습 그대로 입니다.  

고풍스런 옛날식 다방이니 나이지긋한 손님들이 주로 오는 '지공카페' 일거라는 짐작을 하기 쉽습니다. 

'지공카페'란 지하철 공짜로 타고다니는 시니어들의 쉼터 맥카페를 의미하는 한국의 나이차별 속어 입니다. 

 

내가 들어갔을 때 손님들 대부분은 20 대, 그중에서도 친구끼리 온듯한 여성커플들이 많았습니다. 

나도 나이에 대해 편견을 가지고 있었는지,

다방 안에 젊은 손님들이 많은 걸 보고 하마터면 "여기 물이 왜 이렇게 안 좋아졌지?" 하는 '망언'이 입 밖으로 나올 뻔 했습니다.  


전엔 안 그랬던 것 같은데, 무의식중에 나이에 대한 차별의식이 드러나는 걸 보면 나도 좀 이상해 진 것 같습니다. 

스스로 늘 undercover angel -사복으로 갈아입고 지구에 나타난 천사- 라는 자부심으로 가득했었는데,

그 순간 그 자부심이 조금 약해졌습니다. 

 

돌이켜보면

지난 60 년 내내 이 다방 손님 연령층은 20 대 였던 것 같습니다. 

 

1960 년대 초 '남루한 모더니즘의 선구자" 였다는 이 다방 단골손님 전혜린 아주머니도 당시에는 20 대 였습니다.

서울미래유산 소개글을 쓴 어느 문학평론가에 의해 "지사적 저항"의 상징으로 표현된 1970 년대 초반 손님들도 당시에는 20 대 였습니다.

'학림지사'들 중에는 김X하 씨 처럼 언론과 인맥에 의해 터무니없이 과대평가된 엉터리들도 많습니다. 

70 년대와 80 년대의 언저리,,

이 다방에 뻔질나게 들락거리다가 영문도 모른채 남영동으로 끌려갔던 '학림사건' 관련자들 역시 20 대였습니다.

 

1990 년대에도,

세기가 바꿘 2000 년대에도

이 다방 손님들은 세대가 바뀌었을 뿐 주로 20 대 였습니다.  

 

이 다방은 61 년 전 이 곳에서 영업 시작할 때부터, 

도라지 위스키 한 잔에다 짙은 섹소폰 소리 들어보던 '주다야싸'는 아니었습니다. 

'주다야싸'란 낮에는 차를 팔고 밤에는 술을 팔던 1970 년대식 '주간다실 야간싸롱'의 준말 입니다.  

 

그러니까 2017 년 오늘,

이 옛날식 다방 낡은 소파에 20 대 손님들이 앉아있다고 해서

신기하게 생각하거나 불만을 표시할 이유는 조금도 없습니다.

 

물이 안 좋아진게 아니라,

그냥 누구에게나 공평하게 시간이 흘러가 사람이 바뀌었을 뿐. 

 

학림다방.  

 

비엔나 커피도 맛있고

두루두루 편안하고 멋진 장소 입니다. 

커피값은 스타벅스보다 500 원 비쌉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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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 Comments
kairtech 2017.12.10 14:45  
정작 비엔나에는 없는 비엔나커피를 우린 비엔나에 있는줄알고
주저함없이 여자친구나 연인만날때
조금 품위있는커피인양  마시곤했습니다  저역시,,,,,
심지어  생크림대신 아이스크림얹은 비엔나커피도 같이 도매금으로
비엔나커피로 둔갑하기도했고요
정작 비엔나에서는 모짜르트상표로  스프레이생크림  커피술 같은제품을 팔면서
이게  한국의 비엔나커피엔 최고라며  권하더군요
저역시 스프레이 생크림  커피술 많이사갇고와서
여행선물로  친지 형제들에게 돌린기억이 납니다
십몇년전에 일입니다 ㅋ ㅋ
since 1956
저와 동갑이네요
sarnia 2017.12.11 00:36  
요즘은 오스트리아에도 비엔나커피가 생겼다고 하네요. 메뉴판 아인슈패너 아래 코리안 아인슈패너라고 써놓은 카페도 있다고 하구요.
아마 한국에서 온 여행자들이 하도 비엔나커피를 찾으니까 어떻게 생긴거냐고 자세히 물은 다음 원래 있던 생크림커피 아인슈패너를 수정 보완해서 만든 학림다방식 비엔나커피가 새로 탄생한 것 같습니다.
냥냥 2017.12.10 19:56  
비엔나 커피... 저 고딩때 처음 마셔봤던 커피예요.  그땐 생크림도 귀했던 시절이라  얼마나 꼬숩고 맛있던지요.
지금이야 아메리카노가 젤 좋지만
그때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마셨던 비엔나커피는 잊혀지지 않네요. ^^
sarnia 2017.12.11 00:38  
저도 커피에 다른 것을 넣은 것은 잘 마시지 않습니다. 여름에 Tim Horton’s 에서 가끔 사마시는 아이스카푸치노를 제외하면 말이죠.
스타벅스나 Tim 메뉴에 나오는 여러가지 종류의 라떼가 학림다방에서 파는 비엔나커피와 비슷한 거 같은데 한 번도 시켜먹은 적이 없어서 무슨 맛인지는 잘 모르겠어요.
타미엄마 2017.12.11 01:35  
와.. 이번 님의 글은 저의 향수를 자극하네요. 팔십년대 후반 전 대학로 죽순이였거든요 ㅎㅎ  대학입시가 코앞인데도 친구들과 삼삼오오 대학로를 몰려다녔어요.
그때 학림다방하면 뭔지 모르게 지식층이나 다니는 곳?  꼰대들만 모이는 곳? 그런 선입견이 있었는데..  아직도 건재하게 대학로 한 귀퉁이를 지키고 있다니..  비엔나커피.. 저 고딩때는 생크림이 없어 아이스크림을 넣어 마셨던 기억이.. ㅎㅎㅎ
 sarnia 님 덕분에 잠시 옛날 생각하며 웃어봅니다.
sarnia 2017.12.11 04:08  
아… 타이엄마님은 뉴요커시지요. 그래서 향수 라는 말씀을 하셨군요.
제가 갔을때 저 다방 손님들은 대부분 20 대 여성이었습니다. 고색창연한 다방 분위기도 좋고 창밖 전망도 참 좋아요. 대학로 가로수들이 보기가 좋았습니다. 학림이라고 쓴 표구액자가 걸린 저 자리가 명당인데 운좋게  저 자리에 앉을 수 있었습니다.
저 곳도 홍대거리 비슷한 문화거리로 붐비는 것 같습니다. 물론 홍대거리보다 대학로가 문화거리로서 더 유서가 깊지요.  고향이 종로구임에도 불구하고 저는 대학로 에 대한 기억은 별로 없는데, 타이엄마님께서 한국 가실때 들르면 감회가 무척 새로우실 것 같군요. 80년대 후반은 한국에서의 제 마지막 기억이 남아있는 시절이기도 합니다.
Pole™ 2017.12.11 20:06  
제가 좋아하는 종로구에는 동 이름이 참 많아서 헷갈리는데요 행정동과 법정동이 달라서 더더욱 헷갈리죠 ㅋ 사진 늘 잘 감상하고 있어요
sarnia 2017.12.12 10:05  
어느모로 보나 종로구는 대한민국의 보배와 같은 존재 맞아요.
Pole 님 덕에 오늘은 법정동과 행정동에 대해서 배우고 갑니다.
이 댓글보고 처음엔 무식하게 종로구에 그런 동도 있나? 없을텐데.. 했네요.
참새하루 2017.12.16 20:18  
몇년전에 서울에 갔을때
작정하고 추억여행을 하기로 했었습니다
그래서 와이프와 둘이서 일주일 넘게
각자의 모교 초등학교 부터 시작해서
예전의 살던집 동네를 돌아다닌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너무도 세월이 변해서 도저히
예전의 모습을 찾기가 힘들었습니다
학교는 그나마 남아있었지만

쌍전벽해라고 할까요 급속도로 발전하던
70-80년대를 생각하고 찾았으니
집들과 동네는 다 재개발되거나 개축되었더군요

첫 데이트하던 빵집  돈없는 연인들의 저렴한 찻집
이 찻집 벽에 낙서도 많이 남겼었는데...
배고픈 연인들이 식권 내고 먹던 대학교앞 조기찌개집 
모든 추억들이 사라지고 없더군요
조금은 황당 씁슬했던 기억이 들었습니다

이 학림다방은 한번도 가본적은 없어도 들어본적은 있습니다
그 예전 모습 그대로 간직한 국보급 명물이 되었네요
우리는 우리의 과거와 전통을 
편리함이나 경제적인 이유로 너무 쉽게 버리는것 같습니다

일본을 여행하면서 놀란점이 있는데요
그  전통 보존 정신이었습니다
하다 못해 건물입구의  수위 복장이나
택시기사들의 유니폼까지도
50-60년대 그 전통을 그대로 유지하는것을 보면서
정말 놀랐지요 

학림다방의 간판은 현대판으로 바뀌어서 많이 아쉽네요
다음 방문때는 꼭 가보고 싶네요
지난 봄 방문때도 sarnia님 기행문보고
맛집 기행했었는데 말입니다
이러다가 sarnia님 여행 발자취 따라다니는
sarnia투어의 광팬이  될것 같습니다 ^^
sarnia 2017.12.17 05:58  
하도 부수고 새로 짓기만 하는통에 역사가 없어지고 있다는 말씀에 강력하게 동감합니다. 일본에 대한 말씀도 크게 공감하고요. 제가 일본에 가면 왜 맘이 편안해질까 생각해본 적이 있는데 첫째는 ‘사람들이 대체로 참 괜찮다’는 점, 둘째는 크고 화려하진 않지만 오래된 건축물들과 소품들이 발길이 머무는 한 장소에 오래 붙잡아두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린 적이 있습니다.

몇 년 전인가요.. 여기서는 말한 적 없지만, ‘당신은 왜 강남을 폄하하는 말을 가끔 하느냐’는 질문을 받은 적이 있습니다. 두 명 다 강남에 사는 사람들이었고 그 중 한 명은 가족이었습니다. 그들 질문에 묘한 공통점이 하나 있었는데, 강남에 대한 질투가 아니냐는 뉘앙스가 그것이었지요. 내가 강남에 대해 질투를 느낄 이유는 손톱만큼도 없고, 폄하발언을 한 것도 아니고, 다만 여행자로서 그곳에 매력을 느낄 수 없다는 이야기를 한 적은 있지요. 그건 솔직한 고백이었습니다. 거기서는 세계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수퍼모더나이즈된 생활의 편리함 외에 다른 어느것도 경험할 수가 없었습니다. 그건 거기 사는 사람들이 좋은 것이지 여행자가 바라는 것은 아니었거든요. 

예전에 아무 생각없이 지인들이 있어서 방문했던 강남에 관심을 가지고 다녀보기 시작한 것은 몇 년 전 강남스타일인가 하는 뮤비때문에 세계적으로 이 동네가 알려지기 시작한 시기부터였는데요. 지금 다시 생각해도 강남교보 맞은편에 있던 추어탕집 이외에는 기억에 남는 게 하나도 없는 동네였습니다. 나뿐 아니라 다른 여행자들도 비슷한 생각이었는지 거길 다시 가는 사람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처음부터 지을 때 잘 짓고 세월이 지나도 철거하지 않고 리모델링만 해가면서 유지하면 나중에 다 볼거리가 되고 소유적지가 될텐데  그저 때려부시고 새로 짓는게 전반적인 유행이었다가보니 도시가 영구적인 공사판이 되어 어디선가는 항상 쿵쾅거리고 공사먼지가 날리고 오래된 건물은 사라지고 하는 것 같습니다. 하긴 과거 군사독재시절 자재 빼억고 지은 부실건물들은 철거하는 게 당연하겠지만 말이죠.
이런이름 2018.01.03 20:16  
제가 음악엔 문외한이자 무뢰한이지만 혹시나하는 마음에 사족을 달아봅니다. 맨위에 있는 음악동영상곡인 Mariage d'amour는 아드린느를 위한 발라드(Ballade Pour Adeline) 등을 작곡한 Paul de Senneville의 작품이라고 하는군요. 유튜브에서 마치 쇼팽이 작곡한 봄의 왈츠라는 곡인 것처럼 전해져서 성토가 벌어지자 급기야 저 곡을 연주해서 올린 Toms Mucenieks이 자신이 올린 동영상에 댓글로 사과까지하며 밝힌 내용입니다.
https://youtu.be/EFJ7kDva7JE
제게는 누가 작곡을 하고 누가 연주를 했고를 따질 필요도 이유도 없이 그저 '아! 아름답다' 하고 끝날 일이지만 어쩌다 주워듣게 되었고 또 그걸 망정맞게 옮겨봅니다.
sarnia 2020.08.05 09:52  
이런이름님이 다녀가신 걸 몰랐네요.
비엔나커피 이야기 듣고 오늘 와서야 알았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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