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랫만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오랫만에 영화를 보러 극장에 갔다.
영화를 가끔 보기는 하지만 극장에 가서 보는 건 참 오랜만이다.
중학교 때의 내 장래희망은 영화평론가였다.
당시 전설적인 영화평론가 정영일 선생이 텔레비전에 등장하여
"이번주 명화극장을 소개해드리겠습니다."라고 멘트를 하는 모습에 홀딱 반하고 말았던 것이다.
그리하여 학교앞 동시상영 극장에 새로운 영화가 걸리는 날이면
갖은 꾀를 내어 조퇴를 한 다음 극장 맨앞자리를 차지하고 앉아서 같은 영화를 몇번씩 봤다.
덕분에 나는 일찍부터 눈이 나빠져서 안경을 써야했다.
같은 영화를 스무번이나 본적도 있고 열번이상 본 영화도 꽤 된다.
아무튼 오랫만에 극장에 가서 <블레이드 러너>를 보고싶었는데
시간이 맞지 않아서 <우리의 20세기>를 봤다.
119분의 상영시간이 눈깜짝할 사이에 지나갔다.
가볍지 않은 주제를 경쾌한 대사와 감각적 영상으로 담아낸 아주 잘 만든 영화이다.
남자들에게, 특히 청소년들에게 강추하고 싶은 영화이다.
10여년 전, 여행지에서 미국인 여피족 대여섯명을 만났다.
마침 미국 대선을 앞두고 오바마와 힐러리가 민주당 후보로 경쟁하던 때라
"누가 후보가 될 것 같냐?"고 물어봤다.
그러자 그들은 잠시의 망설임도 없이 이구동성으로 "오바마!"라고 했다.
이유를 묻자 "힐러리는 여자라서 안된다."는 것이었다.
그들과의 대화를 통해 미국에서는 인종문제보다 젠더문제가 더 심각하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지난 미국 대선에서 다들 트럼프를 경멸하면서 힐러리의 승리를 점칠 때,
나는 주위사람들에게 트럼프가 당선될지도 모른다고 했다.
힐러리는 여전히 여자이기 때문이었다.
영화 얘기하다가 왜 갑자기 미국 대선에서의 젠더문제를 꺼내냐고?
이 영화, <우리의 20세기>의 원제가 <20세기 여성>이다.
젠더문제는 한국에서도 크고 심각한 문제이다.
영화의 제목마저 엉뚱하게 바꾸어야 할 지경이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