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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arnia 16 841
 유튜브는 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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며칠 전 베트남-캄보디아 방문 계획을 공식 발표했었다. 그러면서 프놈펜과 씨엠리업에 가서 킬링필드 현장과 중세유적군도 함께 둘러보고 오겠다고 이야기했다.
 
일단 캄보디아를 방문국에서 제외한다. 올 가을 sarnia 의 아시아 순방일정은 총 20 일 정도다. 그 중 반드시 한국에 붙어있어야 하는 열흘을 제외하면 진짜 휴가로 쓸 수 있는 기간은 나머지 열흘에 불과하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내가 아주 잘못된 계획을 짜고 있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프놈펜은 몰라도 씨엠리업 인근 앙코르와트를 비롯한 중세 유적군은 하룻만에 둘러보고 올 수 있는 곳이 아니라는 걸 눈치챘기 때문이다. 크메르 종교유적에 특별한 관심이나 지식이 있는 게 아닌 지금으로선 그런 식의 여행이 별로 의미가 없어 보인다, 기왕에 갈 요량이면 관심과 흥미를 제대로 만들어서 가 보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올해는 그냥 베트남에만 머문다. 호텔이고 투어고 아무것도 미리 예약하지 않는다. 호치민을 출발지로 해서 오픈버스 편으로 후에 (Hue) 까지 차례로 이동한다. 북위 17 도선 이북은 내년으로 미룬다. <호 아저씨>도 그때 뵈면 된다. sarnia 는 새로 짠 여행루트를 가리켜 <필리핀 루트 반토막>라고 이름지었다. 필리핀 님이 추천해 주신 코스 중 남쪽 절반만을 채택했기 때문이다.   
 
호 아저씨뭐 올해는 못 뵙겠지만 기왕 말나왔으니 잠깐 언급하고 넘어가자. 호 아저씨 자신은 비록 통일을 못보고 1969 년 타계했지만, 체 아저씨와 함께 인류사에 있어서 반제항쟁분야의 모범적인 영웅으로 오랫동안 기억될만한 인물임에 믿어 의심치 않는다.
 
뭔가 수상쩍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은 근세 이후 아시아 국가가 서구와 싸워 이긴 전쟁 두 개를 꼽으며 그 중 하나가 1905 년의 일-러 전쟁이고 다른 하나가 베트남-미국 전쟁이라고 슬그머니 뭉뚱그려 이야기하기를 좋아하는데, 결코 이 두 전쟁을 같은 반열에 올려 같이 놀게 할 수는 없다. -러전쟁은 제국주의 국가간의 전쟁이었던 반면 베트남-미국 전쟁은 식민지 독립-해방전쟁이었기 때문이다.
 
아시아 역사에서 가장 감격스런 순간이 있었다면, 1975 년 4 월 30 일 오전 11 시 해방군이 연도에 몰려나온 사이공 시민들의 따뜻한 환영을 받으며 질서정연하게 진주해 들어와 제국주의 폭력지배의 두 상징인 사이공 주재 미국대사관과 대통령궁이었던 독립궁 (지금의 통일궁)을 차례로 접수한 그 순간들이었을 것이다. 맹목적인 아시아우월주의자가 아닌 담에야 어떻게 감히 이 전쟁을 일-러전쟁에서의 일본 승리 따위와 비교할 수 있단 말인가?
 
성격이 전혀 다른 두 전쟁을 같은 반열에 올린다면 일-러 전쟁을 승리로 이끈 이토 히로부미를 호 아저씨와 동급 대우를 해야 하는 어처구니 없는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 뿐만 아니라 이토 히로부미 덕분에 조선이 러시아 식민지 안되고 일본과 내선일체되어 근대화를 이룰 수 있었다는 골빈생각이 그 틈새를 비집고 출몰하게 된다.
 
암튼……           
 
북쪽으로 이동하기 전에 호치민 시티 부근에 있는 혁명3 대 사적지 중 가장 가 보고 싶은 곳 딱 한 군데만 선택해 방문하려고 한다. 이미 망설임없이 선택했다. Can Gio 라는 곳이다. 한글로는 껀저라고 써 있는데 현지어로는 뭐라고 발음하는지 모르겠다. 맹글로브 나무가 들어차 있는 열대정글안에 복잡한 수로가 미로처럼 갈라져 있는 천혜의 요새다. 2000 년 유네스코가 지정한 생태보호구역이기도 하다.
 
파충류의 천국으로 알려졌던 약 4 천 평방킬로미터에 달하는 이 대자연은 1962년 부터 약 10 년에 걸쳐 미국군에 의해 철저하게 파괴된 슬픈 역사를 간직하고 있다. 처음에는 엄청난 양의 포탄과 네이팜탄에 의해 물리적으로 파괴되었고, 나중에는 ‘Agent Orange’라고 불리우는 맹독성 고엽제에 의해 거의 절망적인 수준으로 초토화되었다고 한다.
 
전쟁 당시 사이공에서 약 60 km 떨어진 이 지역에 베트남민족해방전선 (National Liberation Front)의 수중유격대 사령부가 주둔하고 있었기 때문에 이 일대가 미국군의 청소작전대상이 되었다.
 
참, 어느 안내문에 월맹군의 유격부대'라고 표기되어 있던데 월맹군은 븍베트남 정부 예하의 정규군을 말한다. 껀저 지구를 배경으로 활동을 벌인 유격대는 북베트남 정규군이 아니고 남베트남의 자생적 무장항쟁조직인 NLF –Viet Cong- 예하 부대였을 거라고 추측한다. 추측한다고 말한 이유는 sarnia 가 아직 믿을만한 자료를 발견해서 그 게릴라부대가 어느 부대 소속인지 확인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만일 sarnia가 틀렸다면 그 여행안내문 작성하신 분께 정말 미안하다.     
  
어쨌든 그렇게 초토화되었던 껀저의 맹글로브 열대림은 통일 이듬해인 1976 년 부터 베트남 인민들의 피눈물나는 노력으로 서서히 복원되기 시작했다. 독일 등 해외 환경단체들의 도음을 받아가며 복원작업을 벌인 끝에 4 년 만에 60 퍼센트 가량의 면적을 복원했고, 1986 년에는 약 7 5 천 헥타아르에 달하는 맹글로브 열대림이 죽음의 고엽제 오염으로부터 되살아났다.     
 
에코투어와 역사투어를 동시에 할 수 있는 껀저 투어는 의외로 Sinh Tourist 의 투어목록에는 나와있지 않았다. 이 투어를 저렴하게 단체투어로 운영하고 있는 여행사를 딱 한 곳 발견했는데, 베트남 여행사가 아니라 의외로 한국 여행사인 리멤버 투어라는 곳이다. 베트남 여행사를 따돌리고 훌륭한 코스를 먼저 개발하신 그 한국 여행사에 축하의 인사를 드린다. 
 
아, 오해하실까봐 하는 말인데 이거 특정 여행사 광고 절대 아니다. 그 여행사 이름 오늘 난생 처음 알았다. 그러니까 또 무슨 '싸르니아님의 불편한 진실' 이런 글 올리실 필요없겠다.   
 
맨날 하는 똑같은 소리지만, 대한민국은 1965 년 부터 파리강화조약으로 전쟁이 기술적으로 종료된 1973 년까지 연인원 32 만 명이 이 나라 전쟁에 참전해서 5 99 명이 전사하고 11 2320 명이 부상당했으며, 15 9132 명이 고엽제 후유증으로 시달리는 결과를 가져왔다. 4 명은 어찌된 일인지 실종된 후 아직 생사조차 확인되지 않고 있다. 어느 분 말마따나 대한민국은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인 셈이다.
 
사실 전쟁은 그 자체가 미친 짓이다. 전쟁이 있는 곳에 전쟁범죄가 안 일어날 수 없다.
 
sarnia 가 배트남 전쟁 이야기를 할때마다 대한민국을 언급하는 이유는 "I know what we did in Vietnam~~" 하고 딴지-불링을 하기 위해서가 아니다. sarnia 는 대한민국 출신이다. 더구나 4 촌 이내의 가족-친지 중 두 명이나, 그것도 모두 전투부대 지휘관으로 이 전쟁에 참전했다
 
나는 그들로부터 전쟁 이야기를 직접 들은 기억이 거의 없다. 그러기에는 나와 그들이 나이 차이가 너무 많이 났고, 내가 성인이 되고 그들이 늙은 (?) 담에는 그 전쟁 이야기를 입밖으로 꺼내지 않았다.  
 
전쟁은 ...... 그 무슨 동기나 명분이나 정치적인 흑막을 놓고 따지기 전에 그 자체로 비극이고 슬픈 거라고 생각한다. 
 
나는 딴 거 다 떠나 호치민 시티 북쪽 1 번 국도를 따라 올라가면서 우선 내 사촌형들이 가서 무언가를 했던 그 현장부터 찾아보고 싶다. 그들의 흔적을 찾아보고 싶다고 해서 무슨 청룡부대나 백마부대, 맹호부대가 주둔했던 주둔지 따위를 둘러 보고 싶다는 말이 아니다. 내가 참전용사가 아니니 그런 장소에 무슨 추억거리가 있을 턱도 없거니와, 가벼운 마음으로 전쟁사적지 유람을 하기에는 그곳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너무 마음이 무거워 질 것 같기 때문이다
 
나는 지금으로 부터 10 여 년 전, 미국 국립문서기록보관소 (National Achieves & Records Administration)가 기밀이 해제되었다며 공개한 문서와 사진들이 고스란히 보도된 것을 보고 적잖이 충격을 받은 적이 있다.
 
전체 분량이 554 페이지에 달한다는 이 문서들은 놀랍게도 사이공 주재 주월미국군사령부 감찰부의 대령급 장교 두 명이 각각 한국군 해병대의 세 차례에 걸친 민간인 학살사건에 대한 비밀조사보고서를 작성해서 자기들 사령부의 참모장에게 제출한 것이었는데, 그 세부적인 내용을 여기에다 나열할 필요는 없을 것 같다. 10 여 전 당시 대한민국을 충격과 죄책감의 깊은 수렁으로 몰아넣었던 그 처참하고 끔찍한 사진들역시 그냥 내 기억 속에만 묻고 가겠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이 일어난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이란 곳은 다낭에서 가까운 것 같은데, 꼭 한 번은 가보고 싶다 
 
중간중간 므이네의 어촌마을과 더 북쪽 이쁘게 낡은 도시 호이안같은 곳에서 조용한 휴식할 수 있는 여유도 마련해 볼 생각이다.
 
시간은 아직 많이 남아 있으니 좋은 조언들 주시기를......

16 Comments
sarnia 2012.03.18 16:32  
난 노래보다도...... 저 헬리콥터 소리가 마음에 듭니다.
세일러 2012.03.18 18:14  
200%공감해요. 영화를 본지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이상하게 저 헬리콥터 소리가 잊히지가 않는데, 그게 코폴라가 말하고 싶었던 이 전쟁을 굉장히 감성적으로 잘 전달하고 있어서가 아닐까 합니다. 물론 The Doors 노래도 좋아합니다. 짐의 몽환적 목소리와 의도적으로 낮은 피치로 조정된 헬기로터음, 그 둘의 조화가 환상적이었다고 할 밖에요.

호아저씨를 만나지 못했습니다. 전에 찾아갔을때 마침 출장중이시더군요. 유언으로 절대 시신보존같은것 하지 말라고 당부를 하셨는데도 불구하고, 불충한 후손들때문에 여전히 바쁘신가봐요. 후손들은, 사후에도 여전히 그분이 필요했겠죠.

혁명가로서 체와 쌍벽을 이룬다는 평에 공감하지만, 혁명가뿐 아니라 지도자로서의 자질까지 감안한다면 호아저씨가 한 수 위였다고 생각해요. 체는 쿠바혁명 후, 뭔가 허전해했던 것 같아요. 반면 호아저씨는 끝까지 인민을 위해 노력하셨죠. 부드러운 카리스마가 딱 어울리는 표현이었던 것 같고, 치밀하면서 유연한 전략가이기도 했구요. 뭐, 체는 남미전체를 위했고 호는 베트남민족주의자라고 비판 할수도 있겠지만 말이죠.

대한민국이 가해자인 동시에 피해자라는 인식도 수긍은 합니다만, 어쨌건 베트남에 가면 언제나 약간은 경건해지고 괜시리 미안한 마음이 드는 건 어쩔 수 없군요. 뭐 나이 좀 있는 서양인들은 베트남에 여행온 이유가 어떻게 이 나라가 프랑스와 미국(중국도 포함이군요)을 전쟁을 통해 물리칠 수 있었는지 알고 싶어서라고 말하는 사람이 많기는 하지만....

지옥의묵시록 Redux판이 나와 있는데, 한번 봐야겠습니다.
sarnia 2012.03.19 02:19  
체 아저씨가 왜 쿠바를 홀연히 떠났는지는 누구도 정확히 알 수는 없는데.. 제 짐작에는 ‘행정가로서의 삶’이 그다지 즐겁지 않았던 것이 아닌가 이런 생각을 해 봅니다.

사실 그는 당시 선진국이었던 아르헨티나 중산층 츨신의 의대생이었다가 어떤 계기로 인해 갑자기 엄청난 회심을 한 보기드문 사례인데 (이건 그가 엄청 착하고 순수한 사람이었다는 걸 반증해 주기도),

혁명 성공후 장관과 군사령관 직 같은 것이 그에게 만족을 가져다 주었을리 없었을 거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그보다는 아마 새로운 임지에서의 새로운 사명을 찾아 떠나는 것이 그에게 더 행복을 가져다 주었을지도 모르지요.

어쨌든 그건 한 개인의 내면 문제고, 전 그냥 다른 개인의 내면까지 긴파해 볼 재주는 없는 제삼자로서 ‘사명감에 충실했던 진정한 혁명가’로 평가해 주고 싶습니다^^
세일러 2012.03.19 14:24  
체가 사명감에 충실했던 진정한 혁명가라는 것은 두말할 나위없는 사실이죠.
귀감이요 모범입니다.
아마도 추측컨데, 혁명을 완수한 후의 행정가로서의 자질은 모자랐던 것이 아닐까 합니다.
설령 남미의 혁명을 모두 완수했었더라도, 체는 또 다른 곳의 혁명을 위해 떠나지 않았을까요?

그런면에서 호아저씨는 두가지 능력을 모두 겸비한 매우 이상적인 지도자가 아니었을까 하는 것이구요.
필리핀 2012.03.18 20:21  
호 아저씨와 체 아저씨...
좌우를 통틀어서 존경받는 유이한 인물이 아닐까 싶네요...

구찌터널도 가보실 거죠?

꽝남성에 있는 퐁니, 퐁넛은 수년 전부터
"나와우리"라는 단체에서 매년 방문하여
속죄의 봉사 활동을 하는 곳이지요...

무이네는 별로 볼 것이 없고요...
10일이면 호치민-호이안-후에 보기에도 빡빡할 듯 합니다... 

제가 벳남에서 최고의 장소로 꼽는 곳은
호이안-후에...
그리고 하롱베이입니다...

캄보댜의 경우도
일주일은 잡아야 합니다...
씨엠립 최소 3일, 프놈펜 최소 2일...
거기에 이동 및 예비일 포함하여...
sarnia 2012.03.19 02:20  
네, 구찌터널도 혁명 3 대 사적지 중 하나죠.

껀저에 간다면 메콩델타투어는 생략해도 될 것 같은데 아직 잘 모르겠어요. 실은 프랑스와 미국이 정치범 수용소를 설치해 운영한 콘타오섬도 따로 생각해 두고 있습니다. 짐승우리같은 작은 철장과 고문시설들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고 하지요. 프랑스는 단두대까지 만들어 사용했다고 합니다.

므이네는 사막이니 뭐니 이런 거보다 피싱빌리지가 맘에 들었어요. 그런 분위기 좋아합니다. 호이안은 어느 블로거가 올린 사진들을 보고 아, 여기다!! 하고 확 끌렸던 곳이고요^^
필리핀 2012.03.19 07:09  
피싱빌리지... 가보시면 아마 실망하실 겁니다... ^^;;;
눈물에게 2012.03.18 22:12  
저도 혈육중 한분이 참전했었더랬지요....은마부대 소속이였다는데....지난 세월동안 정말 그곳 이야기는 하고 싶지 않다고....하더군요...
지금은 타계하신 이윤기 선생(번역가로 더유명하신...)
역시 참전하셨던 이야기를 책에 가끔 쓰셨더랬는데....
"증오비" 라는 게 있더라구요
[미국의 개였던 남조선 군대를 증오한다]. 라며 한국군에게 학살당한 마을사람들의 이름을 세겨서 세운 비 라고 하던데 선생이 직접찾아가서(학살의 직접가담자는 아니였지만) 머리숙여 참배하던 사진을 올리셨더군요... 저역시 언젠가 배트남을 가게된다면 꼭한번 그곳에 가고싶습니다....
sarnia 2012.03.19 02:27  
아, 이윤기 님이 혈육이셨군요.

그 분 말씀하시니까 '양들의 침묵'이 또 생각납니다. 읽으면서 참 한국말답고 재미있게 번역을 훌륭하게 하셨다는 생각을 했었습니다. 변역이란 문자 그대로 해야 할 때도 있지만 소설의 경우 그 나라의 언어나 문화에 맞게 옮기는 게 더 중요할 때가 있는데 그런 면을 세심하게 고려하는 번역을 하신 거 같아요.
필리핀 2012.03.19 07:08  
참고로 벳남전을 배경으로 한 한국 소설로
무기의 그늘(황석영), 머나먼 쏭바강(박영한),
하얀전쟁(안정효), 황색인(이상문)...
그리고 방현석의 몇명 중단편소설이 있지요...
뱃남과 벳남전을 더 잘 이해하시려면
황석영과 방현석의 작품 정도는 읽고 가는 게 좋습니다...
sarnia 2012.03.19 08:37  
방현석을 제외하면 모두 월남전에 직접 참전했던 사람들이지요.
그건 그렇고,
오늘 점심먹다 골똘히 생각해 봤는데.. 위에 쓴 일정 다시 싹 바꿔야겠어요.
좀 이상한 말이긴 하지만
호치민에 렉스호텔이란데가 있지요?
그 나라에 가 본 적이 없는데도 불구하고
그 호텔 보니까 호텔 이름도 시설도 주변 경치도 뭔가 매우 익숙한 게
전에 가 본 적이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마치 저 헬리콥터 소리가 너무나도 친숙하게 들리는 것 처럼말이죠......
필리핀 2012.03.19 10:32  
렉스호텔... 벳남전 당시 종군기자 아지트였죠...
그 부근... 프랑스 샹제리제 거리와 무척 흡사합니다...
세일러 2012.03.19 14:08  
그러게나 말입니다.
호치민에 처음 갔을때, 왠지 낯설지 않고 익숙한 느낌...
나도 그게 제일 궁금해요.
왜 베트남이 이상하게 낯설지 않은지...
어린시절 무의식에 각인되어 나도 모르게 수도-노스탤지어를 느끼는 건지 원...
어릴때 베트남전 영상에 너무 많이 노출되었었나 봐요...
sarnia 2012.03.20 09:57  
전 그런 익숙한 이미지가 떠 오를때마다 '오노 칸코 호텔'에 간 스기우라 나기사가 함께 떠 올라서 묘한 감정이 들곤하죠.
물론 아니겠죠^^
미국이 참전한 전쟁이 확전된 건 1964 년 8 월 통킹만 사건 이후고, 그때 저는 이미 세상에 나왔었으니까 ^^
구우름따라 2012.03.19 14:10  
쿠앙남성 디엔반현 퐁니·퐁넛 중 한곳(어딘지 잘 모르겠어요)을 2년전에 다녀왔습니다.
희생자들의 이름과 간략한 기록을 남긴 추모비와 부속 건물이 있습니다.
다낭시에서 20여분 정도 떨어진 시골마을 논밭 가운데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저는 단체로 버스를 이용하였고 안내자도 있었기에 별 어려움 없이 다녀올 수 있었습니다만
자유여행자가 스스로 찾아가기엔 쉽지않아 보였습니다. 참고하시길..
sarnia 2012.03.20 09:54  
아, 그곳에 다녀오셨군요.
유용한 정보 주셔서 고맙습니다.
그 사건 이야기를 하다보니 특히 '여성 한 분' '아이 한 명'의 사진이 자꾸 떠오르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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