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방콕에서 생긴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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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방콕에서 생긴 일

필리핀 30 1046
오늘 아침에 재미있는 사건이 있었다.
나는 지금 일주일째 방콕에 머물고 있는데 아침마다 짜오프라야강변에 있는 공원에서 조깅을 한다.
오늘도 일곱시쯤 공원으로 가서 조깅을 하는데 맞은편에서 카메라를 손에 쥔 서양 할배가 걸어왔다.
그 할배와 부딪히지 않기 위해 옆으로 살짝 비켜서는데 그 할배 주머니에서 꽃잎같은 종이 몇장이 스르르 흘러내렸다.
순간 내 오른쪽 눈동자는 그 종이가 무엇인지 식별하기 위해서 동공을 최대한 확대했고, 왼쪽 눈동자는 그 할배의 상태와 주변 상황을 판단하기 위해 잽싸게 움직였다.
(나는 왜 이런 상황에서만 초능력을 발휘하는 걸까?)
그 종이는 돈이었다. 1000밧짜리 두어장은 되어보였다.
1000밧은 33000원쯤 되는 액수이지만 태국 물가를 기준으로 하면 10만원의 위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2000밧이면 나같은 거지여행자에게는 하루 숙소와 세끼 식사와 마사지와 맥주 몇병까지 해결되는 큰 금액이다.
할배는 이국땅의 신기한 피사체를 좇느라 자신의 주머니에서 돈이 흘러내린 걸 눈치채지 못했고, 주변 벤치에 있는 노숙자 두엇은 꾸벅꾸벅 조는 중이었다.
오롯이 나혼자만 돈들의 탈출을 목격하고 있었다!
그때부터 내 속에서는 1번 마음과 2번 마음이 갈등하기 시작했다.
'뭐해? 얼른 할배에게 알려줘야지!'
1번 마음은 이렇게 속삭였지만 2번 마음은 달랐다.
'서양 할배가 저 돈 없다고 죽기야 하겠어? 행운은 일단 움켜쥐고 보는 거야!'
내 몸은 어느새 그 돈을 줍기 위해 반쯤 수그리고 있었다.
그때였다. 내 입에서 불쑥 이런 말이 튀어나왔다.
"헤이, 미스터!"
그 할배가 뒤를 돌아봤고 동시에 벤치에서 졸고 있던 두어명의 노숙자는 화들짝 놀라며 동그래진 눈으로 나를 쳐다봤다.
나는 몸을 반쯤 수그린 자세로 땅바닥에 떨어진 돈을 가리키며 "유 어 머니!"라고 외쳤다.
그러자 할배는 성큼 다가와 돈을 주으며 연신 "땡큐~"를 남발했다.
할배가 사라지고 난 뒤에도 나는 잠시 그 자리에 서 있었다.
조깅으로 가빠진 숨을 고르기 위함만이 아니었다.
잠시나마 본능을 이기고 양심의 존재를 느끼게 해준 나의 이성이 기특했기 때문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심을 지키며 사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다들 편한대로 사는 데 왜 나만 원칙에 얽매여서 어려운 길을 선택해야 하는가?
때로는 묻지도 따지지도 말고 본능에 충실하는 게 더 편할 때도 있다.
하지만 인간이 개돼지와 다른 것은 이성을 지니고 있기 때문이다.
뱀의 언어로 온갖 유혹이 난무해도 결국은 1번이 2번을 이기고야 만다는 평범한 진리를 새삼 확인시켜준 오늘 아침의 사건이었다.
대한민국의 운명을 결정하는 대통령선거가 코앞으로 닥쳐왔다.
사전투표는 벌써 시작되어서 여기저기서 인증샷을 보내온다.
다들 이성의 힘으로 올바른 선택을 하는 것 같아서 반갑다^----^
30 Comments
참새하루 2017.05.04 19:06  
눈앞의 유혹을 쫓아 2번을 선택할지
양심과 원칙에 따라 1번을 선택할지
잠시나마 갈등했을 그 순간을
사람이라면 모두 가지고 있을테지만
그리고 그것이  모든 인간의 본성이겠지만
그렇지만
저는  믿고싶습니다
정의는 반드시 이긴다
그리고 진실은 끝내 승리한다!!!
필리핀님의 양심은 끝내 유혹을 뿌리칠것이다라는것을요 ㅎㅎㅎ

ㅎㅎㅎ 필리핀님 또 언제 방콕을 가셨더래요
오늘 와이프가 서울에서 돌아왔는데
공항에 사람들이 하도 많아서
비행기 놓칠뻔 했답니다
보통은 공항에 세시간 전에 가는데
이번 연휴 기간에는 정말 인산인해라네요
하루 10만명씩 10일 동안 100만명이 휴가를 즐기러
외국으로 나간다고 뉴스에 나오네요

전쟁이 나네 비상식량 사놓네 하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주식은 최고 기록을 세우고
외유 인파는 최고 기록이라니
참 세상 요지경이네요'
그 외유 인파중 한명이 필리핀님이었얼거구요^^

그런데 선거날 전에는 돌아오시는거죠?^^
필리핀 2017.05.04 19:50  
거금 이천밧을 놓치게 만든 내 주둥이를 하루종일 탓하고 있어요ㅠㅠ

4월28일 출국 5월8일 귀국입니다.
타이항공 작년 12월에 40만원 주고 구입했는데
지금은 100만원이 넘더군요^----^
울산울주 2017.05.04 19:08  
액수가 2 만밧일 때
우리 다시 한번 생각해봅시다
촌부 2017.05.04 19:15  
'대한민국의 운명을...' 이하 문장이 빠지고 '사건이었다'로 마무리 하셔야 장원감 인데... 너무 친절한 마무리가 아쉽습니다~* 차상 드립니다...
지난주 금요일 국외투표하러 대사관에 갔더니 땀에 젖어 캐리어 끌고 온 젊은 분들이 많더군요... "나라를 나라답게" 만들기 위해 열일 하시는 모든 분들께 박수를 보냅니다~
나락 푸차이 2017.05.04 19:19  
역시요, 근데 아침에 무척덥던데...출근하는데 땀이 흠뻑합니다.
역류 2017.05.04 20:08  
돈보다 사람이 먼저이니^^
전 오늘 사전투표를 하고 8일 밤 10시경에 수완나폼에 도착할 것 같습니다. 혹 그 때 잠시라도 뵐 수 있을지요?
필리핀 2017.05.04 20:20  
8일 아침 뱅기로 한국 가요
하루만 일찍 오시지ㅠㅠ
흐이융 2017.05.04 21:58  
잘하셨어요~양심을 지키는게 더 좋은거 같아요
필리핀 2017.05.05 09:13  
칭찬해주셔서 감사해요^---^
펀낙뻰바우 2017.05.05 00:20  
요사이 주변에 달 이 너무 밝아 마음이 심 란한 사람들이 많이 보이네요...경제만큼은 유 난히 그 양반이 잘 할 것 같다라고 말씀하는 분들도 쬐매 늘어난 느낌이고요.^^
필리핀 2017.05.05 09:14  
투표 잘하셨나요?
이제 제주에서 먹방중? ^^
펀낙뻰바우 2017.05.05 09:36  
저는 오늘 밤 비행기로 제주도 갔다가 2박하고 8일날 서울 올라가서 9일에 투표하고 10일에 다시 제주도 내려갑니다. 먹방 제대로하려고 지난번 알려주신 제주 맛집 리스트는 잘 메모해 두었습니다.^^

필리핀님께서도 남은 기간 재미지게 보내셔요.~~~
필리핀 2017.05.05 11:48  
헐~ 동번서번이군요!
계시는 동안 한국 날씨가 좋기를...
방콕은 새벽부터 천둥 번개에 폭우...ㅠㅠ
자다가 무서워서 깼어요^^;;
타이거지 2017.05.05 02:53  
역시..방콕이라 그런지..스케일이 좀 있네요.천밧짜리^^.
치앙마이..맛사지학원 가기 전..숙소 근처 창푸악 스타디움에서..매일 조깅.
대부분이 모떠 끌고 오는 현지인..레인에서..주차장에서..매일 줍는..일밧,하밧,텐밧.
이게..웬욜이니~!
운동하러 갔다가..예기치 않은 수입..보이는데 안 주울수도 읍고 ㅜㅜ.
아침에 눈을 떠 운동하러 나가면서..오늘 수입은?..잿밥에 더 눈이 가더라는 ㅡ.ㅡ;;
한달수입..300밧이 넘어요ㅜㅜ.
주차장에 동전이 더 많은 이유..주머니에서 차 키를 빼다가..동전이 떨어진게 아닌가???
필리핀 2017.05.05 09:16  
1밧짜리는 저도 자주 주워요.
태국인들은 거들떠 보지도 않던데요? ^^;;
띠로리58 2017.05.05 09:36  
잘하셨어요~~멋지십니다.^^
필리핀 2017.05.05 11:49  
감사합니다!
1번 마음 지지하시는 거죠? ^^
산다모니카 2017.05.05 12:40  
정치색 보이시면서 글을 끝맺으시니 감동이 반감되네요..
무스타파 2017.05.06 12:24  
1번 마음 지지 합니다. 결국은 서로가 서로를 위할 때 세상이 살만한 것 같습니다.
좋은 일 하셨습니다! 굿 럭!
필리핀 2017.05.06 14:49  
이기적인 사람보다
이타적인 사람이 많았으면 좋겠어요! ^^
루나tic 2017.05.06 13:57  
사람은 마음 편한게 최고인거 같아요.ㅎㅎ 마음편하게 일상을 사는게 최고죠~!! 전 사전투표했는데 혹시나 칸에서 벗어날까 인주가 번질까 부들부들했답니다. 이게 뭐라고ㅎㅎ스스로가 웃기면서 소중한 표 행사하고 싶었어요, 저 같이 성질급한 사람은 빨리 9일이와서 결과 봤으면 좋겠어요.ㅎㅎ 탄핵선고일때처럼 기뻤으면 하는 마음으로~^^
필리핀 2017.05.06 14:51  
자신의 떳떳한 권리를 행사하면서도
이렿게 조심조심해야 한다니ㅠㅠ
정말 새로운 세상이 와야겠어요! ^^
여시마눌 2017.05.06 21:33  
돈 보다 양심을 택하셨군요...ㅋ
필리핀 2017.05.07 08:17  
고놈의 주둥이 땜에^^;;
Robbine 2017.05.07 05:22  
자본주의 사회에서 양심을 지키는게 어렵다는 말씀 격공해요.
저랑 같은 날 출국 하셨네요. 미리 알았으면 공항애서 뵐 수도 있었을텐데..
필리핀 2017.05.07 08:18  
오호! 좋은데 다녀오셨수꽈? ^^
Robbine 2017.05.07 17:11  
파리 갔다 왔어요.
후니니 2017.05.08 18:01  
그 개념장착 입님 호사 한번 시켜야죠
인왕산아래 쥔없는 집에 새로 문짝 다는날 어때요?
그날 공짜로 퍼주는 술집 많이 생길 것 같은디요
김박첼라 2017.05.25 15:24  
ㅎㅎ글을 잘쓰시네요 잘하셨어용
에반스타이 2017.05.25 15:27  
이성이 있으므로 사람인것 인정합니다.. ^^
좋은 여행 하시고 늘 좋은 일만 가득하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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