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것은 처절한 사투기인가? in 쿠알라룸푸르 (2)
우리는 거취를 고민하면서 첫날 낮과 밤 동안 20마리 남짓 잡았다. 아침이 되니 이제 거의 나오지 않고 새끼빈대만 간혹 나온다. 우리의 다년간에 걸친 빈대 소탕 경력을 보자면 이렇게 한 소쿰 잡고나면 거의 대충 정리가 됐다. 그래서 주인과 말씨름 하기도 그렇고 짐 싸고 푸는 것도 귀찮아서 그냥 있기로 했다.
결과는...
그 다음날은 그의 절반, 또 그 다음날도 대략 열 마리 가깝게 잡은 것 같다. -_-;; 어쨌든 이곳에서 방을 빼기 전까지 강도가 점점 약해지긴 했지만 계속 물리긴 물렸다.
그렇다. 우리는 남의나라에서 수제 빈대 방역작업이나 하면서 숙박기간을 채운 거였다.
- 우린 여길 떠나서 좋은 곳으로 갈거야. 그러니 좋은 맛을 보기 전에 이런 상황에 있으면 나중에 그 단맛이 더더~ 증폭되는거지. 그렇지 !!
라는 근본 없는 자기합리화를 하면서 말이다.
빈대가 있다는 걸 알게 되면 사람은 곧장 초민감 노이로제 상태에 돌입하는데...
원래 사람의 피부란게 가만히 있다가도 그냥 좀 가렵기도 하고 뭐 그럴 때가 있지 않나...
근데 빈대가 있다고 생각되면 이 모든 현상이 전부 이 망할 것이랑 연결이 되면서, 피부에 좀만 어떤 반응이 와도 벌떡 일어나서는 몸을 탁탁 털어내고 내가 앉았던 자리를 뚫어지게 보고, 혹시나 그놈인가 싶어서 면상을 구기며 먼지 가루 같은 것도 힘줘서 막 눌러보고 그렇게 된다.
마약쟁이들의 금단증상중의 하나가 멀쩡한 사람들 눈엔 안 보이는 괴물 같은 헛것이 보이고, 벌레가 막 귓구멍으로 들어오는 거 같은 공격받는 환상에 빠져서 허공에 대고 막 팔을 휘휘 젓고 자기머리를 때리고 몸을 털어내는거처럼... 우리상태도 꼭 그렇게 되어갔다.
몸 상태만 나빠지는게 아니라 마음에도 편집증 증세가 깃들면서, 가만히 앉아만 있어도 기력이 엄청나게 떨어지면서 의욕이고 뭐고 다 사라지기 시작했다. 아무런 신체활동을 안하고 있어도 불안 초조에 방전이 마구마구 된달까...
게다가 웃기게도 이 방은 화장실 전등이 뭐가 잘못되었는지 불이 안 들어온다.
낮에는 쪽창으로 들어오는 환한 햇볕으로 별 문제가 없었는데 밤이 되니 급 곤란해졌다.
그렇다고 방문을 열어놓고 볼일을 볼 수도 없고, 급기야 우리는 테이블 위에 놓인 대형 스탠드를 화장실에 들어갈 때마다 들고 들어갔다. 무슨 탄광에 커다란 플래시 들고 들어가는 사람 마냥...
그 스탠드는 특이하게도 전통 옷을 입은 중국노인 조각상 스탠드였는데, 화장실에서 그거랑 같이 마주하고 있으면 기분이 참 묘하다.
몇 번 그러다가 우리는 깨달았다. 아참 우리한테는 미니 헤드랜턴이 있었지.
그래서 결국은 그거 이마에 둘러쓰고 화장실에 가게 되었다. 괜시리 무거운 스탠드 옮기다가 깨 먹으면 매우 곤란해... 잠결에 랜턴을 머리에 둘러쓰다가 팽팽한 고무줄탄력 때문에 레드랜턴이 전두엽을 가격하기도... 내 멀쩡한 집 놔두고 이게 뭔 고생이고...
- 그래도 우리 숙소근처에 이케아가 있잖아... 우리나라에선 광명까지 가기 힘들어서 한 번도 구경을 못 가봤는데... , 여기서 이케아 구경이나 실컷 하자.
그동안 우리는 집주인이 가르쳐준 경로를 충실하게 따라서, 지하주차장을 통해 건물 후문 쪽으로 늘 빠져나오곤 했다. 그러다보니 자연스레 건물 앞 쪽 편이 어떤지 궁금해진다.
뭐 그다지 특이할 게 있을라나... 외국인 노동자가 그저 지나가는 우리 같은 사람에게 무슨 해를 끼칠 것도 아니고...
그래서 우리는 다음날 이케아로 가기 위해 나오면서 집주인이 가지말라고 한 우리숙소 건물의 정문방향으로 빠져나와 봤다.
뭐 별 특이한거 없는데, 그냥 가난한 동네일뿐... 그런데 건물 1층에서 죽치고 앉아있는 이 묘한 사람들의 분위기는... 뭐람? 아. 그렇다. 이곳은 매음굴이었다. 그랬던 것이다.
오랜기간 파타야 그리고 방콕의 특정지역 뭐 이런 구역의 길을 자주 여행한지라, 동남아에서의 길거리 핑크비지니스는 내게 별다른 충격을 주진 않는 장면이다. 그냥 짙은 연민 만이 느껴질뿐...
그런데 이곳은... 회교도가 주축인 나라의 수도, 그 도시에서도 그저 가난한 서민들이 사는 마냥 낡은 아파트처럼만 보이는 곳, 그리고 유동인구도 거의 없는 건물 앞일뿐인데, 이 건물 1층에는 분명히 그 업에 종사하는 여성들이 탁자에 앉아있거나 건물 벽에 비스듬히 서서 시선을 거리에 두고 있었다. 말레이시아에서 중국계는 부를 담당하고 있다고 들었는데, 이곳의 여성들은 푸르른 시절은 어느 정도 흘려보낸 듯 한 나이대의 중국계 여성들...
왜 집주인이 이쪽 편으로 드나들지 말랬는지 이해가 간다.
나중에 에어비엔비에 접속해서 이 숙소 후기를 좀 더 상세히 서치해보니... 다른 사람의 후기에도 있었다. 건물 주변에 직업여성들이 있다는 글...
이곳의 분위기를 보아하건데 이 여성들이 활동을 위해 다른 곳으로 이동을 하는 것 같지는 않았다. 여기에 남자들이 찾아오고 바로 위 층의 어떤 공간으로 가는듯했는데... 세상 살다살다 매음굴 건물에도 묵어보고, 진짜 우리 발걸음은 어디까지 가는거야?
이곳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는 이케아 푸드코트에서 밥을 두 번 먹었는데, 이거 우리나라에서도 이런 방식인건가? 일단 작은 카트를 밀고 그 위에 트레이를 올린다음 쭉 진열된 음식중 맘에 드는 걸 선택해서 카운터에 가면 계산을 해주는 시스템이었다. 오~ 나름 좋은 방식인 듯...
그리고 빈 컵이나 커피컵을 트레이에 올려 계산하면 그 컵으로 계속 리필해서 먹을 수도 있고, 질감이 정말 부드러운 소프트 아이스크림도 단돈 0.8링깃에 판다.
아이스크림도 직접 내 주는 게 아니라... 돈을 계산원에게 주면 원뿔형 콘만 내손에 쥐어주는데 그것만 받아가지고 와서 내가 직접 아이스크림을 채집하는거다. 기계에 콘을 넣으면 지가 알아서 자동식으로 뿅~ 하고 나와서 철철 흘러넘칠 걱정도 없고...
내 앞의 아주머니는 무려 7개의 콘을 채워나갔다. 그녀의 옆에는 나이차가 거의 없어보이는 아이들이 무려 6명... 아주머니 힘드셨겠구만요. ^^
하여튼 숙소 사정이 이러한바... 우리의 상태는 심신이 급격히 쪼그라들어서, 매음굴 건물에 들어앉아 밥 먹으러 나가는 거 말고는 출입을 거의 안하고 있는데, 우리 방문 밖으로 다른 사람들의 말소리와 발자욱소리가 선명하게 들린다. 내 귀는 반사적으로 쫑끗 서서는 밖에서 나는 소리만으로 그들의 성별 나이 국적, 성향을 파악해보려고 애썼다.
어느 날은 영어를 쓰는 동남아 여성, 그리고 역시 영어로 그녀와 소통하는 동남아 남성이 존재했다. 그리고 또 어느날엔 서양인 커플. 그리고 우리가 떠나기 전날 입실한 서양인 남자 2명.
이곳에 머무른 모두가 한 마음이었는지 아니면 그냥 시간대가 맞지 않아서였는지 우리는 이 작은 공간에서도 서로를 실제로 대면한 적은 없었다. 말소리, 움직임의 소리, 그런것들로 상대방을 인식하고만 있을 뿐...
모두들... 방문밖이 고요할 때가 되어서야 비로소 밖으로 나오는거야? 내가 그런것처럼... ?
이케아에는 먼지랑 실밥을 싹 제거하기에 좋은 찍찍이롤러를 단돈 3.5링깃에 팔고 있었다.
요왕은 그걸 사가지고 와서 수시로 침대 위를 밀거나한다. 그걸로 바닥에 머리카락도 제거하면서 아주 성능에 흡족했는지 말레이시아 떠날 때 이 롤러를 3개나 더 사서 배낭 안에 쑤셔 넣겠다는 걸 극구 말렸다. 빈대 노이로제 때문에 판단력에 금이 가기 시작하고 있다.
하여튼 우리는 틈만 나면 그 찍찍이로 우리 주변의 모든 것을 밀어냈다.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침대에 가부좌를 틀고 앉아 내 주위를 찍찍이롤러로 밀며 결계를 치고 있는데,
갑자기 요왕이 어억!! 하며 팔을 사방팔방 휘두르더니 그만 책상위에 있던 머그컵이 떨어지면서 와장창 깨져버렸다.
엇... 뭐지? 요왕은 마치 전투지에서 구급병을 부르듯 다급하게 “페트병 페트병~~” 하고 외쳤고, 나는 날카로운 조각에 요왕이 발이라도 다칠까봐... 움직이지마!! 소리치며 급히 빈 플라스틱 페트병을 건넸다.
날카로운 입자 파편이 깔린 곳에서 요왕은 페트병으로 벽을 마구 때리기 시작했는데, 벽에는 새까만 바퀴가 붙어서 “뭐하냐. 이 바보 같은 덤 앤 더머들아” 하는 듯이 더듬이를 움직이며 빠르게 튈려고 하고 있다.
내가 쥐어준 패트병으로 그동안 누적된 분노의 풀스윙을 한 결과...
바퀴는 압사하였다. 진짜 별 꼴을 다 보는구만...
다행히 바퀴의 등장은 이게 처음이자 마지막이였다.
그나저나 깨진 컵은 어쩐다. 보상해야하는데...
다행히도 바닥에는 ‘IKEA’라고 씌어있다.
이 집 아저씨 살림살이 거기서 싸게 장만 하셨구만.
우리는 컵 하나를 사기위해 다시 이케아로 향했고, 최대한 물품을 많이 보도록 전시해놓은 이케아 매장의 굴곡지고 멀고먼 동선을 따라 예쁘게 꾸며진 쇼룸 구경을 나름 하게 되었다. 하지만 혹시나 똑같은 컵이 없으면 어쩌나 하는 조바심에 쇼룸이 크게 눈에는 안 들어왔다.
하긴 여행자가 남의 나라 이케아에서 무슨 흥미가 돋겠어... 여기선 그냥 푸드코트 음식이나 먹으면 될테지.
다행히 아직도 그 컵을 팔고 있네. 2.9링깃짜리 컵을 소중히 득템해서 숙소에 가져다 놓고...
이 잊지 못할 경험치를 안겨준 곳을 떠나기 전날... 우리는 이 빈대들이 우리를 깨물어서 피부가 부어오르는 건 이제 큰 문제가 아니고, 혹시라도 우리 짐 속에 기어들어가서 우리랑 같이 여정을 할까봐 그게 더 두려워졌다. 절대... 아닐거야... 절대로...
언제 물렸는지는 모르겠는데 내 이마빡을 빈대가 물었나보다. 이마에 오백원짜리 동전보다 더 큰 크기로 동그랗고 빨갛게 부풀어 오른걸 요왕이 보더니, 마치 '헬보이' 이마빡 같다고 놀리며 웃는다.
그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가 boy는 아니지만 지금 분명히 헬에 있는 거 같긴 하다.
이제 명백히 비수기 시즌에 돌입하는 태국의 남부... 아마도 할인된 가격으로 수많은 리조트들이 나오겠지?
그런 리조트에서 지낼 걸 상상하니 흐믓한 웃음이 저절로 지어지면서, 나는 침대위에 가부좌를 틀고앉아 내 팔뚝과 다리를 쉴새없이 찍찍이롤러로 싹싹 훓었다. 혹시라도 피부에 붙어 있을까봐 공포증에 시달리면서 말이다.
몸은 빈대소굴에 앉아있으면서도 내 마음은 실체도 분명치 않은 태국 남부 어느 리조트에 가있다. 환상속의 그대로구만...
우리가 떠다는 날 방 주인은
– 굿모닝~ 잘지냈어요? 뭔가 우리가 개선할 점이 있으면 피드백 주셈~
하고 샤방샤방한 메시지를 보냈고, 우리는 보낼까 말까 잠시 망설이다가
= 잘 지냈어요... 근데 빈대 때문에 고생했어요.
라고 답문을 하고 우리가 포획한 빈대사진도 첨부해서 보냈다.
주인장의 마지막날 아침인사
답장으로 우리가 보낸 빈대사진
그는 그 후 아무말도 없었다. 우리가 셀프 체크아웃을 하며 열쇠를 열쇠함에 넣었다는 마지막 메시지를 보냈을 때 조차도... 아무런 반응이 없다.
우리가 떠난 후 이 방에 들어오는 여행자... 행운 있으시라.
우리가 수작업으로 방역을 해서 그대는 훨씬 괜찮을거에요. -_-;;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