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순 기념 가족여행 - 가족이란
1. 8월
아버님이 당뇨판정을 받았다. 어머님은 작년부터 고혈압 약을 드신다.
이분들이 항상 곁에 계시는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문득 들었다.
내년에 결혼 10주년 해외여행 하려 적금부었는데
아버님이 올해 칠순이니 날짜를 조금 당겨 모시고 가야겠다고 생각했다.
한 번도 외국여행을 해 본 적 없는 노인 두 분을 패키지로 보내는 건 효도여행이 아닐 것이다.
2. 9월
점쟁이가 칠순 잔치를 하지 말라고 했다 한다.
점도 시류에 맞춰 결과가 나오는 모양이다.
여행지는 태국으로 정했다.
적당한 비행시간, 적당한 이국스러움과 적당한 만만함. 적당한 예산까지 만족시켜 주는 곳.
첫 해외여행으로 태국을 택하는 사람들이 많은 이유가 있을 것이다.
3. 10월
칠순 노인과 두살배기 어린이가 함께 여행하려니 관광, 숙소, 음식 모두 두세번 고려해야 된다.
한국어로 발행된 태국관련 책자는 모두 읽고, 인터넷을 뒤지는 날이 계속이다.
지도를 보면서 시간과 거리를 계산하고 태사랑에 매일 출근한다.
노부모님과 함께한 여행후기를 보면 가슴이 따뜻해진다.
가보지도 않은 태국 풍경과 사람들이 눈에 선하다.
4. 11월
부모님과 우리 부부, 아이들까지 6명이 가려던 여행이 14명으로 늘었다.
시동생네, 시누이네 가족까지 3대가 한 명도 빠짐없이 참여한단다.
일정 맞추기 힘들다. 11월에서 12월로 다시 1월로 변경되었다.
절반은 첫 해외여행이다. 이 여행에 기대하는 것도, 생각도 다 다르다.
자유여행이 가능할까 걱정하다 결국 K여행사의 맞춤패키지를 택했다.
5. 12월
여행사에서 뽑아온 견적이 문제다. 태국 저가 패키지가 좀 많은가. 비교가 되지 않는 금액이다.
날짜를 또 변경하잔다. 이러다 떠날 수는 있을지 모르겠다.
여행사와 금액을 맞추고, 다시 날짜를 확정했다.
예약금을 입금하고야 겨우 한숨 돌릴 수 있었다.
그런데,,,
6. 12월의 끝자락
아버님이 여행을 안가시겠단다. 애원도 협박도 안통한다.
아버님이 안가시니 어머님도 안가신단다.
항공권 결제 시한을 하루 앞두고, 자식들끼리라도 갈 거냐 말거냐를 결정하느라 핸드폰이 뜨겁다.
물론 형제들끼리 여행도 나름의 의미는 있을 것이다. 아이들까지 다 모인다는게 쉬운 일이 아니잖은가.
게다가 이번이 첫 해외여행인 사람도 있는데..
7. 결론
결국 여행이 무산되었다.
몇달간의 시간과 노력이 모두 물거품이 됐고, 날린 예약금에 속쓰리고
고집을 꺾지 않는 아버님에 대한 서운함과 해외여행에 대한 기대가 깨진 실망감.
자식들이 돈을 잘 번다면 저러시진 않았을거라는 자격지심까지...
가족여행도 힘들지만,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것은 더 힘들다.
헛돈 쓰지 말라는 아버님 바램이 이루어졌으니 효도여행은 못갔어도 효도는 한건가.
난 괜찮다 필요없다 라는 노인들 얘기가,
자식생각해서 공연히 하는 말이 아닐 수 있다는 것!
부모님을 모시고 가지는 못하겠지만
아마도 이번 여름엔 태국 여행을 갈 것이다.
여러 달 여행준비하며 수집한 정보들이 아까워서, 안 갈래야 안갈 수가 없다.
부모를 자식 마음대로 할 수 없지만, 자식역시 부모 맘대로는 되지 않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