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에게 기대어 울기...
혼자 여행을 하면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고 하더군요... 이 생각
저 생각 하다보면 복잡했던 일들도 하나 둘 실마리를 찾아 잘 풀어
나가고... 힘든일, 슬픈일도 덜어 진다고 하더군요... 아, 그런데
막상 해보니 그렇지도 않데요.. 10월 중순의 깐차나부리 여행때도
그랬고... 5주째 머물고 있는 독일 에서도 마찬가지네요.. 오히려
이생각, 저생각들이 순서도 없이 뒤섞이고 서로 상반대는 상념들이
전쟁을 벌이네요..
크게 울고 싶은 일이 있었어요... 그런데 울수없더군요.. 한번 감정의
물꼬를 터놓고 나면 걷잡을수 없을것 같은 두려움 때문에 제대로
아파 하지도 못했어요... 가족에게도, 친구에게도, 그 아무에게도 말하지
못했지요.. 목울대까지 꾸역꾸역 차올라오던 울음이 터져 나올 곳을 찾지
못해 소리없이 눈에서 흘러 귓속으로 들어가고는 해서 아침이면 귀가 먹먹
했어요...
11월의 마지막 주말, 뮌헨의 호프 브로이 하우스에서 였어요.. 술을 잘
못하는 제게 무조건 1리터 머그에 서빙되는 맥주가 제대로 작동을
하더군요.. 손님이 많아 합석을 했던 같은 테이블의 낮선 독일인에게 저의
비밀 하나를 털어 놓았드랬지요...
"..... 이 옆에 앉아 있는 내 동료들은 이 얘기를 몰라요.. 하지만 당신은
낮선 사람이니까... 지금 이 자리에서 헤어지면 죽을때까지 다시는 만나지
못할 타인이니까.. 털어 놓는 거에요..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도저히
견딜수 없을것 같아서 낮선 당신에게 얘기하는 거에요..." 라면서요..
이야기를 다 끝내기도전에 눈물이 쏟아져서 화장실로 뛰어갔더랬어요..
화장실 한곳의 문을 잠그고 정말 목놓아 엉엉 울었어요.. 어디에 숨어
있었던 울음인지.. 마치 내 소리가 아닌듯한 통곡이 터져 나왔어요..
화장실밖에서 사람들이 "are you okay??" "open the door please"
"hello" "what happened?" "what's wrong?" 하면서 걱정스러워들
하더군요.. 한참을 그렇게 울다가 나왔더니.. 화장실에 있던 여자들이
모두 저를 둘러싸면서 묻더군요.. "왜 그래요? 무슨일이에요? 뭐
도와줄게 있나요?"
"아니에요.. 아무일도 아니에요.. 사랑했던 사람과 이별했는데 아파서,
죽을만큼 아파서 그래요.. 죽고싶어서 그래요.. " 했더니... "오 이런...
가엾은...." 하면서 어깨를 안아주더군요.. 그래서 그 낮선 여자들에게
안겨서 또 울었어요.. 독일사람.. 호주사람.. 화장실 청소하는 아주머니
까지 모두... 저를 안아주더군요.. 괜찮아.. 괜찮아... 곧 괜찮아 질꺼야...
하면서...
그렇게 한참을 울다가 나왔더니 같은 테이블에 앉아있던 독일남자가
그때까지 밖에서 기다리고 있다가 눈물을 닦아 주면서 다시한번 어깨를
안아주더군요.. "괜찮아요.. 시간이 더 지나면 모든게 괜찮아 질꺼에요...
괜찮아요, 내가 알아요.. 괜찮아질꺼에요..."
지금보다 젊었을때에는 어려운일이 생기면, 술에도 기대고, 친구에게도
기대고.. 여러가지 방법들에 기대어 어려움을 견뎠었는데.. 나이가 들으니
그런것도 잘 안돼더군요... 그런데 이번에 알았어요... 그럴때에는..
낮선이에게 기대어 울어보세요...
프라하에서의 마지막 밤. 내일밤 비행기로 돌아갑니다.. 집으로 돌아
가고 싶군요...
사진 : 독일 뮌헨의 호프 브로이 하우스 입니다. 제일 앞쪽에 흐릿하게
나온 사람이 저와 같은 테이블에 합석했던 사람이예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