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오산의 밤은 무례할만큼 역동적이다.
이곳 저곳 다닐때마다 숙소도 식당도 매번 새로워야 한다. 보고,듣고,맛보고,접할 수 있는 최대한 많은 것을 하는 것-은 여행자로서의 욕심이다. 하지만 나는 여행을 할 때 많이 움직이되 모든곳에 가지 않으려 한다. 가야하는 모든 곳을 기웃거리며 넓디넓은 박물관 한 가운데서 다음 전시관을 향해 아픈 다리를 끌고 있는 기분은 내겐 유쾌하지 않으니까.
땀을 삐질삐질 흘린 날 오후, 숙소로 돌아와 찬 물로 샤워를 하고 시장에서 100밧으로 흥정에 성공한 치마를 허리에 감고 발목을 휘감는 바람을 입으며 거리로 향한다. -타닥타닥- 딱 발걸음이 옮겨지는 만큼의 소음을 만들어내는 50바트짜리 바다색깔의 슬리퍼를 참 잘 샀다고 기뻐하며 코끼리 가방을 걸쳐메고 숙소를 나선다. 카오산의 밤거리는 무례할만큼 역동적이다. 눈짓만 건네도 술잔이 되돌아올 두시간짜리 우정도, 서툰 영어에 능글맞은 표정의 택시기사들의 호객행위도 넘쳐난다. 20바트면 먹을 뜨끈한 국수 한그릇이 지천인데도 노천식당에는 외국인을 상대로 계란이 뭉텅이진 200바트짜리 파스타가 까르보나라의 이름으로 팔리고 있다. 그렇지만 불쾌해 하기엔 여행자의 치마자락은 나풀거리고 그 발걸음은 너무 가비야운걸(웃음). 어쨌든 나는 이방인이 아닌가. 커다란 배낭을 성벽처럼 온 몸에 둘러매고, 잘 보이지도 않는 여행책자를 가로등에 비춰대며 으르렁그르렁 택시기사와 택시비를 두고 싸움을 할 수도 있지만, 적당한 숙소에 짐을 놔두고, 적당히 가벼운 손가방을 들고, 적당히 느긋한 일정으로 버스와 지하철을 타며, 적당히 멋진 하루를 만들수도 있는걸. 적당히 속아주고, 적당히 흥정하며, 적당히 기대하면 적당히 만족할 수도 있는걸.
Nobody can handle everthing.
이곳이 배낭여행자들의 천국이라지만 어쨌든 여행자는 이방인일 수밖에 없지 않은가. 닳고 닳은 상인들의 장삿속처럼 카오산의 문지방도 닳고 닳았을 그 오랜 시간동안, 거쳐간 수 많은 이들이 만들어 놓은 이곳의 '문화'에 여전히 오늘도 수 없이 많은 이방인이 다녀간다.그러니 내가 '다 안다'고 생각하며 입술을 앙다물며 발걸음을 내딛는 순간 그 곳 어딘가에서는 '변화'가 시작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길거리에서 파는 빨대를 꽂아준 코코넛의 국물을 다 마시고도 버리기엔 아깝다고 투덜대며 말캉한 속살을 긁어먹는다. '아라한 장풍대작전'에서라면 숨겨진 도인이라고 칭해주었을법한 손놀림으로 데친 국수를 그릇에 턱턱 내어놓는 상인들의 손놀림도 구경하러 시장도 한바퀴 돌아본다. 달큰한 망고속살에 짭쪼름한 찹쌀밥, 꼬소름한 코코넛밀크를 듬뿍 얹은 망고찹쌀밥을 한 팩 사들고 -타닥타닥-바다색 슬리퍼를 끌고 발길을 옮긴다. 그렇게 이방인 여행자는 여행의 하루를 마치고, 다른 이방인 여행자를 위해 거리 위 한사람 몫 만큼의 자리를 양보한다. 비우고 채우고 비우고 채우고, 달라진 듯 달라지지 않는 그 풍경 속을 지나는 것. 내 여행이 그러했고, 내 여행은 언제나 그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