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첫 여행(청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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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첫 여행(청량리)

티티도그 6 501

삶은 여행의 연속인 것 같다.
집을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이 경우도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처음 여행을 떠난 때는 1963년도 구정 무렵이었다.
어머니의 소중한 돈 1410원을 횡령해
청량리 시대극장에서 40인의 도둑과 알리바바를 봤다.
열려라 콩 하면 웅장한 바위가 갈라지고
금은 보석이 가득 찬 동굴 속에 너무도 예쁜 아줌마가 나오고
아무튼, 무척이나 생소하고 재미 있었다.
오징어나 땅콩 아저씨의 오징어 땅콩도 사먹었다.

영화가 끝나고 후환이 두려워 집에 들어가지 못 하고
동대문으로 서울역으로 걸어서 배회하며 쇼핑도 했다.
허리를 두루 는 권총집 달린 벨트를 사고 권총을 3자루 샀다.
한 자루는 내 것이고 두 자루는 남동생들 것이었다.
권총 세 자루를 벨트 옆구리에 끼고 시내를 배회하니
범죄후의 두렵고 어두운 마음이 조금은 나아지는 듯 했다.
즐거움도 잠시 땅거미가 지고 밤이 되니 갈 곳이 없다.

청량리 역 대합실에서 쪼그리고 앉아 있자니
주변의 시선이 탐탁치 않았다. 역을 벗어나
택시를 타고 집 근처로 갔는데 택시비가 너무 많이 나왔다.
아마도 바가지 요금을 쒸 운 것 같은 느낌이다.
43년이 지난 지금도 그 택시비는 의문이 든다.
각설하고,

집 근처를 기웃거리는데 아버지의 기침소리가 들린다.
절대로 들어가기 싫었다.
되 돌아 나와 이문동 기와집 동네로 가서
쌀가게 옆에 놓여진 가마니를 몰래 들고
집과 집사이의 골목으로 기어들어가 굴뚝 사이에
가마니를 펼치고 난생처음으로 나의 보금자리를 만들었다.
가마니 속으로 들어가 누워서 굴뚝의 온기를 느끼며
처마와 처마 사이로 보이는 하늘의 별들을 바라보았다.
수 많은 별들이 반짝였지만 내 마음속엔 어둠만 있었다.
첨으로 무리한 여행을 해서 인지 별을 바라보다가 스스르 잠이 들었다.
인기척이 있어 눈을 뜨니 눈앞이 하얗다.
가마니도 하얗다.
밤새 눈이 내려 가마니 위 가운데로 하얗게 눈이 쌓여 있었다.

조용히 가마니를 빠져 나와
검불을 털고 식당으로 가서 첨으로 단독외식을 했다.
흰 떡국을 먹었다.
그날이 구정이었다.
새해 첫 식사를 마치고 집 근처 동네를 배회하다가 동생을 만났다.
말도 제대로 못하는 동생은 나를 보더니 반가워했다.
동생에게 총한 자루를 선물했다.
내가 동생에게 한 생애 첫 여행선물이었다.

엄마 아버지한테 이르지 말라고 하는 나의 말에 고개를 끄떡이고 돌아간 동생이
잠시 후 아버지와 함께 만화가게로 나타났다.
그리고 끌려가서 별로 혼나지 않았고 떡국을 또 먹었다.
그 해는 나이를 두 개 먹은 기분이었다.
그때 내 나이가 일곱 살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내겐 감사하고 아름다운 여행이었다.
때때로 좋은 호텔에 좋은 음식에 좋은 그림을 찾아 여행을 떠나지만
그때의 그 여행의 맛은 느끼지 못한다.

2년 후 9살에는 무전여행으로 경북포항으로 한 달간 여행을 했다.
그때 유행하던 허 정강이 주인공이던 바보도 보고 경주 역에서 입었던 옷을 (팬티 빼고)
몽땅 사기 당해서 잃어버리고 했던 생애 두 번째 여행
포항여행은 다음에 시간 있을 때......

6 Comments
티티도그 2007.04.01 01:48  
  오십이 다 되서 낳은 아들
그리고 내 인생의 가장 성공적인 선택
사랑하는 아내
고소공포증 2007.04.01 03:13  
  아기 너무 예쁩니다.
행복한 가정 이루시고, 즐거운 여행 많이 많이 하세요~
봄길 2007.04.01 14:57  
  대단합니다. 글을 읽으며 나는 대체 처음 집나간 63년도에 티티도그님 나이가 얼마였을까 생각을 했는데...정말 대단합니다. 그 시절 얼마나 깍정이들이 많았는지...전란 통에 팔이나 다리를 잃고 패를 지어 다니는 사람들을 그리 불렀던 것같습니다. 해가 지면, 구걸을 시키기위해 깍정이들이 아이들을 잡아간다는 흉흉한 소문때문에...아이들이 집에 없기라도하면 동네방네...개똥아, 순자야, 돌쇠야...애찾는 소리가 진동을 했는데...7살일 때 출가를 하시다니...부모님이 얼마나 마음을 쫄이셨을까...그리고 63년도면 막 화폐개혁한 뒤끝일텐데...1410원인지 환인지...만일 원이라면 엄청 큰 돈일텐데...14100환이죠. 그게...간도 크시네요. 비슷한 시대를 사신분이라... 그 시절 그림처럼 떠오르는 파노라마...흡사 신기루같기만한...그립네요.
글이 너무 좋습니다. '수 많은 별들이 반짝였지만 내 마음속엔 어둠만 있었다.' 이런 표현력...참 부럽네요.
티티도그 2007.04.01 18:44  
  그 깍정이라는 부류에 저의 아버지도 속합니다. ㅎㅎ
제 기억엔 분명 1410원 이었죠. 다음엔 아버지 이야기도  좀 써야 겠네요.
봄길 2007.04.01 21:31  
  아니 제가 말하는 깍정이는 다른 것같은데요. 부친이 상이용사란 말은 아니시죠. 엄청 무서웠어요. 깍정이들. 나중에 박정희가 재건대라고 몽땅 가둬버렸는데...전두환이 삼청교육대처럼...
덧니공주 2007.04.02 15:08  
  어린나이에 음,가출을 시도하신 티티도그님,,,,
그리고,아드님과 부인분~넘 사랑스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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