꼬싸멧에서 만난 아름다운 영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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꼬싸멧에서 만난 아름다운 영혼.

러브앤피스 2 424

벌써 2년 전의 일이다.

도저히 한국에서 더 버틸 수 없다고 생각된 그때, 가방을 쌌다. 무엇을 해야 할지, 어디로 가야할지도 알 수 없었다. 이 땅이 아니면 어디든 좋았다. 비자를 발급받는 일조차 귀찮았기에 태국을 선택했다. 오직 비자가 필요없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혼자 떠나는 첫 여행이었다. 그리고 꼬싸멧. 그곳에서 나는 한 할머니를 만난다. 잊을 수 없는.

꼬싸멧은 비교적 조용한 바다다. 유흥업소도 거의 보이지 않고 한국인들 역시 흔하게 볼 수 없다. 처음 며칠은 바다를 보며 넋을 놓고 있었다. 다음 며칠은 가져온 소설책을 읽으며 시간을 죽였다. 그 모든 것들이 지루해질 즈음 나는 해변을 따라 종일 걸었다. 그렇게 돌아다니기를 며칠, 지금은 이름이 기억이 나지 않는 어느 해변에서 너무도 어울리지 않는 움막 같은 집을 발견했다. 그 입구에는 이렇게 씌어있었다. "eco tourism"

무슨 의미일까? 친생태적 여행업을 하는 여행사일까? 이렇게 낡은 집에서 여행사를?? 집 옆으로 돌아 나가보니 한 할머니가 발가벗은 채 바다에서 수영을 하고 계셨다. 나를 보신 할머니는 아무렇지도 않게 밖으로 나와16살쯤 먹은 긴머리의 소년에게 자신의 머리 손질을 맡기신다.

아무래도 비현실적이다. 비교적 조용한 곳에 속하긴 하지만 여긴 해변이고 관광지다. 그런데 이 집은 대체 뭐고 가족으로 보이는 이 할머니와 손주는 대체 누구일까? 할머니에게 다가가 영어를 할 줄 아느냐고 묻는다. 물론이라고 대답하신다.

"이곳은 여행사인가요?"

"아니. 내 집이야."

집이라구? 바닷가 백사장 한가운데에 일반 가정집이 세워져 있는 거라구?

"집이라구요? 여긴 바닷가잖아요!"

"그래 맞아. 여긴 바닷가지. 그리고 이건 내 집이고. 이 바다는 우리 집 앞바다야.“

머리가 더욱 혼란스러워진다. 다시 묻는다.

"그렇다면 할머니는 여기 원주민이신가요?"

"아니. 난 여기 20살에 정착했어. 방콕에서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친구와 여행을 왔다가 이곳이 마음에 들어 아예 정착해버렸지."

"그럼 저 아이는 손자인가요?"

"그래. 난 여기서 손자, 손녀와 함께 살고 있어."

"그럼 밖에 씌어진 eco tourism은 무슨 의미인가요?"

"말 그대로야. 바다를 제대로 즐겼으면 하는 바람에서야. 기계의 힘을 이용해서 모터보트를 타고 시끄럽게 돌아다니거나 하는 식으로는 있는 그대로의 바다를 즐길 수가 없어. 술을 마시고 춤을 추고... 그건 바다를 즐기러 온 것이 아니야."

순간 깨닫는다. 지난 몇주간 방콕에서 보아온 태국인들만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을. 관광으로 먹고살기에 많은 관광객들이 달가운 태국인들이 있는 한편, 이렇게 자신이 사랑하는 바다에 찾아와 마치 자신들이 이 바다의 주인인 양 행세하는 외국인들을 반기지 않는 이들도 있었구나...

"집을 돌아봐도 될까요?

""그래. 마음대로."

집 정면에 티벳 불교 양식으로 커다랗게 사람의 눈 두개가 그려져있다.

"이건 뭐죠?"

"이건 붓다의 눈이야"

"아니, 여긴 그냥 가정집이라면서요?"

"맞아. 가정집이지. 그리고 동시에 사원이기도 해. 사실, 난 승려야."

"여자 승려라구요? 전 태국에서 여자 승려는 처음 봐요!"

그랬다. 그곳은 그녀의 바다이면서 그녀의 집이고 동시에 사원이었다. 집 앞쪽엔 작은 책상과 칠판이 놓여 있다. 갑자기 일어난 그녀의 삶에 대한 호기심에 꼬치꼬치 물어본다.

"그럼 이 책상의 용도는 뭔가요?"

"여긴 학교야!"

"네?"

이건 또 무슨 말인가.

"내 손자 손녀들이 여기에서 공부를 해."

"그럼 할머니의 아이들은 공식 학교에 다니지 않는 건가요?"

"맞아. 여기서 배워."

"그럼 누가 선생님인데요?"

"이 바다. 저기 나무와 풀들. 그리고 너와 같은 여행자들. 그리고 내가 선생님이지. 그 모든 것들로부터 배워."

그랬다. 그곳은 그녀의 바다이면서, 그녀의 집이고, 사원이며 아이들의 학교였다. 다음날 다시 그녀의 집을 찾았다.

그녀는 내게 파파야 열매로 만든 반찬과 밥을 권했다. 다시 호기심이 발동한다.

"그럼 돈은 어떻게 벌어요? 생활은 어떻게 하구요? 이 밥은, 이 반찬은요?"

"돈은 필요없어. 파파야는 저쪽 숲에서 따온거구. 거기서 따온 식물들로 반찬은 충분해. 밥과 빵은 나를 좋아하는 외국인 친구들이 조금씩 도와주기도 하고, 게스트하우스에서 팔다 남은 빵을 내게 가져다주기도 해."

저녁이 되자 집 앞에서 모닥불을 피웠다. 수백마리의 모기떼들이 내게만 달려들어 성가시게 하자그녀는 향이 강한 나무를 가져와 불속에 던지며 내게 말했다.

"이건 모기가 싫어하는 연기를 피워. 곧 괜찮아질거야.

""왜 모기약을 사용하지 않죠?"

"모기약을 사용하면 모기는 죽어. 살생은 나쁜 짓이야. 가급적 피해야 해. 이 나무를 피우는 것만으로도 모기는 우리를 괴롭히지 않아."

그녀의 말과 달리 여전히 많은 모기들이 나를 쉬지 않고 물어뜯고 있었지만 나는 그냥 고개를 끄덕였다. 한참이 지나자 그녀의 손녀가 나타났다. 역시 십대 중반쯤 되었을까. 정규교육을 한번도 받은 적이 없다 했음에도 나보다 훨씬 유창한 영어를 구사할 줄 안다. 이번엔 손녀에게 묻는다.

"여기 생활이 단조롭진 않아?"

"아니오. 난 여기가 좋아요. 계속 여기서 살 거예요."

괜한 질문이었나. 어쩌면 무례한 질문이었는지도 모른다. 소녀와 몇마디 대화를 나누다가 문득 모닥불 속에 던져진 커다란 나무토막으로부터 수백마리의 개미들이 밖으로 기어나오고 있는 것을 본다.

"어엇! 저거...!"

놀람이었지만, 당황은 아니었다. 그냥 신기했을 뿐이었다. 저 나무속에 개미 집이 있었구나... 하는 정도의.

하지만 소녀는 달랐다. 재빨리 불속으로 손을 넣어 나무를 꺼낸 후 땅에 내리쳐 불을 껐다. 개미들을 살리기 위해. 순간, 무척 부끄러워졌다.

그날밤 그녀의 손자가 치는 기타연주를 들으며 모닥불 아래서 서투른 영어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그리고 왜 사람들이 길을 떠나는지, 왜 여행에서 사람들을 만나는 것을 그토록 갈망하는지를 조금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녀는 지금도 그곳에서 변함없는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내 삶의 방향을 바꾸어놓은 영혼의 스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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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IM님의 연재가 중단된다는 비보를 들었습니다. 몇달에 한번씩 찾던 태사랑을 하루에도 두번씩 드나들게 했던 KIM님의 글을 당분간 볼 수 없게 된다니 안타까울 뿐입니다. 이 모두가 이 게시판에 대한 우리의 참여 부족에서 온 결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KIM님의 글이 여러 태사랑 회원분들의 글 속에 편안히 묻혀진다면 다시 부담없이 글을 쓰실 수 있을 것 같아 오래된 기억을 더듬어 서툰 글을 올립니다.

KIM님의 글을 아끼는 여러 회원님들이 동참해주신다면 보다 빨리 시즌 3를 만날 수 있지 않을까 기대해봅니다.

2 Comments
beommie 2006.11.22 14:50  
  꼬싸멧엔 아직도 그 기녀(?)분이 계시는 걸까요? 2년 전이라 하셨는데.. 산골소녀 영자..가 퍼뜩 떠올라서 [한번 가보고싶다] 라는 욕심을 접었습니다.^^
님의 글중 제일 마음에 와 닿는 것은 

안타까울 [뿐]

이라는 덧붙임 글귀 속의 한 글자 였습니다.
여행2 2006.11.22 18:07  
  정말 좋은 추억 이네요.........^^
그리고 저도 kim 님에 연재가 빨리 시작되길 바랍니다..
매일 kim님에 글을 읽는 게 큰 즐거움이거든요...
여기  태사랑 방문하시는 분들 중에 저와 같으신분들 많으리라 생각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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