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여섯 번째 여행 ( 양평동 뚝방동네 2 )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생애 여섯 번째 여행 ( 양평동 뚝방동네 2 )

티티도그 5 365

삶은 여행의 연속인 것 같다.
집을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이 경우도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내가 어릴 때는 누구나 딱지치기를 하고 구슬치기를 했다.
땅 따먹기도 했다.
주머니 가득 딱지를 따고
바지주머니에 불룩한 구슬무게에
바지가 반쯤 벗겨져 팬티가 보여도 창피하기보다는 뿌듯했다.
하지만 저녁이 되어 승호야, 옥식아, 덕원아
그만 놀고 들어와 밥먹어라" 하며
부르는 엄마의 소리에 다 돌아간다’.
부르는 소리 없는 나는 외로웠다.
딱지도 귀찮고 색깔이 예쁜 구슬도 무겁기만 하다.
많이 따서 금을 그려놓은 땅도 소용없다.

성인되어도 어릴 때의 버릇이 여전하다.
다만 딱지의 그림이 다를 뿐이다.
세종대왕님이 그려진 딱지를 주머니에 듬뿍 넣으면 든든하다.
저기서부터 저기까지가 내 땅이다.
하면서 우쭐댄다
수 많은 삶의 장식품도 나를 멋져 보이게 한다.
그러나 가는 날은 다 소용없다.
모든 것 놓아두고 구멍이 숭숭 난 삼베옷 걸치고. 갈 것이다.
그래도 나는 이것만은 가지고 가고 싶다.
사랑한 기억과 미워한 기억들을……
사랑한 기억들이 미워한 기억들보다 더 많기를 바라면서

삶의 여섯 번째 여행 (양평동 뚝방동네 2 )

뚝 방의 규율은 엄격하다.
지나가다 선배가 스톱하면 바로 그 자리에 서야 한다.
같은 또래도 서열이 있다.
서열의 우위에 서는 방법은 주먹이다.
싸움을 잘 하는 순으로 서열이 정해진다.
그리고 텃새다.
뚝 방에서 오래 살면 프리미엄이 붙는다.
얼마 전에 구멍 난 청바지가 한 때 유행했다.
그 유래가 미국뉴욕의 할램가에서부터라고 한다.
청바지가 구멍이 나도록 이 지역에서
죽지 않고 존재해 왔다는 상징의 표시로……
낡고 구멍 난 청바지를 입고 다니는 것이 텃새의 표식이란다

이사온 며칠 후 당산국민학교로 전학을 했고
학교점심시간에 조덕원, 박옥식, 이승호가 나를 부른다.
방과 후 한강 백사장에서 만나 잔다.
두근거리는 마음으로 한강백사장으로 갔다.
후배 이상원까지 포함 해 4명이 기다리고 있었다.
넌 이제부터 우리 밑에 들어와야 한다고 박옥식이 말한다.
내가 니들 밑으로 왜 들어가냐?
치사하게 다구리 놓지 말고 일대일로 붙자.
짱돌이나 굿찌 쓰지 말고 맨손으로 하자.
룰이 정해졌고
친구들에게 둘러싸인 가운데서 박옥식과 맞붙었다.

다짜고짜 주먹이 날아오고 콧등을 맞았다.
머리가 번쩍이며 코 끗이 찡하다.
나도 마구 주먹을 휘둘렀다.
붙들고 차고 들이박고.....
둘 다 피투성이가 되어 한강백사장을 뒹굴렀다.
노을이 지는 백사장에서 지친 우리는 악수를 했고 다음을 기약했다.
맑은 한강물에 피와 모래를 씻고
후련한 가슴을 씻어내렸다.
.
그리고 며칠 후
우리 집 골목을 향해 지나는 나에게 스톱하며 조덕원이 소리 낸다.
째려보며 그냥 지나쳤다.
갑자기 손을 쓱 내밀며 내 등을 찍는다.
굿찌다.
등이 찢어져 피가 흐른다.
후다닥 집으로 뛰처 들어가 식칼을 들고 나왔다.
도망가는 조덕원을 쫓아 뚝방길을 달린다.
뚝방길에 피어난 이름 모를 꽃들이 바람결에 하늘 거린다.
길고 긴 뚝방길을 두 아이가 칼춤을 추며 앞 뒤 하여 달린다
맑은 안양천이햇살에 빛을 낸다.
검정고무신이 미끈거린다.
등에서 흐른 피가 고무신까지흘렀다.
고무신을 들고 달린다.

뚝방의 끝이 보이고 양화동이 나온다.
지금의 인공폭포 산자락에서 붙잡았다.
지친 조덕원은 헐떡이며 풀밭에 누워 버린다.
나도 그 옆에 같이 쓰러졌다.
질경이 몇 줄기 뜯어서 내 등의 피를 닦아주는 조덕원을 바라보며
씩 웃는다.
멋쩍게 씩 따라 웃는다.
이렇게 해서 뚝방의 신고식을 마치고
인간 삶에 서열 없는 평등은 없다는 것을 배우며
제2의 인생을 다지게 됐다.

훗날 소년원을 몇 번 갔다 온 계급장으로
나는 그 동네 텃세 중에 텃세가 된다.

길어 졌네요.
담에 시간이 나면 뚝방이야기와 소년원 이야기 올려 보겠습니다.


고독한 사냥꾼

5 Comments
시골길 2007.05.18 10:38  
  그래도 나는 이것만은 가지고 가고 싶다.
사랑한 기억과 미워한 기억들을……
사랑한 기억들이 미워한 기억들보다 더 많기를 바라면서..........//  참 가슴에 와 닿는 말씀입니다..지금 언제나 떠나고픈 여행이라는 중독성 관심도 사랑할 기억을 찾아서, 미워 했던 기억을 지워버리려는 본능의 발로가 아닐런지요....매번 여러가지를 생각하게하는 이야기에 매료되어 갑니다..제가..^^
도그님의 사랑으로 자라는 주석이는 외롭더라도 마음먹은대로 월척을 낚고, 편안한 의자에 앉을 수 있겠죠..
고구마 2007.05.18 14:03  
  어린 강태공 이네요.
티티도그 2007.05.19 10:34  
  매료 되신다는 시골님의 답글에 감사...
왕세자비님께서 직접 납시어서 황공하옵니다~~.^^

차후 올릴 글들이 보통사람들에게
조금은 부담스러울지도 몰라서
얼마나 덮고 얼마나 오픈 시켜야 할지
생각중입니다.
적당히 보이면 에로틱이고
많이 보이면 포론이라고 하던데...^^
시골길 2007.05.19 12:01  
  중간 버젼인 포로노그라피 수준으로 해주세요..^^ 태사랑에는 젊은 분들도 많이 계시지만..티티도그님의 이야기를 가감없이 받아들이고..그때를 추억하며 오늘을 만끽하시는 분들도 많으시다는...고생끝에...그거죠.. [[유효]]
바로 2007.06.09 16:56  
  이동철의 꼬방동네 사람들이란 소설...
어린 시절에 그 동네에 살았던 기억이...
오랫만에 옛 기억이 묻어나는 시간입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