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스토리[S4] : 롣
아주 어릴 적, 우리의 주택가에도 이러한 <'딱반'>을 행하던 스님들이 나의 집을 찾곤 했었다. 불교와는 거리가 있어 보이던 母親이 쌀 몇 그릇을 스님의 뒷 포대자루에 시주하던 모습이 의아스러웠다. 모두들 10원 20원 아끼며 살던 그런 시절이였으니까...
그 때는 걸인도 그렇게 집을 방문하며 동냥을 하던 시절이었다. 100원짜리를 주지 않고 10원짜리 몇 개를 준다고, 마당의 벤치에 눌러앉아 몇 시간 시위(?)를 하던 한 걸인의 위협적 殘像이 아직까지 나의 기억엔 자리잡고 있다.
하지만 이젠 희미한 기억이 되어간다. 저 '낙끄리얀'들이 성인이 되었을 때, 이 곳에서도 '딱반'은 그들에게 기억속의 희미한 殘像으로만 존재할 過去가 될런지 모른다. <특수 도시> BKK에서 이러한 고전적 '딱반'이 거의 사라져가고 있듯이...
세븐 앞에 정차한 차량에서... 한 '파랑'이 세븐에서 뜨거운 음료 무엇인가를 사 나와서는 이 걸인에게 건넨다. 그리고 자신의 길을 간다. 세븐에 들어가기 전 이 걸인을 본 것이다. 그리고 화폐가 아닌 음식으로... 나라면 이러한 <생각>이 있었을까. 항상 <돈>과 <물질> 그 자체로 무엇인가에 대한 보답과 액션을 취하기에 바쁜 삶을 살아온 듯 싶다.
웬만해서는 밥을 해 먹지 않는다는 '루짝깐'의 '란 썸쑤어이'에서 맛있는 냄새가 진동한다. 밥값 굳는 소리가 들린다.^^
"타이인들은 '남짜이'를 가져야 돼^^. 나 여기서 함께 밥먹어도 되징?"
"ㅎㅎㅎ, 당연하지. 함께 먹어!"
그들은 이렇게 한 솥 가득히 만든 수프를 떠서 이웃 집들에게 나누어 준다.
식사 전, A는 이렇게 매일 아침 반복되는 禮를 올린다. 타이 지방사회의 상가에선 대부분 이렇게 제단을 마련해 놓고 있다.
식사를 하며 A와 소통이 붙는다. 난 A의 사적 히스토리에 대해서는 그리 알지 못하고 있다.
"A, 어디 출신이야?"
"나 BKK, 함께 일하는 '휀깐'이 이 도시 출신이라, 1년 전 여기로 온 것이야."
"그럼 이 '란 썸쑤어이' 개업 이전엔 어디에 있었어? BKK랑 이 도시 어디가 좋아?"
"KIM, 쭈욱 BKK에서 '휀깐'이랑 미용실을 했어. 아무래도 이 곳이 나로선 좋아. 나도 BKK 출신이지만, BKK는 살기에 각박해. 이 곳 사람들은 훨씬 친절하고 따뜻해."
K에게서 '무가타' '추언'의 Call이 왔지만, 그냥 무시하고 싶다. 항상 일방향(?)적 '리양'을 바라거나, 매너없이 Missed Call을 사용하는 상대라고 느껴지면 즉각 <버린다>. <모두가 그러하다.>라는 말이 아니다. <그렇지 않은 많은 타이인들>을 알게 된 순간, 자신있게 버릴 수 있게 된 것이다.
더이상 宮內에서 나의 하찮은 <존재감>을 과장하거나 과시하고프지 않다. 단 하루를 부디껴도 진정으로 대면하고프다. 많은 이들이 <'락깐'>을 읆조린다. 하지만 하지만 말이다. 당신이 이방인이 아니라면, 당신이 지갑을 두툼하게 한 이방인이 아니라면, 당신이 두툼한 지갑을 열기에 바쁜 이방인이 아니라면... 그 '쾀쌈판'이 지속될 수 있다고 자신하는가? [Rain]과 같은 출중한 외모를 지녔거나, 타이인級과 같은 유창한 회화를 구사하며 '락깐'과 '카오짜이깐'을 유지할 수 있는 비범한 능력의 소유자는 Pass!
당신의 '유두어이깐' '휀깐'에게 12,000B/月의 주거/생활비를 3개월 주고서도 탈없이 유지될 수 있는 '락깐'이라면 믿겠다. 100B/日의 데이트 비용만으로도 3번을 버거움없이 만날 수 있는 '콥깐'이라면 믿겠다. 그렇지 않다면 난 결코 동의할 수 없다.^^
성격도 좋지않고 아주 소심하고 쫀쫀한 나이기에, 그런 의문감과 독단적 기준을 가질 수 밖에 없다.
자정이 넘은 시간, 3차로 향하는 도중 브레이크 잡는 큰 굉음이 들린다. 그리고 쿵... 가까이 다가서자 타이어 타는 냄새가 진동한다. 주변의 개들이 모두 모여든다. 아주 큰 사고임에도 불구하고 각자의 차에서 내린 이들 중 그 누구도 소리를 높이는 이가 없다. 각자 전화만 해댄다. 십중팔구, 양자 모두 음주 운전임은 자명(?)하다.
타이 지방에서 모터의 야간 운전은 목숨을 담보로 해야 한다. 이 곳에서 음주 운전 단속은 큰 의미가 없다. 그리고 사고나 트러블이 발생하였을 시, 소리를 높이거나 어설프게 자력구제를 하려고 해서는 곤란하다. 어떠한 경우의 수를 맞게 될런지 모른다.
사고의 처리와 보상에 있어서도 우리와는 다른 기준을 보인다. 우리는 과실이 있는 가해자가 적정선까지는 피해 보상에 대한 책임을 절대적(?)으로 안아야 한다. 하지만 타이에선 이러한 우리식 룰은 절대적이지 않다. 많은 이들이 말한다.
"상대가 정말 돈이 없는 '콘쫀'의 경우라면 굳이 받지 않겠다."
그 피해 보상액이 단 몇 백B이라고 해도 적용된다. 가해자가 몇 백B의 보상액이 없어, 피해자가 자체 부담하는 경우도 분명 적지 않다.
타이 지방 사회에서 <모터>를 이해하지 못한다면, 타이(인)의 이해 역시 힘들 수 밖에 없다. 타이 지방 사회에서의 <모터>는 단순한 교통수단 이상의 의미이다. 자가(?) <모터>를 확보하는 순간부터 이 사회에서는 <成人>이 되는 것이다. '퍼'/'매'의 '빠이쏭/빠이랍' 등으로부터 독립하여 자신의 '르엉 쑤언뚜어'적(?) 영역을 확보해 나갈 수 있게 된다.
그들은 이러한 모터에서 먹고 자고 생활한다. <사랑>도 한다. '콘키'가 되어 '콘썬'의 앉는 <가다> 하나만으로도 상대의 포지션과 감정을 체크해낼 수 있다. TV의 대담프로에서도 진행자가 공공연히 말한다.
"지방에서는 '와이룬'들이 자가 모터를 가지고 있지 않으면 戀愛를 할 수 없어요!"
하지만 이러한 모터를 타이인들 모두 소유하고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그 가격이 만만하지 않기 때문에. 그렇기 때문에 '빠이쏭/빠이랍'(센딩/픽업)의 많은 '쾀쌈판'들이 필연적으로 생겨날 수 밖에 없다. 그렇게 '빠이쏭/빠이랍'을 통해 타이인들의 '쾀쌈판'은 더욱 굳건해지기도 하며, 미묘해지기도 한다. '콘키'와 '콘썬'이 되어...
타이의 지방에선 10-20분만 악셀레이터를 당겨버리면 가로등 하나 없는 허허벌판의 자연과 직면할 개연성이 다분하다. 아주 위험한 상황일 수도 있으며, 동반 운행자와 '쾀쌈판'의 진행이 아주 급속해질 수 있다.
많은 이들에게 모터는 그러한 삶의 영역이기에, 한 모터에서 앉고 서는 '콘키'와 '콘썬'의 <가다>만으로도 그들의 미묘한 '쾀쌈판'과 친밀도를 유추해 내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타이 지방민들은 대부분 느낄 수 있다. '산찯띠양'적 감각으로...
비가 내린다. 날이 날인지라 오늘은 모든 정통(?) '빠이 티여우'의 업소들이 休務이다. 난 오늘 이 긴밤을 '리얍러이'한 MODE로 보낼 수 밖에 없다. 저녁을 먹기 위해 숙소에서 거리로 나선다. 나의 손엔 우산 하나가 쥐어져 있다. 오래 전, 이렇게 우산을 쓰면서 모터를 운행한다는 사실은 나에게 神技的 테크닉이였다. 그리고 이젠 나의 모습이다.
그렇게 달리는 모터에서 사진도 찍고, '마이 루짝깐'들과도 '쩡따'와 '임'을 서로 주고 받는다. 그렇게 이 사회는 <모터>를 기반으로 다중적인 '쾀쌈판'을 꾸려가기도 한다. 모두들 그렇게 주변에 열려있다. 하지만 이방인들은 그러한 모터에 있어서 타이인의 '산찯띠양'的 액션과 영역을 거의 느끼지 못한다.
많은 이방인에게 있어서 모터는 단지 이동 수단 그 이상도 이하도 아니기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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