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월 3일 동남아 관련 기사~ (관련기사도 찾아보셔요~)
오, 패션의 대동아 공영권이여 | |||
한겨레21 | 기사입력 2007-07-03 08:09 | |||
[한겨레] 가난한 쇼퍼에게도 쇼핑의 자유를 허한 곳…어쩔 수 없는 내 마음의 이중국적 ▣ 신윤동욱 기자 syuk@hani.co.kr 방콕이 그리울 때마다 타이 음식을 먹지는 않았지만, 방콕에서 사온 옷들을 입었다. 그것은 나에게 그리움을 견디는 방법이다. 노희경 드라마 <꽃보다 아름다워>에서 엄마 역할의 고두심이 했던 ‘옷 놀이’가 있었다. 다른 여자에게 가버린 남편이 사무치게 그리울 때면 바보 같은 엄마는 혼자 거울 앞에서 바보처럼 독백했다. “여보~ 내가 그렇게 여자 같질 않았어. 나도 여잔데….” 그녀는 남편이 8년 전에 사준 옷을 걸치고 있었다. 누군가 나에게 선물한 양말 한쪽도 없지만, 혼자 거울 앞에 앉아서 사무치진 않아도, 어쩌다 지하철 계단에 걸린 거울을 보면서 생각한다. 오늘은 ‘홍방싱’ 연합이군, 오늘은 방콕으로 단일화야. 그러면 그곳의 기운이 몸을 위무하듯, 회사로 향하는 발걸음의 무게가 조금은 가벼워졌다. 내게도 그렇게 옷은 기억이 되었다. 의상의 국적별 분류는 계절별·종류별 분류보다 심금을 울리는 나만의 분류법이 되었다. 내 옷장의 혈통은 한국과 타이의 혼혈에 저 멀리 홍콩과 싱가포르에서 수혈된 중국인 혈통이 흐른다. 오늘은 ‘홍방싱’ 연합이군 여기서 주석이 필요하다. ‘홍방싱’ 연합이란 셔츠는 홍콩, 바지는 싱가포르, 점퍼는 방콕, 이렇게 세 개의 도시에서 산 옷들이 기특하게도 조화를 이룬 날을 칭한다. 일찍이 애정의 대동아 공영권을 꿈꾸었으나, 서너 해가 지나서 남은 현실은 애석한 패션의 대동아 공영권뿐이다. 저 멀리 남지나해 너머로 임 찾아갔으나 임 대신 옷만 남았다. 그래도 어딘가, 옷이라도 남아서 다행이야, 미안하지만 쇼핑을 후회하진 않는다. 퀴즈를 하나 내야겠다. 타이항공의 영문 명칭은 ‘타이 에어라인’(Thai Airline)일까, ‘타이 에어웨이스’(Thai Airways)일까. 이것을 아는 자만이 진정한 ‘태사랑’(태국을 사랑하는 사람들, 유명한 배낭여행 사이트다) 멤버다. 사랑은 비를 타고 오지는 않지만, 비행기를 타고 날아간다. 사랑을 이기지 못해서 한 해에 세 번씩 ‘뱅기’에 올랐다. 어느새 서너 해, 홍콩(혹은 타이베이) 찍고 방콕 가는 비행기에 올랐다. 방콕 가는 길에 잠시 홍콩에 내려서 임도 보고 뽕도 땄다. 서울보다 20∼30%는 저렴한 캘빈클라인(CK) 청바지, 반값도 안되는 아르마니익스체인지(A/X) 등이 뽕처럼 널려 있었다. 홍콩의 지오다노 매장에서 가격이 믿기지 않아서 환율을 자꾸만 의심했다. 환율에 ‘0’ 하나를 잘못 붙였나 의심했다. 그렇게 샀다가 심지어 한 번도 입지 않은 옷도 물론 있다. 싱가포르의 오차드로드도 저무는 해를 원망케 했다. 서울은 나에게 노동의 의무를 부과했으나 방콕은 나에게 쇼핑의 자유를 허했다. 도시근로자 평균연봉 이하의 수입을 올리는 가련한 ‘쇼퍼’(Shopper)에게도 쇼핑의 자유를 허했다. 서울이라면 언감생심 범접하기 어려웠던 물건에도 과감하게 범접하게 만들었다. 방콕을 서너 번 드나들자 명승지 관광도 마쳤고, 클럽도 새롭지 않았다. 무언가 새로운 자극이 필요한 순간에 귀하신 선생님을 만났다. 어리버리 방콕을 헤매던 아저씨를 쇼핑의 환락으로 인도한 분은 다음 페이지 기사를 쓰신 엄기호 선생이다. 일찍이 마닐라를 거점으로 동남아를 주유하며 싸디싼 쇼핑 포인트를 섭렵하신 엄 선생이 방황하는 아저씨를 시암센터 2~3층으로 이끌었다. 그곳에는 아름다운 가게가 즐비했다. 그토록 아름다운 옷들을 저토록 아름다운 가격에 팔다니, 어메이징 타일랜드! 그리하여 호텔방에는 쇼핑백이 빼곡했고, 떨어진 가격표가 마구마구 뒹굴었다. 쇼퍼라면 누구라도 그러하듯이, 한국에서 샀으면 10만원인데 여기선 5만원에 샀으니 5만원 벌었다는 계산법으로 입가에 미소를 머금었다. 여기선 사는 것이 버는 것이다, 주문을 외우는 지경에 이르렀다. 그리하여 항공료 50만원을 들여서 왔으니 50만원어치 쇼핑을 하면 100만원을 썼다는 계산법이 아니라, 이곳 가격을 대략 한국의 절반이라고 치고 50만원어치 쇼핑을 하면 항공료 50만원을 번 거야, 그렇게만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그렇게 생각하지 않은 것도 아니었다. 사실 나는 타이에 가는 것이 아니다. 타이에 간다기보다는 방콕에 가고, 방콕에 간다기보다는 방콕의 실롬 거리에 간다. 어느새 방콕행 비행기를 탄 게 10번을 넘었지만, 언제나 실롬의 호텔에서 자고, 실롬의 클럽에서 놀고, 실롬의 식당에서 먹는다. 이렇게 세 꼭짓점은 택시로 10분 거리를 넘지 않는다. 그곳에 쉬러 간 것이다. 이렇게 좀체로 움직일 생각을 않지만, 일주일을 머물면 이틀은 쇼핑에 나선다. 월요일에 도착하면 수요일쯤에 한번 시암으로 쇼핑을 나간다. 반드시 사야 할 물건을 사온다. 그리고 망설여지는 물건은 일단은 참았다 사나흘 자신에게 물어본다. 정말로 필요하니? 그래도 잊혀지지 않으면 떠나기 전날에 물건을 접수한다. 이렇게 서너 해 쇼핑을 했더니 난생처음 단골가게도 생겼다. 타이인 옷가게 언니가 “안녕하세요?”라고 인사를 건넬 때의 반가움과 당황스러움이란. 또 방콕에서 산 거구나? 친구들이 ‘방콕 패션’을 알아본다. 실롬 거리에서 샀겠지. 방콕을 모르지 않는 친구는 백화점에서 산 옷인지, 거리의 ‘구루마’에서 산 옷인지도 알아본다. 한국에서 사기 힘든 스타일의 옷들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동방예의지국에선 남자 셔츠의 라인을 일자로 뽑지만, 그곳에서는 살짝 허리의 ‘S’ 라인을 드러내는 디자인을 한다. 방콕에서도 감히 명품은 엄두를 못 내고, 타이 현지 브랜드를 사는데 가격이 저렴할 뿐 아니라 스타일도 ‘새끈하다’. 갈수록 구매 장소도 다양해지는데, 이제는 쇼핑센터뿐 아니라 거리에서도 더 싸고 더 예쁜 옷을 고르는 노하우가 생겼다. 어쩌다 서울에서 옷가게 앞에 발이 멈췄다가도 가격표를 보면, 여기가 타이면 저 옷은 얼만데 하고 참는다. 한 해에 세 번은 방콕에 가니까, 서울에서는 참아내고 방콕에서도 다음에 사면 된다는 계획도 생겼다. 방콕에서는 반드시 사야 하는 물건도 있다. 예컨대 렌즈를 낄 때 쓰는 인공 눈물은 서울에선 3천원이지만 방콕에선 단돈 1500원, 그래서 다음에 올 때까지 뿌릴 눈물은 반드시 사온다. 가격도, 디자인도 두 배는 섹시한 속옷과 양말도 ‘머스트 해브’ 아이템이다. 한국에선 사기 힘든 스타일 그리하여 카드 청구액이 남다르다. 달마다 50만원씩 나오는 패턴이 아니라, 외유에 나섰던 석 달은 200만원이 나오고, 나머지 달에는 20만원이 찍힌다. 이렇게 해외에서 사용한 금액이 청구액의 절반은 넘는다. 한국 경제에 도움이 되지 않아 죄송하지만, 만장하신 여러분의 비웃음을 샀던 슬로건은 여전하다. “소비로 제3세계 인민을 도운다!” 서울에서 ×처럼 벌어서 방콕에서 ××처럼 써라, 생활의 교훈이다. 갑자기 그리움이 습격하는 순간이 있다. 대만 감독 차이밍량의 <지금 거기 몇 시?>는 타이베이 역 부근을 벗어나지 않는다. 이제는 정말로 타이베이 역전이 부산 역전보다 살갑다. 지났던 거리, 건넜던 지하도, 살갑고 그립다. 홍콩 영화 <상성>의 거리를 보면서, 저곳은 란콰이퐁, 정확히 맞힌다. 타이 영화 <시티즌 독>을 보면서 ‘실롬이다!’ 반가워 눈물이 핑 돈다. 내가 놀았던 곳이고, 누군가를 만났던 거리다. 그곳에서 비로소 처음으로 타인과 ‘해피 투게더’ 했다. 주말 밤 친구가 묻는다. “바지는 어디서 샀니?” “방콕.” “시계는?” “방콕.” 어쩌면 인생의 절반이 그곳에 있다고 느낀다. 농담 반 섞어서 말하면, 어쩌면 나는 한국에 돈을 벌러 온 이주노동자인지도 모른다. 물론 입을 삐죽이는 당신이 보인다. 그래도 마음의 이중 국적은 어쩌지 못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