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두번째 여행(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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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두번째 여행(포항)

티티도그 7 334

삶은 여행의 연속인 것 같다.
집을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이 경우도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이 18세에 학도병으로 지원한(끌려간) <분명치는 않다>
아버지는 철원전투지에 쏫아진 30만발의 포탄 중 하나를 맞아
팔 하나를 잃어 버렸다.
가난한 정부에서는 부상자들에게 별다른 지원이 없었고
가끔 양조장에서 지원받은 막걸리가
상처 난 상이군인들의 잘린 팔다리와 마음에 위로제 역할을 했다.
막걸리에 길들여진 아버지로 인해 두 번째 나의 여행이 시작됐다.


당시 나라에서 버려지다시피 한 용사들은
마을에서도 버려지다시피 했다.
팔다리와 맞바꾼 화랑무공훈장을 가슴에 달고
술에 취해 시위하는 모습은
내게 여행을 떠나게 하는 기폭제가 되곤 했다.
물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일성이와 승만이도
간접적인 영향을 주었다고 할 수 있다

1965년 청량국민학교 2학년 겨울방학이 다가올 무렵이었다.
초딩을 졸업한 분도 계시겠지만 나는 국딩을 졸업했다.
학교종이 울리고 하굣길에 훈장을 가슴에 단 아버지를 보았다.
훈장을 단 날은 엄마와 동생들하고 남의 집 굴뚝을 안고 날을 세거나
운이 좋으면 새벽녂에 조용히 들어가 한숨 붙일 수가 있다.

아버지가 훈장을 두 개나 단 모습을 보고
나는 다시 학교로 갔다.
청량국교 교정 등나무 벤치에 앉아 골똘히 여행스케줄을 생각했다.
이미 2년 전 부 터 답사한 서울역으로 가자. 그리고
다섯 살 때 엄마를 따라 갔던 포항외할머니 집으로 가자.
큰 배도 있고 갈매기 날던 항구동 19번지 ? 29번가...
거기로 가자 대충 스케줄을 머릿속에 메모하고
전차를 타고 버스를 타고 서울역에 갔다.

열차시간을 확인하고 코스를 확인했다.
대구까지 가서 포항 가는 열차를 갈아타는 코스였다.
동행 할 손님을 물색했다.
손님 몇 분이 탐색됐다.
그 중에 가장 무난한 무명치마 아주머니를 선택했다.
대체적으로 화려한 옷이나 비단치마는 배제해야 한다.
개찰구가 열리고 차장이 차표에 구멍을 뚫는다.
무명치마 아주머니 뒤를 바싹 따라 붙으며
손으로 치마를 살짝 스치며 차표에 표시할 때 앞서 나가서
무명치마 아주머니를 기다린다는 듯 쳐다보고 있는다.
역무원은 뒷손님 체크하느라 힐끗 나를 한번 바라볼 뿐이다.

좌석과 좌석이 맞붙은 사이 밑으로 제법 쓸만한 공간이 있다.
그곳이 내 좌석이다.
의자 밑으로 들어가 조용히 눕는다..
덜커덩 거리며 달리는 쇠 바퀴가
이음새를 때리는 소리에 마음이 포근해 진다.
지금쯤 처마 밑에서 떨고 있을 엄마와 동생들이 생각나며
눈물이 난다.

한숨 자고 있을 때 무언가가 얼굴을 건드린다.
의자밑으로 들어온 손은 망사에 담긴 계란 세 알이 들려 있었다.
그 분 얼굴은 모르지만 딱딱한 손은 40여년이 지난 지금도 기억이 난다.
지금 그 분을 만난다면 유럽 열차여행티켓을 끊고 싶다.
삶은 달걀세알이 나를 더욱 목메게 했다.
저녂도 굶고 처마 밑에 옹기 종기 모여서 집으로 왔다 갔다 하며
아버지의 동태를 살피고 있을 엄마, 나를 궁금해 할 엄마
지금 그 엄마는 팔당댐의 호숫가에 경관 좋은 집에서 살고 계신다.
각설하고,

여차 저차 열차를 갈아타고 포항역에 내린 나는
걸어 걸어 기억에 가물거리는 두부공장을 찾아 물어 물어
도착한다. 석류나무가 있는 마당 넓은 할머니 집
여기서 나는 한 달여를 지내며 다시 경주로 가고 사기도 당한다.
경주 여행은 다음에 시간이 있을 때......

7 Comments
티티도그 2007.04.01 18:16  
  사진1: 주정뱅이 이시며 현제는 능력없는 은퇴목사이신
내겐 가장 소중하신 아버지 그 옆에 사랑하는 아내 그 옆에 막내 남동생,제수씨 조카들...
사진2: 부상 후 용양원시절 아버지
사진3: 심의에 걸려서 잘렸음...
봄길 2007.04.01 21:33  
  어, 정말이시네요. 부친께서 상이용사...어찌 가족사가 제 가족사와 친근한 느낌을 주는게...
봄길 2007.04.01 21:42  
  티티도그님에게 왠지 남같지않은 느낌을 느끼는데요. 아마 저를 아는 다른 회원님들도 티티도그님께 그런 느낌을 갖질거같네요.
체게발 2007.04.02 02:35  
  상상만해서는 절대 쓸수없는 소중한 글인것 같습니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글이라 그런지 마음에 와닿네요. 참으로 아련하고도 찬란해지는 좋은 이야기에 감사드립니다. 소설가 황석영님의 유년시절을 그린'모랫말아이들'을 읽는 것같은 착각이 들 정도네요,  앞으로도 쭈욱~연재 부탁드립니다.
봄길 2007.04.02 09:58  
  '팔당댐의 호숫가에 경관 좋은 집에서'
더 좋은 곳에 계시다는 말처럼 들리는데요.
저는 혼자 여행을 초등 6년 때 처음 했는데요. 티티도그님은 여행과 삶의 내공이 저보다 훨씬 높은 것같네요. 
티티도그 2007.04.02 12:53  
  봄길님 별말씀을요..
그냥 지난 추억 한번 올려 봤습니다.
이렇게 하다보면 머리도 정리되고 읽는 분도 가끔 새로운 정리가 되기도 하고 ...
체게발님 가끔 글 올리겠습니다. 언제인지 장담은 못 하지만요. ㄱㅅ
덧니공주 2007.04.02 13:48  
  계란세알의 감동이...물밀듯밀려오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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