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애 세번째 여행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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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세번째 여행 (경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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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애 세 번째 여행 (경주)

삶은 여행의 연속인 것 같다.
집을 떠나는 것이 여행이라고 한다면
이 경우도 여행이 아닐까 생각한다.

5살 때 어머니와 같이 포항 외가댁에 간 기억이 있다.
내가 포항 외가댁을 찾아갈 수 있는 방법은 두부공장을 찾는 일이었다.
외가댁 옆에 두부공장이 있었다. 그 두부공장에서 두부 통에 빠진 덕에 두부 한 통을
온 집안 친지까지 모여 잔치를 하며 칭찬을 받은 기억이 있어
두부공장을 물어 물어 찾아 갈수 있었다.
(이때 나이가 아홉살 이었다)

대문가에서 할머니! 부르니까
이게 누고! 하며 달려 나오시며 내 두 손을 꼭 잡으시던 외할머니
그날부로 거지에서 왕자가 되었다.
자동차 정비소(이모부경영)이모가 오시어 나를 데려가 목욕도 시키고
백화점에 데려가 밍크코트도 사 입히고…… 왕자가 된 기분 이었다.
작년에 그 이모를 만나 지갑에 있는 현금을 몽땅 용돈으로 드렸다.
자식이 없는 이모가 나를 달라고 했다는데
당시 이모가 나를 데리고 갔으면 또 다른 내가 되었을까?
각설하고,

지나친 호강 속에 20여일 지나니까 무료해 졌다.
북치고 장구 치며 자동차에 낫을 들고 있는 허 정강님의 포스터를 붙이고 선전하는 모습을 보고
할아버지(장부용님: 어머니 말씀에 의하면 포항에 이름있는 유지였다고 하신다)가 운영하시는
철물점에서 미군기관총 총알박스 전통을 열고 100원을 절도 했다.
영화 “바보”를 보고 포항 역에서 경주티켓을 끊고 경주로 갔다.
불국사 석굴암 그림을 보고, 가고 싶었지만 놋 북이 없었다.
지금처럼 놋 북이 있으면 방법을 검색해 갈 수 있었겠지만 ㅎㅎ
그 한에 지금은 제법 고급형인 후지쯔 8210 MK를 개비해서 소유하고 있다.
역 부근을 관광하고 역 구내의자에 앉아 고민 하고 있는 내게
다정한 아저씨 한 분이 말을 건넨다.
그 분을 따라가 여인숙에 들었다.

아침에 일어나 보니 아저씨도 안계시고 벽에 걸려 있던 밍크코트도 바지도 없다.
당시에는 옷도 돈이 되었나 보다.
태사랑 같은 포사랑 이라도 있었으면 그런 일 안 당했을 텐데
암튼, (여행 중 지나친 친절은 주의요망)
내복 바람에 울고 있으니까
여인숙 주인이 쪼글 쪼글한 회색 여름학생복 반바지 하나를 준다.
긴 내복 위에 반바지 입고 울면서(추워서 운 것 보다 쪽 팔려서 울었다)
역으로 내려와 이상한 꼬락서니로 있으니 역에서 무료로 포항가는 기차를 태워 주었다.

포항 역에 내리니 경찰관과 이모 이모부 삼촌이 이미 와 계셨다.
끌려가 새 옷 사 입고 보지 못했던 음식많이 먹고
삼촌의 감시 속에 보호관찰자가 되었다.
서울에서는 난리가 났었다.
어머니 아버지께서
가마니란 가마니는 다 뒤지고 시장 통으로 파출소로
나중에는 시체라도 찾아야겠다고…..

내가 포항에서 편지를 했는데 못 받았다고 했다.
이 멜 이라도 있었으면 좋았을 텐데 당시엔 전화도 드물었다.
삼촌과 함께 겨울 방학이 끝날 무렵에 서울로 올라 왔다.
죽었다 살아온 자식을 끌어 안고 우는 엄마의 모습…..
난 평생 엄마에게 미안 하다..
엄마 미안 해....

다음엔 시간이 있으면 홍능산에서 종로경찰서장과의 전투 후 패배하고 동구릉으로 유배되어
유배생활과 양평동가족여행을 올려 보겠습니다.

2 Comments
봄길 2007.04.04 11:23  
  가마니란 가마니는 다 뒤지고 ...
뭔 먹다남은 고구매 찾는 거도 아니고...ㅋㅋㅋ
덧니공주 2007.04.04 13:33  
  두부통에 빠진덕에~ㅋㅋㅋ
그시절의 기억들이 지금은 식구들과 웃으면서 이야기 할수 있는 추억이겠습니다~손자,손녀,에겐 무용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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