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 그 후에. 무엇이 남으시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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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 그 후에. 무엇이 남으시나요..?

케이토 22 1271






여행,

그리고 그 후.

무엇이 남으세요...?



저는,



미처 다 소진하지 못한 동전들,

왜 했는지 기억이 가물해진 날려쓴 메모.

왜 샀는지 알 수 없는 허접한 기념품.

가고 싶어서였는지 -결국 가지는 못한- 동그라미와 밑줄이

잔뜩 그어진 여행책의 어떤 페이지,

전세계 도시별로 다른 디자인이 나오는 특정한 브랜드의 머그잔,

돌아와서 보면 왠지 오기로 산듯한 옷들,

어딘가의 안내지도, 그것과 세트의 입장권,

교통수단의 티켓,

편의점에서 아이스크림 사먹은 영수증.

유통기한이 임박해져도 먹기 아까워 죽겠는 과자나 사탕.

무작정 들어갔던 펍의 로고가 박힌 코스터나 성냥.

패스포트에 찍힌 입국, 출국 도장.

어딘가를 걸으며 들었던 음악,

누군가와의 서툰 언어로의 의미없는 대화,

마치 호흡하듯 찍어낸 다량의 사진.

그 사진 속에 녹아있는 나의 기억과 추억과,




...그리고. 어쩔 수 없이,


사람.


사람이 가장 크게 남네요.



여행지에서는 꽤 혼자였음에도 늘 사람이 남는게 신기한 일이죠.
to where 보다는 with whom에 더 큰 의미를 두게 된 것이 
언제부터였는지는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지만-

혼자 떠나 누군가를 만났기 때문에 그 여행은 어땠어,
혹은 누군가와 떠났기 때문에 그 여행은 어땠어,
라고 말하는 자신을 발견하게 된것은 비교적 최근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혼자 떠나 고독이라 말하는게 여행이지만,
지구의 일부인 이상 늘 사람을 만나게 되는것도 여행의 매력 아닐까요.

저는 꽤 장소에 집착하는 성격이었거든요.
어렸을 때는 주로 아빠와 여행을 다녀서 
그런 감각을 느낄 수 없었을 수도 있겠지만요.


"나 어디어디 갔다왔어."

That's it.



그것 보다는,

"내가 거기를 갔던 이유는, 누구누구를 만나야 했기 때문이야."

그 누구는 특별한 누군가, 혹은 불특정 다수가 되기도 합니다.

예를 들어,

십몇년째 유학중인 친구, 라거나.
여행 중에 만난 네이티브 스피커 친구. 라거나.
길에서 사먹은 국수를 말던 노점아저씨라거나,
(이건 결국 국수를 먹고 싶은 거지만 말이예요)
거대한 채칼로 파파야를 썰던 아줌마라거나,
(이건 결국 쏨땀을 먹고 싶은 거겠죠)
"기분이니까 서비스-" 라는 말로 택시요금을 깍아주던 택시기사라거나.
다시 만나면 꼭 뒷통수를 후려 쳐주고 싶은 사기꾼이라거나 (...)

왠지 거기에 있을 것 같은, 그들을 만나기 위해.
나를 기억 못하는 불특정 다수를 나는 왠지 잊지 못하기에,

또 관계를 맺고 유지하고,
사랑을 하기도 하고 여러가지 이유로 잊지 못하기도 하고,
몇년만에 만나도 혹은 인스턴트 메세지로 이야기를 나눠도,

"너 그때 전혀 겸손하지 못했는데, 지금도 그러니?"
"그럼 넌 그때 술버릇이 고약했는데, 지금도 그런가봐?"


라고 서로 태고적 버릇을 들춰내며 긍정 혹은 부정하면서 같이 웃는,
나에게 '만나러' 간다는 이유를 주는 그런 사람들이 남기에,
"여행" 이라는 단어에 더 설레나봐요...


뭐 사실은,
굳이 이유가 있을 필요도 없이 훌쩍, 떠났다가 돌아와도,
어떤 물질적인 흔적을 남겨도 잊지 못하는건, 잃어버리지 않는 것은,

저에게는 역시, 사람이었어요.


문득 기차역의 역무원 웃는 모습이 마음에 들었기 때문에,
그 곳이 생각나는- 그런 느낌.



.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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때로는 그래서 잊지 못하기 때문에...힘들어지기도 하지만 말이예요...


burn your memory with me...
할 수만 있다면요. 가끔은 사람이라 더 그렇더라구요.

22 Comments
바보처럼 2010.03.27 08:57  
^^ 전 병이 남았습니다.
태국병. ㅎㅎ

그리고 정리하지 못하고 쌓여가는 사진과 영수증들..
그리고 곱게 정리해 놨던 가계부들...

기억이 흐려지기 전에 다 써야 하는데...

제 꼴을 보아하니 여행기 완성하기 전에 다시 떠나겠다 싶습니다^^
태순이 2010.03.28 00:42  
길위의 인연들을 만나기 위해 또 짐을 싸는것이지요 ㅎㅎㅎ
타쿠웅 2010.03.29 01:17  
카드전표가 남습니다. ㅠㅠ
케이토 2010.04.10 12:03  
그리고 청구서....;ㅁ;
포맨 2010.03.29 13:16  
줄어든 몸무게요...
우째 2010.03.30 17:59  
전 늘어난 몸무게요..ㅠㅠ
Pole™ 2010.04.04 19:06  
더위에 돌아다니다 보면 아무래도 살이 약간 빠지던데요..
케이토 2010.04.04 20:50  
전 암것도 모르고 다닐때는 살이 빠지더니..
뭔가 알고나니 살이 찌더라구요-;;;
뭐가 맛있는지 알게된거죠 ㅋㅋ
포맨 2010.04.09 22:59  
다들 랍스타 두어마리랑...꽃등심10인분씩은 드시잖아요...
식탐이 없는 사람은 여행에서 쬐금 불행한거예요...

아...쓰고보니...난 여행을 왜 다니는거야...-_-
케이토 2010.04.11 02:12  
후후 그곳의 공기를 "마시러" 가시잖아요 ;-)
그리운별하나 2010.03.29 16:33  
제가 어디가면 물건을 잃어버려 놓고 오는 경우가 잦은데..이번엔...단 한가지 물건도 놓고 온게 없어요....그런데...그런데.....태국에 마음을 놓고 왔더군요.
케이토 2010.04.04 20:51  
그 마음 찾아 오려고 갔다가 또 다른 마음 놓고 오지요..^^
CrowFlyHigh 2010.03.30 21:44  
기억이 남습니다.
동전들, 왜 안 버렸는지 모를 영수증들, 그리고 짜뚜작에서 구입한 티셔츠도 있지만,
늘 제게 붙어 떨어지지 않는건,
여행에 대한 기억과, 거기서 파생되는 그리움이죠.
막상 가면 별로 하는거 없이 빈둥거리는게 전부인데 말이죠.
블루페어리 2010.04.02 05:03  
아.. 날 마구마구 자극하는 글.. 또 또 또 .. 떠나고 싶어지네요.. ㅠㅠ
sinjiya 2010.04.02 14:26  
줄어든 몸무게와 푸잉전번~~~~~


태린 2010.04.07 23:13  
무엇이 남으시냐구요???

태국이라는 애인이 남더라구요......

언제 애인보러가나.......하는 생각
김우영 2010.04.09 13:33  
새로운 희망 -> 또 가야하는 의무감...

다시 가겠다는 굳은 의지... 등등...
우성사랑 2010.04.10 14:27  
남는것 아무것도 없어요... 또 다시 가고 싶지...
카라완 2010.04.11 01:20  
우유빛 글솜씨를 보니 여자분이시군요.
잘 읽고 갑니다.
블루파라다이스 2010.04.22 02:55  
저는 늘 아쉬움이 남아요...ㅠ.ㅠ

그리고...

사무치는 그리움도 남고요.... ㅠ.ㅠ

아... 겨우 진정됐는데....

또 다시 제마음에 불을 지피셨군요... ㅠ.ㅠ
날자보더™ 2010.04.28 01:10  
전 영수증이랑 표딱지...
쳐다보고 있으면 참 흐믓해요.
거기서 뭐했지, 뭐샀지...막 이러면서 헤벌죽~하죠.
참새하루 2010.04.29 18:57  
추억과 텅빈 잔고...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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