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디가 가장 좋았어? 라는 질문
치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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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2.05.26 13:07
반말 양해바라며 좋은 토요일 오후 보내세요~~
이번 라오스, 태국, 베트남, 캄보디아 여행을 다녀오고 가장 많이 들은 질문도 역시 예상대로 "어디가 가장 좋았어?" 였다. 그런데, 지난번 올린 "어디 사람들이 가장 친절해?"가 그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친절에 관한 개인적 경험에 대한 얘기라면 이번 이야기는 "어디가 가장 좋았어?" 란 질문을 어떻게 해석하고 대응하는 가에 대한 개인적 수다 정도 랄까?^^
여행 다녀오면 질리게 듣는 이 질문은 대개의 경우 "안녕하세요" 나 "밥 먹었니?" 같은 단순한 인삿말 내지는 접대용 멘트 같은 것에 지나지 않는다^^;; 여기에 대해 열과 성의를 다해 이야기 보따리를 풀어 놓다가는 눈치 없는 사람으로 찍힐 확률이 99.9%.. 이런 땐 절제의 미덕을 발휘하자.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하기 쉬운 오해 한가지가 다른 사람들도 자신들처럼 여행에 대한 정열을 가지고 있다고 짐작하는 건데, 사실 생각 보다 일반인들은 여행에- 짧은 바캉스 말고, 중장기 배낭 여행 같은 비주류? 여행- 대해 그런 관심과 열정을 가지고 있지 않다.. 중장기 여행에 몇 백만 원을 썼다는 것 보다는 룸살롱 출입이나, 사치재 구입 또는 아이들 학원 비용으로 몇 백 만원을 쓰는 것이 사회적 통념상 보다 정상적? 소비 행위 라고 받아들여지는 것이 일반적 분위기니까 말이다..
그런데 이번 여행을 돌이켜 보면 3달 간의 먹고, 자고, 놀고, 관광한 모든 경비 플러스, 여행 기간 동안 느꼈던 감동, 흥분, 기쁨, 설렘, 그리고 근심과 걱정, 피로까지 ^^.. 그 모든 것의 가격이 웬만한 명품 백 가격 보다 도 저렴했다. 오스카 와일드 왈 "요즘 사람들은 모든 것의 가격은 알지만, 어떤 것의 가치도 모른다"고 했는데, 정말 그런 것 같다. 물론 그가 말한 '요즘'이 지금의 '요즘'보다 훨씬 옛날이지만..둘 사이의 가격은 비슷할 지 몰라도 가치로 본다면야 여행의 추억을 어떻게 빽 하나랑 비할 수 있을까.. 아님 이것도 취향의 문제일 수도 있지만.
더구나, 여행지에서의 추억은 힘들었던 일까지도 시간이 지나면서 아름답게 채색해 어느 순간에 보면 이것까지도 그리운 추억으로 만들어 버리는 마술을 부리곤 한다. 비엔티엔의 찜통 더위 속 콩나물 시루 같은 버스에서 시달린 힘든 시간들은 어느 샌가 그 좁은 자리를 더 좁혀서 낯선 여행자에게 자리를 만들어 권하던 라오스 아가씨에 대한 따뜻한 기억으로 남고, 오토바이 배기통에 데인 상처는 술자리 여행담을 좀더 생생한 것으로 만드는 데 한 몫 한다..^^
오래 전에 방영했던 외화 시리즈 중에 "트와일라잇 죤" 이란 프로가 있었다. 기억하시는 분 계시려나? 그 중 한 에피소드인데, 미래 어느 사회의 한 가난한 남자가 주인공으로, 자신이 가진 추억을 팔아서 그것으로 생계를 연명한다. 그리고, 마침내 그가 가진 마지막 추억, 첫사랑과의 아름다웠던 추억을 팔고- 의학적 수술을 거쳐서- 돌아서는 데 이제 남자는 그런 추억이 있었다는 것 조차 기억하지 못한다. 즐겨봤던 프로인데, 확실히 기억나는 에피소드는 이것 정도? 기억할 만한 추억마저 없다면
이 힘든 세상을 살아가기가 더 퍽퍽하지 않을까??
문제는 인삿말이나 접대용이 아닌 경우인데.. 이런 경우, 질문자의 의도와 행간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예를 들어, "어디가 제일 좋았어"란 질문이 진짜로 묻고자 하는 것이 " 아, 나 이번에 한 2주 정도 시간이 있고, 배낭 여행은 처음 인데 어디를 가야 할지 전혀 모르겠네, 추천 좀 해주라!" 일 수도 있는 것이다.. 아래는 얼마 전 언니와의 대화 내용이다.
언니: "너 가본 곳 중 어디가 제일 좋았어?"
나 : "여행에 관심도 없으면서 그건 왜 또 물어?"
언니: "아냐, 관심 있어. 이번에 휴가 내서 여행 가려는데 어디가 좋을 지 몰라 그래"
나: 그래? 얼마나 가는데? 학교 땜에 오래는 못 갈 테구, 한 1주일? 그럼 태국이 좋겠네. 쇼핑도 할 거지?
언니: 그렇지 뭐.. 근데 형부가 지저분한 거 너무 싫어해서.. 태국은 어때? 지저분해?
나: 어!
언니: 그래도 막 인도처럼 그렇진 않지???
나: 지저분해(물론 인도처럼이야 아니지만, 나중에 무슨 소릴 들을 지 모르므로 ^^;;) 지저분한 거 싫음 태국이나 치앙마이 들어가서 며칠 있다 태국 남부 해안의 리조트 가면 되겠네.. 이동하는 차 안에서 좀 지저분한 풍경이 보일 순 있겠지만.. 패키지로 가던지.
언니: 패키지? 리조트? 패키지는 별론데, 그리고 리조트에만 있기는.. 궁시렁, 궁시렁...
나: 지저분한 거 싫다며! 일주일 정도밖에 시간 못 낸다면?! 리조트 얼마나 좋아! 잠자리 깨끗하지, 맛있는 것 많지.. 패키지도 얼마나 편해? 다 해주는데, 뭘 더 원해?! (개인적으론 패키지 별로, 력셔리한 리조트도 가본 적 없음.. ^^;;)
라오스 돈뎃. 개도국에서 지저분함은 잡지의 부록같이 따라 오는 것!
흔히 보는 여행지의 사진에서는 물론 쓰레기는 보이지 않지만 그렇다고 없는 건 아니다^^
솔직히 별로 성실한 상담은 아녔지만^^;;, 기본적으로, 더러운거 못 견디고, 시간 짧고, 편한거 원함 태국, 그것도 유명 관광지가 젤 무난하지 않나?? 암튼, 행간을 잘 읽고, 구체적인 질문을 통해 상대방이 원하는 것과 취향, 여행 기간, 체력조건과 여행 예산 등의 정보를 얻고 이를 통해 상대가 원하는 것과 실제 가능한 것과의 차이를 간파!하면, 현실적으로 도움이 되는 정보를 줄 수 있다. 앞서 절제의 미덕을 보였다면 여기서 필요한 건 베품의 미덕이랄까?
사실, 이곳 같은 정보 나눔 카페가 도움이 필요한 이에겐 얼마나 피가 되고 살이 되는지는 여행 중 급질문 올려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터!! 여행을 다녀와서도 추억에 젖어서 여행책자나 카페 글을 보다보면, '아, 여행 가기 전 이걸 알았더라면 저기서 그렇게 개고생은 안 했을 텐데!' 하는 경우가 종종 있다. 나만 그런가?? 아닐 껄~~ 사실, 안다고 꼭 도움이 되는 건 아니지만.. 오토바이 배기통 조심하란 글을 분명히 봤는데도, 데이고 말았으니 말이다. 데이고 나니까 그 얘기다 생각나더라는 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