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거의 폴셰프가 그 사람보다 뛰어난 딱 한가지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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헝거의 폴셰프가 그 사람보다 뛰어난 딱 한가지 이유

sarnia 7 7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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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싸르니아입니다. 


을지로 4 가에 있는 프리미어 베스트웨스턴 호텔국도에서 14 박 했습니다. 보통 국도호텔이라고 부릅니다. 연세가 있으신 분들은 ‘을지로 4 가’와 ‘국도’라는 이름에서 문득 떠 오르는 게 있을 겁니다. 


네. 맞습니다. 옛날 국도극장 자리에 지은 호텔입니다. 마포에 있는 가든호텔과 같은 계열의 자매호텔로 거의 똑같은 객실디자인이지만 객실면적은 가든호텔보다 약간 더 넓습니다. 넓은 통창으로 종묘의 숲이 파노라마처럼 펼쳐지는 좋은 위치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종묘와 북악산을 보려면 북향객실로 방을 잡아야 합니다. 저는 호텔을 예약할 때 북향객실을 선호합니다. 햇빛이나 햇볕의 방해를 받지 않는 북향객실이 뷰의 빛깔이 뛰어날 뿐 아니라 휠씬 아늑한 느낌을 줍니다. 남쪽이 훨씬 풍광이 좋다든가, 호텔에 투숙하는 동안 화초를 키울 일이 없다면 남향객실을 선택할 이유는 없는 것 같습니다.     


오늘 하고자 하는 이야기는 호텔 이야기가 아니고, 이 호텔에서 내려다보이는 서울 도심의 할렘가풍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슬럼이라고 하지 않고 할렘이라고 표현한 이유가 있지만 그 이유를 미리 밝히지는 않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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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북도심에는 개발되지 않는 지역이 있지만, 여기는 익선동 한옥마을처럼 보존할 가치가 있는 옛모습은 아닙니다. 10 여 년 전 방콕 라차다피섹에 있는 호텔에서 내려다보였던 풍경과 유사한 이곳은 다른 곳도 아닌 서울 도심의 4 가 구역입니다. 라차다피섹에서는 새벽 세 시에 난데없이 꼬끼요~ 하고 닭우는 소리가 들렸는데 여기서는 닭우는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사진만 놓고보면 별반 다르지 않습니다. 


문제는 왼쪽에 있는 주상복합건물군으로부터 시작된 것 같습니다. 종묘 바로 앞에서부터 퇴계로까지 남북축선으로 이어져 있는 저 낡아빠진 주상복합건물군이 서울 도심을 동서로 차단하며 주변의 발전을 정체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 주상복합건물군은 1970 년대에 지어진 것인데, 저 건물군을 설계한 건축가는 모르긴 몰라도 창의성과 상상력이 매우 부족한 사람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1970 년대에 1970년대식으로 주상복합단지를 지었으니 그 상가가 10 년도 못가서 슬럼화하고 주변의 변화마저 정체시킨듯이 보입니다. 


저 주상복합건물을 설계한 건축가는 같은 시대 민주화운동의 상징이었던 경동교회(장충동)와 특화된 고문실을 포함한 치안본부 대공분실건물(남영동)을 함께 설계했습니다. 


건축가는 건축만 잘 하면 되지 다른 가치를 염두에 둘 필요가 없다는 탈지성 프로페셔널리즘의 전형입니다. 


우연히 이 호텔에서 저 광경을 바라보면서 넷플릭스 태국영화 헝거를 봤습니다. 


여기에 나오는 폴 셰프도 비슷한 유형의 사람입니다. 고객이 사냥해 온 요리재료가 불법사냥물이든 뭐든 요리사는 요리만 잘하면 된다는 사고방식의 소유자입니다. 그럴듯한 자리합리화 이론도 마련해 놓았습니다. 코뿔새의 생명이 닭이나 돼지의 생명보다 더 소중해야 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지요. 


적어도 이 한 가지 면에서는 헝거의 폴 셰프와 한국의 저 건축가가 유사해 보이는데, 한 가지 다른 점이 있습니다. 그 다른 점을 폴 셰프는 다음과 같은 대사로 표현합니다. 


“학교에서 배운 놈들은 창의력과 상상력이 부족해” 


저는 개인적으로 폴 셰프의 이 말에는 동의하지 않습니다. 어디에서 배웠느냐가 중요한 게 아니라 어떤 자질을 가진 사람이 어떻게 배웠느냐가 더 중요하겠지요. 


어쨌든 


적어도 폴 셰프가 영화에서 보여주는 요리사로서의 창의력과 상상력은 70 년대에 70 년대식 사고방식에 매몰되어 건물을 지은것으로 추정되는 어느 건축가의 그것보다는 나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추신: 이 글은 특정상가나 특정상가를 설계한 건축가를 비판하기 위한 글은 전혀 아니고, 다만 서울도심의 좋은 호텔에서 내다보이는 뜻밖의 풍경에 대한 지극히 주관적이고 개인적인 감상평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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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건 그렇고, 


지난 14 일을 보냈던 국도호텔은 올 가을에 다시 예약할 의향이 있을 정도로 괜찮은 호텔이었습니다. 조식은 평범한 편이었지만요. 특히 매일 신경써서 제 방을 청소해 주신 룸메이드여사님께는 다시 한 번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감사하단 말 처음만 힘들지 


이 나이돼도 처음엔 힘들지


한 번 시작 하고 나면 


그 다음부턴 어렵지 않아 ~~ 


먼저 시작 해 봐요~ 맘을 전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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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Comments
Vagabond 2023.04.22 13:54  
팟 씨유가 세계 최강의 음식이다
... 라는게 영화의 주제입니다 ㅋ


(Korean style 징징이 국수)
sarnia 2023.04.22 20:15  
[@Vagabond] 넵, 소박하긴하지만 그 영화의 주제는 그거죠.
할머니의 사랑이 담기고 언제나 돌아가고 싶은 본연의 맛 ㅎ

..... 근데,

저렇게 평범한 음식을 나보고 먹으라고요?? ㅎㅎ
Vagabond 2023.04.22 20:39  
[@sarnia] ㅎㅎㅎ 😆
사랑이 듬뿍 담긴 팟 씨유를 무시하나요?
심지어 소스는 태사랑서 경품 받은거예용
아내와 와인을 각1병씩 마신 훌륭한 요리였어요 ㅎ
sarnia 2023.04.22 21:11  
[@Vagabond] 그 오이조차도 어느 순간에는 스뻬셜해지고 싶은 욕망에 불타올랐잖아요.
나는 주인공 오이의 감동적인 마지막 연설보다도 어느 순간 신파극의 악역처럼 홀연히 사라진 폴 셰프가 남긴 어록들이 더 마음에 와 닿던데,
부자들의 음식을 향한 욕망이 생리적인 허기가 아니라 권력을 향한 허기였다는 사실을 어린 시절 훔치다 결린 캐비어의 이상하고도 형편없는 맛에서 깨달았다는 거..
그가 하고자 했던 말은 가난한자의 생리적인 배고픔만 진짜고 부자의 권력을 과시하고 싶은 배고픔은 허영이다가 아니라, 이 둘은 종류가 다른 배고픔이고 나는 후자의 욕망을 충족시켜주는 길을 걷겠다고 다짐했다는 말인데, ,, 이 영화를 돋보이게 하는 메시지같아요.

근데 가장 권력을 상징하는 음식은 캐비어가 아니라 스테이크라는 음식이죠.
Vagabond 2023.04.22 21:39  
[@sarnia] 맞습니다
스테이크처럼 야만적인 음식이 없죠
직화로 구워낸 고깃덩이를 창과 칼을 들고 먹는...

솔직히 집중이 살짝 어려웠던 이 영화의 평점은 지나치게 좋은편인데
시나리오가 잘못된건지 번역이 잘못된건지
부자연스러운 전개와 다소 진부한 연출,
오바스런 연기들에 비해 좀 의외이긴한데
예전 태국의 음악 수준과 현재의 수준을 생각해보면
문화라는건 이렇게 발전하고 나아지는거구나..하는 생각이 듭니다

건글코
저는 식사를 하든 지방여행을 함께하든 언질도 있었고
설레이는 마음을 가지고 기다렸는데..
직녀님과 여행중이시라고요?? ㅎㅎㅎㅎ
Bon voyage 입니다
sarnia 2023.04.22 21:57  
[@Vagabond] 비즈니스여행이었어요.
하도 정신없이 바빠서 계획했던 일들을 스킵한 것들이 많은데, 강남을 구석구석 다녀보겠다는 계획과는 달리 한 번 밖에 (그것도 약속장소가 교대앞이라) 못 갔고,
지난 1 월 발생한 분변테러사건 수사상황점검을 위해 서대문경찰서를 방문할 계획이었으나 이것도 못했죠.
가을에는 좀 오래 있으려고 해요. 거소증을 받아야해서,
한국에서 거주할 일은 없지만 거주할 일이 있든없든 이게 있어야 모든 걸 쉽게 처리할 수 있다는 걸 깨달았죠. 

직녀님.. 와우 그건 어떻게 아셨는지 ~
sarnia 2023.04.23 04:00  
흠.. 오늘 태국어 더빙으로 다시 봤는데 영어더빙으로 봤을 때와 분위기가 전혀 다르네요.
폴셰프가 풍기는 카리스마는 영어더빙일 때가 훨씬 무게가 있는 듯..
언어의 억양 차이에도 영향이 있겠지만, 그건 아마도 자막유무에 관계없이 전혀 못 알아듣는 언어에서는 감흥이 떨어질 수 밖에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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