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레21에서 퍼온글
앙코르와트는 ‘밥’이다
관광산업은 캄보디아의 생명줄…유네스코회의에서의 유물반환 주장에 냉담한 메아리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고대유적과 문화는 모조리 파괴되고 말았다. 그 찬란했던 조각들도, 웅장했던 사원들도 모두 깨지고 팔려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유물의 도난과 불법거래는 현재 캄보디아사회의 가장 큰 재앙 가운데 하나다.
언제부터 캄보디아의 유물과 유적들이 도굴당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학자들 사이에는 1863년 프랑스의 식민통치자들로부터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가 없다. 그동안 도굴현장을 찾아다녔던 문화예술부 차관 미첼 트라넷은 거리낌없이 말해왔다. “유물의 수난은 역사를 있는 자리에서 보지 못하고 어떻게든 자기 방에 옮겨놓고 자랑삼아야 직성이 풀리는 서양인들의 감상태도와 자신들의 역사를 돌보지 않는 부패한 캄보디아 정치가들이 공모한 결과다.” ‘자리’ 같은 데 연연하지 않는다는 미첼의 정부 비판은 계속된다. “도굴을 돈에 눈이 먼 시민들 탓만이라 여겨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역사관을 갖고 심각하게 이 사안에 매달려야 한다.”
중계상 노릇하는 뻔뻔한 타이
최근에는 훈센 총리도 ‘유물카드’를 빼들고 국내외에 핏대를 올렸다. “유물 도난은 부국들의 조직적인 횡포다. 부국들이 국제적인 불법도굴과 판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강탈해간 유물들을 반환해야 한다.” 올 3월 60여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프놈펜 유네스코회의에서 훈센 총리는 강조했지만, 돈 많고 힘 센 국제사회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고 국내적으로도 별 신통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민들 가운데 누구도 정부가 진정으로 도굴당한 유물들에 대한 반환과 복구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믿는 이들이 없는 탓이었다.
지난해 6월 추안 릭파이 타이 총리가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도 훈센 총리는 도난 유물건을 상정해서 반환협정을 끌어냈지만, 결국 아무것도 되돌아온 게 없어 시민들 사이에는 허탈감이 팽배해 있은 탓이기도 했다. 여기서 캄보디아의 유적파괴와 유물도난의 특징이 하나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이 악습에는 인접국 타이가 중계지 또는 중계상 노릇을 해왔다는 점이다.
방콕의 ‘리버시티’로 알려진 골동품 가게들에서 거래되는 수십만점의 유물들이 캄보디아산 불법도굴품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타이 정부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타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해치울 수 있는 일’이라고 국제사회는 믿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두번에 걸쳐 캄보디아당국이 타이로 향하던 불법도굴품을 압수한 결과, 압사라와 가루다상 같은 귀중한 예술품들이 20t 넘게 쏟아져나와 경악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타이당국이 반환한 유물은 지난 1996년과 97년 국경부근의 반테이 츠말사원에서 무장조직이 강탈해갔던 유물 가운데 122점이 전부다. “타이당국이 얼마든지 캄보디아의 유물도굴과 유통을 막을 수 있는데 실현된 적이 없다. 돈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도 타이도 모두 돈이 문제다.” 미첼은 상호협력과 공존이라는 인접국의 대의명분을 매우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도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도난품들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나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이래서 돈줄을 쥔 일본에 캄보디아의 현실이 달려 있듯이, 이 유물복원문제도 일본의 손에 맡겨졌다. 언제, 어디에 유적을 건설했고 어떤 유물들이 도난당했는지, 말하자면 도난품 리스트를 만들고 있는데, 과연 일본에 맡겨놓을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뜻있는 이들의 불만이 크다. 2차대전을 전후해 아시아의 유물들을 훔쳐간 일본에 대한 불신감 탓이다. 일반 시민들은 “돈 없으니 할말도 없다”며 그저 낭패감만 털어놓을 뿐이다.
융단폭격 미국 책임론도 대두
한편 역사학자 이브 찬 같은 이들은 캄보디아 유적·유물의 파괴가 프랑스의 식민통치 기간보다는 오히려 1970년대부터 조직적인 대량파괴를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70년대 초 론놀 정권을 지원했던 미국의 대캄보디아 융단폭격으로 수많은 유적들이 파괴당했다.” 이브 찬은 특히 미국 정부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는 종교를 부정했던 폴포트 정권도 일부 불교유적들에 손상을 입혔고, 1979년 이후에는 훈센 총리를 지원해온 베트남을 비롯해 수많은 외국인들이 조직적으로 도굴을 감행했던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취재 결과, 최근까지도 앙코르와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알게 모르게 현지로부터 예술품 조각들을 구입해 가는 사실이 드러났다. 러시안시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 프놈펜 중심부의 투올툼퐁시장에만도 115개의 골동품 판매상들이 버젓이 유물들을 팔고 있으며, 왕궁 근처에서도 약 30개의 가게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20년 미만인 것들만 팔고 있다.” 투올툼퐁시장의 골동품가게 주인 속 팔라의 이 말을 믿는 이들은 없다.
문화예술부의 법령은 “70년 미만의 조각품들은 팔아도 된다”고 명시해 놓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은 없다. 70년 된 것인지 100년 된 것인지를 구분해낼 혜안을 갖춘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뜻이다. 문화예술부 장관 루레이스렝이 사재를 털어 만든 홍보필름 <돌의 희생>이 시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현실이다.
30년 내전을 치르고 난 캄보디아에 남은 것은 폐허문화와 1200만 인구의 36q 극빈에 허덕이는 깡통경제뿐이다. 경제복구와 개발구호가 난무하지만 현실적으로 캄보디아에서 가능한 것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국가예산을 모조리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니.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앙코르와트 하나를 내세운 관광산업이 될는지?
최근 캄보디아를 방문한 싱가포르의 고촉통 총리도 눈치를 챘는지 한마디 거들고 떠났다. “캄보디아가 중공업 개발로 경쟁하겠다는 건 불가능하다. 관광산업에 초점을 맞춰라.” 캄보디아의 일반 시민들은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전국에 산재한 1080개 유적지들을 찾아와 연간 1억2천만달러를 뿌리고 가는 50만명의 외국 관광객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 시민들은 지금과 같이 유물들이 계속 도굴당하고 팔려나간다면 캄보디아에 미래가 없다는 점을 염려하고도 있다. 말하자면, 캄보디아는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유적의 훼손과 도굴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도굴, 생존을 위해서라도 막아야
한국처럼 정신과 역사의 복원을 위해서 벌이는 유물반환운동 같은 고상한 구호들이 여기 캄보디아 땅에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저 앙코르와트가 캄보디아만의 유적이 아니고 인류의 유산이라는 점을 국제사회가 깨달아 준다면 고마운 일이고, 그게 캄보디아의 유적과 시민을 동시에 살리는 길임을 알아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자본가들이 캄보디아로부터 유물 획득의 욕망을 멈출 것인가. 강대국들이 강탈해 간 캄보디아의 유물을 반환할 것인가. 캄보디아 정부는 진정으로 문화재 복구에 나설 것인가. 또, 먹고 살겠다는 캄보디아 시민들이 도굴의 유혹으로부터 손을 끊을 것인가. 2001년5월, 이 캄보디아 땅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다.
‘아시아유물반환연대’ 같은 것이라도 탄생해서 누가 대신 큰 소리쳐 준다면 모를 일일까!'
관광산업은 캄보디아의 생명줄…유네스코회의에서의 유물반환 주장에 냉담한 메아리만
세계적으로 유명한 캄보디아의 고대유적과 문화는 모조리 파괴되고 말았다. 그 찬란했던 조각들도, 웅장했던 사원들도 모두 깨지고 팔려나갔다. 그리고 지금도 계속되는 유물의 도난과 불법거래는 현재 캄보디아사회의 가장 큰 재앙 가운데 하나다.
언제부터 캄보디아의 유물과 유적들이 도굴당하기 시작했는지에 대한 정확한 기록은 없지만, 학자들 사이에는 1863년 프랑스의 식민통치자들로부터라는 데 이견을 다는 이가 없다. 그동안 도굴현장을 찾아다녔던 문화예술부 차관 미첼 트라넷은 거리낌없이 말해왔다. “유물의 수난은 역사를 있는 자리에서 보지 못하고 어떻게든 자기 방에 옮겨놓고 자랑삼아야 직성이 풀리는 서양인들의 감상태도와 자신들의 역사를 돌보지 않는 부패한 캄보디아 정치가들이 공모한 결과다.” ‘자리’ 같은 데 연연하지 않는다는 미첼의 정부 비판은 계속된다. “도굴을 돈에 눈이 먼 시민들 탓만이라 여겨서는 절대로 해결할 수 없다. 정부가 역사관을 갖고 심각하게 이 사안에 매달려야 한다.”
중계상 노릇하는 뻔뻔한 타이
최근에는 훈센 총리도 ‘유물카드’를 빼들고 국내외에 핏대를 올렸다. “유물 도난은 부국들의 조직적인 횡포다. 부국들이 국제적인 불법도굴과 판매를 법으로 금지하고 강탈해간 유물들을 반환해야 한다.” 올 3월 60여개국 대표들이 참석한 프놈펜 유네스코회의에서 훈센 총리는 강조했지만, 돈 많고 힘 센 국제사회로부터 냉담한 반응을 얻었고 국내적으로도 별 신통한 소리를 듣지 못했다. 시민들 가운데 누구도 정부가 진정으로 도굴당한 유물들에 대한 반환과 복구를 위해 노력해왔다고 믿는 이들이 없는 탓이었다.
지난해 6월 추안 릭파이 타이 총리가 캄보디아를 방문했을 때도 훈센 총리는 도난 유물건을 상정해서 반환협정을 끌어냈지만, 결국 아무것도 되돌아온 게 없어 시민들 사이에는 허탈감이 팽배해 있은 탓이기도 했다. 여기서 캄보디아의 유적파괴와 유물도난의 특징이 하나 드러난다. 전통적으로 이 악습에는 인접국 타이가 중계지 또는 중계상 노릇을 해왔다는 점이다.
방콕의 ‘리버시티’로 알려진 골동품 가게들에서 거래되는 수십만점의 유물들이 캄보디아산 불법도굴품이라는 사실을 알 만한 이들은 모두 알고 있는데 타이 정부는 무엇이 그리 바쁜지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타이 정부가 마음만 먹으면 ‘해치울 수 있는 일’이라고 국제사회는 믿고 있는 것이다. 실제로 두번에 걸쳐 캄보디아당국이 타이로 향하던 불법도굴품을 압수한 결과, 압사라와 가루다상 같은 귀중한 예술품들이 20t 넘게 쏟아져나와 경악했던 적도 있다.
그러나 그동안 타이당국이 반환한 유물은 지난 1996년과 97년 국경부근의 반테이 츠말사원에서 무장조직이 강탈해갔던 유물 가운데 122점이 전부다. “타이당국이 얼마든지 캄보디아의 유물도굴과 유통을 막을 수 있는데 실현된 적이 없다. 돈이 따라다니기 때문이다. 캄보디아도 타이도 모두 돈이 문제다.” 미첼은 상호협력과 공존이라는 인접국의 대의명분을 매우 회의적으로 보고 있다. 여기서도 가장 본질적인 문제는 도난품들에 대한 역사적인 자료나 기록이 없다는 점이다. 이래서 돈줄을 쥔 일본에 캄보디아의 현실이 달려 있듯이, 이 유물복원문제도 일본의 손에 맡겨졌다. 언제, 어디에 유적을 건설했고 어떤 유물들이 도난당했는지, 말하자면 도난품 리스트를 만들고 있는데, 과연 일본에 맡겨놓을 사안인지에 대해서는 뜻있는 이들의 불만이 크다. 2차대전을 전후해 아시아의 유물들을 훔쳐간 일본에 대한 불신감 탓이다. 일반 시민들은 “돈 없으니 할말도 없다”며 그저 낭패감만 털어놓을 뿐이다.
융단폭격 미국 책임론도 대두
한편 역사학자 이브 찬 같은 이들은 캄보디아 유적·유물의 파괴가 프랑스의 식민통치 기간보다는 오히려 1970년대부터 조직적인 대량파괴를 당한 것으로 보고 있다. “1970년대 초 론놀 정권을 지원했던 미국의 대캄보디아 융단폭격으로 수많은 유적들이 파괴당했다.” 이브 찬은 특히 미국 정부의 책임론을 강조했다. 그는 종교를 부정했던 폴포트 정권도 일부 불교유적들에 손상을 입혔고, 1979년 이후에는 훈센 총리를 지원해온 베트남을 비롯해 수많은 외국인들이 조직적으로 도굴을 감행했던 사실을 폭로하고 있다.
지난해 말 취재 결과, 최근까지도 앙코르와트를 찾는 관광객들이 알게 모르게 현지로부터 예술품 조각들을 구입해 가는 사실이 드러났다. 러시안시장으로 잘 알려져 있는 프놈펜 중심부의 투올툼퐁시장에만도 115개의 골동품 판매상들이 버젓이 유물들을 팔고 있으며, 왕궁 근처에서도 약 30개의 가게들이 관광객들을 기다리고 있는 실정이다. “20년 미만인 것들만 팔고 있다.” 투올툼퐁시장의 골동품가게 주인 속 팔라의 이 말을 믿는 이들은 없다.
문화예술부의 법령은 “70년 미만의 조각품들은 팔아도 된다”고 명시해 놓았지만, 이 역시 실효성은 없다. 70년 된 것인지 100년 된 것인지를 구분해낼 혜안을 갖춘 이가 몇이나 되겠는가? ‘눈가리고 아웅’이라는 뜻이다. 문화예술부 장관 루레이스렝이 사재를 털어 만든 홍보필름 <돌의 희생>이 시민들의 좋은 반응을 얻고 있는 것과는 무관하게 돌아가는 현실이다.
30년 내전을 치르고 난 캄보디아에 남은 것은 폐허문화와 1200만 인구의 36q 극빈에 허덕이는 깡통경제뿐이다. 경제복구와 개발구호가 난무하지만 현실적으로 캄보디아에서 가능한 것은 별로 눈에 띄지 않는다. 국가예산을 모조리 원조에 의존하고 있는 실정이니. 그래도 굳이 말하라면 앙코르와트 하나를 내세운 관광산업이 될는지?
최근 캄보디아를 방문한 싱가포르의 고촉통 총리도 눈치를 챘는지 한마디 거들고 떠났다. “캄보디아가 중공업 개발로 경쟁하겠다는 건 불가능하다. 관광산업에 초점을 맞춰라.” 캄보디아의 일반 시민들은 앙코르와트를 비롯해 전국에 산재한 1080개 유적지들을 찾아와 연간 1억2천만달러를 뿌리고 가는 50만명의 외국 관광객을 자랑스럽게 여기고 있다. 그래서 그 시민들은 지금과 같이 유물들이 계속 도굴당하고 팔려나간다면 캄보디아에 미래가 없다는 점을 염려하고도 있다. 말하자면, 캄보디아는 먹고살기 위해서라도 유적의 훼손과 도굴을 막아야 한다는 뜻이다.
도굴, 생존을 위해서라도 막아야
한국처럼 정신과 역사의 복원을 위해서 벌이는 유물반환운동 같은 고상한 구호들이 여기 캄보디아 땅에서는 별로 설득력이 없다는 뜻이기도 하다. 그저 앙코르와트가 캄보디아만의 유적이 아니고 인류의 유산이라는 점을 국제사회가 깨달아 준다면 고마운 일이고, 그게 캄보디아의 유적과 시민을 동시에 살리는 길임을 알아주기만을 바랄 뿐이다.
자본가들이 캄보디아로부터 유물 획득의 욕망을 멈출 것인가. 강대국들이 강탈해 간 캄보디아의 유물을 반환할 것인가. 캄보디아 정부는 진정으로 문화재 복구에 나설 것인가. 또, 먹고 살겠다는 캄보디아 시민들이 도굴의 유혹으로부터 손을 끊을 것인가. 2001년5월, 이 캄보디아 땅에는 아무런 대꾸도 없다.
‘아시아유물반환연대’ 같은 것이라도 탄생해서 누가 대신 큰 소리쳐 준다면 모를 일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