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전 액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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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전 액땜...

zola^^ 10 194
아침엔 정말 눈을 뜨기가 싫었어요.
방 한 구석에 놓여 있는 나의 묵직한 40리터 배낭은 옷가지와 생필품 이외에 설레임과 기대감으로 더 한층 부풀어 있었는데 그 짐들을 다시 풀어야 한다고 생각하니 도저히 눈을 뜨고 싶지 않았어요.
그래도 떠나기 전날 계약이 만료되는 아르바이트를 빠질 수가 없어 지칠대로 지친 모습으로 일어났답니다...
태국에서의 보다 나은 여행을 꿈꾸며 한 푼이라도 더 모으려고 출발 전날까지 아르바이트를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전부 꿈인것 같네요.
하루 2만 천원을 벌기 위해 열 시간 반을 죽을 듯이 일하며 매일매일 거울 속에 비친 꾀죄죄한 내 모습을 힘없이 바라보면서도 남국의 에메랄드 빛 해변에서 웃고 있는 모습을 그려보며 다시 힘을 내곤 했었는데.....

어제만 해도 배낭을 쳐다보는 것만으로도 충만한 기대감을 느꼈었는데 이제는 너무 속이 쓰려서 고의로 배낭을 외면했지요.
최악의 소식을 접하기 전에는 모든 일이 일사천리로 풀린다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바로 어제 오전에 발권을 약속하는 투어닥의 전화까지 받은 터라 이제 정말로 몸만 이곳에 있을 뿐이지 그 나머지는 모두 먼저 태국으로 날아가버린 느낌이 들 정도였으니까요.
투어닥에서 전화가 왔다는 사실을 전해주면서 회원들을 안심시키려고 들어간 게시판에서 뜻밖의 비보를 전해들은뒤 몹시 흥분했냐하면 절대 그렇지 않았습니다. 그저 멍하고 아무 생각이 들지 않더군요. 그저 잠이나 푹 자고 일어났으면 좋겠더라구요. 하루종일 그런 상태로 있었어요. 내가 탈 버스가 눈앞에 서 있는데도 그 버스를 타야겠다는 생각조차 못하고 그냥 멍하니 있었어요.

55,000원을 잃은 게 속상한 건 아닙니다.
출발을 이틀 앞두고 싸놓은 짐들을 다 풀어야 한다는 것도 그다지 속상한 일은 아니더군요. 휴학 이후 6개월 동안 여행을 준비하면서 조금씩 쌓아간 첫 해외여행에 대한 설레임과 기대감을 한 순간에 농락당했다는 느낌이 분노보다는 일단 허망함으로 다가오더라구요.
함께 여행을 준비하던 남자친구와 매일 '태국은 이렇다더라' '태국가면 이거 꼭하자' ...태국이란 화제만 있으면 버스가 끊기는 시간까지도 할 얘기가 끊기지 않았었는데....
남자친구가 너무 미안해 하더라구요. 그치만 어떻게 남자친구의 잘못이라고 할 수가 있겠어요? 만약 투어닥 부도가 사흘만 더 늦어졌다면 원망은 커녕 고마워 어쩔줄 몰라 했겠지요.
속 없는 분들은 내 그럴 줄 알았다 라는 식으로들 말씀하시는데 정말로 그럴 줄 알았을까요? 혹은 바보니 멍청이니 하는 식으로 말씀하시는데 이미 다녀온 사람에게도 똑같이 말할 수 있을까요? 모든 사건의 결말만을 보고 전체를 판단하는게 옳은 일일까요.
하물며 자책을 한다는 건 말도 안됩니다. 도데체 뭐가 부끄럽고 뭐가 한심한 일이란 것입니까. 운이 좋아 무료항공권으로 여행을 다녀온 사람은 현명한 사람이며 재수 없게도 사기를 당한 사람은 어리석고 한심한 바보가 되는 건 아니잖아요. 그래서 전 제 남자친구를 조금도 원망하지 않습니다.

어쨌든 다행히도 탑항공에서는 아직 우리 예약을 취소시키지 않고 있더군요.
사흘만 더 늦게 부도 나지...하는 다소 이기적인 생각까지 했었지만 결국은 자비로 항공권을 구입해서 가기로 했습니다. 구하기도 어렵다는 성수기 항공권 54만원이면 괜찮은거 아닌가요. 물론 이로 인해 내년 여름에 계획했던 인도 여행은 포기해야할지도 모르겠지만요.
그냥 고급 호텔에서 떵떵거리며 편히 지내다 오는거라고 생각할려구요. 혹은 여행지에서 큰 사고를 쳤다고 생각하는것도 덜 억울하겠지요. 돈은 언젠가 또 생기게 마련이지만 열대의 찬란함에 대한 그리움과 설레임은 다시 보상받을 수 없을 것 같네요.
여행 전에 액땜 한번 크게 하는군요... ㅠ.ㅠ
어쨌든 10일에 떠납니다. 정말이지 누구보다 즐거운 여행을 하고 돌아올 작정입니다.

10 Comments
*^^* 1970.01.01 09:00  
누구나 그만큼의 항공료는 내고 다녀옵니다. 가슴이 아프더라고 즐거운 여행 하세요.
*^^* 1970.01.01 09:00  
남친이랑 여행즐겁게 하세요. 더욱더 즐거운 여행이 되시길.. -미노-
*^^* 1970.01.01 09:00  
저두 당했지만(?) 맘 편히 갖기로 했습니다. 좋은 여행 되세요.
*^^* 1970.01.01 09:00  
여행가셔서...더 큰 행운이있길 바래요....
*^^* 1970.01.01 09:00  
좋은 여행 되시길....분명 그럴꺼예요! *^^*
*^^* 1970.01.01 09:00  
잃은거 만큼 얻는게 분명 있을꺼에요...건강히 다녀오세요~
*^^* 1970.01.01 09:00  
푸하항
*^^* 1970.01.01 09:00  
홍님이랑 즐거운 여행되시길~~푸라랑
*^^* 1970.01.01 09:00  
꼭 누구보다 즐거운 여행을 하고 오시길...후기 기둘릴께여
*^^* 1970.01.01 09:00  
여기 일 잊으시고 더 즐겁게 다녀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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