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 모모아이 "골목대장으로부터 지킨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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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간 모모아이 "골목대장으로부터 지킨 나"

몬테백작 4 554

일간 모모아이 "골목대장으로부터 지킨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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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멘토 모리(Memento mori) "자신의 죽음을 기억하라" , "너는 반드시 죽는다는 것을 기억하라", "네가 죽을 것을 기억하라"

 

  빌어먹을! 이제 죽음을 생각하고, 죽음에 가까운 나이가 되었다는 것을 나는 인정하기 싫어도 인정해야 하는 나이대에 들어섰다.

내가 죽음을 생각해야 한다니! 이건 분명 빌어먹을 일이야. 푸ㅎㅎㅎ…

이놈아, 이 길을 영웅호걸도, 절세미인도 비껴가지 못한 길이야 그래서 오늘도 메멘토 모리!

 

나는 사람이 살아오면서 인생에 절대적인 영향력을 끼친 사건이 저마다 있었으리라, 내게는 12살적에 내 인생을 지배하는 사건이 있었다.

그 이름 "김수강" 그는 내가 세 들어 살던 주인집 아이였다.

수강은 완력이 대단했다.

제 또래는 물론이고, 중학생 1학년 정도 되는 아이들도 수강이의 완력에 굴복했다.

아이들은 골목길을 지나다가 수강이와 마주치지 않으려고 도망을 가야 할 정도였다.

어느 겨울 날 아침, 나는 밤새워 엎드려서 도화지에 그린 종이, 돈을 가지고 대문을 나서다 수광이와 마주쳤다.

흠칫하면서 수강이 옆을 지나치려다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 어, 저기..." 라고 말하고 잽싸게 수강이를 지나쳐 가려는데,

수강이의 주먹이 내 아랫배를 가격했다.

나는 순간 배가 아파, 배를 움켜쥐었다.

그 순간, 겨울날 아침에 퍼진 햇살로 말미암아 발밑의 얼음들이 녹아 진흙탕이 되어 있었데,

아픈 배를 움켜쥐자 내 손에 들려 있던 종이돈이 그 진흙탕 위로 종이, 돈이 우수수 떨어졌다.

수강이로부터 맞은 배를 양손으로 움켜 안다 보니 종이, 돈을 놓쳐, 진흙탕에 젖어 버린 것이다.

 

그때, 나는 순간 눈이 돌아버렸다.

나는 마당에 쌓인 모래더미에서 삽이 꽂혀 있는 보았다.

나는 순간 모래에 꽂혀 있던 삽을 뽑아 들어 모서리를 세워서 날카로운 부위로 수강이의 허리 부분을 내려찍어 버렸다.

내게는 12살까지 한 번도 없던 행동이다.

수강은 날카롭게 비명을 지르며

"아이고, 아야~" 비명을 지르며, 내 눈앞에서 나딩구렀다.

나는 순간 겁이 나서 도망을 쳤다.

아침에 벌어진 일로 나는 겁이 나서 집에 들어가지 못하고 바깥을 빙빙 돌다가 어둠을 틈타 부엌으로 숨어들었다.

조심하여, 찬장 문을 열고 반찬을 꺼내려고 했지만, 방안에서 엄마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 니, 왔나? 어서 방으로 들어오너라"

엄마는 방문을 열고서 나를 쳐다보더니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

엄마가 화를 내지 않고 있음에 나는 적이 놀란 마음이었지만, 마음을 놓았다.

 

"다시는 그라지 마라!" 엄마는 말했다.

수강이를 병원에 데려가서 열 바늘 넘게 꿰매었다 했다.

훗날 엄마는 병원비를 물어주면서 기뻤다 했다.

맨날 아이들한테 맞고 징징거리며, 울고 들어오던 녀석이 다른 아이를 패주어 속이 후련했다고 말했다.

 

다음 날...

동네 아이들에게 소문이 파다하게 퍼졌다.

동네 아이들은 나를 어떻게 대할 건지 고민했다.

나는 동네에서 수강이 다음으로 완력 있는 아이로 대우받았다.

그 사건 이후 나를 함부로 건드리려는 아이들이 없었다.

나는 힘센 아이들의 폭력에서 벗어날 수 있었다.

그 뒤 변해버린 수강이 태도 또한 나를 놀라게 하기에 충분해졌다.

나를 쳐다보는 눈빛이 순해졌으며, 나를 친구로 받아 주었다.

나는 평생을 살아오면서 이 경험을 소중히 했다.

부당한 것에는 도전하고, 응징해야 한다는 소중한 경험을 얻었다.

나는 사람과 사물 모두에게 도전해서 더러 자주 승리하곤 했다.

나약과 폭력의 공포로부터 벗어날 수 있었다.

"주먹 보다, 센 것은 삽이었고, 삽보다 센 것은 총이다"

또한 인간이 가진 주먹질의 무위를 체감했다.

어릴 때부터 꼭 조질 놈이 있으면 가만히 다가가 순간 찍어 버리면 된다는 야성이 내 몸에 각인되었다.

요즘 학폭, 일진, 스포츠계 폭력을 뉴스로 보면서 맞지만 말고 딱 그 한 놈만 조져버리면 되는데... 혼자 되뇄다.

그러나, 폭력에 노출된 모두의 상황이 같지 않다는 것을 인정한다.

 

어쨌건 나는 폭력의 두려움으로부터 해방되었다.

 

에필로그  -현실에서 이성적인 데미안의 도움을 얻을 기적은 없다고 봐야 한다. 내게 현실에서 데미안은 삽이었다. 

 

 

아래 사진은 내가 들었던 같은 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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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Comments
향고을 2021.02.26 09:33  
호구보단 차라리 삽을 들자,
국제호구-ㅎㅎ
몬테백작 2021.02.26 11:22  
국제 호구는 관계를 부드럽게 하는 묘약이죠.
현지인들 처럼 빡세게 처세하면 외지인들 좋아하지 않을 겁니다.
라오스 어디를 가나 라오 사람들이 자기들 끼리 밥먹다가 나를 발견하면 오라고 손짓하며, 같이 밥 먹자는 말에 가슴이 먹먹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 마을사람들에게 기꺼이 호구가 되어 준적이 있습니다.
들국화야 2021.02.27 23:33  
남자다잉~
몬테백작 2021.02.28 09:42  
성인이 되어 저랬다면, 아마도 교도소에 가지 않았을까, 
아니면 많은 합의금을 줘야 했을 같군요.

어릴적에 통과의례로 거친 반응과 도전은 내 삶을 지배하는 모티브로서 "도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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