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색한 원조수혜국
포스터 안에서 5살 남짓의 남자아이가 동냥깡통을 들고 환하게 웃고 있다.
“이 아이는 전쟁 고아입니다. 이 어린이에게 한 달에 5달러만 보내면 하루 두끼를
먹을 수 있고 학교도 다닐 수 있습니다.”
아프간 전쟁 고아 돕기 캠페인인가 아니다. 50년 전 한국전쟁고아를 돕기 위해
외국에서 만든 포스터 문구다.
나도 월드비전에 들어와서야 알았다. 전쟁구호를 기폭제로 시작된 해외원조가
무려 25조원으로 1960년대에는 보사부 예산의 두 배를 능가했다는 사실을. 우
리나라가 아직 나라 구실을 제대로 못할 때 우리는 이 돈으로 먹고 입고 교육
을 받았단다. 내가 어렸을 때 그렇게 맛있게 먹던 옥수수 빵과 덩어리 우유도,
학기 초에 받던 공짜 공책과 연필도 바로 이런 돈에서 나왔단다. 그때는 막연
히 바다건너 부자나라에서 오는거려니 했는데 지금 생각하니 정말 고맙다. 그
돈을 모아다 주려고 누군가가 지금 우리처럼 무진 애를 썼을테니 말이다.
나라 안에도 어려운 사람이 있는데 왜 멀리 있는 한국을 도와야 하느냐는 사람
도 많았을테고 한국은 희망이 없으니 도울 필요가 없다는 사람들도 있었을 것
이다.
어떤 외국기자는 노골적으로 이런 기사를 썼다고 한다. `35년간 일본 식민지
에, 남북간 이념대립에, 이제는 전쟁까지 하고 있는 한국이 제 발로 서기를 바
라느니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꽃이 피는 것을 바라겠다’고. 그때 이런 차가운 시
선에도 불구하고 끝까지 우리를 믿고 구호활동을 펼쳐준 해외원조단체들에게
정말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그렇다. 우리는 놀랍게도() 50년 만에 쓰레기더미에서 장미꽃을 피워냈다. 그
것도 아주 탐스럽고 풍성한 넝쿨장미꽃을. 내가 속해 있는 월드비전이 그 `장미
꽃’의 좋은 예일 것이다. 월드비전은 한국 전쟁 때 전쟁 고아와 미망인을 긴급
구호하기 위해 만들어진 구호단체다. 그후 40년간 한국으로 들어오는 해외원조
액의 약 12%를 차지할 만큼 막대한 해외지원을 받으면서 활동하다가 1991년부
터는 해외원조를 완전히 끊고 경제자립했다. 덕분에 지금 한국은 국내 후원자
들의 힘만으로 국내와 북한은 물론 세계 17개국을 도와주고 있는 후원국이 되
었다.
올 봄, 아프가니스탄에 파견근무 갔을 때의 감격이 지금도 새롭다. 한국을 긴급
구호하려고 생긴 단체의 긴급구호팀장이 되어 아프간 사람들 살리는 일을 하
러 오다니. 그 어려운 시절, 우리에게 자립의 발판을 마련해 준 사람들의 은혜
를 이제는 우리가 아프간을 통해 갚고 있는 듯했다. 몇 십년 후 우리의 도움으
로 자립한 아프간 사람들이 다른 나라를 도와주면서 이 `보은의 릴레이’를 이어
갈 것이다.
아프간 긴급구호에는 한국 국제협력단(KOICA)을 통한 한국정부의 지원이 있
었다. 월드비전은 그 지원금으로 극심한 영양실조에 걸린 어린이들을 위한 치
료 영양죽을 구입했다. 바람 앞의 촛불같은 수천명의 아이들에게 이 영양죽은
생명줄이나 다름없었다. 우리 국민들이 낸 세금이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이렇
게 어린 목숨을 살려내는 데 쓰인 것이니 얼마나 뿌듯한 일인가.
그러나 우리나라의 해외원조 규모는 국력에 걸맞지 않게, 부끄러울 정도로 작
은 것이 현실이다. 공적개발 원조라는 게 있다. 잘 사는 나라가 가난한 나라의
자립과 발전을 위해 도와주는 자금으로 한 나라의 도덕적 의무와 수행상태를
나타내는 지표다. 우리나라는 국민소득 1만불,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가입
국, 국제무역 규모 세계 13위라는 화려한 성적표와는 다르게 이 공적개발 원조
로 겨우 국민총생산(GNP)의 0.063%를 쓰고 있다. 국민 1인당 분담률로 따지
면 덴마크 312달러나 일본의 106달러에 크게 미치지 못하는 4.5달러이다.
국제사회가 지난날 국제원조의 최대 수혜국인 한국이 살만해진 지금, 해외원조
에 어쩌면 이렇게 인색하냐고, 정말 은혜를 모르는 나라라고 비난해도 변명할
말이 없다. 나라건 개인이건 너무 인색하면 인심을 잃고, 은혜를 저버리면 싫
은 소리 듣게 마련이니까.
한비야/ 월드비전 긴급구호팀장
다시 돈 벌게 되면... 좋은일에 기부도 하면서 살고 싶당....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