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말 개만도 못한 경우 입니다.(결혼을 앞둔 분들 필독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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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족이나 고인의 신부가 이름과 이메일을 밝히시고 리플을 다시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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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도 아카데미란 곳에 글을 올리려 했으나 게시판마다 공사중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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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 사는게 다 그렇게 허망하지만은 않을텐데..
너무 허망하고, 황당한 경우가 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신부를 보고 수영도 못하는 신랑이 신부를 구하고,
본인은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린 일이 며칠전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교민들 모두가 어이없어 한 일이다.
신부의 이름은 부산 **년생 * **.
근무지는 부산의 ** ****.
이곳의 영안실이란게 한국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가로 세로 4*5미터쯤의 방에 시신을 안치하는 냉동고만 덩그라니 있을뿐이다.
내가 그 소식을 듣고 병원 영안실을 찾았을때,
가족이라곤 아무도 없었고, 현지의 여행사 소장만이 영안실을 지키고 있었다.
가족들은 아직 한국에서 도착 하지 않았고, 내일 아침에 도착 한다고 한다.
신부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지금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시간이 14:30분경..
이것저것 도와주다 22:00시경이 되어서야 신부의 얼굴을 볼수 있었다....
옷도 갈아입고 샤워를 좀 해야 겠기에 집을 다녀 온 시간이 00:00시경.
이미 신부의 모습은 어느곳에도 없었고,
몇몇의 현지 교포들만 있을 뿐 이었다.
다음날 아침.
한국에서 고인의 가족들이 09:20분경에 공항에 도착한다고 하여 기다렸으나,
10:30분이 되도록 가족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신부가 가족들을 맞으러 공항에 간줄 알았다.
10:50분경 가족들이 응급실에 도착한게 보이고 왠일인지 영안실쪽으로 오지는 않았다.
5분여를 그렇게 보내다 가족들이 영안실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영안실앞에 한대의 차가 도착하고 고인의 신부가 차에서 내렸다.
세상에... 호텔에서 이제서야 도착을 한것 이었다.
한국에서 오는 가족보다 더 늦게 도착 하다니...
배짱이 있는건지, 머리가 모자르는건지..
나중에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수가 있었다.
고인의 직계가족은 아무도 안 왔다는 것이었다.
직계가족이 아무도 안왔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한국에서 오는 가족들보다 같은지역에 있던 사람이..
그것도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같이 왔던 신랑이 죽었는데 신부가 더 늦다니..
처음 영안실에 도착하여 울던 사람이 고인의 어머니인줄 알았다.
울때의 곡소리가 "아이고 내새끼" "아이고 내새끼" 하며 울었었기 때문이다.
5분여를 그러다 유가족들이 시신 확인도 하지 않은채 갑자기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게 아닌가?
궁금해 물어보니 익사한 경위와 상세한 내용을 알아야 겠다는 이유에서..
"아이고 내새끼"하며 운 사람이 고인의 어머니냐고 물어 보니 장모란다..
황당했다...
그럼 이자리에서 자신의 딸이 과부가 된걸 걱정하고 내새끼하고 울었단 말인가?
아니면 금쪽같은 사위를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내새끼라고 불렀단 말인가...
장례 내내 두고두고 의문이 풀리지않는 "내새끼"였다.
두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족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신부도..
뭤때문에 이렇게 늦은지 솔직히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보니 위로금 문제로 여행사 사장이랑 얘기중 이란다.
세상에...
가족들이라고 온 사람들이 시신 확인도 하지 않은채 위로금 얘기부터 하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하긴 이일은 서막에 불과 했지만...
17:00시경에 위로금의 합의를 본것인지 가족들이 병원에 도착하여 바로 수의를 입힌단다.
그런데..
시신 확인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염하는것도 아무도 안보겠단다.
장인과 장모야 그렇다 치더라도 신부는 물론이고,
외삼촌들과 외숙모도 안 보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엉뚱한 시신이었다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사람들이 무슨 가족들이야?
하긴 시신확인도 않은채 호텔에서 위로금부터 먼저 논하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수의를 입히려는데 시신이 굳어 잘 입혀지지 않는다고 하자,
현장에 들어 가지도 않은채 그냥 시신의 몸위에 덮으라고 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마지막 관뚜껑을 덮기전에 태국인들이 볼사람 보라고 해서,
진짜 마지막인데 끝까지 얼굴도 안볼거냐고 본인이 직접 물었었다.
그제서야 밍기적 밍기적 관앞으로 가는 꼴이란...
신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동차의 시동을 건채 에어컨 바람만 쐬고 있었고....
죽은넘만 불쌍할 뿐이지..
지가 이럴줄 알았으면 폐에 물이 차서 이세상을 하직 하면서까지 신부를 밀어 냈을까?
아~~ 이 얘기는 물에 빠진 신부를 구하려고 수영을 할줄도 모르는 신랑이 물에 잠기며
신부를 밀어 냈다고 신부가 그랬단다.
그럭저럭 수의를 입히고 내일 화장할 절로 향했다.
절에 도착후 가족들끼리 모여 머리를 맞대고 뭔가 의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후 장인인가 외삼촌인가가 내게로 와서
"수의를 다 입히지 않았던데.."
"그래요? 아마 태국사람들이 한국 수의에 대해서 몰라 그랬나 봅니다.
그런데 그건 어찌 알았습니까?"
"수의함속에 수의가 남아 있어서 알았습니다."
"그러게 수의 입힐때 참관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와서 어쩌란 말입니까?"
할말이 없었다.
물론 그 사람도 할말이 없는지 그냥 자기네 자리로 갔다.
20:00시쯤되어 오늘은 누가 관을 지키냐고 했더니 또 소장이랑 여행사 직원들이 지킨다고 했다.
가족들은?
피곤해서 호텔에서 쉰다고 했단다..
정말 개만도 못한 경우다.
한국에서 자식을 잃고 드러누운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안다면...
그 어머니가 세상을 달리한 자식을 돌봐줄거라 믿고 보낸 사람들이 하는짓이 이런줄 알았다면..
뭘 믿고 당신의 배를 아프게한 자식의 마지막길을 부탁 했을까?
내가 성이나서 고인의 외삼촌인가하는 사람에게 가서 다짜고짜
"애길 들으니 전부 호텔에 쉬러 간다면서요? 관은 누가 지킵니까?"
다소 위협적으로 들렸는지 움찔 하더니
"다 쉬러 가는게 아니고 저는 이곳에 있을겁니다."
그사람이 그날밤 그곳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밝히진 않겠다.
다음날..
11:30분경에 간단한 스님의 독경과 의식이 있은후,
12:00시경에 화장장으로 향했다.
화로(?)에 넣기전에 관뚜껑을 열고 태울것을 넣으라고 하자 몇가지를 주는데,
다른사람을 통해 관에 넣었다.
그때까지도 얼이 빠진것 같지 않은 신부는 멀뚱멀뚱.
장모는 "아이고 아이고.. " 너무 울어(?) 그런건지 눈물은 나지않고 곡소리만..
화로에 넣는데, 아무런 일도 더이상 곡소리하는 장모도 없었다.
꽃한송이씩을 들고 화로에 든 관앞에 놓는데, 일사천리로 진행...
다들 내려 가는데 그제서야 신부가 안죽었다고 소리를 치더만...
그전엔 그런 생각을 못했나?
보통 가족이 죽어서 화장을 할경우 화로에 넣을때 애를 많이 먹는다.
화로에 못 넣게 막는 가족들이 워낙 거센 행동을 보이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전혀 그런거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다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것(?)일까?
최후에 한번쯤은 뭔가 보여 줘야 겠다는 행동으로 그러진 않았을까?
솔직히 내가 잘못된 생각 일수도 있지만,
그동안의 신부가 한 행동을 보고 들은 사람으로써 왠지 쇼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뼈를 수습할 시간이 되어 또 내가 미운털이 박혔다.
현지 교민들만 유골을 수습하러가고 가족들은 가지 않겠다는거다.
현지 교민들이 뭔 연관이 있다고..??
정말 아주 나쁜 사람들이다.
가족으로 신부빼고 여섯명이나 와서 시신확인도 하지 않은채 위로금 운운할때부터
어느정도의 사람들이란건 알았지만, 세상에... 마지막 유골수습까지 외면 하다니..
또 얘기 했다.
"마지막 유골수습까지 안할겁니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채 자리를 피하기만 할뿐...
신부란 사람(?)도 가만히 앉아있기만 할뿐이다.
설령 옆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말렸다 하더라도,
그 여자는 그러면 안되지..
자기를 구해주고 죽은 고인을 생각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잊은후 아마 몇년뒤, 어쩌면 근간에 다시 면사포를 쓰고 싶어서 였을까?
사랑했던 그사람의 모습을 최대한 빨리 잊기위한 노력 이었을까?
아니면,
한국으로 가서 서울에 기거하면 모르는 사람들만 있으니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겠다,
뭐 얼굴에 결혼하여 신혼여행중에 남편이 죽은 여자라고 씌여질것도 아니니 뻔뻔해지자 생각 했던걸까?
교민들이 유골을 수습하는중에 또 어떤이가 그랬다.
정말 마지막인데 유골수습조차 안할거냐고..
교민들의 냉랭한 반응을 알았는지 외삼촌들만 화장장으로 가서 유골을 받아 왔다.
며칠을 함께 살을 섞고 살았던 남편이 죽었는데,
영안실에 오며 화장하고 패물차고 나서는 신부..
발톱에 바른 빨간 매니큐는.. 도둑놈이 걱정되고.. 어려서.. 정말 몰라서 ..
아니면 생각지도 못해서.. 그랬다 치자.
영안실에 들어서자마자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며 내새끼를 부르짖은 장모..
그것역시 꽃같은 내딸의 앞날이 걱정되어 그랬다 치자.
관을 지키지 않고 유골수습을 하지도 않은 이사람들..
이런경우가 처음이라 무서워서 그랬다 치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유골을 싣고 공항으로 가는 차속에서,
방콕의 면세점에서 산 선물을 챙기는 건 아까운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해 그랬다 치자.
시신확인도 하지 않은채,
위로금 합의부터 본 이사람들은 도대체 어찌된 사람들일까?
죽은자만 섧다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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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허망하고, 황당한 경우가 있었다.
물에 빠져 허우적대는 신부를 보고 수영도 못하는 신랑이 신부를 구하고,
본인은 불귀의 객이 되어 버린 일이 며칠전 있었다.
옆에서 지켜본 교민들 모두가 어이없어 한 일이다.
신부의 이름은 부산 **년생 * **.
근무지는 부산의 ** ****.
이곳의 영안실이란게 한국의 그것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가로 세로 4*5미터쯤의 방에 시신을 안치하는 냉동고만 덩그라니 있을뿐이다.
내가 그 소식을 듣고 병원 영안실을 찾았을때,
가족이라곤 아무도 없었고, 현지의 여행사 소장만이 영안실을 지키고 있었다.
가족들은 아직 한국에서 도착 하지 않았고, 내일 아침에 도착 한다고 한다.
신부는 경찰서에서 조사를 받고, 지금은 호텔에서 휴식을 취한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시간이 14:30분경..
이것저것 도와주다 22:00시경이 되어서야 신부의 얼굴을 볼수 있었다....
옷도 갈아입고 샤워를 좀 해야 겠기에 집을 다녀 온 시간이 00:00시경.
이미 신부의 모습은 어느곳에도 없었고,
몇몇의 현지 교포들만 있을 뿐 이었다.
다음날 아침.
한국에서 고인의 가족들이 09:20분경에 공항에 도착한다고 하여 기다렸으나,
10:30분이 되도록 가족들은 도착하지 않았다.
그때만 하더라도 신부가 가족들을 맞으러 공항에 간줄 알았다.
10:50분경 가족들이 응급실에 도착한게 보이고 왠일인지 영안실쪽으로 오지는 않았다.
5분여를 그렇게 보내다 가족들이 영안실쪽으로 발길을 옮기는데,
영안실앞에 한대의 차가 도착하고 고인의 신부가 차에서 내렸다.
세상에... 호텔에서 이제서야 도착을 한것 이었다.
한국에서 오는 가족보다 더 늦게 도착 하다니...
배짱이 있는건지, 머리가 모자르는건지..
나중에야 조금이나마 이해를 할수가 있었다.
고인의 직계가족은 아무도 안 왔다는 것이었다.
직계가족이 아무도 안왔다고 하더라도 그렇지..
한국에서 오는 가족들보다 같은지역에 있던 사람이..
그것도 결혼식을 마치고 신혼여행을 같이 왔던 신랑이 죽었는데 신부가 더 늦다니..
처음 영안실에 도착하여 울던 사람이 고인의 어머니인줄 알았다.
울때의 곡소리가 "아이고 내새끼" "아이고 내새끼" 하며 울었었기 때문이다.
5분여를 그러다 유가족들이 시신 확인도 하지 않은채 갑자기 차를 타고 어디론가 떠나는게 아닌가?
궁금해 물어보니 익사한 경위와 상세한 내용을 알아야 겠다는 이유에서..
"아이고 내새끼"하며 운 사람이 고인의 어머니냐고 물어 보니 장모란다..
황당했다...
그럼 이자리에서 자신의 딸이 과부가 된걸 걱정하고 내새끼하고 울었단 말인가?
아니면 금쪽같은 사위를 지극히 사랑한 나머지 내새끼라고 불렀단 말인가...
장례 내내 두고두고 의문이 풀리지않는 "내새끼"였다.
두시간이 지났는데도 가족들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물론 신부도..
뭤때문에 이렇게 늦은지 솔직히 궁금해 지기 시작했다.
이사람 저사람에게 물어보니 위로금 문제로 여행사 사장이랑 얘기중 이란다.
세상에...
가족들이라고 온 사람들이 시신 확인도 하지 않은채 위로금 얘기부터 하다니..
벌어진 입이 다물어 지지 않았다.
하긴 이일은 서막에 불과 했지만...
17:00시경에 위로금의 합의를 본것인지 가족들이 병원에 도착하여 바로 수의를 입힌단다.
그런데..
시신 확인도 하지 않은 사람들이 염하는것도 아무도 안보겠단다.
장인과 장모야 그렇다 치더라도 신부는 물론이고,
외삼촌들과 외숙모도 안 보겠다는 것이었다.
만약 엉뚱한 시신이었다면 어떻게 하려고..
이런사람들이 무슨 가족들이야?
하긴 시신확인도 않은채 호텔에서 위로금부터 먼저 논하는 사람들이긴 했지만...
한국에서 가져온 수의를 입히려는데 시신이 굳어 잘 입혀지지 않는다고 하자,
현장에 들어 가지도 않은채 그냥 시신의 몸위에 덮으라고 하는 소리를 분명히 들었다.
마지막 관뚜껑을 덮기전에 태국인들이 볼사람 보라고 해서,
진짜 마지막인데 끝까지 얼굴도 안볼거냐고 본인이 직접 물었었다.
그제서야 밍기적 밍기적 관앞으로 가는 꼴이란...
신부는 처음부터 끝까지 자동차의 시동을 건채 에어컨 바람만 쐬고 있었고....
죽은넘만 불쌍할 뿐이지..
지가 이럴줄 알았으면 폐에 물이 차서 이세상을 하직 하면서까지 신부를 밀어 냈을까?
아~~ 이 얘기는 물에 빠진 신부를 구하려고 수영을 할줄도 모르는 신랑이 물에 잠기며
신부를 밀어 냈다고 신부가 그랬단다.
그럭저럭 수의를 입히고 내일 화장할 절로 향했다.
절에 도착후 가족들끼리 모여 머리를 맞대고 뭔가 의논을 하는 모습이 보였다.
한참후 장인인가 외삼촌인가가 내게로 와서
"수의를 다 입히지 않았던데.."
"그래요? 아마 태국사람들이 한국 수의에 대해서 몰라 그랬나 봅니다.
그런데 그건 어찌 알았습니까?"
"수의함속에 수의가 남아 있어서 알았습니다."
"그러게 수의 입힐때 참관 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지금와서 어쩌란 말입니까?"
할말이 없었다.
물론 그 사람도 할말이 없는지 그냥 자기네 자리로 갔다.
20:00시쯤되어 오늘은 누가 관을 지키냐고 했더니 또 소장이랑 여행사 직원들이 지킨다고 했다.
가족들은?
피곤해서 호텔에서 쉰다고 했단다..
정말 개만도 못한 경우다.
한국에서 자식을 잃고 드러누운 어머니가 이 사실을 안다면...
그 어머니가 세상을 달리한 자식을 돌봐줄거라 믿고 보낸 사람들이 하는짓이 이런줄 알았다면..
뭘 믿고 당신의 배를 아프게한 자식의 마지막길을 부탁 했을까?
내가 성이나서 고인의 외삼촌인가하는 사람에게 가서 다짜고짜
"애길 들으니 전부 호텔에 쉬러 간다면서요? 관은 누가 지킵니까?"
다소 위협적으로 들렸는지 움찔 하더니
"다 쉬러 가는게 아니고 저는 이곳에 있을겁니다."
그사람이 그날밤 그곳에 있었는지 없었는지 밝히진 않겠다.
다음날..
11:30분경에 간단한 스님의 독경과 의식이 있은후,
12:00시경에 화장장으로 향했다.
화로(?)에 넣기전에 관뚜껑을 열고 태울것을 넣으라고 하자 몇가지를 주는데,
다른사람을 통해 관에 넣었다.
그때까지도 얼이 빠진것 같지 않은 신부는 멀뚱멀뚱.
장모는 "아이고 아이고.. " 너무 울어(?) 그런건지 눈물은 나지않고 곡소리만..
화로에 넣는데, 아무런 일도 더이상 곡소리하는 장모도 없었다.
꽃한송이씩을 들고 화로에 든 관앞에 놓는데, 일사천리로 진행...
다들 내려 가는데 그제서야 신부가 안죽었다고 소리를 치더만...
그전엔 그런 생각을 못했나?
보통 가족이 죽어서 화장을 할경우 화로에 넣을때 애를 많이 먹는다.
화로에 못 넣게 막는 가족들이 워낙 거센 행동을 보이는 경우를 많이 봐 왔다.
전혀 그런거 없이 일사천리로 진행되다가 그제서야 정신을 차린것(?)일까?
최후에 한번쯤은 뭔가 보여 줘야 겠다는 행동으로 그러진 않았을까?
솔직히 내가 잘못된 생각 일수도 있지만,
그동안의 신부가 한 행동을 보고 들은 사람으로써 왠지 쇼를 한다는 느낌을 지울수 없었다.
뼈를 수습할 시간이 되어 또 내가 미운털이 박혔다.
현지 교민들만 유골을 수습하러가고 가족들은 가지 않겠다는거다.
현지 교민들이 뭔 연관이 있다고..??
정말 아주 나쁜 사람들이다.
가족으로 신부빼고 여섯명이나 와서 시신확인도 하지 않은채 위로금 운운할때부터
어느정도의 사람들이란건 알았지만, 세상에... 마지막 유골수습까지 외면 하다니..
또 얘기 했다.
"마지막 유골수습까지 안할겁니까?"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은채 자리를 피하기만 할뿐...
신부란 사람(?)도 가만히 앉아있기만 할뿐이다.
설령 옆에서 그녀의 어머니가 가지 말라고 말렸다 하더라도,
그 여자는 그러면 안되지..
자기를 구해주고 죽은 고인을 생각 해서라도..
최대한 빨리 잊은후 아마 몇년뒤, 어쩌면 근간에 다시 면사포를 쓰고 싶어서 였을까?
사랑했던 그사람의 모습을 최대한 빨리 잊기위한 노력 이었을까?
아니면,
한국으로 가서 서울에 기거하면 모르는 사람들만 있으니 혼인신고도 하지 않았겠다,
뭐 얼굴에 결혼하여 신혼여행중에 남편이 죽은 여자라고 씌여질것도 아니니 뻔뻔해지자 생각 했던걸까?
교민들이 유골을 수습하는중에 또 어떤이가 그랬다.
정말 마지막인데 유골수습조차 안할거냐고..
교민들의 냉랭한 반응을 알았는지 외삼촌들만 화장장으로 가서 유골을 받아 왔다.
며칠을 함께 살을 섞고 살았던 남편이 죽었는데,
영안실에 오며 화장하고 패물차고 나서는 신부..
발톱에 바른 빨간 매니큐는.. 도둑놈이 걱정되고.. 어려서.. 정말 몰라서 ..
아니면 생각지도 못해서.. 그랬다 치자.
영안실에 들어서자마자 자식의 앞날을 걱정하며 내새끼를 부르짖은 장모..
그것역시 꽃같은 내딸의 앞날이 걱정되어 그랬다 치자.
관을 지키지 않고 유골수습을 하지도 않은 이사람들..
이런경우가 처음이라 무서워서 그랬다 치자.
한국으로 돌아가는 비행기를 타기위해 유골을 싣고 공항으로 가는 차속에서,
방콕의 면세점에서 산 선물을 챙기는 건 아까운 외화 낭비를 막기 위해 그랬다 치자.
시신확인도 하지 않은채,
위로금 합의부터 본 이사람들은 도대체 어찌된 사람들일까?
죽은자만 섧다 하지만 해도해도 너무 했다는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