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교에 집착하는 사람들을 위한 변명(특히 기독교인들)
L&M님의 글을 읽고 써봅니다.
아마 님이 겪은 일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짐작이 갑니다. 인간관계의 바탕도 없이 불쑥 자기 종교를 갖고 전도하겠다고 하는 기독교인들로 인해 겪는 불편함... 저 자신 기독교인이지만 뒤집어 보면 참 어이없다는 기분이 들거라 여겨집니다.
유럽에서는 저녁 식사 때 하지 말아야할 금기가 종교얘기, 정치얘기 그리고...라 하던데 이해가 가는 편입니다. 신앙의 문제는 어쩌면 연애와 결혼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고 그러기에 그와 같은 문제를 남(!)에게 얘기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때때로 어떤 긴박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저는 조심스레 개진해 보고도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다분히 맹신적인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진지한 신앙인들에게 그들의 신앙은 궁극적 의미요, 삶의 해답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와 같은 사실은 결국 다른 이들에게 자기의 신앙을 알려야 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그들에게 생기는 것도 이해못할 부분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알지 못하는 중병으로 시달리던 사람이 어떤 민간요법으로 완치가 되어졌다고 느낄 때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경험한 민간요법을 강권하고싶은 마음과 비슷한 심리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인생관 또는 인생철학의 관점에서 기독교인의 종교적 사명감을 이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님이 얘기한 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침튀기며 살만큼 의미있는 것은 현실 그 중에서도 의식주 문제인 것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의 북한처럼 살 때는 그야말로 하루 세끼를 먹고 사는게 삶의 유일한 문제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저에게 있어, 제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과연 내가 살 미래는 먹고싶을 때 자장면을 맘대로 사먹을 수 있는 미래일까? 내의와 양말이 필요할 때 그것을 지금 계절 옷을 사입는 것처럼 당연하게 사모을 수 있는 세상일까 궁금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런 세상에 살던 사람은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출세를 바라며 품위있게 사는 것을 말하지 말아야했을까요? 당장 굶으면서도 땅을 파고 노가다를 하고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하기에... 소위 형설지공의 생활을 하는 것은 이상한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 할 것입니까?
그렇지요. 그 당시 바닥생활을 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식들을 의식주 때문에 국민학교,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으로 논밭으로 내몰고 하였습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특별히 딸들은 학교를 가는 것이 언감생심 바랄 일이 못된다고 말하였습니다. 현실이 중요하니까요.
실제로 제가 자랄 때는 한 마을에서 대학을 가는 아이가 생기게 되면 고시 패스한 것처럼 축하를 하곤 했습니다.(부산서 살았습니다)
요새는 어떻습니까? 지금도 이해할 수 있는 삶이란 의식주를 위해서만 사는 삶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면 태사랑 회원들이 침을 튀기면서 살만한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다시 말해 무리를 해서라도 꿈꾸는 삶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마음껏 세계를 여행하는 것입니까?
영장류의 동물들도 꿈을 꾼다고 합니다만 미래를 꿈꾸는 존재는 인간 뿐이고 그러기에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인류문화학을 통해 여러 민족 중에... 일상적인 말이 없는 민족이나 문자가 없는 민족은 있었어도 종교가 없는 민족은 없었다는 연구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를 떠나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귀의할 문제가 종교라는 사실이 이상한 일일까요. 당장 먹고살 일이나 제대로 해라고요.
그러나 유물론 철학을 신봉하는... 극단주의 철학에 경도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학자들이 존중하는 것처럼 인간의 최고의 삶의 지향점이 종교라는 사실이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것일까요.
사실 유물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가치있는 땀이란 노동자, 농민의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사업가, 경영자들, 정치인들, 지식인들, 문화 예술인들... 이들은 어떻습니까? 이들은 자기의 재능을 가지고 각각 대중들을 설득하고 전파함으로써 자기의 가치를 실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왜 종교는?
어찌 보면 여행은, 여행의 종착점은 번연이 천로역정에서 그려내는 것처럼 낙원을 꿈꾸는 보헤미안의 여로가 아닐는지...
그러기에 나는 보는 것만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한 미래가 없다면 현실은 매트릭스에 불과한 허상-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
아마 님이 겪은 일들이 무엇을 가리키는지 짐작이 갑니다. 인간관계의 바탕도 없이 불쑥 자기 종교를 갖고 전도하겠다고 하는 기독교인들로 인해 겪는 불편함... 저 자신 기독교인이지만 뒤집어 보면 참 어이없다는 기분이 들거라 여겨집니다.
유럽에서는 저녁 식사 때 하지 말아야할 금기가 종교얘기, 정치얘기 그리고...라 하던데 이해가 가는 편입니다. 신앙의 문제는 어쩌면 연애와 결혼의 문제보다 더 심각한 문제일 수 있고 그러기에 그와 같은 문제를 남(!)에게 얘기한다는 건 정말 어려운 일이 아닐 수 없다 동의하기 때문입니다.
반면에 신앙인의 입장에서는 때때로 어떤 긴박함이 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을 저는 조심스레 개진해 보고도 싶습니다. 많은 사람들의 경우 다분히 맹신적인 경우도 많은 것이 사실이지만... 진지한 신앙인들에게 그들의 신앙은 궁극적 의미요, 삶의 해답인 것 또한 사실입니다.
그러기에 그와 같은 사실은 결국 다른 이들에게 자기의 신앙을 알려야 된다는 일종의 사명감이 그들에게 생기는 것도 이해못할 부분도 아닌 것입니다.
그것은 알지 못하는 중병으로 시달리던 사람이 어떤 민간요법으로 완치가 되어졌다고 느낄 때 같은 질병을 앓고 있는 사람들에게 자기가 경험한 민간요법을 강권하고싶은 마음과 비슷한 심리입니다.
또 한 가지는 인생관 또는 인생철학의 관점에서 기독교인의 종교적 사명감을 이해할 수도 있다는 점을 말하고자 합니다.
님이 얘기한 바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침튀기며 살만큼 의미있는 것은 현실 그 중에서도 의식주 문제인 것같습니다. 사실 우리가 지금의 북한처럼 살 때는 그야말로 하루 세끼를 먹고 사는게 삶의 유일한 문제처럼 보일 때도 있었습니다.
그러기에 저에게 있어, 제가 중학교 다닐 때까지만 해도 과연 내가 살 미래는 먹고싶을 때 자장면을 맘대로 사먹을 수 있는 미래일까? 내의와 양말이 필요할 때 그것을 지금 계절 옷을 사입는 것처럼 당연하게 사모을 수 있는 세상일까 궁금하였습니다.
그러면 그런 세상에 살던 사람은 미래를 꿈꾸고, 희망을 이야기하고, 출세를 바라며 품위있게 사는 것을 말하지 말아야했을까요? 당장 굶으면서도 땅을 파고 노가다를 하고 하루하루의 끼니를 걱정하기에... 소위 형설지공의 생활을 하는 것은 이상한 삶의 태도를 가진 사람이라 할 것입니까?
그렇지요. 그 당시 바닥생활을 하는 대부분 사람들이 자식들을 의식주 때문에 국민학교, 중학교 졸업하자마자 공장으로 논밭으로 내몰고 하였습니다. 비싼 수업료를 내고 특별히 딸들은 학교를 가는 것이 언감생심 바랄 일이 못된다고 말하였습니다. 현실이 중요하니까요.
실제로 제가 자랄 때는 한 마을에서 대학을 가는 아이가 생기게 되면 고시 패스한 것처럼 축하를 하곤 했습니다.(부산서 살았습니다)
요새는 어떻습니까? 지금도 이해할 수 있는 삶이란 의식주를 위해서만 사는 삶이라고 말하겠습니까?
그러면 태사랑 회원들이 침을 튀기면서 살만한 삶이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다시 말해 무리를 해서라도 꿈꾸는 삶이 있다면 무엇입니까? 마음껏 세계를 여행하는 것입니까?
영장류의 동물들도 꿈을 꾼다고 합니다만 미래를 꿈꾸는 존재는 인간 뿐이고 그러기에 인간은 영원을 사모하는 존재임을 우리는 부인할 수가 없게 됩니다.
우리는 인류문화학을 통해 여러 민족 중에... 일상적인 말이 없는 민족이나 문자가 없는 민족은 있었어도 종교가 없는 민족은 없었다는 연구결과를 알고 있습니다.
어느 종교가 옳으냐 그르냐 하는 문제를 떠나 인간이 궁극적으로 추구하고 귀의할 문제가 종교라는 사실이 이상한 일일까요. 당장 먹고살 일이나 제대로 해라고요.
그러나 유물론 철학을 신봉하는... 극단주의 철학에 경도된 경우가 아니라면 거의 모든 학자들이 존중하는 것처럼 인간의 최고의 삶의 지향점이 종교라는 사실이 그렇게 이해하기 힘든 것일까요.
사실 유물론의 입장에서 보면 인간의 가치있는 땀이란 노동자, 농민의 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사업가, 경영자들, 정치인들, 지식인들, 문화 예술인들... 이들은 어떻습니까? 이들은 자기의 재능을 가지고 각각 대중들을 설득하고 전파함으로써 자기의 가치를 실현하지 않습니까?
그러면 왜 종교는?
어찌 보면 여행은, 여행의 종착점은 번연이 천로역정에서 그려내는 것처럼 낙원을 꿈꾸는 보헤미안의 여로가 아닐는지...
그러기에 나는 보는 것만이 인생이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영원한 미래가 없다면 현실은 매트릭스에 불과한 허상-시뮬레이션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