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대학성적표에 유일하게 D가 있는 이유
나의 대학성적표에 유일하게 D가 있는 이유….
대학 3학년 때였다.
오랜만에 시골 집으로 내려 가게 되었다, 거의 4개월 만에….
여느 때와 같이 도착한 고향의 정류소에서 집으로 가지 않고 가계로 갔었다.
당연히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 시간이면 어머니가 이제 가계를 정리하는 시간이어서 도와주러 바로 그곳으로 갔었는데 가게문이 잠겨져 있었다.
옆 가계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이틀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난 많이 놀랐다, 우리 어머니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마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이 아니면 가게 문을 닫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을 누구 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
바로 집으로 뛰어갔지만 집에는 불이 꺼져있었다, 안방으로 들어가서 불을 켜니 어머님이 혼자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머리에는 흰 띠를 동여 메시고…..
그때야 처음으로 자세히 어머니의 손을 보았다.
너무나 늙고 초라한 손 그리고 이어지는 쇠 갈쿠리 같은 뼈만 남은 손마디….주무시고 계시는 얼굴은 이미 그 어릴 적 쌍커플 지고 이쁜 눈이 아니라 휑하니 들어간 웬 낯선 늙은이의 모습만 남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어머니의 키에 구부리고 주무시는 초라한 모습에 한참이나 내 눈이 흐려졌었다.
그 이쁘던 당신의 모습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든 세월보다는 나의 탓으로만 느껴져서 주무시는 어머니를 한참이나 꼭 껴 안았다.
주무시다가 일어나시는 어머니의 한마디는 역시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아주머니..
"야는 머슴아가 징그럽게 와 이리 껴안노 마 놔라, 니는 왔으면 안 깨우고 뭐하노…"
어머니는 내 눈가에 눈물을 발견하셨는지…
"니 오늘 이상타? 와 그라는데?"
"아이다 마 그냥 오랜만에 집에도 오고 엄마를 보니까 좋아서 그란다 아이가….."
그 주 수요일에 전공시험이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학교로 가지 않고 집에 일주일간 이나 머물렀었다.
물론 어머니에게는 학교가 요새 데모를 해서 쉬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계도 도와주고 매일저녁에 바다에도 나가고…….그렇게 어머니 곁에서 지냈다.
언제나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하는 아들이 옆에 있어서 인지 금방 병이 나으셨고
시장 동네의 어르신들도 오랜만에 어머니의 즐거워 하는 모습에 모두 놀라시고…
그 때 못친 전공 시험과목이 유일하게 나의 성적에 D로 남아있어, 그러나 4학년 때
난 일부러 그 과목은 재수강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때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져서 그 수업을 재수강 해서 다시 학점으로 채우면 마치 그 때의 느낌이나 그때의 추억이 사라질 것 같아서……..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이기에 그 D학점으로 더욱 그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나의 마음인지도.
( 이글은 좋은생각 책에 실린 저의글입니다)
대학 3학년 때였다.
오랜만에 시골 집으로 내려 가게 되었다, 거의 4개월 만에….
여느 때와 같이 도착한 고향의 정류소에서 집으로 가지 않고 가계로 갔었다.
당연히 집에는 아무도 없으니까….
그 시간이면 어머니가 이제 가계를 정리하는 시간이어서 도와주러 바로 그곳으로 갔었는데 가게문이 잠겨져 있었다.
옆 가계 아주머니에게 물어보니 이틀동안 문을 열지 않았다고 하시는데…
난 많이 놀랐다, 우리 어머니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기에, 아마 거의 돌아가시기 직전이 아니면 가게 문을 닫지 않는 분이시라는 것을 누구 보다도 내가 더 잘 안다.
바로 집으로 뛰어갔지만 집에는 불이 꺼져있었다, 안방으로 들어가서 불을 켜니 어머님이 혼자 곤히 주무시고 계셨다, 머리에는 흰 띠를 동여 메시고…..
그때야 처음으로 자세히 어머니의 손을 보았다.
너무나 늙고 초라한 손 그리고 이어지는 쇠 갈쿠리 같은 뼈만 남은 손마디….주무시고 계시는 얼굴은 이미 그 어릴 적 쌍커플 지고 이쁜 눈이 아니라 휑하니 들어간 웬 낯선 늙은이의 모습만 남아 있었다.
그렇지 않아도 적은 어머니의 키에 구부리고 주무시는 초라한 모습에 한참이나 내 눈이 흐려졌었다.
그 이쁘던 당신의 모습을 이렇게 초라하게 만든 세월보다는 나의 탓으로만 느껴져서 주무시는 어머니를 한참이나 꼭 껴 안았다.
주무시다가 일어나시는 어머니의 한마디는 역시 전형적인 무뚝뚝한 경상도 아주머니..
"야는 머슴아가 징그럽게 와 이리 껴안노 마 놔라, 니는 왔으면 안 깨우고 뭐하노…"
어머니는 내 눈가에 눈물을 발견하셨는지…
"니 오늘 이상타? 와 그라는데?"
"아이다 마 그냥 오랜만에 집에도 오고 엄마를 보니까 좋아서 그란다 아이가….."
그 주 수요일에 전공시험이 있었지만 나는 일부러 학교로 가지 않고 집에 일주일간 이나 머물렀었다.
물론 어머니에게는 학교가 요새 데모를 해서 쉬고 있다고 거짓말을 하고…
가계도 도와주고 매일저녁에 바다에도 나가고…….그렇게 어머니 곁에서 지냈다.
언제나 어머니가 자랑스러워(?) 하는 아들이 옆에 있어서 인지 금방 병이 나으셨고
시장 동네의 어르신들도 오랜만에 어머니의 즐거워 하는 모습에 모두 놀라시고…
그 때 못친 전공 시험과목이 유일하게 나의 성적에 D로 남아있어, 그러나 4학년 때
난 일부러 그 과목은 재수강을 하지 않았다.
그냥 그때 시간이 너무나 소중하게 느껴져서 그 수업을 재수강 해서 다시 학점으로 채우면 마치 그 때의 느낌이나 그때의 추억이 사라질 것 같아서……..
지금은 돌아가신 어머니이기에 그 D학점으로 더욱 그 기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고 싶은 나의 마음인지도.
( 이글은 좋은생각 책에 실린 저의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