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음을 앞두고.. 작별인사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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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두고.. 작별인사 하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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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을 앞 둔 사람에게 가장 중요한 과제들 중 하나는 남은 사람들과의 작별인사가 아닐까 합니다. 


돌아가신 부모님을 비롯해서, 
먼저 이승을 떠난 사람들과 죽음 전 작별인사를 하고 장례식에 참석해 온 기억들을 되살려보면, 
이 마지막 인사를 나누었던 시간이 가장 또렷하게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언젠가 이야기 한 적이 있지만, 
갑작스런 죽음이나 긴 혼수상태에 있다가 사망하는 경우가 아니고 사망 시기가 대체로 예측되어 있는 경우라면, 
임종 며칠 전에 친지와 친구들, 그리고 환자가 생전에 꼭 만나고 싶어하는 사람들이 차례로 초대됩니다

저는 죽을 때가 임박했을 때 누구를 꼭 만나고 싶을까 생각해 본 적이 있습니다.  

아직은 모르겠지만, 
아마도 제가 가장 마음의 상처를 많이 입혔거나 피해를 주었던 사람들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말하자면 say good bye 하기 전에 화해하고 싶은 사람들 말이지요

환자의 사망예측시기가 임박하면 병원에서 환자 가족들에게 미리 알려 줍니다
아무래도 죽음이 임박해서 만나는 사람들은 배우자와 직계가족들 일 것 입니다. 
Time to say good bye...... 가족들과 마지막 기억을 담는 순간입니다.

 

환자의 몸이 더 이상 링거 솔루션조차 받지 않게 되면 
환자는 병원에서 hospice로 옮겨집니

호스피스 병실은 병실이라기보다는 아담한 호텔객실을 닮았습니다. 
안락하고 쾌적합니다

마지막 장소에서, 
환자들은 가족들과 마지막 시간을 보내게 됩니다
음식은 물론 수분공급조차 종료한 상태의 환자는 갈증과 고통으로부터도 점차 해방되어 갑니다. 

환자를 돌보고 각종 수발을 드는 일은 가족들이 하는 게 아니라 호스피스 직원들과 자원봉사자들이 합니다
직원들이나 자원봉사자들이나, 
마치 천사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헌신적인 분들이 많습니다.  
슬픔에 치져있는 가족들이 하는 일은 환자의 남은 시간들을 곁에서 지켜주는 것 뿐 입니다. 

 

환자가 마지막 숨을 거두면, 
담당 간호사는 환자의 맥을 한참 짚고 있다가 사망선고를 합니다
영화나 드라마를 보면 환자가 사망하자마자 환자의 얼굴을 시트로 덮는데 그러지는 않습니다.

사망선고는 보통 호스피스에 근무하는 RN 이 합니다
사망선고를 꼭 의사가 할 필요는 없습니다
간호사는 옆에서 오열하는 유가족들을 위로하기도 합니다
유가족들의 어깨를 안아주며 조용한 목소리로 <let him(her) go peacefully.> 라고 말해 줍니다
이제 편히 가시도록 놓아드리라는 의미입니다. 

간호사의 사망선고가 끝나면 
호스피스 직원, 보통은 담당 간병 자원봉사자가 장미꽃 한 송이를 고인의 가슴 위에 놓아줍니다
고인이 머물렀던 층의 로비에는 실내등이 꺼지는 대신 어두운 밝기의 조명등과 촛불 두 개가 켜집니다

고인의 숨이 멈추고 나서 얼마 후

검은 색 정장 차림의 funeral service 직원들이 도착합니다.
그들이 운구용 카트를 밀고 나가면 
호스피스 직원들과 같은 층에 있던 방문객들, 그리고 다른 환자 가족들이 방에서 나와 엘리베이터 문 양쪽에 도열해 줍니다. 

직은 평상복 차림인 고인의 유가족들은 
호스피스 직원의 안내를 받으며 운구용 카트를 따라 운구차량이 대기하고 있는 호스피스 정문 앞까지 따라 나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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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모리얼 서비스와 하관예식을 주관하는 진행은 보통 성직자(clergy)가 담당합니다. 
사망자의 삶의 흔적들 가운데 의미 있는 사건들을 소재 삼아 교훈적인 이야기들을 많이 하는 편 입니다

어떤 사망자들은 <고별사>를 준비하는 clergy 들을 아주 애먹이는 수가 있습니다. 
고별사를 하는 성직자나 율러지를 하는 고인의 지인들이 얼굴을 붉히며 말을 얼버무리거나 횡설수설하는 일이 없도록, 
살아가는 동안 뚜렷하게 기록에 남을만한 착한 일을 율러지 10 분 분량이라도 하고 떠나는 게 좋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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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죽음과 작별인사를 주제로 이야기를 하게 된 계기가 있습니다. 

한 달 여 전 쯤 넷플릭스를 통해 처음 본 명작 아이리시맨을 

오늘 두 번 째 완주했습니다. 


세 시간 반 짜리 영화를 두 번 본다는 게 쉽지는 않은데, 
두 번 아니라 세 번, 네 번도 볼만한 가치가 있는 영화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 영화는 아이리시맨이라는 제목 아래 '어느 이민자의 삶과 죽음'이라는 부제를 달아도 괜찮을 것 같습니다.
미국 이민사에서, 1964 년 민권법 시행 수 십 년 전에 들어와 제도적 문화적 사회적 다중 인종차별을 당했던 대표적 에스닉계열이 있다면 아마도 아일랜드 출신과 이태리 출신 이민자들일 것 입니다. 
어메리칸 퍼스트 네이션(원주민)과 아프리칸 어메리칸(흑인)을 제외한다면 말이지요. 

오늘은 미국 근현대사의 이면을 몇몇 사람들의 삶의 궤적을 통해 그려낸 이 영화의 본래 주제에 대한 이야기는 생략하겠습니다. 
'죽음'에 대한 소소한 이야기로 대신합니다. 

사실 이 영화가 나에게 준 가장 강렬한 메시지는 미국 이민사라든가 마피아 같은 사회적 주제들이 아니라, 
바로 '한 개인의 죽음' 이었기에 그렇습니다.

이 영화에서 주인공의 죽음은 보여주지 않습니다. 
그 전에 영화가 끝나니까요. 
제가 가장 인상깊게 본 장면은 바로 이 마지막 장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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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세상을 함께 살아왔던 동료, 적, 은인, 배우자는 물론 변호사까지 세상을 떠나고 
딸들로부터는 버림을 받은 이 노인이 방문객(신부)에게 한 마지막 부탁은 나갈 때 자기 방문을 조금 열어놓아달라는 거 였지요. 

죽음을 앞두고, 작별인사를 할 사람이 하나도 없이, 진심으로 슬퍼해 줄 사람 하나도 없이, 
더 비참하게는 자신을 기억해 줄 사람 하나도 없이,   
폐쇄된 공간에 홀로 있는 것처럼 두려운 사실은 없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딱히 불행한 죽음이란 게 따로 있다면,  
기억해 주는 사람도 없고, 작별인사 할 사람조차 없는 외로운 죽음이라는 것에 공감합니다. 

악하게 살고 선하게 살고가 문제가 아니라,
지극히 자기중심적이고 이기주의적인 삶이 
그런 불행한 외로움을 자초했을 거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그렇고, 

영화 후반부에서 재미있는 장면이 나옵니다. 
아이리시맨 프랭크 시런이 자기 스스로 사후에 안치될 채늘하우스의 봉안당 번호를 고릅니다. 
그가 고른 번호는 1948 이였는데, 
문득 떠오는 게 있어 아일랜드의 역사를 검색해보니 1948 년이 이 나라에서 공화국헌법이 선포되고 영국으로부터 독립한 해 였습니다.

만일 내가 모국이 독립을 한 해를 봉안당 번호로 선택한다면 
나역시 프랭크 시런처럼 1948 번을 골라야 하는지
(1919 번은 아무래도 이상하고, 1945 번은 절대 아니고) 
내키지가 않고 찜찜하기만 합니다.     


사진 중 맨 아래는 영화 아이리시맨 스틸사진이고, 나머지 사진 세 개는 2012 년 5 월 10 일 모친 장례식날 제가 찍은 사진들 입니다.
죽음에 대해 이런저런 생각을 하다보니 7 년 전 사진첩에 들어가보게 되었습니다. 


 

12 Comments
비육지탄 2019.12.22 11:57  
이 모든게 필리핀님 때문입니다
'레저시커' 영화 한편을 티비에서 해주는 바람에 감상평 나누다가
즐겁고 행복해야 할 크리스마스와 연말시즌을 죽음과 이별 얘기로 채웁니다
필리핀님은 즉각 사과하시기 바랍니다 ^^;;
sarnia 2019.12.22 12:33  
죽음에 관한 이야기라기 보다는 ㅎㅎ
영화 아이리시맨 두 번 완주하고나서 떠오른 색다른  영화감상문이라고 해 두겠어요.
비육지탄 2019.12.22 13:16  
다른 영화들도 모두 같겠지만 특히 아이리쉬맨과 그린북은
조연들까지 모두 연기를 잘하는거에 새삼 감명 받았습니다.
대사하나 없는 주변인물 모두가 열연한다는 느낌이 강했어요.
예를들어 레스토랑 옆테이블 손님들까지 연기를 잘 하더라고요 ㅎㅎ
sarnia 2019.12.22 13:59  
스케일이 장대하면서도 소소한 대화들이 관객을 지루할 틈이 없이 만드는 영화죠.
이를테면 처키와 셀리의 생선에 관한 실갱이라든가 지미 호파와 토니 프로 사이의 자잘한 말다툼도 웃음을 자아내게 하고요.
참, 지미와 토니 이야기하자니 이 이야기를 안 할 수가 없네요.
한국어자막 몇 개가 엉터리인데,
그 중 압권이 you people 을 자네같은 사람이라고 번역한 것 입니다, (자네같은 사람들people like you도 아니고..)
You people 은 토니 말대로 ethnic slur 입니다. 자네같은 사람이라고 번역하면 안되고 너희 이태리 인종들이라고 번역해야 제대로 의미전달이 되지요.
그걸 무능한 공무원처럼 자네같은 사람이라고 번역해 놓으니 왜 토니의 분노가 폭발하여 주먹을 날린건지 알 수가 없게 되고요.
어쨌든 오랜만에 정말 재밌게 본 영화입니다 ^^
비육지탄 2019.12.22 14:21  
번역가가 무능한것이 아니라 시대적으로 쉬이 나올 수 있는 표현을
곧이곧대로 직역하여 인종차별적 표현이라며 물고늘어질
어리석은 대중을 미리 염려하여 벌어진 일이라고 생각하시죵 ^^
sarnia 2019.12.22 23:25  
‘어리석은 대중’ 말씀을 하시니 주제와 관계없는 이야기를 하나 하자면,
탄핵에 찬성한 미시간주 하원의원의 죽은 남편이 지옥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소리를 내뱉는 저 혐오스런 놈에게 열광하는 ‘묻지마 34 퍼센트’를 보면 ‘대중이 멍청하다’는 명제는 사실일 가능성이 높습니다. 
좌든 우든 관계없이 어리석고 멍청한 대중은 파시스트들의 좋은 먹잇감이기도 하지요.

아, 그리고 토니의 혐의 extortion 을 횡령이라고 번역해 놓은 것도 엉터리 번역입니다. 지미가 자기의 우아하고 신사적인 혐의 'fraud'(사기) 와 이태리 인종 토니의 저질범죄 extortion (폭력배들이 삥뜯는 행위)을 비교하는 말을 한 것인데 그걸 전혀 다른 종류의 죄인 횡령으로 번역해 놓으면 ,, ㅎㅎ
향고을 2019.12.22 18:53  
전 미리 아들에게 부탁을 해뒀지요,
죽으면 24시간후(이건 화장할수있는 조건이기에)
화장후 유택동산하라구요,
전 죽으면 불국토를 가고싶기에
가급적 빨리 화장처릴해달라는것이지요,
종합병원엘 가보면 코에 관을꼽고 연명을 하는걸볼때,
이건 고통연장일뿐이란 생각입니다,
스스로 움직일수없으면 최대한 빨리 하직하는게 최선이아닐까 생각해봅니다,
sarnia 2019.12.22 23:12  
이 영화를 보고 죽은 후 화장 대신 매장으로 변심한 사람들도 있다고 합니다.
주인공 시런이 채늘하우스에서 이런 말을 해요.
나보다 스마트한 사람들도 모든 것들이 어떻게 시작했는지 설명할 수 없을 거라면서, 화장은 모든 게 사라지는 거지만 묻으면 내 관과 시체가 거기에 있으니까 끝이라도 영원한 끝은 아닐거라는 ……
사라지고 잊혀지는 것을 극도로 두려워하는 자기를 표현한 말이어서 정직한 고백이지만,
어쨌든 드니로의 이 대사 덕분에 고급관이 많이 팔리겠어요.
관사러 갔을 때 그가 입었던 검은색 컬럼비아 재킷이 새삼스런 주목을 받듯이 말이지요 ^^
2019.12.24 01:59  
호텔방과 같은 호스피스 병실이란 말이 부럽고도 슬픕니다.

현재 대한민국에는 싸르니아님이 말씀하시는 호텔방과 같은 호스피스 병실에서 천사와도 같은 근무자와 자원봉사자들에게 마지막 죽음의 순간을 맞이할 수 있는 사람은 정말 극소수입니다.

한국에는 요양병원, 요양원, 실버타운이 있는데 약 10%의 노인들이 이런 시설에 수용되어 있습니다. 점차 늘어갈 것입니다. 그래서 우후죽순으로 이런 요양원이 생기고 있지만 시설은 아주 열악하고 그곳의 근무자들은 정말 나쁜 환경 속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이 민영화되어 있기 때문이죠. 요양원은 원장의 개인 이익을 위해 운영됩니다. 죽음을 가지고 돈을 버는 것이지요. 이런 민영화된 요양원이 없는 것보다는 낫겠지만 정말 비참한 생각이 드는 것도 사실입니다.

대한민국 여러분들은 늙고 병들어 요양원에서 죽음을 맞이하는 것을 좀더 현실적으로 볼 필요가 있습니다. 침대에 누워서 변이 가득찬 기저귀를 차고 몇 시간이나 누워 있어야 하는 노인들의 현실이 여러분의 현실이 될 수 있습니다. 죽음은 내가 선택할 수 있는 낭만적인 그 무엇이 아닙니다. 스위스에 가서 안락사를 선택하려면 그에 맞는 돈이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위스에 죽으러 가기 직전까지 어디에서 어떻게 사시겠습니까? 돌봐줄 사람이 없는데 병이 났다면, 혼자 더이상 요리할 수 없다면 어떻게 할 지 생각해야 합니다. 그리고 치매가 왔다면 돈이 있어도 스위스로 갈 수 있겠습니까?

국민연금 잘 붓고, 치매보험 들고, 그리고도 노후자금 관리 잘 하셔서 인간의 존엄을 지킬 수 있는 노후를 맞이하시길 빌겠습니다. 노후에 자신이 할 수 없는 일이 하나씩 생길 때마다 오직 돈이 그 자리를 대신해 줄 수 있을 겁니다.
sarnia 2019.12.24 10:00  
명님께서 죽음에 대해 가장 현실적이면서 핵심을 짚은 말씀을 해 주셨네요.
죽음은 사회적 행위이기 이전에 아무도 피해갈 수 없는 지극히 실존적인 운명같은 것이니까요.

안락사나 장기/신체 기증, 심지어는 영생(?), 이런 테마들도 충분한 의미가 있지만,
가장 먼저 다가오는 문제는 고통과 이별입니다.
이별이란 죽는 사람 입장에서는 세상 모든 것과의 이별이고,
남는 자들의 입장에서는 사랑하는 사람과의 영원한 이별이죠.

이 두 가지 피할 수 없는 운명적 과제를 통과해야 하는 생애 마지막 시간들을 어떻게 보내고,
사회는 그 시간들의 소중함을 어떻게 지켜줄 수 있는가, 이런 주제들이 먼저 떠오릅니다.
저 개인적으론 그래요.

대한민국 말씀을 하셨습니다만, 저는 한국의 노인(또는 종말단계 환자)복지 현실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호스피스나 요양시설이 어떤 방식으로 운영되는지 모를 뿐 아니라, 방문조차 해 본 적이 없으니 무슨 이야기를 꺼내는 것 자체가 무리입니다. 

다만 디모그래피가 절망적이라는 것은 들어서 압니다.
의료와 요양/노후복지 시스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싶어도,
사실 디모그래피 문제의 절벽 앞에서는 아무 말도 나오지 않습니다.
무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인구가 기하급수적을 줄어드는 것은 일단 나중 문제고,
당장 수 년 후 부터 노인인구가 비정상적으로 폭발하여 사회가 그 부담을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곧 이르게 된다는 이야기는 전문가들 사이에 이견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청년실업’ 이라든가 ‘아이낳아 키우기 어려워 출산을 못하겠다’고 징징거리는 소리만 요란할 뿐,
인구대책을 강구하고 있다는 소리는 별로 들은 적이 없습니다.
대책은 뻔한데 정치인들은 그 이야기를 '겁이나서 차마' 꺼내지 못하고 있을 뿐 이겠지요.

'출산도 기피하면서 동시에 이민도 절대 반대하는' 이 극단적인 이기주의적 대중들과 피투성이가 될 각오로 사회적 전쟁을 치를만한 배짱이 있는 정치인이 단 한 명도 없다는 게 좀 의외이기는 합니다.
서 너 명 정도만 있어도 좋을텐데 말이죠.

영화 이야기하다가 ,, 결국 엉뚱한 이야기를 하게 되었네요.
이런이름 2019.12.24 14:29  
이것도 모종의 싸인인가 싶을 정도로 죽음에 관한 글들이 연이어 올라 오네요. 아버님께 호스피스 케어를 받게 하라는 병원측의 조언(?)에 결국 그렇게 하기로 했습니다. 아직 병동입원까지는 아니지만 마음이 무척 무겁습니다. 노환이여서 별다른 방법이 없음을 알기에 받아드리는데는 문제가 없는데 항상 머리와 마음이 따로 움직이네요.
sarnia 2019.12.24 22:37  
그러시군요.
저의 경우 92 세 까지 건강하시다 갑자기 돌아가신 어머니는 병원이나 호스피스를 경유하지 않았지만, 그보다 좀 일찍 돌아가신 아버지는 호스피스에서 3 주 정도 머물렀습니다.
환자의 상태에 따라 호스피스를 선택하는 경우도 있고 병원의 palliative care unit 에 머무는 경우도 있는 것 같습니다. 

... 마음이 힘들었던 시간이면서도 또 가장 기억에 남아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의미있는 시간 함께 보내시기 바랍니다.

맨 위에 올린 사진은 어머니 장례식이었는데, 묘지에 들어설 때 제가 무슨 마음이들었는지 선도차를 정지시키고 내려서, 가시는 길의 마지막 사진을 찍은 장면이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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