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의 10대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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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음에서 펀글> 어머니의 10대 어록

도시기 6 378
이야기 #1

내 나이 10살때..
학교에서 돌아오자마자 마당으로 뛰어갔다.

마당에서 동네 아주머니들과 함께 땅콩을 털고 계셨던 어머니.
난 그 품에 뛰어들며 이렇게 말을 했었다.

" 난 세상에서 엄마가 제일 좋아.. ^^ "

그때 어머니.. 내게 하신 말씀...

" 그짓말 하고 있네.. 무슨.. 지금이야 젤 좋다지만 나중에 장가가고 새끼 낳고 나서도 이 에미가 제일 좋을라나.. "

저런... 내 나이 열살에... 초등학교 3학년인 내가..
대체 어무이에게 뭘 잘못한게 있다고..
한동안 말 없이 황당하게 어무이 얼굴만 처다볼때 또 하신 말씀..

" 허허.. 그게 불효가 아녀.. 그건 자연스러운 거여.. 자식 크면 다 짝 찾아 보내는게 순리고.. 난 니가 효도하는 것보다 니 아빠가 오래살기를 더 바래.. ^^ "



이야기 #2

대학 2학년이던 어느 여름(캬~ 벌써 4~5년전 이야기구나.. ㅎㅎㅎ)
군대 다녀왔고 복학을 했어도 지금 생각해도 그때의 난 참 순진했던거 같다.
여자 친구가 있어도 쑥쓰러움이 커서 길거리에서 손도 제대로 잡지 못했던 시절..

어느날 점심에 어머니 대신 설걷이를 하려 싱크대 앞에 섰을때 한사코 말리시며 건넨 말씀..

" 여자친구와는 잘 지내? "

" 네.. 잘 지내요.. "

" 근데. 아덜... 임신은 시키지 마시게.. "

허걱....
화기 애애하며 즐거운 이야기를 나누다 느닷없이 예고도 없이 툭하니 건내신 말씀...
순간 손이 미끈 하면서 접시 하나를 깰뻔 했다.

" 어머니.. 제가 어머니께 어떤 실망이라도.. 우째 갑자기 그런 말씀을... "
(땀 삐질..)

" 아냐 아냐.. 아덜이야 당연히 믿지... 내게 어떤 아덜인데..
근데.. 아덜은 믿지만 남자를 못믿어서 하는 소리야.. 명심하시게.. ^^ "



이야기 #3

아흔의 할머님이 병환으로 문밖 출입을 못하신지 오래되었다.
거동이 불편하셔서 어머니는 환갑이 넘으신 연세에 할머니 병수발을 하시게 되었다.

어느날 시골집에 내려갔을때 저녁상이 할머니 따로 차려 드리고 식구들끼리 식사하게 된 광경을 보고 난 어머니께 왜 그러시냐는 말씀을 드린적이 있다.

아마도 어머니께선 나의 그 질문이 오랫도록 가슴에 맺히셨나보다.
어느날 그 말씀을 하셨다.

" 내가 할머니께 그랬다. 손주는 잘 두신거 같다고.. 따로 상 차려 드린거 보고 뭐라 하더라고..
그런데 아덜.. 왜 엄마가 그렇게 할수 밖에 없었는지는 생각하지 못할까?
할머니가 대소변을 못 가리시니 내가 비위가 상해 식사를 못하겠더라고..
그래서 병원에 갔더니 당분간은 따로 식사하라길래 약먹으면서 그렇게 했던거야..

할머니를 모시는건 아빠도 아니고 고모들도 아닌 내가 모시는데 내가 힘들고 지치면 결국 할머니도 못 모시게 되는 거잖아..
내가 기력이 있고 편해야 남도 보살필수 있는건데 그저 교과서에 나오는 도덕책 마냥 행동만 따른다고 그게 효도라 생각하니?

효는 내가 억지로 짜내서 행동하는게 효가 아니라 마음으로 진정으로 편하게 대해 드리는게 효가 아닐까 싶네.
집안에 환자가 있다고 모든 생활이 그 환자에게만 맞춰진다면 결국 내가 불만이 쌓이게 되고 내가 지치게 되고.. 결국 나를 잃게 되면 그 누구도 지키지 못하는 거야.

난 시집 올 며느리보다 아덜이 더 걱정되어..
에미도 못 믿어서 이렇게 잔소리를 해 대는데.. 나중에 안사람에겐 얼마나 잔소리를 할까 싶은..

내 부모에게 하는게 맘에 안들을 수 있어.. 그래도 일단 믿어 주는거야.
니 눈에 못마땅해 보여도 그 사람은 최선을 다하고 있는 것일 테니깐...
차라리 노력하는 모습을 찾아서 칭찬해 주는 습관을 들였으면 하네...



이야기 #4

우리가족의 아침은 왜 그리도 빠른지...
꼭두 새벽에 일어나 들에 일하러 나가려면 몸은 천근만근이 된다.

그러나  꼭두새벽에 일어나는게 어렵지는 않다.
새벽이면 항상 어머니께선 내 방에 들어와 옆에 누우신다.
그리곤 간단히 담소를 나누다 어머닌 아침 밥을 하러 나가시고 난 옷챙겨 입고  출근 준비를 한다.

여느때와 별 다를꺼 없던 어느날 아침..
우연히 어무이 손금 이야기로 시작해서 가족이야기.. 결국 내 결혼 이야기까지 나왔다. (또 올것이 왔군...ㅜ.ㅜ)

" 어머니.. 솔직히 결혼 생각이 갈수록 없어지네요.. 솔직히 해야 겠다는 강박관념은 느는데 하고 싶다는 생각은 우째 안들까요.. 그리고 주변에 하도 이혼하고 바람난 이야기만 보다보니 결혼이란게 자신이 없네요... 호호호.. "

난 아침에 나누는 일반 담소처럼 가볍게 꺼낸 말이었는데.. 그렇게 맞아 죽는 분위기가 될 줄이야... ㅜ.ㅜ

" 사람은 근본만 있으면 되는거야.. 모르면 가르치면 되고.. 어찌 그리 꼭 맞는 사람을 만날 수 있을꺼라 생각해..
형제지간도 서로 안맞는게 있을텐데 하물며 평생을 다르게 산 사람끼리 어찌 그리 꼭 맞기를 바라는 거여..

아덜.. 우리 집안에 어떤 사람이 들어올까 하고 고르기 이전에 아덜이 그 집안에 아들이 되어 어떤 역할을 할 수 있을까 하고 고민해 본적 있어?
이 집안에 며느리가 하나 들어오기도 하는 것이지만 반대로 그 집안에 아들이 하나 생기는 것인데 아들은 그것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 본적이 있냐고.. "




자식된 입장에서 부모님께 당연히 사랑한다 말씀 드릴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당연히 존경한다는 말씀을 드릴수 있을까요?

얼마전 부모님이 다투셨다네요..
제가 결혼 못하는건 다 어머니 때문이라고 아버지께서 뭐라 하신듯..
자꾸 애 생각을 복잡하게 하니 쟤가 아예 결혼 생각을 못하는게 아니냐고...

에고 졸립네요..
아주 오랫만에 글 써보니 재밌네요..

어무이..
말씀 하나 하나 명심하겠습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
(어머니 너무 구박하지 마셔요.. 홍홍홍^^)
6 Comments
초록뱀 2006.05.26 14:03  
  훌륭하신 어머님밑에서 자라신 님..참 보고싶어지네요..
부럽습니다..
을영 2006.05.26 15:57  
  계속 좋은글 올려 주세요. 감사합니다.
새시 2006.05.26 22:58  
  정말 훌륭한 어머님이시네요...
폼츠껭크랍 2006.05.27 00:34  
  요즘에 보기드문 어머님상이시네요...맞습니다..진심으로 자식의 행복을 바라기에 강요가 아닌 스스로 우러나서 행동하길 바라는모습...이게 진정한 어머니상 아닌가 싶습니다. 요즘같이 자기자식 귀한줄만 알았지 ... 남을 배려하지못하는 부모들이 많은게 현실이거든요...착한 부인얻어서 꼭 효도하시기 바랍니다..너무 부담갖지마시고요^^
못된바보 2006.05.27 16:14  
  멋훗날,, 저도 당신의 어머니처럼 되겠습니다..
아리잠 2006.05.27 21:51  
  결혼 못하는건 다 어머니 때문이라고 아버지께서 뭐라 하신듯..
발끈 ㅡ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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