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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냥암꺼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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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길 8 292

제 아버지는 몰락한 양반 가문의 2대독자입니다. 충청도 보은이 고향이죠. 제가 어릴 때는 그게 엄청 큰 메리트인 양 그랬답니다. 충청도 양반인데...하고 자랑했죠.
멋도 모르고 저도 양반으로서의 품위를 지켜야 된다는 그런 의식을 갖고 자라났죠. 지금 와서 생각해보니 그게 영 나쁜 것만도 아닌 것 같았고요.
2대 독자가 되니 아버지께는 당연히 4촌이 없습니다. 고향에 6촌 형님이 한분 계셨지요. 그러니 제게는 당연 가장 가까운 형제가 8촌입니다. 그래서 어릴 때 8촌은 아주 가까운 줄 알고 자랐습니다. 뭐 양반은 16촌까지 서로 항렬을 헤아려 인사할 수 있어야 한다나요.
그렇지만 항렬을 알아 척분간에 제대로 처신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지 모르겠더군요.
제가 7살 때입니다. 아버지를 따라 완행열차를 타고 부산서 보은으로 여행을 갔습니다.
증기기관차를 타고 연착을 밥먹듯이 해서 가는데 제 기억으로 한 16시간 걸려 도착한 것같습니다. 새벽 5시 조금 지난 시간에 열차를 탔거든요. 근데 영동역에 도착했을 때 해가 뉘엿 뉘엿한데 거기서 보은가는 버스를 타고 집에 들어서니 완전 깜깜해진 것 있죠.
7촌 아저씨 댁에서 자고 아침을 받는데 아버지께서 그 아저씨 호랭이라고 미리 언질을 하셨거든요. 조심하고 있는데 아저씨가 수저를 들더군요. 그래서 이젠 됐구나하고 저도 젓가락을 들어 굴비 대가리를 향해 디미는데 눈에 별들이 왔다갔다 하는 사건이...
아저씨가 벼락같이 담뱃대로 저를 치시면서... 어른이 건드리지 않았는데 버릇없이 군다면서...결국 어떻게 됐겠어요. 아침이고 뭐고 아버지께서 그 집을 나오시더군요. 어린애가 뭘 안다고 때리냐면서...대판 다투시고요.
그 뒤로는 엄청 처신이 조심스러워지더군요.

6년 후에요. 제가 6학년 졸업하던 그 해 겨울 8촌 형님이 무슨 일로 부산에 와서 저의 집에서 하루 자고 가는데...어찌어찌 저를 예쁘다고 하다보니 제가 묻어가는 야그가 벌어졌는데요. 그래서 형님을 따라 고향방문을 단신 하게 되었습니다.
지금은 거울 보기가 부담되는데 그때만 해도 제가 꽤 귀여웠던 것 같습니다. 형님이 내내 저를 이쁘게 데려 다닌 것을 기억합니다. 그렇지만 나서기 전에 척분들을 만나면 어찌해야 하는지... 고민을 했습니다. 다행히 7촌 아저씨는 별세하신 뒤이지만...
어머님이 좋은 방법을 알려주더군요. 형님이 부르는대로 하면 된다. 형님이 형님이라 하면 너도 형님이고 형님이 조카라 하면 네게도 조카가 된다. 생각해 보니 딱 맞더군요.
먼저 형님이 대전으로 가더군요. 도마동이던가...근데 거기 사람들이 형님을 무지 반기고 친하게 대하는거예요.
형님도 어른들에게 어머니, 아버지라 하고 젊은 사람들끼리는 형님, 동생이라 하고...그래서 저도 무지 가깝구나 하고 넘겨짚고는...주무시는 어른 발에 불침도 놓고...
ㅎㅎㅎ 거기가 어디였을까요? 나중에 집에 와서 물어보니 사돈댁이라 하더군요. 그래서 척분을 헤아려보니...팔촌의 사돈이 되더군요.
거기서 이틀 있다가 서울로 올라갔는데...마침 제가 서울왔다고 그날 새벽 저를 위한 놀라운 퍼포먼스가 준비되었더군요. 바로 김신조무리가 청와대를 습격한 사건 말입니다.
새벽에 마포로 들어갔는데 총격전이 벌어지는데 총소리가 볼만 하더군요. 전쟁인가 싶어 정말 담요 뒤집어 쓰고 벌벌 떠는데 저야 재미있기만 하더군요.
어머니보다 2살 적은 8촌 누님께 학교선생님하는 딸이 있었는데...기억으로 아마 천사가 저런 모습일거야 했습니다. 얼마나 예쁜지... 그 분이 제게 조카가 되지요.
아저씨 서울왔다고 어린이대공원이던가...여기저기 구경을 시켜주더군요. 생판 처음 놀이기구를 신나게 타봤습니다.
거기서 다시 보은으로 내려갔습니다. 1주일 정도 거기 있었습니다. 서울서 용돈도 받았고 시골이 되니 먹을 것도 많고 고구마 구워먹고 홍시도 먹고 가게서 처음으로 라면도 사서 먹고 정말 꿈만 같은 시간을 보내었습니다.
이젠 집으로 돌아갈 시간입니다. 어쨌든 고향을 왔다가는데 양념이랑 잡곡들을 지닐만큼 준다고 주는데 욕심에 가지고 나섰지만 16시간 거리를 돌아가자니 꿈만 같습니다. 전화가 있습니까? 단지 전보로 언제 내려간다는 소식만 주고는 가는겁니다.
그 당시 깍정이라고 애들을 잡아가서 앵벌이시키는 일들이 참 많았습니다. 신신당부 조심하라는 얘기를 들은 터라 앞만 보고 내려가는 겁니다. 영동역까지 가다가 보따리 하나 버리고 열차타고는 겁이 나서 돈도 못 꺼냅니다. 누가 보고는 돈 빼았고 잡아갈까 봐서 10시간 이상을 쫄쫄 굶고 내려갑니다.
마침 옆에 중학생 누나가 앉아서 먹을 것을 약간 줬습니다. 예쁜 누나가 주는 것에 마음이 울렁울렁...나는 내심 미모 덕분에 이런단 말이야. 흐뭇해하며...그것뿐입니다. 먹은 거라고는...
대구에서 사과광주리 하나를 사고 그리고는 무사히 귀가하니...동네에서는 이몽룡이 과거보고 돌아온 것처럼 칭찬이 자자합니다. 춘길이는 영리해서 잘 다녀올 줄 알았다면서...

제 아명이 춘길입니다. 아마 봄에 나서 입춘대길을 줄여 쓴것 같습니다. 봄길이란 닉네임도 거기서 따온 것이고요.
오늘은 제가 만나는 분들에게 이름에 대해 얘기를 많이 할 것입니다. 이름을 자주 부르세요. 양자역학적 설명이 아니더라도 불러주기까지 세계는 우리에게 없는 것과 같다는 것 아세요. 그러니 이름을 자주 부르세요. 그리고 거기에 의미를 부여하세요.
여보, 고마운 당신, 내가 힘들 때 당신이 내게 있는게 얼마나 고마운지... 무엇보다 어머니...불러볼 수 있을 때 많이 부르세요. 전화로라도요. 짧막하게나마 의미를 새겨넣어 불러보세요.
그만큼 깊은 인격적 관계를 나눌 수 있으니까요.
어머니. 또 눈물이 나려하네요.

8 Comments
경기랑 2007.07.10 12:20  
  아~~~멋진 글에 감사드립니다
sFly 2007.07.10 12:43  
  ㅎㅎ
그런 심오한걸 이제 알았다는....
감사합니다.
봄길 2007.07.10 13:10  
  태사랑에서 제 글에 가장 확실한 팬 두 분이시군요. 맞는가?
근데 두분같기만 하면, 사람들 100명 중에 두분같은 분들이 한 명만 있다면... 제가 책을 써도 대박은 아닐지언정 쪽박도 안 찰 것같은데...
자신이 없네요. 글을 점점 더 정교하게 써야 될 것같습니다. 아직은 웜업 중이니까요. 진실하기만 하면 되면사 얼마나 좋겠어요.
종종 재능없음때문에 탄식한답니다. 얼마 안남은 것같은데...
덧니공주 2007.07.10 18:18  
  봄길님의 글을 보면요,,,,꼭 제가 좋아하던 "마당깊은 집"
의 향수를 불러일요켜요~ 몽실언니두 그렇구~
그래서,더욱더 정감이 간답니다......목가적인 풍경이
눈앞에 좌아악 펼쳐져서,어릴적 생각에 잠겨듭니다~
브랜든_Talog 2007.07.10 19:53  
  ㅎㅎ 정말 맛있게 글 쓰시네요 저도 펜클럽 가입할게요.
고등학교 시절 제가 모 대학교 부속 고등학교 다녔는데 그 대학의 총장님께서 매달 모이는 종친회 오셔서 숙부 어른 공부는 잘 되십니까 하면서 음료수 잔을 채워 주셨을 때 정말 당황했었죠 ''; 1년에 한번 거창에 문화제로 지정된 종가댁에 전국에 친척들이 모여서 제를 함께 하는데... 군수님도 항상 오시고, 몰랐던 역사 공부도 하게 되는 뜻깊은 자리였죠. 사람이 본을 모른다면 참 슬픈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충청도 아주 아주 양반 고을 입니다~ 하핫
나래송 2007.07.11 01:28  
  앗 충북 보은이 고향이세요??
태사랑에서 같은 고향사람을 만나다니~~ 이거 영광??입니다 ^^
봄길 2007.07.11 01:47  
  보은수재났을 때 동료들 15명이랑 1주일 수재복구하러 갔었죠. 고향이라고...
시골길 2007.07.13 00:31  
  입춘대길님~~ ^^ [[원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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