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국 작고...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결국 작고... 삼가 조의를 표합니다.

sarnia 3 761
 

=================
 

타이베이 중정기념당을 둘러 본 소감을 글로 남긴 적이 있다. 그때 이런 말을 했었다. 

 

세계관과 정치적 이념이 완전히 다른 사람이라도 왠지 밉지 않은 사람이 있다.

진보든 자유주의자든, 저기 앉아있는 저 사람(장제스를 말함)처럼 극우에 가까운 인물이든 마찬가지다.

왜 그럴까 이유를 생각해 본 적이 있는데,, 

이념의 좌우에 관계없이 삶의 자세가 일관되고, 

조무라기처럼 너절하게 행동한 적이 별로 없는 인물에 대해서는 혐오감정이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됐다.


중정기념당 주인공 장제스처럼 극우는 아니지만, 

미국 보수 본류 존 매케인 상원의원 역시 '미워할 수 없는' 보수주의자에 속한다.


그가 뇌종양으로 투병하다 유명을 달리한 지금

기억에 남는 장면 하나가 떠 오른다.


2008 년 미국 대선 당시 공화당 후보로 나온 그는 유세장에서 어느 노인 여성 지지자가 상대후보 버락 오바마를 가리켜 아랍계 무슬림이라고 말하자, 즉시 그의 발언을 중지시킨 후 "No, ma'am, Obama is a "decent family man, citizen, that I just happen to have disagreements with on fundamental issues." 라고 말했다. 


"이보세요, 아주머니 그게 아닙니다. 오바마는 미국시민으로서 가족적인 사람입니다. 단지 나와는 몇 가지 기본적인 이슈에서 견해를 달리할 뿐 입니다"라고 즉석에서 정정함으로써 자신의 유세가 선동적 네거티브로 오염되는 것을 저지한 것이다. 

존 매케인 후보가 이렇게 망설임없이 쿨한 정정을 하자 청중들은 기립박수로 그를 환호했다. 


존 매케인이 작고한 날, 보수와 진보를 막론하고 미국사회 전체가 전례없이 깊은 슬픔과 회한에 잠겨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것은 아마도,, 

2016 년 대선 이후 나라 전체가 봉숭아학당으로 전락해버린 미국사회의 절망적 그늘에 그 해답이 있을 것이다.     


Paul Manafort 의 유죄평결과 Michael Cohen 의 프리바게닝 유죄인정으로 도널드 트럼프가 중범죄 교사 및 국가반역혐의 수사대상으로 전환된 지금, 미국은 과거에 겪어 본 적이 없는 전대미문의 분열과 혼란 속으로 진입할 가능성이 더더욱 높아졌다. 


팻 뷰캐넌의 걱정대로 도널드 트럼프는 리처드 닉슨처럼 스스로 사임할 인간이 아니고, 오히려 어떤 경우에도 강력한 지지입장을 철회하지 않는 27 퍼센트 가량의 광적인 지지자들을 부추켜 미국의 기본가치와 민주주의 시스템에 폭력적인 반항과 도발을 감행할 것이 거의 분명하다. 


광적인 트럼프 지지자 중 하나인 어느 팍스뉴스 패널에게 이태리 이민자 출신 CNN New Day 호스트 Chris Cuomo가 일갈한 충고와 연설은 이제 미국 내에서 준동하는 모든 극우혐오주의자들에게 향해지는 단호하고도 거대한 외침의 물결이기도 하다. 그 충고와 연설의 마지막은 이렇다. 


...if you don’t like what America is, you leave. America does not need to become great again. She will only become greater by being more of what she already is.

 

('이민과 다문화는 우리의 정체성이고 미국의 전부다' 라는 요지의 기나 긴 충고를 한 후) 

이런 미국이 싫다면 네가 떠나라. 미국은 다시 위대해 질 필요가 있는 게 아니라, 이미 존재하고 있는 미국을 더 아름답게 가꿀 일 만이 남아있을 뿐이다. 


팍스뉴스 패널 따위가 문제가 아니라, 문제는 현직 대통령이다. 

 

도널드 트럼프는 더 험한 꼴 당하기 전에 스스로 대통령직에서 사임하고 미국을 떠나는 것이 그 자신과 가족을 위해서도 현명한 선택일 것으로 보이지만, 그는 결국 끝까지 버티며 그 나라를 혼란의 수렁으로 몰고 갈 것이다. 

 

작고한 존 메케인 상원의원은 유족에게 도널드 트럼프를 자기 장례식에 발을 들여놓지 못하게 하라는 유언을 남긴 바 있다. 

그 유언의 집행여부는 유가족에게 달린 것이지만, 

 

어쨌거나 보수주의 정치인으로서의 윤리와 원칙을 지키려고 노력하다가 이제 유명을 달리한 고인의 유가족에게 심심한 조의를 표한다. 

 

etc_29.gif?v=2etc_29.gif?v=2

 

99623E375B830D022E3C68

 

p.s. 이 조의표시 글을 두고 혹시 '당신이 어떻게 장제스같은 극우 정치인이나 매케인같은 전쟁광에 대해 호의적으로 쓸 수 있느냐는 아우성이 나올 법도 하지만, 사람 됨됨이에 따라, 그리고 때에 따라 느껴지는 감성의 방향은 여러가지일 수 있으니 너무 큰 소리는 내지 마시기 바란다.   

 


 

 

 

3 Comments
고구마 2018.08.27 21:23  
한때 대선후보에도 나왔던 유명인이라 그런지...우리나라 뉴스에도 나왔더라고요.
반대진영인데도 오바마케어 찬성했다고 하면서....
sarnia 2018.08.28 08:25  
도널드 트럼프가 여러 전선에서 후퇴하고 있다는 평가가 나오고 있군요. 나프타 협상이 순조롭게 진행될 조짐을 보이는 반면, 같은 주간에 코리아반도 평화가 제물이 될 위기에 봉착한 사실이 그가 게임에서 패배하고 있는 사태의 일면을 말해주고 있는 듯 합니다. 후자 문제는 대민방이 아니라 언급을 삼가겠습니다. 지난 주부터 도널드 트럼프가 생애최대 위기에 진입했는데, 아주 미묘한 시기에 트럼프를 가장 증오했던 보수주류의 상징 매케인이 사망한 게 참 드라마틱하기도 합니다.

향후 조미관계 남북관계에 관심이 있는 분들이라면, 그 주도권을 장악하고 있는 미국내부의 거센 변화를 주목하는 게 상황판단을 하는데 도움이 될 것 입니다. (대한민국의 주권은 누구에게 있는가 하고 비분강개하는 분들도 계시지만 주권과 주도권은 전혀 다른 개념이라서 말이죠)
sarnia 2018.09.02 06:28  
이 글을 여기 올려놓고 대민방에 가서 찾았네요.
후속글입니다. 여기에도 올립니다.

싸르니아는 기본적으로 국가주의자가 아니지만, 동부시간 오늘 오전 National Cathedral에서 열린 ‘국가주의자’ 존 메케인의 장례식을 보면서 그가 자신의 죽음을 도구로 사전에 기획했던 저 장례식이 혼돈의 미국을 원상복구시키는 앞으로의 대장정에서 작은 디딤돌 역할을 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미국은 부족주의-혈연적 민족주의 같은 조무라기 이념 따위로 유지되는 나라가 아니며 인류의 이상과 보편적 가치를 추구하는 나라라는 그의 마지막 유언같은 선언은 그가 죽음을 앞두고 어떤 생각으로 스스로의 장례식을 기획했는지 엿 볼 수 있는 말이기도 합니다.

의료진으로부터 사형선고를 받은 직후, 그는 자신의 과거 경쟁자이기도 했던 버락 오바마와 조지 W 부시, 그리고 빌 클린턴, 헨리 키신저에게 특별히 조사를 부탁하고, 마이크 펜스를 비롯한 현 정부의 각료들에게도 일일이 직접 전화를 걸어 초청하면서 정작 현직 대통령인 도널드 트럼프의 참석을 공개적으로 불허한 것은 자신의 장례식의 목표가 어디에 있는지 사전에 선포한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장례식에서 도널드 트럼프에게 직격탄을 날린 것은 가족 eulogy를 맡은 그의 딸 매간 매케인이였습니다.
 
"America does not boast because she does not have need to. The America of John McCain has no need to be made great again, because America was always great,"

이 장례식은 어느 개인의 장례식이라기보다는 마치 트럼프 현상이라는 악령이 맴돌고 있는 미국에 대한 엑소시즘이라는 느낌이 들만큼 기묘하고 비장한 분위기였습니다.

진중한 농담으로 좌중에게 폭소를 유도한 버락 오바마의 재치도 돋보였고 ,

이제는 무척 늙어보였지만 “He(매케인) respected the dignity inherent in every life…a dignity that does not stop at borders…detested abuse of power,” 라는 표현 등으로 트럼프를 공격한 조시 W 부시의 율러지도 장례식 분위기를 잡는데 한 몫 했습니다.

싸르니아는 매케인 개인에 대한 여러가지 인격적 칭송이나 비판에는 큰 관심도 없고 별로 귀를 기울이지도 않지만, 지금 미국이 당면하고 있는 내란적 분열국면에서, 그가 다른 것도 아닌 자신의 죽음을 활용하여 직접 연출한 이 극적인 드라마는 기록에 남을만한 장면이라고 생각하여 약간의 이야기를 해 보았습니다.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