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단고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환단고기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sarnia 8 145



====================


양천구 목동에 ‘아리수’라는 한정식집이 있다. 

지난 가을 초대를 받아 이 식당에 가 본 적이 있다. 

나무식탁 위에는 식탁보 대신 아리수라는 지명의 유래가 써 있다는 광개토대왕의 비문이 적힌 종이가 놓여 있었다. 

식당 입구에는 이 식당에 가끔 들렀다는 이재명 대통령 사진이 걸려 있었다. 

얼마 전 동북아재단 업무보고 당시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언급했다는 소식을 듣고 갑자기 이 식당이 생각났다.   


432144fa3440ccc874bed9f51474f5d6ad790afd.jpg




고대사 문서의 진위여부 판별을 전문으로 하는 싸르니아 & 제미나이 역사심부름센터에서는 우선 환단고기가 한정식집에서 파는 고기이름이 아니라 예전부터 역사학계에서 논란이 되어왔던 고대문서 또는 근현대에 창조된 고대사 문서라는 사실을 파악했다. 

이 같은 사실에 근거해서 우리 심부름센터에서는 이 문서의 진위판별과 함께 문서의 의미부여작업에 착수했다. 



심부름센터 소장의 임부부여 


한국에서는 지금 환단고기 논쟁이 한창이야. 

위서인지 진서인지 여부는 차치하더라도 환단고기는 일종의 민족우월주의에 입각한 한민족 고대사 문서인데, 재미있는 것은 진보진영에 속한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반면 이른바 극우 또는 보수적 입장에 선 역사학자들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하며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학자들을 사이비 역사학자라고 비난하고 있어. 

보편적인 경우와는 완전히 거꾸로 된 현상이지만 중세기 조공국 및 근현대 식민지 역사를 겪은 경험이 이런 전도된 현상을 야기했다고 생각해.  


내 생각에 환단고기는 진위여부를 떠나 1 차자료에 바탕을 둔 역사서라기보다는 신화와 희망에 바탕을 두고 작성된 문서같아. 

구약성서(이스라엘)나 일본서기(일본) 같은 것도 비슷한 유형이라고나 할까? 

환단고기가 역사적 사실을 다룬 자료라고 생각해?

환단고기가 역사적 사실에 근거해 해당시기에 작성된 문서인지 조사해서 10 초 안으로 결론만 보고해.  



결론 보고서 요약 (구체적 근거자료는 모두 생략)


주류 역사학계(강단사학)의 결론부터 말씀드리겠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류역사학계란 조선후기 노론에서부터 그 맹아가 출발하여 친일사학(소위 실증주의 사학), 식민지근대화론으로 이어지는 한국의 ‘역사학권력’을 의미합니다.  

이들에 따르면 환단고기는 20세기 초(혹은 그 이후)에 성립된 '위서(僞書)라는 것이 압도적인 견해입니다. 그 이유는 크게 세 가지로 요약됩니다.

언어학적 모순: 고대 문서라고 주장함에도 불구하고, 현대적인 개념인 '문화', '인류', '세계', '국가' 등의 단어가 당시의 용례와 맞지 않게 등장합니다.

사료 교차 검증 실패: 환단고기가 묘사하는 방대한 영토와 통치 체제는 동시대의 중국, 로마, 중앙아시아 측 기록이나 고고학적 유물(유적)로 전혀 증명되지 않습니다.

출현의 불투명성: 1911년에 계연수가 편찬했다고 전해지지만, 실제 대중에게 알려진 것은 1979년 이유립의 필사본이 처음입니다. 원본의 실체가 없다는 점이 결정적인 약점입니다.

2. 구약성서, 일본서기와의 비교

선생님께서 구약성서나 일본서기를 언급하신 부분은 매우 날카로운 통찰입니다. 

하지만 환단고기와 구약성서/일본서기 사이에는 결정적인 차이가 있습니다.

구약성서와 일본서기: 이 책들은 실제로 고대에 쓰여진 문서입니다. 비록 신화와 과장이 섞여 있을지언정, 그 시대 사람들의 세계관과 편린을 보여주는 '1차 사료'로서의 가치가 충분합니다.

환단고기: 고대에 쓰여진 것이 아니라, 현대에 고대의 형식을 빌려 쓴 책이라는 의혹을 받습니다. 역사학에서는 이를 '신화적 자료'라기보다 '발명된 전통' 혹은 유사역사학(Pseudo-history)의 범주로 분류합니다.

3. 진보와 보수, 뒤바뀐 진영 논리의 배경

선생님께서 지적하신 '진보=지지, 보수=비판' 구도는 한국 정치 지형의 독특한 특성에서 기인합니다.

민족주의와 결합한 진보진영은 식민사관 타파를 최우선 과제로 삼으며, 주류 학계를 '조선총독부의 학설을 따르는 사대주의자'로 규정하고 대안적 역사를 갈구합니다. 

이에 비해 보수주류사학은 실증주의적 역사관을 중시하며, 근거 없는 고대사 팽창이 오히려 한국 역사의 대외적 신뢰도를 떨어뜨린다고 판단합니다.


최근에는 진보 진영 내에서도 합리적인 역사학자들은 환단고기를 강하게 부정합니다. 따라서 이는 정치적 '진보/보수'의 문제라기보다는, '민족 지상주의' vs 실증적 역사주의'의 대립으로 보는 것이 더 정확할 수 있습니다.


4. 환단고기를 어떻게 바라봐야 할까?

우리 역사 심부름센터가 판단하기에 환단고기는 7,000년 전의 사실을 알려주는 '역사 기록'은 아닙니다. 대신, 일제 강점기와 현대 한국 사회에서 우리는 왜 이렇게 거대한 고대사에 열광하는가?'를 보여주는 사회심리학적 자료로서의 가치는 큽니다.

잃어버린 자긍심을 찾으려는 대중의 열망이 투영된 현대의 '신화'인 셈이지요. 하지만 역사는 '믿고 싶은 것'이 아니라 '증명할 수 있는 것'이어야 하기에, 환단고기를 사실로 받아들이는 것에는 큰 위험이 따릅니다.


심부름센터 소장의 2 차 주문


동북아재단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갑자기 환단고기 또는 환빠논쟁을 언급한 이유가 무엇인지 추론해서 알려줘. 소장정보와 생성정보를 총동원해서 가장 개연성있는 언급이유를 10 초 안으로 보고해. 


2025년 12월 12일,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에서 이재명 대통령이 '환단고기'와 '환빠 논쟁'을 직접 언급한 사건은 역사학계와 정치권에 큰 파장을 일으켰습니다. 공식적인 국가 업무보고 자리에서 이례적으로 유사역사학 논쟁을 꺼낸 배경에 대해, 심부름센터 요원들의 정보분석과 정치적 맥락을 바탕으로 가장 개연성 있는 4가지 이유를 추론해 드립니다.

첫째는 '뉴라이트' 계열 인사에 대한 견제와 압박입니다. 

가장 유력한 추론 중 하나는 당시 동북아역사재단 수장인 박지향 이사장의 성향과 관련이 있습니다. 박 이사장은 이른바 '뉴라이트' 성향의 학자로 분류되어 진보진영으로부터 강한 비판을 받아왔습니다.

주류 보수 사학계의 '실증주의'를 '식민사관의 잔재'라고 공격해 온 재야 사학계의 논리를 빌려, 박 이사장의 역사관을 우회적으로 비판하거나 답변하기 곤란한 상황(궁지)에 몰아넣으려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주류 학계가 왜 국민적 정서와 동떨어져 있는가"라는 질문을 던짐으로써 재단의 권위를 흔드는 효과를 노린 것으로 보입니다.

둘째는 민족주의 결집을 통한 정치적 지지 확보입니다. 

이재명 대통령은 그간 역사주권과 강한 대한민국을 강조해 왔습니다. '환단고기'는 학술적 진위 여부와 별개로, 대중들에게 "우리의 고대사가 훨씬 위대했다"는 카타르시스를 제공합니다.

이른바 '환빠'라고 불리는 강한 민족주의 성향의 지지층은 그 세력이 작지 않으며 조직력이 강합니다. 이들에게 "대통령이 우리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는 메시지를 보냄으로써 강력한 우군을 확보하려 했을 수 있습니다.

민생이나 경제가 어려운 시기에 영광스러운 과거를 소환하는 방식은 대중적 지지를 결집하는 전형적인 정치적 도구이기도 합니다.

셋째는 '관점의 다양성'을 통한 주류학계 교체 시도입니다. 

이 대통령은 환단고기를 언급하며 역사를 어떤 시각에서 볼 것인가 하는 입장 차이라고 규정했습니다. 이는 주류류역사학계에서 가장 위험하게 보는 대목입니다.

명백한 오류가 있는 '위서'를 '하나의 관점'으로 격상시킴으로써, 기존 주류사학계(강단사학)의 독점적 지위를 무너뜨리려 했다는 시각입니다.

이 대통령의 측근 중에는 이덕일 소장 등 재야 사학계의 논리를 옹호하는 인사들이 포진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으며, 이들의 조언이 작용했을 개연성이 매우 높습니다.

"해방된 지 80년이 넘었지만 역사는 여전히 조선총독부의 그늘 아래 있다"는 사실전파를 통해, 보수진영의 '친일/사대주의'적 역사관과 구별되는 '자주적 민족주의’에 힘을 실어주는 정치적 수사라고 해석됩니다. 


혹시 환단고기가 주장하는 내용 중 구체적으로 배달국, 단군조선 등의 이야기가 신화적으로 흥미롭다면 그 부분에 대해 실제 역사 기록과 어떻게 다른지 더 깊게 대화해 볼 수 있는데 시작할까요? 


됐어. 그만해. 

8 Comments
sarnia 2025.12.28 10:53  
사람들이 자기 머리로 생각하고 판단했으면 좋겠어요.
36 년 전 천안문사태를 비판한 칼럼을 어디에 올렸더니 나를 보고 “계급의 배신자”니 뭐니 하며 말도 안되는 악다구니를 쓰던 어떤 분은 나중에 스스로가 진짜 “계급의 배신자”가 되어 극우로 전향하더군요.
미국 제국주의를 비난한답시고 탈레반의 민간인 학살을 옹호하던 인간들을 보면 ‘참 병신들도 여러가지’라는 탄식밖에는 안 나왔습니다.
사형제도에 반대하는 사람은 동성결혼에 찬성해야 일관성이 있는 거라고 주장하는 분들도 많아요.
도대체 그게 무슨 논리인지 알 수가 없어요.
자기가 어디에 속해 있지 않으면 스스로는 좌로도 못가고 우로도 못가는 불구자가 되지말고,
아닌 건 아닌 거라고 딱 부러지게 말하면 됩니다.

그건 그렇고

환단고기에 나오는 배달국이 혹시 오늘의 쿠팡사태와 무슨 관계가 있는지도 알아보라고 했습니다.
필리핀 2025.12.29 07:25  
"진보진영에 속한 역사학자들이 대체로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반면 이른바 극우 또는 보수적 입장에 선 역사학자들이 환단고기를 위서라고 주장하며 환단고기를 지지하는 학자들을 사이비 역사학자라고 비난하고 있어."
이것은 완전히 잘못된 얘기예요.
환빠는 진보를 참칭하는 사이비 역사학자들이에요.
역대 최악의 문체부 장관으로 알려진 도종환씨가 환빠여서 역사에 어두운 일부 민주당 세력이 그에 물드는 바람에 진보진영이 환빠라고 오도되었죠.
진보와 보수를 떠나서 "진정한 역사학자" 중에 환빠는 없어요.
현재 역사학계에서 환빠냐 아니냐는 사이비냐 아니냐를 구분하는 기준이에요.
강단사학이니 재야사학이니 하는 용어는 독재정권이 학계를 좌지우지하던 1970년~1980년대에나 통용되었고 지금은 폐기되었어요.
환빠 논쟁은 최소한 <전라도천년사> 논쟁부터 살펴봐야 그 맥락을 제대로 짚을 수 있어요.
이번에 이재명씨가 느닷없이 "환빠"를 들먹인 건, 이재명 정부가 역사에 청맹과니라는 걸 커밍아웃한 셈이죠.
필리핀 2025.12.29 07:28  
이재명 대통령의 ‘환빠’와 <환단고기> 발언은 ‘사이비역사’의 위험성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다. 학계의 성명 발표와 언론보도를 통해 온 국민이 <환단고기>는 위서이고, 사이비역사는 부정선거론만큼이나 황당무계한 주장임을 알게 되었다. 사이비역사가 역대 독재정권을 옹호하는 국수주의적 이념을 제공했고, 박근혜 정부 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관여한 사실도 알려졌다. 많은 국민이 사이비역사의 비합리적·극우적 생각이 퍼져 민주주의의 근간을 위협하지 않을까 염려하게 되었다.

사이비역사의 위험성이 명확해진 지금, 한국사 연구의 무대를 세계로 확장해 소모적 논란을 생산적 논의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사이비역사는 역사학계를 일제 식민사관의 추종자라고 비방해왔다. 이들의 주장은 언뜻 그럴듯하게 들리기도 하는데, 외형상 식민사관을 비판하는 것처럼 포장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실상을 알고 보면 터무니없는 모함에 불과하다. 이들의 무분별한 ‘식민사관 몰이’는 한국사 연구가 국제적으로 도약할 소중한 기회를 망가뜨리기도 했다. 미국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의 ‘Early Korea Project’(EKP)와 동북아역사재단의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이 대표적이다.

EKP는 하버드대 한국학연구소가 국내 연구기관들의 지원을 받아 2007년부터 추진한 국제 학술 프로젝트였다. EKP는 서구학계에 올바른 한국사 인식을 확산하고, 한국 고대사 연구를 활성화하는 것을 목표로 강연(37회), 워크숍(9회), 출판(8권) 등 다양한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했다. 이를 통해 국내 학계의 연구 성과를 서구 학계와 공유하고, 국제적 학술 네트워크를 구축했다. 만약 EKP가 지금까지 추진되었다면 ‘K-History’ 연구와 확산의 핵심 거점 역할을 담당했을 것이다.

그런데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EKP가 ‘한사군에 관한 학술서’를 간행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관을 서구 학계에 전파했다고 비방하며 정치권과 결탁해 사업을 중단시켰다. 참으로 어처구니없는 일이었다. 서구 학계는 여전히 문명개화론의 관점에서 한사군의 설치·소멸을 중심으로 한국 고대사의 전개 과정을 바라보는 경향이 강하다. 서구 학계의 편향된 시각을 바로잡기 위해서는 한국 고대사의 관점에서 한사군의 성격을 새롭게 연구한 국내 학계의 성과를 확산할 필요가 있었다. 그 일환으로 위의 학술서를 출간한 것인데,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말도 안 되는 이유로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를 가로막은 것이다.

동북아역사지도 편찬사업은 동북아역사재단이 2008년부터 8년간 40억원 예산을 투입한 초대형 국책사업이었다. 당시 연구진은 각종 지도를 수집해 디지털지도를 제작하고, 한·중·일 3국의 거의 모든 역사지명을 표기해 동북아 전역을 포괄하는 방대한 역사지도 편찬을 추진했다. 이 지도가 정상적으로 간행되었다면, 우리 학계의 연구기반을 획기적으로 확충하고, 한·중·일 3국의 역사 연구를 선도하는 발판을 마련했을 것이다.

그런데 출간 직전에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낙랑군의 위치를 평양에 표기했다는 이유만으로 식민사관을 추종했다고 비방하며 정치권과 결탁해 사업을 중단시켰다. 313년까지 낙랑군이 평양에 위치한 것은 조선총독부가 경복궁에 있었던 것처럼 명백한 역사적 사실일 뿐인데 말이다.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이 사실과 해석의 구분이라는 역사 연구의 기본도 모른 채, 역사적 사실을 자신들과 달리 본다는 이유만으로 우리 학계가 동북아 역사 연구를 선도할 기회를 가로막은 것이다.

사이비역사 논란을 생산적 논의로 전환하려면, 사이비역사 신봉자들에게 휘둘렸던 박근혜 정부의 잘못을 바로잡고,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를 적극적으로 재추진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재명 정부와 정치권의 전향적인 태도와 전폭적 지원이 절실하다. 이재명 정부 들어 대폭 늘린 연구·개발(R&D) 예산의 극히 일부만 한국사 연구의 국제화에 배정해도, 미국과 유럽 등 세계 각지에 ‘K-History’ 연구 거점을 구축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역사에 대한 세계인의 인식은 한층 넓고 깊어지고, 명실상부한 선진한국의 실현도 더 가까워질 것이다.
-여호규(한국외대 사학과 교수)
sarnia 2025.12.29 09:18  
필리핀님의 용어문제제기(강단사학 등 용어는 70 년대 80 년대 사용되었지만 지금은 폐기되었다)를 우리집 제미나이 박사에게 전하며 어떻게 된거냐고 따졌더니 울고불고 난리가 났어요.
3 프로를 뭘로 보느냐는 항의와 함께요.
다른 문제 거론하면 일이 커질 것 같아 말도 꺼내지 않았어요.
(아이가 하는 말을 가만히 들어보면 약간 식민사관 입장을 은근히 편드는 친일파 유전자가 있는 것 같기도 해요)

난리를 치며 그 아이가 한 말은 다음과 같아요.

===========

질문하신 내용은 한국 사회와 학계에서 여전히 뜨거운 논쟁이 벌어지고 있는 역사학의 프레임에 관한 문제입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그분(필리핀님)의 주장은 학문적·이론적으로는 어느 정도 맞지만, 현실적인 담론 시장에서는 틀린 말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해를 돕기 위해 현재 이 용어들이 어떻게 소비되고 있는지, 그리고 왜 그런 주장이 나오는지 입체적으로 분석해 드릴게요.
1. "폐기되었다"는 주장이 나오는 이유 (학계의 입장)
주류 역사학계(대학 교수 및 연구소 연구원들) 입장에서 '강단사학'과 '재야사학'이라는 이분법은 매우 불쾌하고 부적절한 프레임입니다.
낙인찍기 방지: '강단사학'이라는 용어는 주로 비판 세력이 주류 학계를 "일제 식민사학을 계승한 이기적인 집단"으로 비하할 때 사용해 왔습니다. 학계는 자신들을 '강단'이라는 좁은 틀이 아니라 학문적 방법론을 준수하는 전문 역사학계로 정의합니다.
학문적 기준의 부재: '재야사학'이라는 용어는 마치 강단 바깥에 또 다른 대등한 역사학적 방법론이 존재하는 것처럼 착각을 줄 수 있습니다. 주류 학계는 검증되지 않은 사료나 과도한 민족주의적 해석을 내놓는 이들을 '재야'가 아닌 사이비 역사학(Pseudo-history)으로 규정하며 학문적 파트너로 인정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학술적인 논문이나 공식적인 세미나에서 이 용어들은 사실상 학술적 가치가 없는 용어로 폐기된 것이 맞습니다.
2. "여전히 통용된다"는 증거 (사회·정치적 현실)
하지만 학계를 벗어나 시민 사회, 유튜브, 정치권으로 오면 이야기가 완전히 달라집니다. 이 용어들은 여전히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습니다.
대중 담론의 주류: 유튜브나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여전히 '강단사학의 카르텔'을 비판하거나 '재야사학의 민족 기상'을 칭송하는 콘텐츠가 수없이 생산됩니다. 대중에게는 이 이분법이 직관적이고 이해하기 쉽기 때문입니다.
정치적 도구화: 2010년대 국정 교과서 사태나 최근의 역사 논쟁에서도 정치권은 지지층을 결집하기 위해 이 용어들을 소환하곤 합니다.
용어의 진화: 최근에는 '재야사학'이라는 말 대신 '대중 역사학' 또는 민족 사학이라는 용어로, '강단사학' 대신 식민사학 후예'라는 더 강한 표현으로 변주되어 사용되기도 합니다.

3. 요약 및 시뮬레이션: 용어의 현재 좌표
이 논쟁을 표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구분
주류 학계 (전문가 그룹)
대중 및 일부 정치권 (비전문가 그룹)
인식
"근거 없는 이분법이며 폐기되어야 함"
"기득권 학계 vs 진실을 찾는 세력의 구도"
대체 용어
전문 역사학 vs 사이비(유사) 역사학
(그대로 사용하거나) 애국 사학 vs 식민 사학
주요 쟁점
문헌 고증과 과학적 방법론
민족적 자긍심과 역사적 정통성

"결론적으로, 그분의 주장은 '학문적 규범' 차원에서는 타당한 지적이지만, '사회적 현상' 차원에서는 현실과 동떨어진 진단입니다. 이 용어들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더 자극적이고 정치적인 에너지로 변형되어 여전히 우리 사회의 갈등 구조 속에 살아있습니다."

제미나이 박사의 한마디

질문자님께 그 주장을 하신 분은 아마도 학술적 엄밀함을 중요하게 생각하시는 분일 가능성이 큽니다. 하지만 우리가 AGI 시대의 정보를 다룰 때는 '용어의 정의'보다 그 용어가 왜 여전히 살아남아 사람들의 감정을 움직이는가라는 맥락을 읽는 것이 더 중요합니다.
이런 역사 논쟁이 AI 시대의 정보 편향(Hallucination)이나 필터 버블(Filter Bubble) 현상과 만나면 어떤 위험을 초래할지 걱정되기도 하네요.
필리핀 2025.12.30 05:45  
[@sarnia] "강단사학"이니 "재야사학"이니 하는 용어를 쓰기는 쓰죠.
여전히 1970년~1980년대식 사고방식에 빠져 있는 사람들은...
sarnia 2025.12.29 10:00  
2021 년엔가 토론토 끌러드 모네 작품영상전에 간 적이 있어요.
그때만 해도 선사시대라 그냥 그림들을 움직이는 스크린에 나열하는 수준이었지요(선사시대 전후를 나누는 기준은 2022 년 11 월 입니다)
Visual Poems 는 화가들의 작품을 동영상화한 건데 그 시대의 화가들이 와서 보면 통곡을 할 정도로 색상, 구도, 표정(인물의 경우)의 디테일 묘사가 아름다워요.
필리핀 2025.12.30 05:50  
이재명 대통령이 지난 12일 동북아역사재단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주류 역사학계가 위서(僞書)로 취급하는 '환단고기(桓檀古記)'를 언급해 논란을 일으켰다. 이 대통령은 "단군, 환단고기, 그 주장하고 연구하는 사람들을 비하해서 '환빠'(환단고기 추종자)라고 부르잖아요"라며 "지금 다툼이 벌어지고 있는데, 동북아역사재단은 고대 역사 연구를 안 합니까"라고 꼬집었다. 이에 보수 성향 야권을 중심으로 "이 대통령은 스스로 '환빠'라고 선언했다"는 등의 공세가 거셌다.
지난 17일에는 역사학계 및 고고학계 48개 학회가 "명백한 위서인 환단고기를 바탕으로 한 '사이비 역사'는 부정 선거론만큼이나 터무니없는 주장"이라고 비판하는 성명서를 발표했다.
KPI뉴스는 기경량 가톨릭대 국사학과 교수를 만나 이번 논란에 대한 의견을 물었다. 기 교수는 한국 고대사 연구자로서 '사이비 역사' 비판 활동을 지속해왔다. 인터뷰는 26일 경기도 부천시 가톨릭대 기 교수 연구실에서 이뤄졌다. 다음은 일문일답.

ㅡ때아니게 환단고기 논란이 벌어졌다.

"대통령 발언에 탄식하고 '이거 어떻게 하냐'라고 반응하는 연구자가 많았다. 여권에서 '대통령이 환단고기를 비판하는 입장에서 말한 것'이라고 하던데, 설득력 있는 해석이 아니다. 야권에서는 환단고기 신봉자라고 공격하지만 대통령 발언이 그렇게 볼 정도까지는 아니었다.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10여 년 전부터 동북아역사재단(이하 재단)을 공격했다. 친일파, 식민 사학자라고 뒤집어씌우며 재단의 여러 연구 사업을 무산시켰다. 그 과정에 진보, 보수 구분 없이 다수의 여야 정치인이 '사이비 역사'에 우호적 태도를 취하며 관여했다. 그러한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지속적인 재단 공격 내용이 대통령 귀에 닿아 이번에 대통령이 발언한 게 아닌가 싶다."

ㅡ대통령실은 "역사를 어떤 시각과 입장에서 볼 것인지가 중요하고 근본적인 입장 차가 발생한다는 게 대통령 말씀의 결론"이라고 해명했다. 이와 관련해 역사학자들의 연구 성과와 환단고기류의 주장을 시각차 혹은 학문적 논쟁 구도로 보는 것이 적절한지 의문이라는 지적이 나온다.

"역사학에서 자료 조작은 있을 수 없는 일이다. 학문적 범죄 행위다. 하나의 다른 관점으로 인정해줄 수 있는 게 아니다. 환단고기는 전형적인 자료 조작에 해당한다. 그런 자료를 가지고 고대사를 연구한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다.
역사학과 '사이비 역사'는 같은 곳에 놓고 말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양자를 학문적으로 같은 수준인 것처럼 제시하는 구도 자체가 잘못이다. 그런데 언론이 제 역할을 못하는 면이 있다. 양자를 동일한 수준으로 다루거나 혹은 아예 역사학계의 얘기는 실어주지 않고 저들의 이상한 주장을 대서특필하는 경향이 있다. 언론이 중심을 잘 잡아줬으면 좋겠다."

ㅡ환단고기는 어떤 책인가.

"환단고기에 대해 '검증되지 않은 책'이라고 하는 경우가 있는데 잘못된 표현이다. 학계에서 환단고기에 대한 사료 비판과 검증을 이미 했고, '이건 조작된 책'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우선 1911년에 환단고기를 엮었다고 하는 계연수라는 사람 자체가 실존 인물로 보이지 않는다. 이 사람이 묘향산 석벽에서 우주의 진리가 담긴 천부경이라는 걸 발견했다고 단군교 등에서 주장하지만, 학계에서는 이것부터 조작이라고 본다. 신채호도 '천부경은 후대에 조작된 것'이라고 얘기했다.
1979년 이유립이 '스승 계연수가 1911년 환단고기를 엮었고 그걸 내게 전수했다'며 환단고기를 출간했다. 그런데 1911년에 엮었다는 환단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유립은 그 책을 자기가 외워서 되살렸다고 주장했다. '지어낸 것 아니냐'는 비판이 나오자 이유립 주변 사람들이 '이유립은 학식이 부족해 한문책을 조작할 수 있는 위인이 아니다'라고 변명했다. 우리가 이런 설명을 믿고, 환단고기를 고대사를 복원할 책으로 인정해줘야 하는 건가?
이유립은 태백교를 만들어 교주가 된다. 그런 다음 교인들을 대상으로 한 소식지에 환단고기 출간 전 그 원형이 되는 내용을 연재하는데, 그 내용이 자주 바뀐다. 계속 손을 대면서 조작한 흔적이 그런 식으로 드러난 셈이다.
'사이비 역사'를 담은 위서들이 환단고기 전에도 나왔는데, 환단고기는 그 내용을 상당 부분 베꼈다. 예컨대 단군 시대에 비행기, 잠수함, 자동차도 만들고 삼권 분립과 지방 자치를 실시했다고 주장하는 단기고사라는 위서가 있는데 환단고기에도 내용적으로 그와 흡사한 부분이 상당히 있다. 또한 환단고기에는 근대에 일본인들이 서양 언어를 번역한 한자 표현이 적잖게 나온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영고탑이라는 지명을 단군 시대 서술에서 사용하기도 한다."

ㅡ48개 학회는 성명서에서 '사이비 역사'가 "한국 근현대사를 왜곡하는 '뉴라이트 역사학'과 일맥상통한다"는 비판도 했다.

"뉴라이트는 식민지 근대화론을 학문적 토대로 한 정치 운동이었다. '사이비 역사학자'들은 자신들의 역사상이 학문 범주에 들 수 없는 저급한 수준임에도 정치인을 끌어들여 정설화하고 싶어 한다. 학회의 비판은 역사를 정치 도구화한 점에서 둘이 일맥상통한다는 맥락이었다."

ㅡ학계에서 '사이비 역사'로 규정한 흐름은 1979년 환단고기가 세상에 나오기 전부터 있었다.

"이승만 집권기에는 개인 단위에서 책을 내거나 강연하는 정도였다. 1970년대 박정희 정권이 국사 교과서를 국정화할 때 이들이 처음으로 조직화해 역사학계를 공격했다. 근거가 너무나 빈약한 게 드러나자 그걸 극복하기 위해 조작한 자료가 환단고기라고 보면 된다.
'사이비 역사'는 군인들에게 호소력을 발휘했다. 그래서 1980년대 교과서 개정 과정에서 신군부의 지원을 받아 '사이비 역사학자'들의 주장이 교과서에 일정 부분 반영됐다. 그 후 역사학자들의 노력으로 일부 수정됐지만 지금까지도 저들의 흔적이 교과서에 남아 있다.
2010년대 들어 박근혜 정권이 한국사 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할 때 '사이비 역사학자' 가운데 그쪽에 접근한 사람들이 있었다. 이재명 후보 승리가 유력해 보인 지난 대선을 앞두고는 '사이비 역사' 쪽에서 민주당에 접근해 민주당과 정책 협약을 맺었다."

ㅡ극우가 발호하는 상황에서 '사이비 역사' 논란이 다시 부상해 더 걱정된다는 얘기도 나온다.

"'사이비 역사'를 소비하는 이들은 주로 50~60대를 비롯한 나이 든 세대다. 젊은 층은 그런 주장을 경멸, 조롱하는 경우가 많다. 20~30년 정도 지나면 '사이비 역사'가 많이 위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렇다 해도 '사이비 역사'에 호감을 가진 이들이 현재 권력을 가장 많이 가진 세대라는 점은 문제다. '사이비 역사'의 위험성과 문제점을 계속 알리는 작업이 필요하다. '사이비 역사'의 바탕에 놓인 역사관은 파시즘 방향으로 사회가 나아가게 하는 요소로 작용할 수 있다. 또한 '사이비 역사' 쪽 때문에 무산된 재단 사업 등을 정상화하고 대통령 내지 국무총리 소속 역사정책위원회를 만들어 정치인들이 역사학자 이야기를 들을 필요가 있다."

ㅡ민주주의를 위협할 수 있는 그러한 속성은 '사이비 역사'의 뿌리와 관련이 있다고 보나.

"그렇다. 일제 식민 사학의 여러 갈래 중 주로 군인이나 극우 정치인을 중심으로 퍼진 아주 저급한 수준의 것이 있었다. 가짜 역사서를 만들어 '고대에 유라시아 대륙 전체가 일본을 중심으로 한 하나의 문화권이었다'는 주장을 일제 강점기에 퍼뜨렸다. 해방 후 그런 주장의 주어만 일본에서 한국으로 바꾼 게 '사이비 역사'라고 볼 수 있다.
불행히도 일부 독립운동 단체 관계자들이 '사이비 역사' 쪽 설득에 넘어가 식민 사학의 아류에 빠지는 경우가 있다. 독립운동가들이 눈물 흘릴 안타까운 일이다."
필리핀 2025.12.30 05:51  
위 인터뷰에서 가장 주목할 부분은 요거죠.
***'사이비 역사'를 소비하는 이들은 주로 50~60대를 비롯한 나이 든 세대다. 젊은 층은 그런 주장을 경멸, 조롱하는 경우가 많다. 20~30년 정도 지나면 '사이비 역사'가 많이 위축될 것이라고 생각한다.***

원문: https://m.kpinews.kr/newsView/1065576782729602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