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0년대의 추억 한 토막
1992년 설 연휴가 끝나고 나는 살림출판사에 출근했다.
살림에 입사해서 내 손으로 처음 만든 책이
양귀자 선생의 장편소설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이었다.
이 책은 역대 국내소설 중 가장 빠른 시간 동안 100만부를 판매했다.
하루에 3만부씩 몇 달을 팔았으니까.
5년 뒤, 살림을 그만 두게 되자
양귀자 선생은 당시 샘터사에서 갓 나온 자신의 산문집
<삶의 묘약> 속지에 이별의 문장을 적어서 내게 주었다.
서명일이 "96.11.20."로 적혀 있는 걸보니
그해 연말까지 살림에 다니기로 얘기가 되었던 모양.
1997년이 되어서도 회사 사정으로 차일피일 미루다
2월말쯤 살림을 그만 둔 나는 곧장 뉴질랜드로 떠났다.
그해 12월, 대통령선거 투표를 하기 위해 잠시 귀국했는데
(투표만 하고 다시 뉴질랜드로 돌아갈 생각이었다)
그날 대한민국은 IMF에 빠져버렸다.
정권 교체는 잘 이루어졌지만
환율이 800원에서 2000원으로 폭등하는 바람에
나는 출국하지 못하고 발이 묶였다.
1998년 초, 살림에서 콜이 와서 재입사했다.
새로운 편집장이 오기로 했는데
날짜가 어긋나서 공백이 생긴 틈을 내가 땜빵하게 된 것이다.
그해 여름, 나는 최종적으로 살림을 떠났고
떠나기 직전에 마지막으로 만든 책이 <모순>이다.
<모순>과 <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이 두 책이 요즘 역주행하고 있다기에 떠오른 추억^^
<삶의 묘약> 속지에 적혀 있는 이별의 문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