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행은 폼으로 하는 게 아니다..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여행은 폼으로 하는 게 아니다..

sarnia 25 1225

--------------------------------------------------------




이 연주곡을 듣고 도계역을 보면 떠오르시는 게 없나요? 


저는 가장 먼저 연이약국이 떠 오릅니다. 

Emblem of Unity 를 멋지게 연주해 낸 도계중학교 관악부 똘똘이들과 지휘자 이현우 선생도 떠 오릅니다.  


10 년 도 더 오래된 영화 '꽃 피는 봄이오면" 주인공들입니다. 

지난 번 사진 올렸던 카사블랑카보다 훨씬 재미있게 본 영화 입니다. 

저와 동시대 이야기고 문화코드가 유사하므로 공감디테일이 더 많아서 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니까 싸르니아에게는 카사블랑카보다

최민식 나오는 저 영화가 조금 더 "수준높은' 명작이었던 셈 입니다.  


갑자기 이현우 선생이 한 대사 한 마디가 떠 오릅니다. 


"음악은 폼으로 하는게 아니야" 

 


영화는 폼으로 보는 게 아니야

여행은 폼으로 하는 게 아니야

 

재밌고 즐거웠으면 그만 이지요





여행작가가 된 오스트리아 출신 저널리스트 카트린 지타는 자신의 저서 '내가 혼자 여행하는 이유'에서 

여행의 묘미가 탈 것의 종류에 의해서도 좌우된다는 말을 했습니다. 

그러면서 여행을 보다 분위기 있게 해 주는 여행수단으로 기차를 꼽았습니다. 

싸르니아는 이 말에 공감했습니다. 

 


기차 중에서도 '느림의 미학'을 느끼기 좋은 비둘기호를 타고 싶었는데, 

아쉽게도 한국에서 비둘기호는 사라졌습니다. 

대신 대한민국에서 가장 느리고 대중적인 기차라는 무궁화호를 탔습니다. 


그 여행작가 말대로 기차를 탔으니까 

국적도 모르는 생판 처음 보는 사람들과 마주 앉아 북적거리며 느림의 미학을 즐길 수 있을까요? 






느림의 미학은 어떨지 몰라도 북적거리는 만남은 처음부터 기대에 빗나가고 말았습니다. 

대한민국은 5대 기간산업을 산업포트폴리오로 모두 보유하고 있는 부자 나라라 그런 걸까요? 

무궁화호 같은 저렴한 기차는 인기가 없는 것 같습니다. 

싸르니아가 차량 한 칸을 전세낸 것 처럼 혼자 타고 가지 않은 것만도 다행이었습니다. 






서울에서 강릉까지는 자동차로 두 시간 반 거리 입니다. 

기차를 타고 가면 무려 다섯 시간 반이 걸립니다. 

두 배 이상 이동시간을 소모하는 셈 입니다. 


하지만 자동차 여행을 했으면 건질 수 없었을 옛 영화의 추억을 만났다는 것으로 만족했습니다. 

저는 도계 라는 강원도의 탄광마을을 처음 본 것 같습니다. 

삼척은 여러 번 가 봤지만 도계는 처음 입니다. 

영화 '꽃 피는 봄이 오면'이 아니었으면 이름도 생소한 탄광마을 도계를 관심없이 지나쳤을 것 같습니다.         






기차안에서 읽을 거리로는 아무래도 가벼운 소설이 좋습니다. 

소설이 아닌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스무 페이지 쯤 읽다 내던져 버렸습니다.  

대신 황석영의 장편소설 '해질 무렵'을 읽기 시작했습니다.  


읽을 거리보다 한층 더 중요한 건 씹을 거리인데, 저 군것질 거리들은 제가 산 게 아니고, 

누가 제게 '고국방문을 환영한다'며 선물로 준 과자들 입니다. 

오징어 땅콩은 원래 제가 좋아했던 과자입니다. 

노란색 봉투에 들어있는 것은 감자칩 이었는데. 

느끼하면서 달고 짠 특이한 맛에 말려들어 세 봉지 중에 두 봉지를 탈탈 털어먹었습니다.   




내일 하루쯤은 아무한테도 이야기하지 말고

혼자 

무궁화호타고 아무데나 훌쩍 떠나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요? 




 


25 Comments
구리오돈 2016.04.24 14:07  
여행의 묘미가 탈 것의 종류에 의해서도 좌우된다는 말.
자전거로 태국까지 왔던 여행이 가장 기억에 남는데요,
가장 힘든 여행이었는데도, 그때가 그립답니다.
때묻지 않은 사람들을 만날 수 있어서였겠죠.

화물차 일할때 다니던 동네가 나와서 반가웠고,
좋아하는 기차여행 이야기라서 또 반가웠고,
얼굴한번 뵌 적 없지만 익숙한 아이디가 반갑네요.
sarnia 2016.04.25 01:14  
굿모닝
구리오돈님 오랜만이예요. 지금은 한국에 다시 돌아오신 건가요?

수 년동안 태사랑에 글을 올리면서도 실제 얼굴 본 분들은 열 명 남짓 뿐 입니다. 서로 모르니까 더 조심하게되고 선을 넘지 않게 조심조심 예절을 지키면서 대화할 수 있어서 더 좋은 점이 있어요.

서로 얼굴도 모르는 온라인 게시판에서 상소리와 비아냥을 입에 달고 살고, 밑도끝도 없이 잘난 척을 crude 하게 반복해서 비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이해할 수 없는 행동양식을 지닌 분도 존재하긴 하지만 그것도 사람사는 세상에서 벌어질 수 있는 해프닝이려니 하고 수용하려고 합니다.

오랜만에 익숙한 닉을 보니 저도 반갑군요 ^^
남토 2016.04.24 14:29  
중학교때 무임승차 하다가 걸려 내린역이 도계역인데
ㅋㅋㅋ
옛 생각이 많이 나네요  글 감사합니다
sarnia 2016.04.25 01:15  
오, 전 걸릴까봐 겁이나서 무임승차 같은 건 해 본 적 없는데, 아쉽습니다 ^^

그런 추억들도 세월이 지나고나면 재미있는 이야기거리가 되곤 하는데 말이죠 ..
jindalrea 2016.04.24 14:44  
서너시간 전에 신랑한테 속초가서 회 먹고 오자하니, "속초가 뭐야?" 래요..

여행은 혼자가 좋은 거 같아요~~(TᆞT)

글구 허니버터칩이 입맛에 맞으셨다니 좀 의외시다 싶다가 마이쮸 보면서 웃었어요~^^

선물해 주신 분 센스 짱!!
sarnia 2016.04.25 01:27  
속초에는 대청항보다는 동명항에 은근히 알려진 횟집들이 많습니다.
특히 전복뚝배기와 물회......

봄 설악산은 가을에 비해 별로 멋이 없는데, 속초 동명항의 생선회는 늘 싱싱하겠지요.
전 생선보단 해삼과 멍게를 먹고 싶어요.

네, 여행은 혼자가 좋습니다.
여행의 가장 중요한 본질인 자유를 온전히 누릴 수 있으니까 말이죠.
자유 중 가장 중요한 자유는 시선으로부터의 자유인데
혼자 낯 선 곳에 가야지만 이런 모든 것을 해피하게 즐길 수 있지요 ^^
아프로벨 2016.04.24 14:49  
사진 컨택과 음악,
사진과 사진 사이에 반전이 있는 글.
사알니아님의 글은 언제나 정성이 느껴집니다.
사진작업과 글 내용이 연상관계선에 있는  음악을 고르는게 쉽진 않을테니까요.

저도 기차여행 좋아합니다.
리드미컬하게 흔들리는 기차의 차창에 몸을 기대고 picturesque scenery를 아무 생각없이 바라보는 것 만으로도
여행의 가치는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아쉽게도 한국엔 없지만, 중국, 태국, 말레이시아, 벳남등 국가엔 침대칸이 있어서
덜커덩 거리는 바퀴소리를 벗삼아 낭만적인 밤을 보내는것 또한 
기차여행의 매력이라고 생각합니다.

늘 건강하세요^/
sarnia 2016.04.25 01:16  
아프로벨님 , 안녕하세요.

한국에도 옛날엔 침대칸이 있어서 몇 번 타본 기억이 납니다. 특히 무궁화호..

이 기차 옛날 이름이 우등열차였지요. 새마을호와 특급 사이에, 제가 중3 때 인가 새로 생겼어요. 
제가 요금체계를 아직도 어슷하게 기억하는데 당시 서울 부산 새마을호가 4190 원 특급이 2170 원 이었고
새로 생긴 무궁화호가 3030 원 이었을 겁니다.
검색해봐도 찾을 수는 없는데 아마도 제 기억이 맞을 겁니다.

암튼 저 야간 우등열차에 침대차가 달려있었고,
콤파트침대차라고 불리던 독실칸도 있었지요.
그 때는 야간열차가 일곱 시간 (주간열차는 다섯 시간 삼십 분) 걸리던 때라 침대차가 유용하기도  했습니다.
노마의봄 2016.04.24 14:54  
얼마 전 청소년기의 이야기 배경으로 마포구를 얘기하실 때 굉장히 오랜만의 덧글을 달았었습니다. 저도 청소년기의 배경이 마포구였다고 말이죠.

오늘은 도계로군요.
언제였던가? 아마 국민학교 4학년 때로 기억합니다.
어린아이들 누구나 그러하듯 어금니 하나가 충치로 속이 몽땅 털리고 아버지 손에 이끌려 도계가는 택시(픽업 트럭 모양이었던 것으로 기억합니다)를 타고 한시간 넘게 산길을 꼬불꼬불 타고 가 치료하고 무려 금박을 씌워 돌아온 기억이 있습니다.
열살 남짓에 씌운 금니를 마흔이 넘을 때까지 입속에 고이 가지고 있었지요. 명의를 만났던 겁니다.

기억 속의 나이와 지금 나이와의 거리 만큼이나 멀게 기억된 도계가 이리도 가까운 거로군요.
참새하루 2016.04.24 17:04  
노마의 봄님 오랜만이예요
별일없으시죠?
네팔의 봄소식 전해주세요
노마의봄 2016.04.27 15:10  
덕택에 잘 있습니다.
네팔의 봄은 여느 때처럼 일주일 정도... 감 무딘 사람은 못 느낄 정도 머물다 휙 가버렸습니다.
네팔엔 약 여덟달의 여름과 석달 반 정도의 겨울, 그리고 일주일 남짓의 봄과 가을이 뚜렷합니다.
참새하루 2016.04.27 18:43  
잘계신다니 반가운소식이네요
저는 블로그 하는것도 시간 없다는 핑계로
안들어가다보니 휴면 상태 당했어요ㅠㅠ

네팔 지진참사이후
모든 사람들이 힘들텐데
어려운 시기가 빨리 지나가고
좋은날이 오겠지요
저도 언젠가는 안나푸르나 봉에 오르...
가 아니고
바라보면서 노마의 봄님 카페에서
커피마실날을 상상해봅니다
sarnia 2016.04.25 01:17  
네, 노마의봄님.. 기억납니다.

아마도 신촌시장 (지금은 현대백화점이 들어섬) 이야기 할 때 였지요.
동교동에서  사셨었다고 말씀하셨던가요. 
도계역을 몇 번 지나가 봤을 겁니다. 아주 옛날 태백선 야간열차 탔을 때.
주간에 저 마을을 본 건 처음 이었고, 그 영화가 생각났습니다.
미리 생각하고 계획했더라면 내려서 도계중학교와 연이약국도 찾아볼 걸 하는 아쉬음도 조금 생겼었지요.
참새하루 2016.04.24 17:07  
꽃피는 봄이 오면 최민식이 나오는 영화가 있었군요
sarnia님이 명작이라고 추천하시는 영화이니
어찌라도 구해봐야 겠다는 사명감이 불타네요

무작정 동해안 정동진행이
이  무궁화호 타고 가셨던 길이었군요

아직 찬바람 부는 햇살 날리는
도계역에서 잠시 추억에 잠기신 sarnia님의
바바리코트 입은 뒷모습이 상상되네요 ^^
sarnia 2016.04.25 01:19  
네, 참새하루님.. 저 영화 전혀 기대도 안하고 보기 시작했다가 끝까지 집중해서 보게 되었던 영화 입니다.
보는 사람에 따라 느끼는 재미는 다르겠지만 전 참 재밌게 봤습니다.
최민식, 연기 넘 잘하는 명배우라는 느낌이 들었고, 장신영 역시 신선하고 매력적인 인상을 풍겼었지요.
그런 영화들 있잖아요. 몇 번을 봐도 별로 지루하지 않은 영화,,
저 영화도 그런 영화 중 하나였는데, 도계역을 보니 정신이 번쩍 들 수 밖에요.
갈 때는 사진 찍는 타이밍을 놓쳤다가 올 때 마음먹고 찍었어요 ^^
참새하루 2016.04.28 16:48  
오늘 '꽃피는 봄이 오면'을 어렵게 구해서 봤습니다
나중에 구글에서 영화평을 검색해보니 유튜브에 이미 올라와 았더군요ㅠㅠ

구글로 흥행순위 100등 이런식으로 검색해봐도
나오지 않는걸로 봐서는
흥행은 못한 영화였나 봅니다
저도 처음 듣는 제목이라서
웬 이런 영화가 다 있었나 했습니다

어쨋거나 sarnia님 덕분에
정말 오랜만에 설렁탕 진하게 한그릇 먹은듯
찡하게 가슴을 친 영화를 감상했습니다

2004년 영화라 불과 12년전 영화인데
최민식이 어찌 저리 젊었는지
세월이 야속하게 느껴지기도 했구요

꿈과 현실에서 할머니의 병원비를 위해서
현실과 타협하는 현우
비내리는 탄광에서의 관악단 연주는 가슴 찡했구요

연주회의 우승이나 우연히 마주치는 그런
식상한 반전없는 담담한 전개

영화를 이끌어가는 힘은
역시 최민식의 과장없는 진솔한 연기력이었지만
가슴을 울린 힘은 '공감'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이 살아오면서 한번쯤은 겪었을법한
살아온 삶의 흔적들

오래동안 잊고 살았던 인간 본성에 대해서
다시 돌아보게한 한편의 영화

상처 입은 영혼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영화였습니다

좋은 영화를 추천해주신
sarnia님께 다시 한번 감사드리며
sarnia 2016.04.28 21:41  
아, 참새하루님, 그 영화를 보셨군요.
저하고 너무나도 똑같은 것을 느끼셨네요.

말씀하신대로 결말에 도계중학교 관악부가 대회에서 우승이라도 하는 장면이 나왔다면 정말 식상할 뻔 했어요 ^^ 
비내리는 탄광에서의 관악연주 ..
land of hope and glory 였나요?
정말 가슴 찡하는 장면이었지요.
처음 영화를 볼 때는 관악부 활동을 반대하는 광부 아버지를 설득하기 위해 아이들이 함께 연주하는구나 생각했는데 그게 그 이상의 의미인 것 같았습니다.
절망과 체념이 한숨처럼 깔려 있는, 비내리는 탄광에서 연주하는 '희망과 영광의 땅' 은 들으면 들을수록 잔잔한 역설적 감동을 불러일으키더라고요.

그 영화가 2004 년 작품이었군요.
정확한 제작년도는 몰랐고, 대층 그 시기 작품이라는 것만 알고 있었습니다.
탄핵사태가 있었던 그 암울과 희망이 교차했던 시대에 이 영화가, 상처입은 영혼들에게 작은 위안이 되었으리라 믿습니다. ~~ ^^
COCONA89 2016.04.24 19:26  
사진 엄청이쁘게 찍히네요!!! ㅎㅎㅎㅎㅎ
sarnia 2016.04.25 01:20  
사실 미세먼지 때문에 사진이 예쁘게 나오지는 않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에서 찍은 사진들을 가꾸고 화장할 때마다 제 뽀샵예술가로서의 실력이 발군의 향상을 거듭하곤 한답니다 ㅎ
필리핀 2016.04.25 07:12  
여행은 폼이 아니다...

하지만 스포츠는 폼이 제일 중요하다고 하지요~ ^^

입맛이 애들 입맛이네요...

저는 꽈자 거의 안 먹는데... ^^;;;

저도 텅빈 기차 타고 여행하고 싶어요... ㅠㅠ
sarnia 2016.04.25 08:33  
선물하신 분의 성의도 있고,
담배를 피우지 않는지라
과자를 일부러 사 먹지는 않되
있으면 먹기는 합니다.
심심할 때 먹으니 괜찮습니다.
다만 연양갱하고 마이쮸는 너무 달더군요.
어랍쇼 2016.04.25 16:52  
글을 읽다보니..
진짜 혼자 훅 떠나고 싶어지네요.
사진 안찍고 핸드폰 안보는 그런 여행요.

근데 5시간반은...방콕가는 시간이네요 ㅠㅠ
sarnia 2016.04.26 08:50  
그래도 남기고 싶은 장면 있으면 사진으로 보관해야지요.
다만 본말이 전도되어 사진 찍기 위한 여행은 안하고 싶어요.
제가 올리는 사진 숫자가 적고 별 특별한 게 없는 이유도 웬만하면 카메라를 꺼내지 않기 때문이지요.
배낭 뒤에 있어서 꺼내기 귀찮기도 하고요.
명상하면서 가세요.
비행기나 차하고는 달리 기차는 오래 타도 별로 피곤하지 않습니다.
해랑사 2016.04.26 10:34  
좋은 글과 사진 잘 보았습니다.
sarnia 2016.04.26 12:56  
고맙습니다 *^^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