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 시간 비행 피로를 날려버린 기쁨의 순간들

홈 > 커뮤니티 > 그냥암꺼나
그냥암꺼나
- 예의를 지켜주세요 / 여행관련 질문은 묻고답하기에 / 연애·태국인출입국관련 글 금지

- 국내외 정치사회(이슈,문제)등과 관련된 글은 정치/사회 게시판에 

그냥암꺼나2

40 시간 비행 피로를 날려버린 기쁨의 순간들

sarnia 9 1308



--------------------------------------------------------





왕복 40 시간에 가까운 비행은 중노동임에 틀림없습니다.

장거리 비행을 하고 나면 생체리듬이 깨지면서 컨디션이 안 좋아지는 증상이 나타나곤 합니다. 


인두염과 고열을 동반한 감기 몸살과 함께 발목이 붓는 바람에 

가고 싶지 않은 곳 안 가도 될 좋은 핑곗거리가 생겼다는 사람도 있지만, 


저는 그 정도는 아니고, 기침이 조금 나고 에너지가 소진되는 증상을 느낍니다. 

입맛도 떨어지는 편 입니다. 


이 날도 아침에 김포공항 근처에 있는 호텔에서 출발할 때 먹은 두유와 과일, 샌드위치 한 쪽. 

도쿄로 오는 비행기 안에서 아침식사로 먹은 연어조림과 샐러드를 곁들인 모밀국수 기내식, 

신주쿠에 있는 백화점 지하 식품부에서 맛 본 튀김 두 개와 생크림 케익 한 쪽 이외에는 

해가 질 때 까지 오후 내내 먹은 게 거의 없을 정도로 몸 상태가 안 좋았습니다.    




 


 



그래도 먼지하나 없이 반들반들한 뒷골목길 바닥을 걸으면 기분이 상쾌해집니다. 

어느 나라 어느 문화에나 나름의 특징과 매력이 있습니다. 

차분하고 정돈된 분위기는 이 도시를 요약해서 나타내주는 표현이라고 생각합니다. 

누가 나에게 도쿄에서 받은 인상을 한 마디로 표현해보라고 요구한다면 이렇게 말하고자 합니다.

"도쿄는 차분한 도시입니다" 라고. 


서울이 서울 나름의 사랑스런 매력이 있고, 

방콕이 오라오라병을 일으킬만큼 방콕 나름의 다이내믹한 흡인력이 있듯이,

도쿄 역시 도쿄 특유의 장점이 있습니다. 


여행이 선사하는 최대의 선물은 

사람사는곳마다에 내재되어 있는 다채로운 지혜들과의 만남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여행에서 얻는 경험은 brief 한 대신, 기억이 강렬하고 오래갑니다. 

거기에는 늘 새로운 만남이 있기 때문입니다. 


영국 역사가 Arnold J. Toynbee 가 "20 세기 최대의 사건이 무엇이라고 생각하느냐" 는 기자의 질문에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 이라는 답을 했다는데, 

이 말은 4 세기 이래 좀 답답하고 띨띨한 교리로 일관해 온 기독교가 계몽주의 시대 이후 탈출구를 못찾고 가로막힌 장벽 앞에서 머리 싸쥐고 왔다갔다 하다가 불교를 만나는 바람에 '잃어버린 반쪽'을 찾은 듯 기사회생할 수도 있게 됐다,, 

뭐 이런 식으로 해석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이 영국 출신 역사가는 서양인의 입장에서 기독교와 불교의 만남을 

마치 흥남부두에서 헤어졌던 덕수와 막순이 남매의 만남만큼이나 감격적인 사건으로 받아들였던 모양입니다. 


어쨌든 


두 종교, 또는 동서양 두 문화의 massive 하고도 rapid 한 만남이 가능할 수 있었던 것도 

의미있는 대규모 국제 여행이 가능해 졌기 때문입니다. 


태초에 말씀이 있었던 게 아니라 존재가 먼저 존재(?)했듯이

만남이 먼저가 아니라 여행이 먼저 있었습니다. 


그 의미있는 여행, 문화간의 만남이 가능할 수 있게 된 것은

비행기라는 획기적인 교통수단이 대중화되었기 때문일 것 입니다. 

 

마치 존재가 빅뱅이라는 이동수단을 통해 시간과 공간으로 여행이 가능해짐으로써 존재의 형태와 의미를 가질 수 있게 된 사건과 비슷하다고나 할까요? 


20 세기 벽두에 등장한 비행기 

그 중에서도 특히 여객기의 공로는 이토록 엄청난 것이니만큼 

또 토인비가 (여객기 때문에 라는 말은 안 했지만) 기독교가 불교가 만난 게 그토록 역사적인 일이라고 하니, 

교회나 사찰에 있는 십자가나 불상 위에 뚱뚱하고 조그마한 모형 비행기를 걸어놓는 것도 지혜로운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왜 성직자들은 이런 기발한 생각을 못 하는 것일까요? 




 








 


 


 




도쿄 지하철은 치매 예방에 효과가 뛰어난 것으로 소문이 자자합니다.   




 


 



집으로 돌아가는 길 입니다. 

쓸쓸할 정도로 텅 빈 이별의 하네다국제공항과 작별인사를 나누고

곧 밴쿠버로 가는 NH 116 편에 탑승하겠습니다. 





동서양의 massive-rapid 한 만남을 가능케 해 인류문명의 차원을 업그레이시켜 놓은 비행기. 


돌아와서 뉴스를 보니,

캐나다는 내년 2 월까지 2 만 5 천 명의 시리아 난민들을 새 식구로 받아들이기로 했다는데, 

이렇게 짧은 시간 동안 이토록 많은 수의 난민들을 새 식구로 모셔올 수 있게 된 것도 

비행기가 없었으면 가능하지 않았을 것 입니다. 


여기서 잠깐 기왕에 나온 시리아 난민 이야기를 하자면, 

원래는 연말까지 입국심사를 끝내기로 했다가 

파리테러 이후 심사를 강화하라는 의견이 대두되어 심사기간을 두 달 정도 늘려잡았다고 합니다. 


일부에서는 숫자가 너무 많지 않느냐? 가령 IS 탄생에 직접적 원인을 제공한 2003 년 3 월에 개시된 제 2 차 이라크 전쟁, 그 저주스런 전쟁에 참전한 Korea 라는, 나라도 딱 세 명의 난민만 받았다는데, ( + 준난민 임시체류자격 135 명) 

더구나 진짜 똥싼 넘 미국은 애당초 받기로 했던 만 명 조차 안 받으려고,,

요르단에 떠넘기고 돈이나 몇 푼 쥐어주자는 식으로 온갖 해골을 굴리고 있는데,

그 전쟁에 참전하지도 않은 우리가 왜 2 만 5 천 명을 정식 영주난민으로 떠 안아야 하느냐? 는 질문도 나오고 있습니다만,, 


어쨌든 2 만 5 천 명을 받기로 한 최초결정은 변하지 않았습니다.  


참고로 1975 년 베트남 통일 이후 받아들인 약 6 만 여 명의 베트남 난민들과 그 2 세들은 

이후 캐나다 사회에 큰 공헌을 한 성공적인 난민케이스로 정평이 나 있습니다. 

물론 그들 중에는 패망한 남베트남 독재정권에 빌붙어 호사를 누리다가 금괴를 싸들고 난민들 속에 끼어 들어 온 작자들도 있지만, 

어쨌든 대체로 우수한 인재들이 많았다고 합니다. 


난민심사를 받는대로 곧 입국할 2 만 5 천 명의 시리아 이주민들 역시 

훗날 성공한 난민 케이스로 평가받게 되기 바랍니다. 


난민 이야기가 주제가 아니고 여행과 비행기 이야기가 주제였습니다. 

  


9 Comments
zipper 2015.11.29 14:06  
어찌됐든, 2만5천명의 난민은 캐나다라는 좋은 곳에 안착을 하게 되는 행운을 얻었네요.
어디서나 줄을 잘서야 하는 것 같아요.
sarnia 2015.11.30 01:16  
경기가 안 좋아서 초기정착과정에 어려움을 겪을 지도 모르겠습니다. 어쨌든 취약그룹으로 분류되어 우선 영주권이 발급된 여성가장 패밀리, 전쟁고아, 성소수자  등 1 천 명 가량을 시작으로 난민수용소가 있는 레바논 출국절차가 완료되는대로 군용기와 전세기를 보내 데려올 계획이라고 하는군요.
참새하루 2015.11.29 17:40  
massive-rapid 한 양대 사상과 문명의 만남이
비행기라는 단순하면서도 심오한 답을 내시는
sarnia님의 답변에는 늘 저의 감탄이...

sarnia님이 만약에 국회로 가신다면
우리 답답한 현실의 엉킨 실타래도
명쾌한 칼로 한방에 잘라버리지 않으셨을까
상상해보네요

참 마음씨 고운 캐나다 국민들입니다
일리노이주는 민주당 주임에도
만성적자에 허덕이다가 난민거부를 했다네요

결국 난민 = 비용이니 뭐라 할수도 없지만
우리나라는 좀 심했지요 3명...

40시간 비행피로를 날려준 기쁨의 순간들이... 이라는 제목의 답은
무얼까 아래 위로 스크롤하다가
그 도쿄의 사진들을 보면서 이해를 하였습니다
도쿄의 시내를 거닐고 전철을 타면서
여행의 즐거움을 만끽하는 순간이 바로 답이네요
sarnia 2015.11.30 01:20  
제 2 차 걸프전쟁 (2003 년 이라크 침공)에 참전한 나라들이 시리아 난민문제 해결에 우선적 책임이 있다는데는  이의가 별로 없을 거라고 생각합니다. 미국 영국 호주 폴란드 같은 나라들이 바로 그들이고 그 불명예스런 참전국 명단에는 불행하게도 대한민국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세 명 만 정식난민으로 인정했다는 건 이해가 안 가는 일이죠. 한국의 난민수용정책이 이상한 이유는 이민과 다문화에 대한  특유한 폐쇄적 정서에서 기인한다고 보는데,  점차 변화가 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네 ^^ 도쿄의 거리와 사람들은 왠지 맘을 넓고 편안하게 해 주는 묘한 매력이 있는 것 같습니다.

참새하루님께서도 잘 지내시죠?
sarnia 2015.11.30 01:21  
조직과 재정의 뒷받침을 받는 전문 테러리스트들은 난민으로 가장하지 않더라도 얼마든지 다른 방법으로 출입국을 할 수 있을 것 입니다. 캐나다 정부의 입장은 분명한데, 테러리스트 입국을 막기 위해 난민입국을 지연하거나 봉쇄하는 것은  별 실효성도 없이 하루빨리  resettle 이 필요한 난민들만 골탕을 먹일 거라는 비교적 정직한 판단을 고수하고 있습니다 .

저는 개인적으로 ‘어떤 요인을 먼저 난민수용정책에 반영시킬 것인가’ 에 대한 캐나다 정부의 판단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미국 정부역시 캐나다 정부의 입장이 내심 옳다고 판단하고 있기 때문에 별 이의를 제기하지 않는 것 아닐까 생각합니다.

미국과 캐나다는 양국 시민과 영주권자들에 대해 상호국경을 개방하고 있는 것이나 마찬가지의 출입국정책을 운영하고 있기 때문에,  만일 미국정부가 대규모 난민의 캐나다 영주입국에 다른 판단을 하고 있다면 벌써 강력한 이의를 제기했을 것입니다.
jindalrea 2015.11.30 13:08  
쌤.. 저랑 만난 기억에 대해 한 줄도 안적어 주시다니.. 흥! 흐흐흐~~
다음엔 더 임팩트 있는 만남이 되어야 겠어요! 사진도 쫌 박고요~~ ^^

베트남 무이네가 가고 싶어 졌어요. 나트랑이랑요..
사실, 가면 되는데.. 가서 딱히 뭐 할 건 없고, 막상 가서는..
필리핀이나 태국이나 베트남이나.. 여기인들 저기인들.. 할 것도 같고.. 그저 잠이나 퍼 잘 것 같기도 한데..
그냥 문득 가고 싶어졌어요..

(그러고 보니, 파리에 있다는 누구도 저랑 비슷한 취향인 듯..)


달력은 달랑 한 장.. 연말인데, 캐롤 들을 기분은 안나고, 스크루지만 떠오르는.. 고약한 기분이 들 때마다..
주신 커피 맛있게 먹고 있습니다. 향도 맛도 좋아요~~ ^^b
sarnia 2015.11.30 13:26  
하이 제이,,
이야기 아직 다 안 끝났음요^^
고구마 2015.11.30 17:09  
늘 글과 사진 잘보고 있습니다.
사실 한일양국간의 관계가 그다지 편하지 않은 상태라 좀 글치만...
전 일본특유의 그 정돈된 분위기 정적인 분위기는 개인적으로 참 매력있었어요.
그나저나 편도 20시간짜리 여행이라니...
전 제일 길게 타본게 12시간이었는데, 그것도 정말 미치고 팔짝 뛰겠더라구요.
하여튼...집으로 가는 길은 진짜 말로 다못할 편안함이 느껴져서 좋아요.
sarnia 2015.12.01 10:17  
고구마님께서 타 본 12 시간은 아마도 LA 가는 UA 가 아니었을까 추측됩니다 ^^
저는 미주노선 UA 는 타 본 적 없고, 2 년 전 나리타와 인천 왕복을 타 본 적은 있는데, 좌석간격이 좀 좁더군요.
비행기는 새 거 였지만 장거리 노선에는 맞지 않을만큼 좌석이 좁았습니다. 기내식도 샌드위치 한 개만 주고..
그래도 조종실과 각국 관제간에 오가는 무선통신을 들을 수 있도록 개방해서 그걸 들으며 지루하지 않게 비행할 수 있었던 기억이 나요 ..
제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