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 강제로 인천공항에서 노숙한 썰ㅠㅠ
때는 2017년 2월 마지막 주의 어느 날...
2개월에 한번은 외국바람을 쏘여줘야 숨통이 터지는 고약한 체질을 타고난 모 씨는
그날도 평소와 다름없이 아침에 눈곱을 떼자마자 땡처리항공권을 검색하고 있었다.
그런데 두둥~
“씨엡립 3박5일 항공권 199,000원”이라는 문구가 보이는 게 아닌가!
6년 전에 가보고 못 가본 씨엡립, 그래서 함 가보고 싶었던 씨엡립,
게다가 20만원도 채 안 되는 놀라운 요금!
망설일 이유가 없었다.
우샤인 볼트보다 빠른 속도로 여러 번의 클릭질 끝에
모 씨는 묻지도 않고 따지지도 않고 항공권 구입을 마쳤다.
느긋한 마음으로 항공 스케쥴을 바라보던 모 씨는
잠시 난감한 기분에 젖어들었다.
뱅기 출발시간이 오전 7시였던 것이다.
모 씨의 오랜 해외여행 경험에 의하면
국제선의 경우, 뱅기 출발 2시간 전에는 공항에 도착해야 한다.
최악의 경우, 1시간 30분 전에는 도착해야 뱅기 날개라도 붙잡고 떠날 수 있다.
그런데 서울에서 인천공항 가는 공항철도와 리무진버스의 첫 차는 오전 5시이다.
그 차를 타고 가면 오전 6시...
청와대 빽이 아니고는 도저히 뱅기를 탈 수가 없는 시각인 것이다.
그렇다고 거금을 주고 택시를 타고 갈 수는 없지 않은가!
‘좋은 수가 없을까?’ 한동안 잔머리를 굴리던 모 씨는
여러 번의 클릭질 끝에 귀한 정보를 발견했다.
인천공항에 24시간 사우나가 있다는 것이다! 단돈 2만원!!
올레~ 바로 이거다!
서울에서 술 한잔 하고 공항철도 타고 느지막이 인천공항에 도착,
사우나에서 한숨 자고 아침 일찍 목욕재계하고 뱅기를 타면?
그 얼마나 기분이 상쾌하고 개운하겠는가! 크하하하!!!
너무나 만족한 모 씨는
내친 김에 또다시 여러 번의 클릭질을 한 끝에
수영장이 2개나 있는 호텔 예약까지 마쳤다.
여느 때처럼 일주일 이상의 여행이었으면 엄두도 못 낼 사치였지만
딸랑 3박의 짧은 여행이므로 간만에 호사를 누리기로 한 것이었다.
며칠 후... 홍대에서 지인들과 얼큰하게 한잔한 모 씨는
자정이 가까운 시각, 공항철도에 몸을 실었다.
눈누난나~ 간만의 여행인지라 콧노래가 절로 나왔다.
그런데 뚜둥~
인천공항에 도착하여 사우나를 찾아간 모 씨는
다음과 같은 글귀를 보고 기절할 뻔 했다!
<금일 입장객이 너무 많아서 더 이상 손님을 받지 않습니다!>
아뿔싸! 모 씨처럼 새벽 뱅기를 타는 사람들이 한둘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들도 모 씨처럼 전날 도착해서 사우나에서 한숨 자고 출발하려는 것이었던 것이다.
누가 빨대를 꽂아서 다 빨아먹어버린 것처럼 모 씨의 머릿속은 하얘졌다.
지금 이 순간, 어떻게 해야 할지 아무런 생각도 들지 않았다.
한동안 멍하니 사우나 앞에 서있던 모 씨는 겨우 정신을 가다듬고
대책을 강구하기 시작했다.
자정이 넘은 시간에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고,
다른 곳으로 간다고 해도 뾰쪽한 방법이 있는 것도 아니고...
결국 공항에서 밤을 새야 하는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깨달은 모 씨는
절망적인 기분에 휩싸이고 말았다.
한국은 아직 꽃샘추위가 기승을 부리고 있었지만 씨엠립은 열대 지방이다.
때문에 잠깐 고생할 생각으로 짐도 줄일 겸 얇은 옷차림을 하고 있던 모 씨에게
공항에서 밤을 샌다는 건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일단 화장실로 가서 옷을 있는 대로 다 꺼내서 껴입었다.
그래봤자 반팔에 반바지여서 몸만 둔해졌지 별로 따뜻하지가 않았다. ㅠㅠ
몸도 뎁힐 겸 빠른 걸음으로 공항 구석구석을 쏘다니던 모 씨는
그나마 따뜻해 보이는 장소를 발견했다.
그곳에는 이미 몇몇 여행자들이 누에고치처럼 몸을 웅크린 채 누워 있었다.
그들처럼 한쪽 구석에 자리를 잡은 모 씨는
방콕 카오산 노점에서 150밧에 산 싸롱을 꺼내 몸을 감쌌다.
그리고 드러누워 억지로 눈을 감으며 잠을 청하려고 애썼다.
하지만 자꾸만 떠오르는 불안한 생각 때문에 좀체 잠을 이룰 수가 없었다.
‘이 나이에 노숙이라니...
이러다가 내일 아침에 입 돌아가서 여행도 못 가고
병원으로 실려 가는 거 아냐?’